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학 속의 소울넘버 2번
발아를 돕는 산파
소울넘버 1번 마술사가 우주를 품은 '씨앗'이라면, 소울넘버 2번 여사제는 그 모나드(씨앗)가 깨어나도록 '발아시키는 산파다.
씨앗은 정적인 상태인 반면, 발아에는 동적인 움직임이 있다. 그 움트는 과정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 바로 2다.
보통의 산수 상식으로 숫자 2는 편의점 1+1 이벤트처럼 하나에 하나를 더해서 둘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타로수비학에서
2는 단순히 양이 2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세포분열은 하나의 세포가 둘로 늘어나는 것이긴 하지만 결코 반으로 나뉜 게 아니다.
스스로 복제하여 같은 유전자를 가진 두 세포로 증식되는 것, 하나에서 새로운 하나가 나옴으로써 둘이 되는 것이 수비학이
해석하는 2의 상징이다.
모나드의 세계, 죽은 듯 안정적인 씨앗의 세계에만 줄곧 머물렀다면 이 세상은 어떠한 분열도 혼란도 없었을 텐데, 아니, 아 무것도 생겨나지 않았으니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런데 왜 우리 삶에 디아드라는 분리가 필요했을까? 디아드는 그리스어로 2를 나타내는 단어이며, 여사제 카드의 수비학적 이름이기도 하다. 로마 숫자 II는 2개의 기둥이 대칭으로 서 있는 형상인데, 타로카드 속 여사제 좌우에 서 있는 2개의 기둥과도 흡사하다. 똑같은 2개의 기둥처럼 나와 똑같은 다른 존재가 있다면, 둘 중 누가 나일까? 나는 과연 하나일까 둘일까? 무엇이 진리고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진정한 모습인가? 이런 의심과 호기심은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분리되려는 갈등과 다시 합해지려는 갈망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내면의 투쟁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각과 인지라는 중요한 지혜를 얻게 된다. 우리가 평생 혼자 작은 방에 갇혀 살고 스스로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존재도 전혀 없다면 어떻게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과연 존재했다고 스스로 자각이나 할 수 있을까? 세상엔 그 자체만으로 존재한다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와 반대편에 대비되는 존재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낮은 밤을 통해 밝아오고, 하늘은 땅이 필요하고, 여성성과 남성성은 서로를 끌어당기며, 성공도 실패가 없인 무의미하고, 안전도 불안이 없으면 감사할 수 없고, 탄생이 없다면 죽음도 없다. 우리는 이런 대비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세상은 '존재'에 대비되는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고 수많은 존재들은 모나드라는 씨앗의 상태에서 디아드라는 발아를 통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모나드는 디아드 없이는 무의미하다. 잠자고 있던 모나드를 깨워 눈뜨게 하는 것은 디아드이며, 디아드를 통해 모나드는 씨앗으로서 자신의 숙명을 깨닫고 발아를 시작한다. 자기분열'이라는 변화를 겪지 않은 존재는 생명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다. 모나드는 디아드로 분리되고, 이때 비로소 닫혀 있던 우주로부터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생겨난다. 마치 엄마의 자궁에서 커가던 모나드가 자궁이 열리며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로부터 분리된 나와 동일한 또다른 존재를 통해 자아를 인식하는 디아드는 '깨어남' 그 자체다.
타로카드 속의 여사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경계의 수호자The High Priestess
2번 여사제 카드에서 가장 의미 있는 상징은 흑백의 대립되는 두 기둥이다. 구약성경 「열왕기상과 고대 건축문헌에 의하면,
모세가 신께 직접 받은 십계명 석판은 가나안에 입성한 후손들에 의해 아름다운 성궤에 담겨 솔로몬의 성전 깊은 곳에 모셔지게 된다. 솔로몬 성전 앞에는 크고 아름다운 2개의 기둥이 서 있었고, 기둥에는 각각 B Boaz와J Jachin라는 알파벳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여사제 카드에 표현된 흑백의 기둥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솔로몬 성전 앞의 두 기둥에는 석류 장식이 각각 100개씩 새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그 석류는 여사제의 뒤쪽으로 드리워진 장막에 표현되어 있다.
