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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기아, EV9 4WD

작성자동호인|작성시간23.08.08|조회수54 목록 댓글 0

다양한 전기차들이 출시되고 있다. 소형급을 시작으로 중형, 대형 세단까지 등장했다. 쉽게 와닿지 않겠지만 전기트럭도 많아졌다.

거의 모든 세그먼트에 전기차가 등장했지만 아직 전기차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영역도 있다. 3열 대형 SUV 시장. 현재 기준으로 보면 메르세데스-벤츠 EQS SUV, 리비안 R1S가 전부일 정도다. 앞으로 등장할 모델도 볼보 EX90, 루시드 그래비티 정도뿐이다.

이 상황에서 기아가 EV9을 발표했다. 전 세계 몇 안 되는 3열 대형 전기 SUV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기차 플랫폼의 유연성, 배터리 업체와 밀접한 관계, 새로운 시장 창출에 대한 의지를 바탕으로 기아차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일까?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신차로도 꼽혔다.

여기까지는 시장 전반에 걸친 EV9의 상징성 얘기였다. 그렇다면 상품 자체로 접근했을 때 EV9의 가치는 어떨까?

EV9의 디자인은 콘셉트카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 서로 상반된 개념을 창의적으로 융합시켰다는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s United) 테마를 중심에 뒀다.

 

표현은 그럴싸하지만 첫인상은 ‘빈 공간이 많다’였다. 깔끔한 선과 면의 조화를 바탕으로 전면, 측면, 후면 모두 여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헤드램프와 리어램프도 양측면으로 밀어 넣었다. 중앙 부분은 특별한 기교 없이 면의 상태로 남겼다. 측면도 마찬가지. 별다른 기교 없어 면이 더 잘 부각된다. 대중적인 모습보다 실험적인 디자인 요소가 많다.

전면부 디자인에도 새로운 개념이 적용됐다. 기아는 디지털 타이거 페이스라고 불러달란다. 일상적으로는 일반 패널 같아 보이지만 숨겨진 조명을 통해 마치 차체에서 빛이 나오는 효과를 내준다. '호랑이 코 -> 타이거 페이스 -> 디지털 타이거 페이스' 방식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인데, 디자인 완성도를 떠나 필요 이상으로 영어를 남발하는 것 같다.

EV9을 보면 카니발과 다른 거대함이 느껴진다. 길이가 5m가 넘고 폭도 2m에 가깝다. 높이도 1.7m가 넘다 보니 EV9의 지붕을 보기는 힘들다. 휠베이스도 3.1m 수준으로 카니발 보다 길다. 그러나 실내 공간이 카니발보다 넓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분명히 넉넉한 공간을 가진 차다. 또한 이런 크기는 현대 기아차가 새롭게 해석한 실내 공간 개념을 소비자들에게 전하는데도 목적이 있다. 단순하게 이동을 위해 앉아있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전기차 경험을 전달하겠다는 것이 기아의 설명이다.

우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왕래가 가능하다. 충전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위해 운전석과 조수석에 릴렉션 시트도 장착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 영화 감상까지 가능하니 '금상첨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월 77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2열 시트에서 카니발이 떠오른다. 전후 슬라이딩은 물론 회전이 가능한 스위블 구조까지 갖췄다. 이동을 하며 회의를 하거나 가족들과 놀이를 하는 등 활용성이 다양하다. 뒷좌석 탑승객들을 위해 대형 수납함 겸 테이블도 마련했다. 작은 아이디어들이 곳곳에 배치된 것이 EV9이다.

공간에 대한 인상을 제외하고도 실내에 들어섰을 때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2가지나 있다. 첫 번째, 버튼 배치 구조가 기존 기아차와 다르다. 시동 버튼은 칼럼식 기어 레버에 통합됐다. 통풍, 열선, 스티어링 열선 조작 버튼도 도어 패널로 자리를 옮겼다. 주행 모드와 터레인 모드 버튼은 스티어링 6시 방향에 위치한다. 12.3인치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모니터 사이에 5인치 공조에 터치패널도 추가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조작을 위한 버튼은 대시보드 속 글씨로 숨겼다. 평상시 안 보이다가 필요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샤이 테크(Shy Tech) 기술의 일종이다. 그냥 터치하면 조작되지 않고 꾹 눌러야 작동하게 만들어 오조작 문제에도 대응했다.

두 번째, 새로운 소재 선택에 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면 지금까지 기아차와 달라 보이지 않지만 손에 닿는 거의 모든 부분이 생소한 느낌의 플라스틱으로 변경됐다. 좋게 말하면 새로운 느낌이고 나쁘게 말하면 어찌 됐건 그냥 플라스틱인데 비싼 차 값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기아는 어망, 옥수수, 사탕수수, 재활용 플라스틱 등 친환경 소재로 만들었다고 한다. 시트 내부, 각종 흡차음재, 카펫 등 일반적으로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많이 쓰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EV9은 너무 드러내고 실내 전체가 플라스틱으로 도배된 느낌이다. 차값이 저렴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해하겠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약점이 있기에 이것 또한 좋게 보이지 않는다.

