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던 꽃 >
시선을 사로잡았던 봄꽃들이 하나둘
지기 시작하며 녹색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겨울을 이겨내기도 했거니와
눈부신 빛깔의 꽃으로 피어난
봄꽃들은 감탄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좋아하지도
못했는데 싶은 아쉬움 속에 꽃은 미련도 없이 물러나고,
세상은
온통 푸른빛으로 덮여갑니다.
꽃에 대한 감탄이 꽃 지듯 사라질 즈음,
이때가 자신의 때라는 듯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나는 본래 주목받는 일에 서툴답니다.
제게 어울리는 자리는 중심보다는
어딘가 구석진 자리지요,
마치 그런
마음으로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예배당 담벼락을 따라 하얀 찔레꽃이
무리 지어 피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향기를 맡아봅니다.
멀리서도 바람을 타고 코끝을 찌르는
향기로 다가왔던 기억이 선한데,
서울의 찔레꽃엔 향기가 없습니다.
공해와 미세먼지에 시달린 탓은 아닐까,
향기를 잃은 찔레꽃이 안쓰럽습니다.
그래도 고마운 마음으로 꽃을 한 번 쓰다듬는 순간,
생각지 못했던
‘찔레꽃’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봅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노래를 부르는 마음이 아릿해집니다.
노래 속에는 어린 자식을 집에 두고
일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이고,
엄마 오기를 기다리며 배고픔과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허기진 배를
찔레꽃을 따먹으며 달래는
아이의 모습도 보입니다.
요즘의 아이들은 짐작조차 하기 힘든
가난하고 마음 아픈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시절 탓일까요, 올해의
찔레꽃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온몸이 가시 투성이라 해도 얼마든지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순백의 꽃을 피울 수 있다고,
구석진 자리를 꽃으로
채울 수 있다고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세상살이에 지치다 보면 자신을
무익하다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남에게 짐이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찔레는 가시 투성이의
몸에서 꽃을 피워냅니다.
화려한 꽃 물러간 뒤
구석진 자리에서 꽃을 피웁니다.
가시 투성이라 베려고 했던 마음을
항복하듯 내려놓습니다.
[글쓴이/한희철목사/정릉감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