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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없는 우체통

나는놀면서살았다 20 - 내 인생 처음으로 포기한 것이 무역이었다

작성시간15.07.28|조회수162 목록 댓글 0

20064월에 태어나서 16개월을 살고,

200710월에 생()을 마감한 <G&L TRADE>

<글로벌 앤 리드>라고 이름은 기가 차게 지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지 마시길...

짧게 살다간, 생의 흔적마저도 지워버렸다.

 

그 당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 안개가 짙게 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느낌

 

당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투자 상담으로 오는 사람들이나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데도

내 머리 한 구석에도 없는 남의 이야기였다.

가슴으로 보고, 머리로 판단하고, 즉시 행동으로 옮긴다.”

스무 살 이후 나를 지탱해주던 개똥철학도 진짜 개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슴으로 보긴 했는데, 머리로의 판단은 쏙 빼고, 즉시 행동해버린 것이다.

 

무역은 실크로드다.

그 옛날 장보고가 청해진을 기점으로

당나라와 일본을 연결하는 삼각무역으로 해상권을 장악하고,

잘 못 들여온 원단을 버리기 아까워 때수건으로 쓴 것이

이태리타올로 변신해서 떼돈을 벌고,,

키높이 밑창 하나로 13억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무역이지 않은가?

 

이렇게 재밌는(?) 무역도 나처럼 하면 망한다를 알리고 싶어서

이 글을 쓰려고 한다.

    

 

<고생문은 우연히 열렸다>

20063월경 중국 텐진의 어느 술집.

그날 밤, 김마담의 특이한 휴대폰 고리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

 

나스 썬머 (그게 뭐야)?”

표우량 마 (이뻐요)?”

 

, 진짜 이쁘네. 그거 얼마짜리야?”

이거 한국돈으로 300원이에요.”

숫자나 영문 알파벳을 조합해서 만든 휴대폰 고리였다.

, 이렇게 괜찮은 물건이 300원 밖에 안한다고?’

 

다음 날 아침, 김마담과 나는 텐진 고문화거리에 서 있었다.

밤새 그 휴대폰 고리를 볼 생각에 잠도 설친 터...

앞뒤 가리지 않고 액세서리 가게부터 찾아갔다.

이 제품 어디에서 만들었나요?”

이우시장

이우시장이 어딥니까?”

상해와 항주 사이에 있는 지역인데, 도시전체가 시장입니다.”

 

맞다.

이우시장은 세계 최대의 도매시장이다

이우에 없으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점과 상점을 이으면 220km나 될 정도로 크다.

 

다음날 중국직원 두 명과 비행기로 저장성 이우시장으로 날아갔다.

정말이지 입이 쫙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전 세계 생활용품과 액세서리의 30%가 이곳에서 나온다고 한다.

시장구경을 하는 데만도 한달 이상은 족히 걸릴것 같았다

 

어렵사리 그 제품을 만든 공장도 찾아냈다.

이 부분은 바꾸고, 도색은 고급으로해서 품질을 높이자

그리고 한국과 일본 시장을 겨냥하자

십만개만 팔아도 ... 백만개를 판다면... ㅎㅎ

상상만으로도~!

이미 내 머릿속의 대박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무지 1. <A -ONE 의 탄생 >

    

제품의 이름도 지었다.

알파벳의 첫 머리 A

숫자의 처음인 ONE

무역의 처음, ’!! 그럴싸하지 않은가?

 

먼저, 팔찌 10만 세트를 만들어 가져 왔다.

기대도 잠시, 1000개를 랜덤으로  품질 검사를 했는데,,,

팔찌의 잠금장치인 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대로 팔 수는 없는 일, ‘을  개발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우 , 텐진,  칭타오... 공장을 수소문해서 중국을 안방 드나들 듯 돌아다녔다.

하지만 에이원에 맞는 것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국을 뒤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딱 맞는 제품을 찾긴 했는데, 단가가 개당 3천원!

애초 A-ONE의 소비자가격을 3천원, 도매가격을 7백 원으로 잡았는데...