주행을 시작하기 위해 어색한 위치(?)에 자리한 버튼으로 EV9을 깨운다. 화려한 인포테인먼트,  너무 간소화된 계기판 디자인이 독특하게 다가온다. 분명 풀 디스플레이 타입이지만 현대 기아차 하위 트림 모델에 사용되는 디스플레이-룩 계기판 디자인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이 의외다.

계기판 테마 변경 기능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일부 색상과 포인트 정도만 바뀐다. 나머지는 EV9의 디자인처럼 여백이 차지한다. 현대 기아차가 디스플레이 콘텐츠 구성 부분은 화려하고 직관적으로 잘 만드는데 갑자기 이런 선택을 한 이유가 뭘까?

테스트 모델에는 2개의 모터가 탑재된다. 최상급 사양이다. 초기에는 조용하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전기모터 특유의 강한 초반 토크 덕분에 큰 차체지만 부담 없이 움직이며 변속기가 없어 부드러움 이점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여기에 움직임이 많은 서스펜션이 덕분에 초반 승차감이 좋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시점을 넘어가면 한계가 명확한데, 움직임이 많아 부드러운 느낌은 주지만 에어 서스펜션처럼 충격을 잘 흡수하지 못한다. 움직임이 많도록 만든, 전통적으로 과거에 많이 쓰였던 코일 스프링 서스펜션 셋업이다. 정확히는 한국형 모델 전용의 서스펜션 셋업. 기아는 차이가 없다고 말하겠지만 해외 사양에서는 많은 것들이 바뀐다. 쉽게 말해 해외 버전에서는 균형을 잡은 서스펜션을 쓴다는 얘기다.

충분한 토크와 조용함, 움직임이 많은 서스펜션 덕분에 시내 주행 등에서는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차체는 무겁다. 실측을 해보니 2,660kg 정도였다. 100kWh에 육박하는 배터리를 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성인 1명만 탑승해도 2.7톤을 넘고 EV9이 원하는 다인 승차환경에 맞추면 차량의 중량은 최대 2.9톤을 넘어선다.

2개의 모터가 달렸지만 대부분의 환경에서 뒷바퀴 모터만 구동한다. 2개의 모터가 모두 활용되는 경우는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그리고 최대 가속 때뿐이다. 차와 어울리지 않지만 험로 탈출 때도 2개의 모터가 돈다. 그러나 일정한 속도로 주행 중이라면 대부분 후륜구동 모터만 사용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시킨다. 이는 더 많은 주행 가능 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전기차의 숙명이다.

스포츠 모드로 설정 후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초반부터 강하게 밀고 나가는 성향을 보인다. 폭발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추월 등의 환경에서 시원스럽다고 느낄만하다.

우리가 테스트한 모델에는 99만 원의 부스트 옵션이 추가돼 있는데, 덕분에 전륜 모터의 최대토크를 더 강하게 끌어냈다. 물론 이 옵션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듀얼 모터 사양은 충분히 경쟁력 있다. 사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추천할 이유가 없는 옵션이다. 문제는 싱글 모터 모델 버전인데, 살짝 무딘 가속이라 느낄 가능성이 예상된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의 가속 시간을 측정했다. 기아는 부스트 모드 이용 시 5.3초가 소요된다고 발표했다. 실측 결과는 5.24초였다. 체감 보다 실제 성능이 더 잘 나왔다. 이후에도 가속 페달을 밟고 있으면 200km/h 돌파도 가능하다. 다만 전기모터 특성상 고회전 영역에서 추가적인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보니 160km/h 이후부터 가속 성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기본 안정감은 차체 무게와 큰 크기, 높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섀시 밸런스가 좋다 말하기는 어렵다. 미세한 스티어링 휠 조향에서도 스티어 특성을 뚜렷하게 보이니까.

제동 성능도 시험했다. 100km/h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소요된 최단 거리는 37.56m. 차급과 무게를 생각하면 좋은 수준이다. 테스트를 반복해도 브레이크가 쉽게 지치는 모습도 없었다. 5회 시험 기준 최장 제동거리는 38.66mm였으며, 평균 제동거리는 38.05m였다. 무게 대비 브레이크 시스템 용량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타이어가 잘 버텼기에 이런 지속성이 나온 것이다.

다양한 환경에서 주행을 해본다. 요철을 비롯해 잘 포장된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못한 도로에서 주행하니 2.6톤을 넘어서는 무게가 한계를 만난다.

