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꽉차고 > 코로나19로 극심한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선 사재기가 없다.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휴지 등 생필품이 잔뜩 쌓여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4년 전 미국 공군으로 한국에 배치돼 온 데이비드 로 씨는 얼마 전 부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장 보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을 한 뒤 마트 매대마다 가득 차 있는 손 세정제와 휴지, 생수 등을 찍어 올렸다. 이 영상은 조회 수 91만 건을 기록했다.
요즘 주한 외국인 중 데이비드 로 씨처럼 유튜브 브이로그나 SNS를 통해 ‘코로나19 시대에 한국에서 장보기’ 영상물을 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영상에는 어김없이 “믿을 수 없다”는 댓글이 달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사재기 광풍이 불고 있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어서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선 휴지와 파스타, 시리얼 등을 사기 위해 다툼을 벌이고, 총기까지 사재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왜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까.
< 텅비고 > 지난달 22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한 월마트 매대가 텅 비어 있다. 북미와 남미, 호주, 일본 등에서는 휴지 등 생필품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로이터
온라인 주문배송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전체 유통에서 온라인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8.3%(매출 기준)였다.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거래액도 120조원을 돌파했다. 초고속 통신망과 모바일 기기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모바일 쇼핑도 급증세다. 온라인 쇼핑 거래액 중 모바일 쇼핑 비중이 59.7%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초고속으로 배달받는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 온라인 배송업체들은 지난 4~5년간 치열한 ‘배송 전쟁’을 벌였다. 전국 곳곳에 물류센터를 짓고 ‘반나절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생활물류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전날 밤에 주문하면 새벽에 물건이 도착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택배 배송이 가능한 세계 유일한 나라다. 굳이 생필품을 사러 매장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다.
최명화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 중장년층이라면 북한 침략이나 전쟁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또는 전염병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사재기에 동참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라며 “한국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사재기를 해봐야 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한국경제 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