제조 원가가 3백 원 이하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공장을 찾느라 몇 주를 또 흘려보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법,

광저우의 한 회사에서  맞는 제품을 찾았다.

시계의 잠금장치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가격과 품질면에서도 모두 합격이었다.

 

우선 샘플 20개를 만들었다.

롹의 샘플에 완제품을 만들어 일본과 미국으로 보내고, 한국의 유통업체를 찾아서 홍보를 시작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일본의 무역상이 창원으로 찾아왔다.

이대로라면 10만 세트를 구매하겠습니다.

아울러 일본의 판권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역시 나는 천재(?). ㅋㅋ

샘플만으로 판권계약을 마쳤고, 2배 정도의 이윤도 생겼다.

추가 제작의 꿈을 꾸고 있을 즈음, 잠금장치인 롹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뿔사!!

롹의 절반이상이 불량품이었다.

 

아무리 중국 회사측에 따져봐야 헛수고였다.

전수검사를 하지 않고 제품출고에 사인을 한 탓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롹 5만개를 만들어서 가져왔다.

 

혹시 액세서리가 잘 팔리는 계절이 봄부터 초가을까지라는 사실을 아시는가?

그런데, 금속으로 만든 에이원 완성품을 가져온 시기는 늦가을!

나의 무지로 인해 때를 못 맞춘거였다.

 

 

 

무지 2. <레이저 포인트>

 

A-ONE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무려 4곳의 공장에서 7가지의 공정을 거쳐야했다.

현지 직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시기 한 달에 15일은 중국에서 보냈던 것 같다.

 

이우시장에 있는 공장을 찾아 제품 점검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느 가게 앞에서 내 걸음은 붙박이가 돼있었다.

 

저게 뭐지?

볼펜, 후레쉬, 지휘봉, 레이저의 4가지 기능을 가진 제품-레이저포인트 였다.

 

이런 제품이 8백 원밖에 하지 않는다고? 한국에 가져가면 8천원에는 팔수 있겠다.’

즉석에서 만 개를 수입했다.

 

10배의 이익이라~~ 한 여름밤의 꿈보다 달콤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산산조각이 날 줄이야~

레이저포인트는 이미 수입이 된지 오래였고,

그것도 한물간 제품으로 땡처리 되고 있었다.

 

~~ 나의 무지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인터넷 검색만 해봤어도 저지르지 않을 실수였건만...

지인을 통해 5천개를 팔고, 나머지는 여기저기 선물로 나눠줬다.

 

 

<직원들과의 중국출장>

 

이번에 중국 출장 가고 싶은 사람?”

사장님, 저도 이번에 데리고 가시면 안되나요?”

8명이 가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디자인과 판매팀 포함해서 4명만 같이 가자.”

출장 가는 직원들은 첫 외국여행이라 들떠 있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항주에 도착,

항주에서 이우까지는 리무진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호텔 로비에 마중 나온 중국직원과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이우시장은 오후 5시면 문을 닫으니까 어서가자~

함께 온 직원들은 어린애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오전 5~ 아침식사겸 회의

오전 6시30분~ 이우시장

오후 5~ 제품공장

저녁 8~ 저녁 식사 겸 회의

12~ 해산

1~ 취침

 

이런 스케줄이 꼬박 3일 밤낮으로 이어졌다.

직원들의 눈빛에 초점이 사라져갔고, 중국직원들도 힘들어했다.

 

함께 간 여직원이 투정 섞인 불만을 토로한다.

사장님, 중국까지 왔는데 하루만 여행하죠.”

중국 직원들도

저지티엔 카이스 헌 요우밍더 지우바 (최근 아주 물 좋은 술집이 생겼습니다)

그래, 며칠 동안 고생 많았어. 오늘은 하루 쉬도록 하자.”

낮에는 이우시장에서 마음껏 쇼핑하도록 자유시간을 주고,

저녁엔 고급식당과 술집을 다니면서 함께 즐기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이번 출장은 전에 가지 않았던 나머지 4명이 함께 가자.”

순간, 분위기 싸늘~~~ 직원들이 내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알았다. 이번엔 나 혼자 간다.”