문제는 서스펜션이다. 일상 주행 환경에서도 부드럽고 움직임 폭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러나 차량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거나 특정 충격이 발생하면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다. 제대로 무거운 차체를 지지하려면 그만큼 강한, 균형감 잡힌 서스펜션이 필요하다.

평상시에는 부드러운 감각을 운전자에게 전달하지만 특정 환경에서 본래 성격(?)이 부각되는데, 이를 잘못 해석하면 EV9의 승차감(서스펜션)이 단단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코너를 돌아나가며 EV9의 종합 주행 성능을 확인했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모델이지만 어쨌든 바퀴를 통해 달리는 자동차라는 점은 같다. 일부 IT 출신 유튜버들은 전기차가 전자제품이 되기를 바란다. 자동차의 평가는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자동차 하나에 투자해야 한다. 테이블 앞에서의 리뷰는 조회수를 득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차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소비자들이 알아야 할 것. 여전히 내연기관 자동차 엔지니어들이 전기차도 만든다는 사실이다. 달라진 것은 파워트레인뿐. 그래서 전기차들도 주행 완성도를 확인해야 한다.

아무래도 크고 무거운 차체 때문에 코너를 빠르게 돌아 나가기 부담스럽다. 롤링도 크다. 밸런스가 아쉽다 보니 ESP의 개입도 많아지는데, 이따금 급격한 작동이 운전자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전형적으로 좋지 않은 핸들링의 예다.

무게로 인해 한 축으로 무너지지만 단번에 바로잡지 못한다. 결국 차량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는 움직임이 지속된다. 주행 중 가속페달 조작 없이 코너에서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면 후륜이 미끄러지는 움직임도 나온다. 아쉽게도 E-GMP를 바탕으로 개발된 전기차 공통 특징이다. 정확히는 국내 사양이 그렇다. 해외 사양은 서스펜션, 타이어가 달라 한계 영역이 많이 높다. 결국 더 좋은 성능을 낼 수 있지만 국내 소비자 수준을 고려해 낮게 설정한다는 것이다. 성능과 안전을 양보하고 물렁한 승차감에 비중을 둔 것이 한국형이라는 얘기다.

그래도 타이어가 차량의 무너진 밸런스를 잡으려 애썼다. 제동 성능을 비롯해 코너에서도 잘 버텨냈다. 동시에 마모 성능에서도 좋은 성능이 기대된다. 테스트 모델에는 미쉐린의 프라이머시 투어 A/S 타이어가 장착됐으며, 285mm의 너비를 갖고 있다. 참고로 하위 모델에는 이보다 작은 사이즈의 타이어가 쓰인다. 당연히 성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속 없는 안전 운전을 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EV9 운전자들은 절대 저렴한 타이어 장착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EV9의 뚜렷한 장점이 있다. 1회 충전 400km 후반대에서 500km까지 주행 가능하다는 문구는 거짓이 아니었다. 우리 팀이 다양한 환경에서 장거리 주행 테스트를 진행했음에도 연이어 충전을 하는 등의 불편은 없었다. 다만 아직 현대 기아차가 강조하는 800V 시스템을 최대한 이용 가능한 350kW 충전소가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쉽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점은 자체 승압 시스템을 갖춘 덕분에 같은 100kW 충전기라도 남들보다 빠르게 충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현대 기아 전기차의 강점이다.

이번 EV9. 기아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E-GMP 플랫폼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사이즈의 SUV, 여기에 가장 큰 용량의 배터리도 넣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기능과 편의 사양도 넣었다. 동시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주행거리를 뽑아냈다. 이보다 좋은 메르세데스-벤츠 EQS SUV나 리비안 R1S는 EV9 보다 비싸다.

기아차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발목을 잡는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소비자가 생각하는 기대 이상의 무언가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 전기차처럼 놀라운 아이디어가 있는 것도,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처럼 고급스럽고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이것이 대중 브랜드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대형급 3열 전기 SUV지만 기본 7천만 원대부터 시작하고 상위 트림에 각종 옵션을 넣으면 1억 원을 넘게 된다.

가격만 비쌀까? 2열 시트를 회전시킬 수 있는 기능인 스위블 옵션은 99만 원이다. E-GMP의 주요 강점인 V2L 기능은 기본형 트림에서 148만 원의 컨비니언스 옵션을 선택해야 주어진다. 디지털 타이거 페이스의 상징인 디지털 패턴 라이트도 148만 원의 스타일 옵션을 넣어야 완성된다. 이 뿐일까? 가속성능을 높여주는 부스트 기능은 99만 원이나 한다.

소비자들이 광고나 언론 등을 통해 보고 접한 EV9은 모두 옵션으로 치장을 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기대 대신 의아함이 남게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이 차를 추천하지 못할까? 또 그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만한 크기를 가진 전기차는 없으니까. 다만 비쌀 뿐이다.

출처 오토뷰 | 로드테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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