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소주》
한 병에 2000원이면 불콰해지던 시절이 있었다.
식당에서 소주 값은 21세기
들어 한동안 3000원을
유지하다 4000원,
5000원으로 뛰더니 이제
6000원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강남 어느 술집에서는
1만원을 받는다.
한 병 추가하기 무섭다고들
한다.
“이슬 주세요!”
“처음요!” 외치려다
목구멍으로 삼키는 것이다.
이슬이 왜 이렇게 비싼가?
처음처럼이라며 왜 값은 올려
받나?
반주권(飯酒權) 침해 아닌가?
소주는 점점 묽어지고 있다.
1973년부터 25년 동안
소주는 25도였다.
요즘 ‘참이슬 후레쉬’는
16.5도, ‘처음처럼 새로’는
16도다.
“도수(度數)가 너무 낮아져
마셔도 ‘캬~’ 소리가 안
나온다”며 애주가들은 뿔이
났다.
주류 회사들도 할 말이 있다.
“소비자들이 예전만큼 독주를
마시진 않고, 술자리에서
여성이 주류 선택권을 쥐는
경우가 많아졌다.
모두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음주 문화가 민주화된
것이다.”
수요가 있으니 순하게
만든다고?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소비자는 광고와 마케팅에
휘둘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수요를 자신의 수요로
착각하며 사는 시대니까.
소주의 재료는 주정(酒精)과
물, 감미료다. 도수가
내려간다면 다량의 물을 더
타고 주정은 덜 들어간다는
뜻이다.
‘순하게 더 순하게’가 이윤을
높이는 꼼수라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근본(?)이 있는 술꾼들은
그래서 ‘빨간 소주(참이슬
오리지널)’를 주문한다.
소주 도수가 일관되게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빨간 소주’는 2006년 이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선비처럼 20.1도다.
점점 묽어지는 세상에서
독야청청이다.
‘빨간 뚜껑’을 찾는 이들은
대체로 50~60대 이상이고 늘
그것만 마시는 편이라고 한다.
각설하고, ‘빨간 소주’는 배우
이호재의 팬클럽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워낙에 빨간 뚜껑의
소주를 좋아하고 회원들 술
실력도 대단하다.
딩동!
모월 모일에 그 모임이 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빠꾸(후진)’는 없는 호쾌한
자리.
이호재는 으레 그렇듯
콜라잔에 콜라가 아닌 액체를
가득 따르며 말할 것이다.
“술자리나 어정대는 사람이
어떻게 무대에서 60년을
버텼는지, 참 신기하다.
오늘은 대단한 날인데 빨간
소주 일병씩 까자!”
[글쓴이 : 박돈규부장/ 조선일보 주말뉴스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