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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거상 서갑호

작성자녹림처사|작성시간24.07.23|조회수69 목록 댓글 0

 일본 도쿄의 거상 서갑호 

 

일본 도쿄의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미나토구(港區) 아자부(麻布)는

외교 1번가 이지요

프랑스·독일·이탈리아·중국·러시아의 주일 대사관이 있고

아자부의 바로 옆인 아카사카에는 미국·캐나다 대사관이 있어요

 

19세기와 20세기 초,

아시아에 진입한 세계 열강은 지도(地圖)를 도쿄 아자부 위에 그렸지요

본래 아자부는 막부 시대엔 지방 영주 다이묘들이 별저를 뒀던 곳이지요

메이지 정권이 다이묘를 없애자, 서구 열강에겐

‘경비에 유리하고 넓은 대지의 다이묘 별저’가 최고 입지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1965년에야 일본과 국교를 맺은 한국의 대사관이

아자부에 위치한 건 사실 의외 였어요

강국 대사관 못지않은 8264㎡(약 2500평)의 넓은 대지인 데다,

일본 4·6대 총리 마쓰카타 마사요시의 저택 부지라

다이묘 별저보다 한 수 위인 곳이지요

추정 땅 가격은 현재 1조원이 넘을 정도이니

59년 전에도 금싸라기 땅이었지요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300달러도 안 됐던 약소국이

어떻게 이 좋은 땅을 매입했는지 의문이 들어요

 

그런데 ‘어떻게?’의 해답은 지난 12일 열린

‘한국 대사관저의 이례적인 현판식’에 있었어요

관저에 ‘동명재(東鳴齋)’란 이름을 붙였지요

동명은 고(故) 서갑호(일본명 사카모토 에이이치)

사카모토방직 회장의 아호였어요

일제강점기 1915년 경남 울주군에서 태어나,

14세 때 일본에 와선 사탕을 팔고 폐지를 수집하며 돈을 모았지요

1948년 세운 방직 회사가 급성장해 1950년대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재일 교포’가 됐어요

서 회장이 1951년 은행 돈을 빌려 우리 대사관 부지를 매입하곤

5년간 원금·이자를 갚은 뒤, 1962년 한국 정부에 기부했지요

 

안타깝게도 사카모토방직은1974년 오일쇼크 때 휘청였어요

일본 금융기관들이 대출금을 회수하자 부도를 맞았지요

급전이 필요해 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받았어요

서 회장은 2년 뒤 서울에서 61세의 나이로 별세했지요

 

거상 서갑호를 기억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어요

잊힌 이름을 관저에 붙인 건 윤덕민 주일 한국 대사이지요

윤 대사는 “어려울 때 우릴 도운 사람을 기억 못하면

앞으로 누가 다시 한국을 돕겠는가”라며 서 회장의 후손들과도 만났어요

 

그렇지만 서 회장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기엔 아직 모자라지요

여전히 주일 한국 대사관의 서 회장 자료관은 빈틈 투성이지요

예컨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서 회장이 포즈를 취한 사진은

‘연도 미상’이지요

한국 대사관은 본국 대통령기록관·외교사료관·재외동포청 등

곳곳에 서 회장의 연관 자료를 요청했지만 9개월째 답신이 없어요

서 회장 손녀는 “한국을 짝사랑한 조부의 자료를 모으는 데 도와달라”

부탁하는 중이지요

 

생전의 서 회장은 “조국이 부끄러우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하지요

나라를 겨우 되찾은 시절, 설움을 함께 견뎌내자며 재일 교포들을

독려하는 한마디였을 것이지요

‘거상(巨商)’을 기억하는 데 우리 정부 뿐만아니라

각계각층이 힘을 보탰으면 좋겠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주일 한국대사관저가 대사관 부지를 정부에 기증한 고(故) 서갑호(1915∼1976) 방림방적 설립자의 아호를 따서

지난 12일 동명재(東鳴齋)로 명명됐지요

이날 일본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저에서 열린 명명식에 참석한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왼쪽 두번째)와

고인의 유족들이 제막 행사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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