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 집이 되다 틀에 갇힌 삶이 싫었던 남편은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향했다. 볕 좋고 초록 짙은곳을 찾은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집이었다. 하지만 거창하거나 그럴듯한 집은 필요치 않았다. 그에게는 이미 자연이라는 거대한 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낡은 축사를 고쳐 집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집이면 충분했으니 말이다. 글 이상희 기자 사진 최수연 기자 지리산 자락 아래 펼쳐져 있는 여러 마을 중 봄이 가장 일찍 온다는 섬진강 변에 자리 잡은 경남 하동군. 그중에서도 꽃이 가장 먼저 핀다는 화개면에 신도웅·박경애 씨 부부의 집이 있었다.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부부의 집은 첫눈에 보기에도 여느 집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울타리나 담으로 안과 밖을 경계하고 집은 담 안에 들이는 일반 집과는 달리 부부의 집은 마을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마주하고 있었다. 담이라거나 울타리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경계도 없었다. 그저 집의 안쪽인지 바깥쪽인지를 구분하게 해주는 대문만 하나 달려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거대한 저택 같은 집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집 모두 조그맣고 소박했다.
“원래 축사였던 건물들을 내부만 손봐서 집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이런 특이한 모습의 집이 완성 된 것”이라고 부부는 설명한다.
부부가 이곳 화개에 자리 잡은 것은 20년 전. 서울서 잘나가던 음악 교사였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귀농을 감행한 것이었다.
“원래 나중에 시골에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했었어요. 하지만 말 그대로‘ 나중에’였거든요. 아이들 다 키우고 은퇴하고 나면 그때를 생각하고 있었던 건데 남편은 달랐었나봐요. 기어이 시골로 내려가더라고요.” 무용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은 서울에 남겨두고 혼자 하동으로 옮겨온 남편은 사슴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웃의 빈집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내 집이 필요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농장 부지를 사느라고 돈을 다 써버렸거든요. 번듯한 집 지을 형편이 안 되니 그냥 농장? 있는 축사를 고쳐서 살기로 했어요. 우리 부부 둘 다 겉치레가 싫은 사람들이었고 살기에 편하면 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어요.” 남편의 축사 개조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나무꾼이 고치고 선녀가 꾸민 집 먼저 고단한 몸을 눕힐 방이 필요했다. 마침 사슴 농장 길 건너에 우사가 비어 있었다. 우사의 기본 골격과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잠도 자고 밥도 먹을 수 있는 살림집으로 고치기로 했다. 바닥에 보일러를 놓고 화장실을 들이는 정도가 큰 공사였다. 새로 벽을 쳐서 방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쪽에 침대를 들이고 다른 한쪽에 주방을 들이는 것으로 공간 분할을 끝냈다.
문제는 천장이었다. 살림집이 아닌 우사로 만든 건물이었기 때문에 천장 없이 서까래가 모두 노출되어 있었는데 낡은 서까래에서 떨어지는 먼지가 너무 많았다. 고민 끝에 한지로 서까래 아래를 덮어버렸다. 그냥 평평하게 덮으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방패연 모양으로 발랐더니 아치 모양의 천장이 완성돼 이국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려서 집이 완성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이 다 했어요. 시멘트에 모래 섞어? 바닥에 바르는 일도, 보일러를 놓는 일도, 벽을 바르는 일도 모두 남편이 직접 했죠. 매일 하나씩, 조금씩 완성해갔어요.” 음악 교사였던 남편에게 집 고치는 일은 당연히 처음이었다.
당연히 낯설었고 힘들었지만 어쩐지 재미있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손재주가 새로 생긴 것 같았다. 아니, 원래 손재주가 있었는데 여태 알아채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하동에 있는 동안 서울서 직장에 다니며 아이들을 키웠던 아내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버스를 타고 남편에게 왔다. 그때만 해도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서울서 하동까지 꼬박 6?간 반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남편에게 왔다.
