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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그리움에 머리가 다 세겠네

작성자石박사|작성시간23.10.22|조회수115 목록 댓글 0

하룻밤 그리움에 머리가 다 세겠네

달포 전 한 지인이 보내주신 <한시 미학 산책>이란 책을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틈나는 대로 차 한 잔 마시듯 읽고 있는데 글의 내용 때문이겠지요,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오래된 향기가 배어나는 듯합니다.

지난주엔 맡은 일이 있어 나흘간 논산에 다녀왔습니다.
1981년 군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은 뒤 논산에서 며칠을 머무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군에서 제대를 한지 40여 년이 지나도록 논산은 훈련소가 있는 도시로 남아 있는데, 며칠을 머물며 보니 논산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감과 대추와 딸기의 주산지라는 말이 새로웠습니다.
붉게 물든 감들이 주렁주렁 실하게 매달린 감나무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원래 크기가 저만했나 싶을 만큼 유난히 크게 보이는 검붉은 대추도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그곳이 딸기 농장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판도 곳곳에 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탑정호수가 아름다웠습니다. 마침 숙소가 탑정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새벽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어디선가 청아하게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가 들렸고, 저녁에는 번지는 노을을 따라 새들이 떼를 지어 날기도 했습니다.

탑정호수는 1941년에 착공하여 1944년에 준공되었는데, 충청남도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였습니다.
주변의 산에서 흘러들기 때문이겠지요,
물이 깨끗하고 겨울철에도 잘 얼지를 않고 논산평야 등 주변에 대규모 농경지가 위치해 있어 철새들의 서식에도 적당하여 겨울철새들이 월동지로 삼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탑정호수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단연 탑정호 출렁다리일 것입니다.
탑정호수를 가로질러 가야곡면과 부적면을 연결하는 보행 현수교인데, 다리의 길이가 600m에 달합니다.
내진설계 1등급을 받았을 뿐 아니라 몸무게 75kg을 기준으로 약 5천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고, 초속 60m의 강풍도 견딜 수 있게 설계가 되었다니 사고에 대한 염려는 기우겠다 싶습니다.
밤이 되어 다리 전체에 불이 들어오면 다리는 딴 세상의 것인 양 몽환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일정의 둘째 날 오후 한가한 시간을 틈타 책을 옆구리에 끼고 길을 나섰습니다.
호수 주변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자 출렁다리가 멀지 않았습니다.
한동안은 입장료를 받았지 싶은데 지금은 무료, 마음이 더욱 홀가분했습니다.
대부분 가족단위의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오가는데, 특히 아이들의 표정에 신기함과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다리를 건너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쳤습니다.
나무 그늘에 앉으니 바람까지 달게 느껴집니다.
마침 눈에 들어온 시가 김육의 딸이 지은 <그리움相思>이라는 시,
둘째 연에 눈길이 갔습니다.
‘하룻밤 그리움에 머리가 다 세겠네’(일야상사빈사화一夜相思鬢似華)라는 구절인데,
사랑하는 임에게 안부를 물으려니 그리움이 깊어 하룻밤 사이에도 머리가 다 희어질 것 같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룻밤 그리움에도 머리가 희어지듯, 40여 년 만에 다녀가는 논산은 새로운 이미지로 마음속에 오래 남겠다 싶습니다.

[글쓴이 : 한희철목사/정릉감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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