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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밭 너머 풍경에 스며든: 스믜집

작성자목기연|작성시간23.06.16|조회수98 목록 댓글 0

스믜집은 전라남도 증도의 태평염전이 주최하고 램프랩이 주관하는 아트 프로젝트 ‘소금 같은, 예술’의 건축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태평염전은 1953년에 설립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염전이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소금 창고 건물을 개조한 소금박물관부터 염생식물원, 캠핑장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매년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아트 프로젝트 ‘소금 같은, 예술’을 개최해 지역사회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아트 프로젝트는 국내외 예술가를 초청해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 자산을 배경 삼아 관내 소금박물관에서 전시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그중 가장 큰 규모의 기획은 국제 공모를 통해 해외 예술가를 선발해 매년 8월부터 2월까지 증도에 머무르며 작업할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스믜집은 예술가를 위한 집으로 계획됐다. 

대상지는 염생식물원과 소금박물관으로부터 약 2km 떨어진 조용한 갈대숲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갈대 사이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면 저수지와 같은 작은 개천을 지나 다다르게 된다. 대상 건물은 1986년 염전 인부를 위한 숙소로 건축됐다가 장기간 폐가로 방치되어 있었다. 철거를 하다 만 상태로 지붕과 깨진 벽체만이 남은 건물이었지만, 벽지와 못 자국 등에서 과거 생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클라이언트는 건물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지역의 자연과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기를 바랐다.

 하얀 소금밭, 붉은 염생식물, 유채꽃밭, 갈대숲, 거친 자갈길, 막 자란 자생식물 등 지역의 풍요로운 색채와 질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자연과 인공물의 텍스처를 관찰하고 수집하는 데서부터 디자인 구상이 시작됐다. 그러던 중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 구조물을 만들고 관리하는 방식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소금을 채취하기 위해 소금이 닿는 모든 표면은 방부제 등 화학약품의 사용을 금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따라 소금 결정이 맺히는 결정지의 표면은 화학적 방부 처리를 하지 않은 소나무 원목 판재를 사용해, 매해 겨울철 판재를 전면 교체하여 부패를 방지하고 있다. 지역의 재료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스러지는 건축을 추구하는 구마 겐고의 ‘약한 건축’의 태도를 산업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듯했다. 60년이 넘은 소금 창고 역시 소나무 판자로 지어졌다. 해풍을 맞아 까맣게 변색된 나무벽의 질감이 장소의 풍경을 지배하는 요소라고 느꼈다. 이에 새로 지을 건물의 외벽도 자연스럽게 방부목이 아닌 자연 소재의 나무를 사용하기로 했다. 

나무의 표면을 검게 태워 그을리는 방법은 일본 전통 건축에서는 ‘야키스기’로, 한국 전통 가구에서는 ‘낙송법’으로 불린다. 표면을 태우는 과정에서 얇은 코팅막이 형성되어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방부, 방충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지역의 풍경을 담는 외벽으로 자연 소재의 나무를 사용해 검게 태우는 방식을 구상했다. 전나무, 소나무, 삼나무, 가문비나무 등 다양한 수종으로 테스트를 진행했고, 그중 현장에서 수급이 원활한 가문비나무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 내에서 자재를 가공, 공급할 업체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관련 설비를 갖추지 않았거나 인건비 및 배송 중 파손 우려 등의 이유로 높은 비용을 제시하는 업체가 대다수였다. 문제는 다른 방법으로 쉽게 해결됐다. 전문 시공업체가 아닌, 태평염전의 직원들과 지역 농민들이 직접 시공에 나선 것이다. 그렇게 별도의 설비 없이 노천에서 농업용 가스 토치를 이용해 직접 목재를 하나하나 태우는 방식으로 설계 의도를 구현할 수 있었다. 공법이나 재료 선정에서는 외딴 지역의 특성상 자재 운송 비용이 높다는 점과 중장비 사용이 제한적이라는 점, 그리고 비전문가인 지역 주민들이 직접 시공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이러한 조건을 감안해 콘크리트의 사용은 최소화하고, 시멘트 블록, 스틸 파이프, 합판, 목재와 같이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수급이 원활하면서 손으로 직접 들고 옮길 수 있는 재료만을 이용했다. 도면이 아닌 그림과 말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수한 시행착오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자잘한 시공의 오차는 너그럽게 수용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고, 실수를 함께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여타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한 동지애를 느끼기도 했다. 

