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시 지정 목포음식명인 제12호 한만임씨가 조리한 주종목 갈치조림. 잘 익은 무, 묵은지, 고구마잎줄기가 싱싱한 먹갈치와 어우러져 고소한 갈치 살은 살살 녹고 나물은 씹는 즐거움이 있다.
유달산 대학루(待鶴樓) 아래 서있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 노래 가사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다.
‘목포의 눈물’ 노래비 뒤에서 본 노적봉(정자 옆 암봉) 아래 삼학도(사진 가운데 섬처럼 보이는 곳)와 영산강 하구.
“삼백 년 원한 품은 로적봉 밋헤/님 자최 완연하다 애닯흔 정조/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1934년 조선일보 주최 '전국 향토 노랫말 공모대회' 1등 당선작이다. 이철(1903~1944) OK레코드사 사장의 주선으로 손목인(1913~1999)이 곡을 붙여 1935년 ‘목포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음반이 나왔다. 음반에서는 노랫말이 바뀌었다.
“삼백련(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 로적봉 밋헤/님 자최 완연하다 애닯흔 정조/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은 임진왜란의 원한이고 ‘님’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목포에 진을 치고 노적봉을 짚과 섶으로 둘러싸 군량 더미로 위장하여 왜적이 싸움을 포기하고 후퇴하도록 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수북이 한데 쌓아둔 곡식 더미를 ‘노적(露積)가리’라 한다. 노적봉은 거기서 온 이름이다. 그렇게 왜적과 싸워 지킨 나라를 300여 년 뒤에 다시 짓밟히고 말았으니 원한이 어찌 없겠는가.
이 내용으로는 조선총독부 심의를 통과할 수 없다. 노랫말을 ‘삼백련(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이라고 바꿔서 심사 요청서를 냈다. ‘세 그루 잣나무 연못 평온하기를 원하는 바람’이라는 뜻의, 소리는 비슷하지만 문맥은 통하지 않는 조악한 조어(造語)다. 일본어는 받침이 없는 개음절(開音節) 언어여서 그들이 한국어 받침을 명확히 발음하거나 구분하지 못하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지난 1일 오전 9시 목포역에 내리자 처음 눈에 띈 건 광장 좌측의 현수막이었다. 세월호가 하루 전 목포 신항에 접안하자 목포시는 역에서 세월호 거치장소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초원음식점'의 갈치조림(2인분), 꽃게살무침과 1국15찬으로 차려진 3인 상, 액젓으로 간을 한 미역국도 맛있고, 반찬들도 모두 실속 있다. 3명이 오면 이런 조합으로 주문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꽃게살무침은 냉동한 꽃게 살만 발라 양념에 무쳤다. 꽃게를 토막 쳐 무친 보통 꽃게무침과 다르다. 게 살덩이들이 모양을 유지한 채 뭉쳐있다. 집집마다 양념 개성이 다르다. '초원음식점'의 양념은 무뚝뚝한 선머슴 같지만 맛은 칼칼하고 산뜻하다. 밥을 비벼 먹으면 좋다.
‘초원음식점’ 여주인 한만임씨는 목포시가 지정한 목포음식명인 제12호다. 지정 종목이 ‘갈치조림’인데 이 집 메뉴판에는 ‘갈치찜’이라고 씌어있다. 같은 음식이다.
갈치조림에 쓰려고 씻어놓은 묵은지. 보기는 허얘도 갈치조림에서 건져 먹으니 별미였다.
9시부터 문을 열어 아침식사가 가능한 ‘초원음식점’은 목포역에서 걸어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조리에 비법은 없다. 주인의 친정인 부산에서 자랄 때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생선 찜·조림 방식이다. 갈치를 손질하고 토막 낸 무를 미리 삶아 둔다. 충분히 불린 고구마잎줄기와 잘 씻은 묵은지 가닥을 적당량 냄비에 깔고 삶아둔 무와 손질한 갈치를 올린 다음 무 삶은 물을 국물로 붓고 양념장을 넣는다. 무 삶은 물이 비린내를 잡아준다. 양념장은 마른고추를 조선간장에 불려 마늘·생강 넣고 다져 재워둔 것이다. 끝으로 대파·양파 등을 썰어 넣고 익힌다. 불 조절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센 불에 한소끔 끓이고 약불로 시나브로 끓이다가 센 불로 잠깐, 갈치·채소에서 맛이 우러나게 잦힌다. 잦히는 동안 어우러진 재료의 맛이 갈치 살에 스미도록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고루 뿌려준다.
목포라고 갈치조림이 식당마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3월 12일에는 이 집과 멀지 않은 곳에서 같은 음식(값도 같음)을 아침으로 먹었다. 반찬은 27가지나 상에 가득 깔렸지만 정작 갈치조림은 비린내가 나고 냉동 갈치인지 살이 뻣뻣했다.
