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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하우스에도 감성을 담을 수 있을까

작성자판대공|작성시간22.04.13|조회수43 목록 댓글 0

컨테이너 하우스에도 감성을 담을 수 있을까

임진영 염상훈의 앙성집짓기
③ 첫 계획안

첫 마스터플랜은 컨테이너 하우스 단지
빠르고 경제적…세컨드하우스로 인기
디자인 가미하면 풍요로운 공간 가능

컨테이너 하우스 여러 채로 단지를 구성한 염상훈의 ‘앙성 마스터플랜’ 외부 투시도. 임진영 제공

실행되진 않았지만 앙성집의 첫 계획안은 컨테이너 하우스였다. 그러니까 임시 주거 공간을 계획한 거다. 앙성땅을 사고 꽤 오랫동안 어머님은 개조한 컨테이너 하우스를 사서 지내셨다. 아마도 치료차 오가는 일정이었고 매실이나 여러 작물을 심으며 지내셨기 때문에, 임시 주거로도 충분하다고 여기신 것 같다. 하지만 건축가인 아들의 입장은 달랐다. 컨테이너 하우스에 머무는 어머니의 환경과 안전을 걱정했다. 당시만 해도 집을 지을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첫번째 계획은 임시 주거의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로 시작했다. 또 비교적 넓은 땅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마스터플랜과 컨테이너 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다.

 

눈을 넓혀주는 마스터플랜

 

집 하나를 지을 땅이라면 그 조건에 충실하면 된다. 만약 여러 채를 함께 짓는다거나 비교적 넓은 땅에 집을 지을 계획을 세운다면, 앞으로 땅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밑그림이 필요하다. 대지를 분할해 여러 지인과 함께 쓸 수도 있고 혹은 농지 그대로 쓸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 집이 들어설 자리를 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마스터플랜은 이렇게 땅 전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검토해볼 수 있는 단계다.

 

단지 규모의 마스터플랜에서는 도로 구조와 같은 인프라, 개별 필지와 공공 영역 등에 대해 계획을 세운다. 서로 다른 용도가 공존할 경우, 각 프로그램의 위치로 어디가 적절할지 배치하고 관계를 설정한다. 마스터플랜에 기능적인 해결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헤이리 아트밸리와 파주출판도시의 마스터플랜을 담당한 건축가들처럼 공동 선과 개별 건축물 사이의 조율을 위해 가이드를 만들기도 한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표현처럼 ‘사회적 조정자’(Social Coordinator)의 역할이다. 건물이 우후죽순 난립하면 동네의 환경이 망가진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개별 건축물이 모여 만드는 풍경을 미리 조율하려는 노력이다. 건축물의 유형, 규모, 재료, 블록의 성격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전체 대지의 활용을 계획한다. 마스터플랜은 내 집뿐만 아니라 앞으로 지어질 주변 집들이 같이 사는 방식이자 약속이기 때문이다.

 

어머님 환갑을 맞아 남편은 앙성땅 마스터플랜 보고서를 선물했다. 보고서에는 두 가지가 담겨 있었다. 앙성 땅에 대한 분석과 제안, 그리고 어떻게 하면 컨테이너 하우스로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였다. 컨테이너 사용을 전제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짓는 집을 구상했고, 개조한 컨테이너 여러 채가 모여 하나의 단지 내지 마을을 만들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진입로와 개별 컨테이너 하우스의 형상은 좁고 긴 대지에 어울린다.

컨테이너 하우스 여러 채를 배치한 염상훈의 ‘앙성 마스터플랜’. 임진영 제공

 

“주변 환경이 별로 없으니 인위적으로 자연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뭇가지가 가지를 뻗는 방식은 공기와 수분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표면적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마스터플랜의 건물들도 두 개의 각도로 엇갈리면서 외부에 접하는 면이 넓어진다. 동시에 외부 공간을 다양하게 만들려고 했다.”(염상훈) 덕분에 각각의 컨테이너 하우스는 자연스럽게 시선이 어긋나게 되었고 개별 마당과 텃밭을 갖게 되었다.

 

컨테이너 하우스의 다양한 변신

 

그렇다면 컨테이너 하우스는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규격화된 컨테이너를 개조한 컨테이너 하우스는 임시 시설물에 가깝다. 말 그대로 ‘경제적이고 능률적으로 화물을 수송’하기 위한 산업재다. 공장 생산이라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일정한 모듈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확장도 가능하다. 반면 상자 안의 공간이 폐쇄적이기 쉽고, 단열, 방염에 취약해 보강을 해야 한다. 기능에 충실하지만 내부 공간의 단순건조함은 아쉽다. 컨테이너 하우스뿐만 아니라 모듈러 하우스(조립식 주택)는 쉽게 설치가 가능하고 경제적이며 보급이 빠르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시도되는 주거 유형이기도 하다.