“금요일만 되면 마음이 급해지는 거예요. 내일이면 아내가 올텐데 집 고치는 일에 진척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주말이 다가오면 엄청 부지런해지곤 했죠. 그런데 초보가 일을 해봤자 얼마나 잘해놨겠어요. 사방에 엉성한 것투성이였어요. 주말에 온 아내 눈에 그게 안 보일 리가 없죠. 그래서 아내는 주말마다 예쁜 천으로 덮고 페인트칠하고 하면서 그 엉성함을 가리는 작업을 했어요.” 몇 년 뒤 사슴 농장을 접은 부부는 이번에는 사슴 축사로 쓰던 건물을 고쳤다. 길 건너에 살림집은 있으니 이 축사는 손님이 오면 차도 마시고 한가할 때는 앉아서 온갖 꽃들이 만발한 마당을, 시리게 푸른 하늘을,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뚝딱뚝딱 창도 만들어 붙이고 문도 달고 한쪽엔 간단한 주방도 들였더니 훌륭한 공간이 탄생했다. 물론 이번에도 남편의 엉성함을 가리기 위한, 마지막 꾸밈 작업은 아내의 몫이었다.
고물을 보물로 만들다 부부의 집이 가지는 또 다른 특징은 집을 고치는 데 들어간 자재가 모두 재활용 자재라는 것이다. 부부슴 새 물건, 비싼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낡은 것들이 더 좋았다. 그래서 집을 고치는 데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새 자재 말고 낡고 먼지 쌓인 헌 자재를 쓰기로 했다. 물론 돈이 덜 든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집을 고치는 동안 부부는 주변의 고물상을 수도 없이 돌았다. 고물상에 쌓여 폐물 취급을 받는 물건들이 부부의 눈에는 보물처럼 보였다. 사슴 축사 이층에 단 창문 유리는 컴퓨터 책상에 깔던 유리판을 가져다 재활용한 것이고 창틀이 된 쇠 파이프는 고물상 바닥에서 뒹굴던 것이다. 대문은 낳은 재봉틀의 다리를 분해한 뒤 용접해서 완성했다.
집 앞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나무 조각들은 집을 고치면서 사용하고 남은 나무에 아내가 알록달록 색칠을 해서 붙여 만든 것이다. 이처럼 부부의 집 구석구석은 남편과 아내의 손을 통해 다시 태어난 보물로 가득하다.
아내와 남편이 서울과 하동에서 떨어져 지냈던 지난 10여 년간 부부는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집을 고치고 꾸몄다. 그리고 7년 전 드디어 아내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하동으로 내려왔고 부부의 집 고치기와 꾸미기는 이후로도 계속됐다. 요즘도 부부는 틈만 나면 주변쟀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보물로 변신시킬 고물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자신들의 보물로 가득한, 특이하고 재미있는 집을 완성했지만 부부는 집 안보다는 집 밖의 자연이 더 좋단다. 집은 그저 그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진짜 보물은 저 밖에 있기 때문이다.
자투리 자재 활용하는 팁 신도웅·박경애 씨 부부는 고물상에서 얻은‘ 고물’이라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한다.
고물을 보물로 바꾼 그들의 노하우를 알아보자.
과감한 색표현을 하자 귀농이나 귀촌 초보자가 제 손으? 집을 짓거나 고칠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러서 결과물이 엉성하기 마련이다. 이런 엉성함을 가려줄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과감한 색표현이다. 파랗고 빨갛고 혹은 노란색 등 지나치다 싶을만큼 과감한 색깔을 사용해 집을 꾸며보자. 순식간에 이국적인 멋이 살아날 것이다.
용접기술을 배우자 귀농이나 귀촌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목공을 배운다. 목공기술이 있으면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을 직접 만들 수 있어서다. 시골에서 목공기술만큼이나 실용적인 것이 용접기술이다. 용접을 할 수 있게 되면 쇠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억 더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신씨가 원하는 대로 집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용접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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