꽃게무침덮밥은 서울 사람들이 생각하는 꽃게무침과 전혀 다르다. 꽃게 살만 발라 양념에 무치고 둥그렇게 빚어서 내온다. 어른 주먹보다 약간 크다. 살을 빼 먹어야 하는 수고가 필요 없다. 살 오른 꽃게를 수협 공판장에서 사와 냉동 보관했다가 살을 발라서 무친다. 냉동해야 꽃게가 좋을 때 사서 저장이 가능하고 살을 바르기도 수월하다. 양념은 식당마다 다르지만 서울식 꽃게무침보다 부드럽고 덜 달다. 좋은 고춧가루가 다른 양념과 어울려 깊은 맛이 있다. 이름이 ‘덮밥’이므로 비빔그릇에 밥을 담고 김 가루를 얹어서 나온다. 그렇다고 꼭 비벼야 하는 건 아니다. 따로 먹어도 된다. 무침 속의 꽃게살은 껍데기에 싸여 있던 모양새가 어느 정도 살아있다. 밥 한 술 뜨고 무침 한 점 입에 물면 살이 씹히면서 부드러운 맛과 향기가 입안에 퍼진다. 이 집 꽃게살무침은 지난달에 왔을 때 먹은 다른 집보다 양념이 거친 듯하면서 맛이 야성미 있다. 더 남성적이랄까. 개인 취향이겠으나 다음 기회가 있다면 나는 ‘초원음식점’으로 갈 듯하다. 각종 음식값은 1만5000원 통일.
꽃게요리전문점 ‘장터’의 꽃게살무침 2인분(2만4000원).'초원음식점'보다 양념도 살도 더 부드럽다.
꽃게요리전문점 ‘장터’의 꽃게탕에 들어간 게의 살이 아주 실하다.
목포에서 꽃게살무침으로 가장 유명한 식당 ‘장터’는 전라남도 지정 별미집 1호다.
국도 1,2호선의 옛 기점을 알리는 비석. 지금은 도로가 연장돼 기점이 옮겨지는 바람에 ‘기념비’로 신분이 바뀌었다. 그 뒤로, 유달산 노적봉 아래 목포 평화의 소녀상과 근대역사관(옛 일본영사관)이 보인다.
목포 근대역사관(옛 일본영사관) 정문에서 바라본 바다 쪽. 길 끝에 목포여객선터미널이 있다. 길이 곧은 듯하지만 끝에 가서 살짝 꺾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역인 이곳을 설계할 때 혹시 있을지 모를 해일의 충격을 완충하기 위해 그런 장치를 했다.
역사관 아래 대로변에는 ‘국도1, 2호선 기점 기념비’가 서있다. 신의주까지 남북을 잇는 1번 국도, 동서로 옛 부산시청사거리로 가는 2번 국도가 이곳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 도로의 원점이었다는 말이다. 기념비는 과거를 기억하는 장치다. 지금은 도로가 연장돼 기점이 1번 국도는 전남 목포시 달동(신항교차로), 2번 국도는 전남 신안군 장산면 오음리(장산도항)로 바뀌었다. 비석 글씨를 보면 ‘기념비’ 글자는 행을 다르게 작은 글씨로 씌어있다. 예전 비석 사진에는 글자 없이 ‘국도 1,2호선 기점’이라고만 썼다. 역사관과 비석 사이에는 ‘목포 평화의 소녀상’이 어느 지역보다 ‘평화롭게’ 앉아있다.
유달산 대학루에서 내려다본 목포 구도심(일본인 거주지역)과 목포여객선 터미널(10시 방향 바닷가 큰 건물). 바로 앞 녹색지붕의 주택이 있는 곳이 성옥 이훈동 정원이고 그 앞에 네모난 지붕의 건물은 성옥기념관이다. 그 앞으로는 유달초등학교 강당이 보인다.
이훈동정원 안에 있는 일본풍 주택과 앞마당. 뒤로는 유달산 대학루(왼쪽 정자)와 노적봉(오른쪽 암봉)이 보인다. 마당의 큰 나무는 후박인데 수령이 250년쯤 된다고 한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배우 고현정이 가지에 맨 그네를 타던 나무다.
후원에서 본 이훈동정원 전면 중심부.
이훈동정원 앞에 있는 성옥기념관의 성옥 이훈동 흉상. 그는 (주)조선내화를 설립한 기업인이었다. 평소에 “기업을 하지 않았으면 소리꾼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예술을 사랑해 목포와 인근 지역 출신 소리꾼과 화가들을 많이 후원했다.
이훈동정원 들목에 있는 ‘차살림&자수 카페 다가올’의 다실. 낡은 일본식 주택을 수리했지만 이렇게 꾸며 놓으니 갤러리 같다. 카페에는 이런 방이 3개, 테이블이 3개 있다.