 

주거의 유형을 만들고 이를 대량 생산해 보급하려는 노력은 의외로 역사가 깊다. 리처드 벅민스터 풀러의 다이맥션 하우스(Dymaxion House)는 지능형 주거의 시초로 꼽힌다. 도시에서 가스 전기를 공급받지 않고도 자급자족할 수 있고 어디든 배달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마치 도시 곳곳을 움직이는 자동차나 우주선과 같다. 이 이상적인 미래 주거는 사실 재난을 당한 사람을 위해 대량 생산으로 빠르게 공급하기 위한 이동식 집이었다. 이후에도 공장에서 생산해 설치, 조립한 주거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는 꾸준히 이어진다.

 

근래에도 국내 건축시장에서 컨테이너 하우스, 모듈러 하우스는 쇼핑몰의 상품처럼 쉽게 접근 가능하다. 특히 세컨드하우스로서 많이 고려되고 있다. 대량 생산, 빠른 보급, 경제적인 가격이 핵심이다. 다만 규격화, 표준화를 강조하다 보면 주거 환경이 단순한 조립식 시스템에 머물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편리함과 합리성은 높아지지만 정작 삶을 담는 공간의 풍요로움은 줄어드는 것이다. 건축가 김찬중의 말대로 “비용이 절감되는 대신 집이 갖고 있는 정서적인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컨테이너 본연의 미를 살리고 산업자원을 재활용한 건축물도 많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어진 로텍(LOT-EK)의 ‘오픈 스쿨’은 컨테이너 8개를 45도로 잘라 역동적으로 구성한 전망대다. 컨테이너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되기도 하고, 천창을 통해 하늘을 보여주기도 한다. 건축가 우의정이 설계한 서울숲역의 ‘언더스탠드 에비뉴’는 컨테이너 120여개를 적층해 실내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다양한 외부 공간도 만들어냈다. 측면이나 정면을 유리로 마감해 개방감도 준다. 모듈의 가능성은 최대한 활용하되 적층이나 변형을 통해 공간을 다양화하는 전략이다.

건축가 우의정이 설계한 서울숲역의 ‘언더스탠드 에비뉴’. 사진 김재경

 

집 꿈꿀 때 나쁘지 않은 첫걸음

 

앙성 마스터플랜에서는 규격화된 컨테이너를 사선으로 틈을 내어 통창을 끼워넣었다. 단순한 사선이지만 육면체 공간 안에 낯선 긴장으로 내부 공간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 폭이 일정한 내부에는 필요한 최소의 시설(주방과 거실, 분리된 침대, 화장실)도 적절히 배치했다. 또 컨테이너에 발코니 하나를 덧대듯이, 컨테이너 외부를 엘(L)자로 감싸는 반외부공간을 만들어주는 제안을 했다. 외부 공간을 감싼 목재 슬라이드는 코너에서 닫거나 열 수 있도록 했다. 슬라이드가 겹치는 정도에 따라 아늑한 반내부공간을 만들 수도, 외부에 열린 데크를 만들 수도 있다. 이를 마스터플랜에 따라 배치하면 굳이 담을 치지 않고도 독립적이면서도 소통할 수 있는 여러 방식의 외부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컨테이너 외부 공간을 감싼 목재 슬라이드는 코너에서 닫거나 열 수 있도록 했다. 슬라이드가 겹치는 정도에 따라 아늑한 반내부공간을 만들 수도, 외부에 열린 데크를 만들 수도 있다. 염상훈 설계, 임진영 제공

 

아이디어 설계로 끝난 계획안이지만 산업재에 감성을 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컨테이너 하우스의 핵심은 비용과 디자인의 무게를 적절히 조율하는 데 있다. 좋은 공간을 만들면 만들수록 조립식 주택이나 일반 주거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제대로 거주 환경을 갖추려 할수록 비용은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둘의 무게를 적절히 조율하고 숨통이 트일 만한 변화를 더할 수만 있다면 대량 생산된 산업재의 장점을 더 살릴 수 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효율적인 임시 구조물을 활용하는 것은 집을 꿈꾸는 첫걸음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사용의 목적에 적합하고 거주 환경을 좀 더 배려한다면 말이다. 환갑 선물이었던 이 보고서는 그림으로만 남아 있지만, 어쩌면 일종의 제안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빈 땅에 백지상태였던 앙성집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한 씨앗이 아니었을까.

 

▶ 임진영은 건축저널리스트이자 기획자다. 건축전문지 <공간> 편집팀장을 지냈고, 현재는 <마크> <도무스> 등에 글을 쓰며 건축물 개방 축제인 ‘오픈하우스서울’을 기획하고 있다. 남편인 염상훈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자 건축가다. 움직이는 파빌리온 ‘댄싱 포레스트’ 등을 설계했다. 부모님과 함께 쓸 ‘앙성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출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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