여사제 카드에서 중요한 또다른 단서는 여사제의 발치에 있는 달이다. 달은 상현달에서 보름달로, 그리고 다시 하현달로 주기적으로 모양이 바뀌는데, 여사제의 발밑에 있는 달은 점점 차오르는 상현달이다. 여사제는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 사이에 앉아서, 손에는 모세 5경이라 일컬어지는 토라Tora를 들고 있다. 흑백의 기둥처럼 대립하고 달처럼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가변적인 세상에서, 여사제는 성전의 안도 밖도 아닌 입구, 즉 문지방에 앉아서 내부의 신성한 지혜인 *아르카나 를 수호한다. 이것이 바로 여사제의 정체성이자 세계관이다.
기둥의 B는 알파벳의 2번째 단어고, J는 10번째 단어다. 10은 1로 치환되며 마술사를 의미하고, 2는 여사제 자신을 상징한다. 그래서 두 기둥은 각각 남성의 수 1과 여성의 수 2를 의미하게 된다. 완전한 수 1과 불완전의 수 2가 만나 반응하고 발아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입구, 즉 베시카 피시스vesica piscis 를 만드는 것이다. 베시카 피시스는 기하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고대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The Elements>에 처음 나타나는데, 원래는 컴퍼스를 사용해 정다각형을 작도하는 원리였다.
*아르카나 * 신비, 비밀을 뜻하는 라틴어 아르카눔(arcanum)에서 온 말로, '거대한 신비' '신성한 비 밀' 등을 의미한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에 등장하는 베시카 피시스
그림에서 보듯이, 한 점을 축으로 하여 컴퍼스로 하나의 원을 그리고, 그 원의 둘레 위의 한 점을 축으로 하여 다른 원의 중심을 지나도록(다른 원의 반지름 거리만큼) 컴퍼스를 돌리면, 새로운 원이 처음 원에 겹쳐 그려진다. 그렇게 두 원의 겹쳐진 아몬드 모양 안쪽의 점들을 연결하면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오각형 등 의 도형을 그릴 수 있다. 베시카 피시스는 그 겹쳐진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물고기의 부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그런데 베시카 피시스를 활용하면 다각형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고, 베시카 피시스들을 무한히 겹쳐놓으면서 새로운 형태를 계속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후대에는 그 자체로 두 개체가 만나 새로운 개체를 탄생시킨다는 의미에서 '탄생, 다산, 여성' 드 을 상징하게 되었다.
소울넘버 2번의 역할
궁여지책의 무림고수
나는 연희동 한쌤으로 알려져서 이사도 못 가고 계속 연희동에 사는데, 이 동네에 사는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소울넘버 2번이다. 어쩌면 그게 내가 이 동네를 못 떠나는 이유가 아닐까도 싶다. 왜냐하면 소울넘버 2번인 내 친구들은 사주나 타로, 성격 테스트 같은 것에 관심이 많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강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들에게 소울넘버 2번을 설명 해주면 하나같이 자기 주변의 2번들과 자신은 그다지 공통점이 없고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바로 2번이다.
소울넘버 2번들은 각자 다르다. 타인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중요한 정체성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누군가 소울넘버 2번에게 자기와 취향이 비슷하다고 말하면, 2번은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으론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최선이고 남의 스타일에 말도 많고 비평도 서슴지 않는다. 다행인 건, 그래도 타인의 취향을 존중은 해준다. 이런 분을 상대로 물건을 판다면 요즘 잇템, 트렌드, 베스트셀러 제품이라고 소개 하면 실패한다. 내가 남들과 비슷하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오히려 불쾌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남과 다르다. 내가 잘났거나 옳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난 조금 다르다. 2번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자신은 언제나 이렇다. '나는 오로지 나라는 정체성에 목숨 거는 게 2번인데,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대놓고 증명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눈에 띄거나 튀는 걸 싫어한다. 분명 관종인데 눈에 안 띄면서 알 아봐주길 원하니, 고수가 되고는 싶지만 사람 많은 데서 피곤하게 있지 않아도 되는 무림고수를 바란다. 이렇게 말하면, 그런게 어디 있냐는 반문이 나오겠다. 맞다. 그런 건 세상에서 찾기 힘들다. 그래서 2번의 삶은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기도 싫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내는 과정이 된다.