낡은 일본식 주택을 수리한 ‘카페 다가올’의 외관이 아주 깔끔하다. 길 하나 건너면 유달초등학교다.
'카페 다가올'의 주인 오경희씨는 20년 넘게 전통차 공부를 했고 계간 『차생활』에 ‘차 살림과 자수’라는 칼럼을 7년째 연재하고 있다.
주인이 직접 만든 매실차는 단맛도 신맛도 넘치지 않으면서 깊고 묵직했다. 특히 신맛은 힘차고 입에 침이 샘솟게 하는 상큼함이 좋았다. 완숙 토종매실 씨를 발라내고 과육만 설탕에 절였다가 믹서로 갈아서 따뜻한 물에 탔다고 한다.
카페 안의 많은 장식물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재활용품이다. 화장실의 파우더 테이블은 50~60대들에게는 추억 어린 싱거 미싱 하체부를 활용했다.
우리 일행이 점심 궁리를 하자 오 여사가 적극 도움말을 줬다. 먼저 가정식 제철 생선구이를 잘하는 곳으로 목포역 근처의 '오거리식당(전남 목포시 해안로249번길 42 / 전화 061-242-3333 /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을 추천했다. 요즘 목포는 조기 철이다. 조기는 목포 9미에 들지 않는다.
낙지 잘하는 곳을 물었다. 눈이 반짝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그리고 압해대교 다리 밑으로 가라고 열성적으로 안내를 해줬다. 택시를 타고 가다 보니 세월호가 거치된 신항 이정표가 보였다. 기사에게 거기 들렀다 가자고 하니 “임시 사무실로 쓸 컨테이너 박스가 높은 담처럼 둘러싸서 세월호는 가까이 가도 볼 수 없다”고 말렸다. 그 말만 믿고 포기했는데 ‘그래도 가볼 걸’ 하는 생각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압해대교 근처까지 갔지만 기사는 입구를 찾지 못했다. 오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가 통화를 한 뒤에야 가까스로 들어갔다.
다 먹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삽진항, 목포 광산어촌계 수산물 직매장이다. 어촌계 소속 어민들이 잡은 수산물을 중간상 거치지 않고 곧바로 판매할 수 있는 곳이다. 드넓은 갯벌을 끼고 있는 이곳에서는 철 따라 낙지·전복·꽃게·주꾸미·새우 등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판매하거나 택배도 해준다. 어민 점포는 네 곳이다. 낙지를 팔면서 요리도 해주는 '연산호 은호네수산(전남 목포시 삽진산단로 92-31 / 전화 070-4067-8308)'으로 들어갔다.
대낙지 3마리를 묵직한 중식 칼로 탕탕 ‘조사서’ 만든 낙지탕탕이. 참기름과 통깨를 뿌리고 청·홍 생고추, 양파와 마늘 다진 것을 곁들였다. 다리가 굵지만 낙지가 싱싱해 질기지 않다.
연포탕의 낙지는 끓는 국물에 넣고 얼른 잘라서 먹어야 연하다. 다리를 먼저 잘라서 먹고 몸통은 한참 끓이다가 먹는 게 좋다. 국물은 부드럽고 구수해 입안에 꽃 향기 실은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듯하다.
‘은호네수산’ 낙지는 워낙 싱싱해 검지 굵기의 다리도 질기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부드럽고 쫄깃하다.
'은호네수산' 주방에서 낙지연포탕 즉석 국물을 만들기 위해 물에 무·파·양파·청양고추·건새우·디포리를 넣고 끓이고 있다.
‘은호네수산’은 압해대고 바로 아래 있는 광산어촌계 수산물 직매장 5칸 중 두 칸을 쓴다. 다른 집에서는 음식을 만들어 주지 않는 듯하다.
오후 1시 압해대교 목포 쪽 출발점 아래서 보니 펄이 저만큼 드러나 있다. 멀리 산이 보이는 곳은 압해도.
낙지를 먹고 2시간 여 뒤에 나오자 펄은 온데간데 없고 바닷물이 가득 차있다.
‘다가올’의 오 여사는 택배 주문에 대해서도 가족 챙기듯 자상하게 설명해줬다. “낙지는 가을이 제철이다. 봄 낙지는 가을 낙지에 비해 활력이 덜하다. 오래 살아있지 못한다. 이틀 걸리면 택배는 불안하다. 가을 낙지는 이틀은 살아 있다. 서울에서 택배로 받아도 충분히 살아서 간다.”
맛있는 낙지 덕에 낮술이 길어졌다. 목포 9미 중에 3미까지 진척이 됐다. 더 맛있는 저녁을 기대하며 다시 걸으러 갔다. 20세기 후반 목포 서민들의 추억과 애환이 서린 온금동과 서산동 거미줄 같은 골목을 돌고 돌아 목포역 앞 홍어삼합 집으로 갈 작정이다.(다음주 계속)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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