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가 가득한 꽃밭》
가을이 깊어 가면 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무엇보다 봄부터 여름까지 푸른빛을 자랑하던 나뭇잎이 대지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아름다운 빛깔로 물든 단풍을 과학적인 근거로 설명하는 것은 얼마나 딱딱하게 여겨지는지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전 자신을 아름답게 물들인 나뭇잎에 더욱 마음이 갑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 이때쯤이 내 때라는 듯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화입니다.
날이 차가워지기 시작하고 찬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때쯤 국화는 조용히 피어납니다.
스스로 견뎌낸 만큼이 향기가 되는 듯, 국화가 내뿜는 향기는 은은하면서도 격조가 있습니다.
피어나는 시절 때문이겠지요,
국화는 예로부터 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떠오릅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도연명의 시 한 구절 속에도 국화는 등장합니다.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이란 구절로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라는 뜻입니다.
번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숨어 사는 은자의 초연한 심경을 담고 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가을볕이 눈부신 오후, 길을 지나가던 아기와 엄마가 예배당 마당에 있는 꽃밭에 들렀습니다.
막 국화가 아름답게 피어난 꽃밭이었습니다. 아장아장 엄마 손을 붙잡고 꽃밭을 찾은 아기가 엄마 손끝을 따라 국화꽃을 바라보았습니다.
엄마는 아기에게 꽃, 꽃, 꽃, 하며 꽃이란 말을 아기에게 일러줍니다. 엄마가 반복하는 말을 가만히 듣던 아기가 마침내 입을 열어 ‘꽃’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 순간 아기의 입에서 ‘꽃’이란 말이 꽃이 피듯 피어납니다.
한가운데 아기 머리를 예쁘게 묶은 고무줄처럼 ‘쌍기역’과 ‘치읓’이 ‘으’로 묶인, 아기가 따라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 아닐까 싶은데도 시위를 떠난 화살이 이내 과녁이듯 아기는 전혀 어색함 없이 꽃을 ‘꽃’이라 부릅니다.
꽃을 ‘꽃’이라 부르는데 중간 지점은 따로 없다는 듯, 단번에 ‘꽃’이라 합니다.
필시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꽃을 ‘꽃’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꽃을 ‘꽃’으로 부름으로 더 이상 ‘꽃’은 지워질 수 없는 단어로 아기 마음속에 새겨지고, 아기는 꽃을 볼 때마다 ‘꽃’이라 부르겠지요.
꽃들은 아기가 처음으로 발설한 ‘꽃’이란 말을 들으며 기쁨으로 온몸을 떨지 않았을까요?
국화꽃들로 가득한 꽃밭은 하나의 우주였습니다. 경이로 가득한 우주였습니다.
[글쓴이 : 한희철목사/ 정릉감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