 

 37년 전 염부의 숙소로 축조된 건물은 8평 남짓한 유닛이 여덟 칸 붙어 이루어진 가로로 긴 단층 건물이다. 건물의 정면을 따라 90도 각도로 CMU(콘크리트 블록) 조적벽을 덧대 수평 라인이 강조된 건물의 입면에 수직의 리듬을 부여했다. 조적벽은 지붕의 횡하중을 지탱하는 버트레스이면서 동시에 각 유닛의 출입부에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칸막이벽으로 기능한다. 지붕의 경우는 샌드위치 패널의 기존 지붕 위에 골강판을 덧대고 판의 얇은 두께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둔각의 매스가 만드는 둔중한 무게감이 지붕 판의 얇은 두께와 만나 가볍고 경쾌하게 표현되도록 디자인했다. 

내부는 기존 건물의 공간 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일부 벽을 터서 공간을 연결하거나 부분별로 필요한 요소를 덧대었다. 외부로 난 화장실을 안으로 들여 침실과 구획하고 출입구로부터 거실, 작업실, 주방, 뒷마당으로 연결되는 동선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무엇보다 작업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창문의 크기를 가로 1.6m, 세로 1.6m로 확장했다. 외부로 돌출된 창을 두고 창틀을 1m가량 안으로 연장해 이를 작업용 테이블로 삼았다. 이 테이블은 아티스트가 식사를 하거나 작업을 하는 등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장소다. 창밖으로 갈대와 저수지 위로 넓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느리게 변화하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했다. 

 

 라운지 공간은 두 칸의 유닛을 연결해 만들었다. 아티스트들이 함께 요리와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용도 외에도 지역사회의 필요에 따라 행사가 열릴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라운지의 출입구는 외벽을 걷어내고 건물의 속살을 까뒤집어 그대로 드러나게 했다. 기존 방문이 철거되면서 깨진 구멍을 보존하고, 오래된 거친 미장 마감 면에 새로 덧댄 스틸 파이프와 CMU 벽의 포개진 단면을 노출시켜 건물이 거쳐온 역사를 보여주도록 했다.

정면 돌출창에 달린 ‘실뜨기 롤스크린’은 전통 놀이인 실뜨기에 착안해 디자인했다. 도르래에 매달린 실을 잡아당겨 벽에 부착된 핀들을 따라 감아서 삼각형, 지그재그, 별 모양 등 자유롭고 다양한 형태의 도형을 만들며 롤스크린의 높이를 조정할 수 있다. 실뜨기 롤스크린은 건물의 성격에 맞게 극도의 로우테크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의도했다. 건축가가 면 소재 원단과 하드메이플 목봉, 도르래, 스테인리스 고정판, 면사 등의 재료를 구입해 직접 제작하고 설치했다. 그 밖에 라운지 입구의 외부 조명과 손잡이 등 디테일한 요소도 옛 건물의 낡은 분위기와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했다. 

 

스믜집(ㅅㅡㅁㅡㅣ집)이라는 이름은 삼각 지붕, 처마의 수평선, 사각 창틀, 바닥 데크의 수평선, 칸막이벽의 수직선을 본떠서 지었다.​​​ (글 조웅희 / 진행 김지아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조웅희(홍익대학교) + TCA 건축연구소

위치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곡도길 9-43

용도 아티스트 레지던스(주택)

대지면적 942㎡

건축면적 261.06㎡

연면적 227.82㎡

규모 지상 1층

높이 4.2m

건폐율 27.71%

용적률 24.18%

구조 시멘트블록조

외부마감 탄화목

내부마감 수성페인트, 합판, LVT

시공 태평염전, 양영국

설계기간 2021. 4. ~ 6.

시공기간 2021. 10. ~ 2022. 6.

건축주 태평염전, 램프랩

 

조웅희

조웅희는 TCA(The Concrete Abstract)의 대표이자 홍익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공부하였고 미국 건축사이다. 서울 조병수건축연구소, 베를린 바코우 라이빙어, 뉴욕 아자예 어소시에이츠에서 뮤지엄, 주거, 오피스 등 다양한 규모와 프로그램의 건축 실무를 익혔다.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도시전 코디네이터, ‘소금 같은, 예술’의 예술가 국제공모 심사위원 등 건축뿐 아니라 전시, 예술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글 조웅희

사진 조웅희

자료제공 TCA

진행 김지아 기자

출처 SPACE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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