 

       

무지 3. <당신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는 칸 KAN>

잘 먹고 잘 사는 건강과 구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도 통하는 인류의 관심사다.

1. 게르마늄을 첨가한 실리콘에 은장식으로 포인트를 주고,

    종교나 부적 문양을  인쇄로 찍어서 의미를 준다!!

2. 이름도 뭔가 강력한 메시지를 담는다.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점유한 몽골제국의 징기스칸의 이름을 본따 kan ()으로 짓는다.

 

여기까지만 세워놓고 우하하~~’

시작은 비록 미비했을지라도 끝은 창대하게 맺을 꿈에 부풀었다.

 

칸 ( KAN )팔찌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은>

금처럼 비싸진 않지만,  은근한 멋을 지닌 귀금속을 액세서리로 갖는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휴대폰이나 전자제품의 전자파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팔찌의 중간 포인트 부분을 스트링 실버 1.2돈으로 만든다.

 

<문양>

부적의 효능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아직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도 단순 부적을 적어 3만원에 팔고 있지 않은가?

게르마늄이 첨가된 실리콘 팔찌 줄에 부적 문양을 인쇄로 새긴다.

 

<게르마늄을 첨가한 실리콘 줄>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건강제품이 꾸준히 인기있는 이유는 뭘까?

게르마늄이 건강에 좋다는 수문이 나면서 히트를 친 적이 있다.

성분이 좋은 국내산 게르마늄을 실리콘 줄에 첨가한다.

 

두 달 뒤 야심작 칸(kan)팔찌의 샘플을 들고 일본에 갔다.

첫 거래 5천개!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두 번째 주문은 만개를 받았다.

이대로 가다간 돈방석에 앉을 날도 머지않아 보였다.

일본 수출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생산량을 두배 이상 늘렸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이번에도 역시 장밋빛 청사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두 번째 제품을 받은 일본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

게르마늄 줄에 인쇄로 새긴 문양이 벗겨진다는 것이다.

불량률 12%!

예상보다 너무 많은 수치였다.

한 달 동안 발에 땀이 나도록 문제해결을 위해 찾아다녔다.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인쇄 부분에 코팅 마무리로 제품생산을 강행했다.

하지만, 한번 불량인 제품의 신뢰문제와 납품 기한 지체로 더 이상 주문이 없었다.

 

 

 

 

 

 

18개월 동안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낮에는 납품처 확보를 위해 백방으로 다녀야했고, 밤에는 사무실에 앉아 사업계획을 짜야했다.

그 시기, 일주일에 사흘은 사무실에서 밤샘작업을 했던 것 같다.

 

그 날도 새벽 5, 커피 한잔으로 밤샘 업무를 마무리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유는 딱 하나였다.

- 내가 시작했기 때문에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집이었다.-

    

아침 회의시간,

여태 고생들 많았다. 오늘부터 무역회사 문을 닫기로 했다.

나는 본업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와 같이 일하고 싶은 직원은 투자업무를 배워서 함께 해도 된다.”

 

내 스스로 안개를 걷어 버렸다.

 

얼마의 돈을 잃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무지는 나 뿐 아니라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힘들게 한다.

당시 만들었던 <무지 3탄 제품>들은 아직 창원의 오피스텔에 간직하고 있다.

그동안 몇 번 땡처리식 판매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가끔 불우이웃돕기나 선물로 세상에 빛을 보곤한다.

 

나의 무지로 탄생한 그들도 누군가에겐 꼭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이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난 기꺼이 내어줄 것이다.

  

그 때 술집에서 본 이니셜 팔찌 하나가 기고만장했던 나를 한풀 꺾어주었다.

18개월 동안 낸 비싼 수업료만큼 배운 것도 많다.

원가 분석은 기본이고, 유통, 마케팅까지....

무역(貿易)에 무(貿)자도 모르던 내가

또 다시 꿈을 꾸게 만들 정도로 기초학습을 튼튼하게 가르쳐주었다.

난 지금도 무역이 황금알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역과 유통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지 않는가?

8년이 지난 지금,

아픔은 사라지고 다시금 도전이라는 날개가 파닥파닥 돋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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