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버스 힘든데, 운전 못하게 하면..
'장롱 면허' 반납에 실효성 비판도.."대안적 교통수단 개발 필요"
#"나는 스스로 운전을 포기했지만, 내 친구는 여전히 화물차 운전을 한다."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박모씨(75)는 "면허는 있지만, 운전을 하기에 건강이 예전만큼 좋지가 않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어 "우릴 바보로 아냐"며 "우리도 알아서 안될 것 같다 싶으면, 운전 안 한다"고 덧붙였다.
고령자 운전 제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대책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이동권 제한이나 삶의 질, 행복권 저하, 역차별 등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연내 고령운전자 법령·제도 개선 내용을 포함한 '중장기 고령자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종합대책에는 △신체능력을 고려한 조건부 면허제도 △면허갱신 시 체험형 교육 △수시 적성검사 강화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또 △면허반납 인센티브 △사업용 자동차의 고령운전자 자격관리 강화방안 등도 관계부처와 협의한다.
이와 별도로 택시·카풀 상생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기구는 감차 대상이 되는 개인택시의 초고령자 기준을 정할 계획이다.
이는 고령운전자 사고가 늘고 있기 때문. 경찰에 따르면 고령 면허 소지자 비율은 2016년 8.0%, 2017년 8.8%, 2018년 9.4%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고령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사망사고 비율도 2016년 17.7%에서 지난해 22.3%까지 늘었다.
하지만 조건부 운전 제한 시 고령자의 이동권이 제한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대중교통이 미흡한 농어촌 지역 거주자에겐 발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택시 기사, 화물차 운전사 등 생계와 직결된 경우 피해는 더 커진다.
직장인 이모씨(27)는 "거동이 불편한 80대 할아버지는 오히려 대중교통을 타는 걸 더 힘들어해 운전을 한다"며 "나이 때문에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동할 때 어떤 식으로라도 배려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에 대한 '역차별' 문제도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노인을 '운전 무능력자·잠재적 가해자' 취급한다는 것이다. 2013년 국토부가 추진한 택시기사 75세 정년제는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금지하는 것 지나치다"는 비판으로 무산됐다.
대학생 박민지씨(21)는 "누구나 언젠가 고령자가 된다"며 "차라리 모든 운전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성검사 주기를 짧게 하거나, 운전 면허 자격을 높이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밝혔다.
이런 갑론을박 속에서 탄생한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반납 제도'의 경우 강제성이 없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실효성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피할 수 없다. 다수 기초자치단체는 면허를 반납하면 10만원 상당의 교통카드·지역화폐를 주는 제도를 추진 중이다.
직장인 김모씨(28)는 "자진반납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평소 운전이 꼭 필요하진 않은 사람들일 것"이라며 "'장롱 면허'가 아닌 '실제 고령자 운전자' 안전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는 실제로 운전을 하는 고령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문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조교수는 '노년기 운전중단 결정에 관한 연구'에서 "세 명 중 두 명의 고령운전자는 미래에 운전을 그만두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대다수의 고령운전자가 운전을 그만두는 시점을 스스로 판단하기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강한 전기 노년기부터 미리 생각해보고 계획 및 준비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해도 이동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적 교통수단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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