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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철의 집짓기에 도움 되는 설계 제안 (8) 한국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

작성자초익공|작성시간24.03.26|조회수58 목록 댓글 0

“한국인은 집에서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케아(IKEA)가 최근 발표한 <2023 라이프 앳 홈(Life at Home)>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집에서의 생활 만족도가 38개 조사 대상국 중 두 번째로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집이 제공해야 할 여러 기능 가운데 어떤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이처럼 낮을까?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것 또한 <2023 라이프 앳 홈> 보고서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에 대한 결과물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 참가자의 58%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은 ‘긴장을 풀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다.

거주자가 살기에 편한 집을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호에서는 거주자가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으로서의 집을 짓기 위해 예비건축주가 고려해야 할 세 가지 방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집의 가치가 10억 원이 넘지만 평범하고 심플한 외관의 미국 단독주택

심플한 외관과 달리 집의 내부는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꾸며져 있다.독특한 집에 대한 환상을 버리자

집은 ‘거주자의 삶, 즉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그릇’과 같다.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지 못하는 공간은 생명력을 잃기 쉽다. 그 생명력을 유지시키는 키는 그릇, 즉 집이다. 흙과 나무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그것들로 만들어진 그릇은 그 안에 담긴 생명을 보전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집도 그릇과 마찬가지다. 사람이 거주하는 집은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좋은 그릇이 생명력을 오랫동안 보전하듯 좋은 집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나는 ‘집이 건강하면 사람도 건강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집을 짓는 목적은 거주자의 안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모든 건축주는 집을 통해 신체적, 심리적인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 ‘건축가를 위한 집’이 아닌 ‘거주자를 위한 집’을 짓기 위해서 건축가는 거주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건축가는 거주자의 삶의 방식, 즉 라이프 스타일에 딱 맞는 집을 설계하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

거주자를 위한 집을 지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꽤 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부터 이런 경향은 더 뚜렷해지고 있는 듯하다

20억 원 정도에 거래되는 미국의 저택이지만 외관에서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을 위한 건축은 점점 사라지고, 건물 그 자체를 위한 건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후나세 순스케는 “오늘날 건축가들은 예술적 건축이나 독창적인 건축에 심취해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일본 건축가들이 거주자를 생각하는 대신 자신들의 ‘건축적 욕심’을 채우는 데 급급해 있다는 사실을 꼬집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후나세 순스케의 생각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지…. “건축은 항상 약자를 지향해야 한다”는 말은 요즘 건축가들에게는 더 이상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상업건물과 달리 단독주택(집)은 건물 자체의 작품성이나 화려함으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건축주의 요구사항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 같이 생긴 아파트와 같은 공간을 생각하는 것도 금물이다. 작품성과 화려함은 가능한 한 배제하고, 자신과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이 가장 잘 녹아들어간 공간을 생각해보자. 집짓기는 자신과 가족의 스토리를 종이에 적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같은 집의 실내는 겉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건축주의 의견이 설계에 잘 반영되어야

집은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상업건물과는 생각 접근 방법 자체가 달라야 한다. 건축가는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건축 전문가라면 혹여나 건축주가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며 예술 작품과 같은 집을 짓고 싶어 하더라도, ‘집의 가치’를 먼저 생각할 수 있도록 건축주를 도와줘야 한다. 집을 지을 예산이 충분하지 못한 건축주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집짓기를 계획하고 있는 예비 건축주 역시 예술적이고 독창적인 외관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평생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한 행운이자 기회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못 접근하면 오히려 독이 되어 버린다. 그것이 평생 자신을 옭아맬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얘기했던 후나세 순스케는 “일본은 약자를 죽이는 비인간적인 건축물로 가득 차 있다”며 일본 건축계를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다. 잘못 지어진 건축물은 그 안에 있는 생명을 죽일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건축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을 죽이는 건물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살리는 건물을 세상에 내어 놓는 일이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노출콘크리트로 설계한 오사카 어린이도서관재료에 대한 고민

후세나 순스케는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비인간적인 건축물의 대표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노출콘크리트는 콘크리트 재료의 질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마감기법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은 콘크리트로 골조를 세우고 내부와 외부에 마감재를 사용해 콘크리트 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노출콘크리트는 콘크리트에 다른 마감재를 사용하지 않고 면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노출콘크리트 공법은 ‘콘크리트 자체가 나타내는 독특한 조형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주로 사용한다.

노출콘크리트의 대가로 알려진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1970년대부터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수많은 건물들을 설계했다.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그저 기능만을 충족하려고 하면 따분한 짓밖에 하지 못한다.” 안도 타다오의 말이다. 그의 주장은 앞서 필자가 제기했던 “건축주의 의견이 설계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과는 완전히 반대된다. 감히 세계적인 건축가의 건축철학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내리기에 필자는 여러모로 비교도 안 되는 건축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믿는다. ‘집’이라고 하는 특별한 용도의 건물을 설계할 때는 반드시 건축주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야 한다고. 안도 타다오는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묵살해 버리고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적 건축’, ‘독창적 건축’에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생명을 기른다’는 사명감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다. 땅이 비옥하고 좋아야 농작물이 잘 자라고 열매도 잘 맺는다. 집도 마찬가지로 농작물과 같은 이치가 적용되어야 한다. 실내 환경이 좋은 집이라야 그 안에 사는 생명이 잘 자랄 수 있고 그 생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일본의 노출콘크리트 사례는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이들과 노인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유치원, 초등학교, 노인정 등 노유자시설 대다수가 콘크리트로 지어지고 있다. 심신이 연약한 어르신들을 돌봐주는 요양원 건물도 상황은 비슷하다. 병원은 또 어떤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가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건축 재료의 선택에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진행 이형우 기자 │ 글 사진 최재철(제이초이 건축디자인연구소 소장)

출처 : 전원주택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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