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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림마을(福林, 봉촌) -- 마을전경 배경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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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 봉황이 숨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봉림(鳳林) 이라 하였다가 후에 복림(福林) 마을로 명칭이 변하였다고 전한다. 보통 봉촌이라 부르는데 위의 사실을 종합해 보면 처음에는 봉림촌 또는 복림촌이라 한 것이 후에 복림 또는 봉촌으로 된 것 같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복림촌리(福林村里) 로 기록되어 있으며,1867년 대동지지에는 화순현 동면, 1895년에는 나주부(羅州府) 화순군(和順郡) 동일도면(東一道面), 1896년에는 전라남도(全羅南道) 화순군 동일도면, 1908년에는 능주군(綾州郡) 원화순방 동일도면,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능주군 동면 복림촌(福林村)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시 화순군(和順郡) 동면 복암리(福巖里) (복림촌, 구암리) 로 편입되었다.현재 복암1리이며 4개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달성徐(5),광산金95), 제주梁(5), 평택林(3), 해주崔(1), 동복吳(1), 나주林(1)
남쪽으로는 구봉산, 비석등, 북쪽으로는 옥녀봉, 꾸지봉이 있다. 마을의 방향은 동쪽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곡부 공씨가 입향하여 살았다고 구전되는데 마을에 공씨 선조묘가 있는데 이곳을 공씨터라고 한다.
북쪽으로는 경치리 경현마을, 묘치마을이 있다.
도승이 공씨집을 찾아와서 마을 어귀에 있는 석탑을 헐어버리면.. 더욱 부자마을이 된다고 하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나서 공씨집에서는 더욱 부자가 될 욕심으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석탑을 헐어버렸는데 이상하게도 탑속에서 파랑새 두 마리가 날아갔는데 한마리는 경현마을로, 한마리는 둔동마을로 가버렸다고 한다. 그런후 마을은 점점 부자가 되었는데 반대로 공씨집을 점점 가난하게 되어 모두 떠나고 말았다고 전해온다.
당산 할머니가 영험하여 마을을 지켜주는데 마을에 도둑이 들어와 큰 황소 한마리를 끌고 저녁에 나갔는데 밤이 지나고 먼동이 트도록 당산나무 아래서 맴돌고 있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아침에 나와 보니까 도둑이 소만 잡고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보고서 소주인에게 알려 주인이 소를 잡으니까 그때서야 도둑의 손에서 고삐가 떨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매년 당산제를 지낸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천륭제를 지내는데 마을에서 가장 지덕을 겸비한 사람이 지난해의 밥이 그대로 있으면 풍년이 들고 사그라지면 흉년이 든다. 천륭제를 지낸후 마을 사람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또 천륭제 다음에는 당산제를 지내고 농악놀이로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면서 액신을 몰아낸다.
화순광업소에 딸린 가족이 대략 1만명 정도 될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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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재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인근의 광주학생기념관
뒷산의 화살나무
복림마을
서구 반올림부동산 이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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