소울넘버 2번들에게서 가끔 신박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이유도 그들의 게으른 사회성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빨래하는 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세탁기를 만들 이유가 없듯이, 빨래를 해야만 한다면 최대한 안 하는 방법을 궁리하다보니 세탁기를 발명했을 수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힘 안 들이는 방법으로) 일 을 해결하려다보니 남들 보기에는 나름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이런 방식은 돌발적으로 보이고, 보수적인 조직사회에선 문제마다 딴죽을 걸거나 삐딱한 시각으로 본다고 부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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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넘버가 2번인 유명인으로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클린턴, 재클린 오나시스, 모차르트, 마돈나, 박진영, 장동건 등이 있다.
이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은, 일단 소울넘버 1번 마술사보다는 부드러워 보이고 상대적으로 소통하기 편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강직하거나 권위적이기보다는 상당히 민주적으로 보이고, 주도적이고 목표지향적이기보다는 개인주의이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인상을 풍기는 이유는 그들의 타고난 성격이라기보다 그들의 역할과 상관이 있다. 타인을 돕고 열린 자세로 소통하는 역량을 긍정적으로 발휘했기 때문에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만일 2번이 타인을 돕는데, 그 방식이 집요한 참견이거나 소통을 내세우며 교조적으로 설득한다면 상당히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 심각하게는 기존의 질서에 반해 너무 극단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다가 오해를 사거나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어떤 소울 넘버든 적정한 위치와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성취감과 함께 적합한 보상을 받을 때, 건강하고 긍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울넘버 2번인 마돈나는 아주 좋은 록 모델이다.
미국에서 여성 싱어 가운데 최다 음반 판매량 기록을 갖고 있 는 실력파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비교해보면, 마돈나는 가창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특출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며, 댄스가수로서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마돈나는 매번 공연 때마다 자신이 직접 선발한 뛰어난 백댄서들을 과감하게 기용했고, 그들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움으로써 자신의 공연을 성공시켰다. 이런 행보를 본다면, 마돈나의 진짜 재능은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를 발탁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안목, 그리고 그들을 고무시켜 자신의 공연에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 기획력인 것 같다. 마돈나가 한 시대를 풍미한 댄스가수를 넘어 오늘날까지 압도적인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매우 영리한 퍼포먼서, 즉 기획자이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JYP의 박진영도 데뷔 초에는 파격적인 스타일로 찬반 논란이 많았지만, 지금은 자신만의 세계를 확실히 구축한 기획자로 자리 잡았다.
소울넘버 2번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사회, 혹은 관계 속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잘 적응하려고 애쓰다 번아웃되어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엔 자신이 마돈나, 박진영, 오바마처럼 개성 강한 사람들과 같은 유형이라는 사실에 반신반의한다.
그럴 때 꼭 해주는 말이 있다. 이런 소울넘버 2번의 유명인들은 어떻게 보면 사회의 논란거리고 부적응자이며, 파격적인 행보 때문에 적과 팬이 모두 많은 사람이다. 당신과 다른점이 있다면, 그들은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자신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는데, 당신은 송곳이 문제라고 생각해 끝끝내 주머니에서 튀어나오지 않도록 감추고 애쓰며 사는 것이다.
한국처럼 대세나 평균 같은 기준이 명확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소울넘버 2번이 욕 안 먹고 지내기 위해 적응하려 애쓴다면 확실히 피로도가 매우 높다. 최근 장동건이 출연하는 판타지 드라마를 보고 있다. 나름 소울넘버 2번으로서 팬인지라 그가 나오는 드라마를 챙겨 보는데, 극중에서 보여주는 연기에 어떤 매력도 안 느껴져 끝까지 볼 자신이 없다. 이유가 뭘까? 정말 2번 이 맞나?
그는 박진영이나 마돈나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한국사회에서 매우 안전한 길, 바로 욕 안 먹기로 작정한 길이다. 어떤 드라마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장동건의 연기는 악한 것도 선한 것도 아니다. 악하더라도 그 이유가 분명하고 자신의 확고한 신념 이 있다면 대중은 그 역이 아무리 악역이라도 공감하게 되고 지지할 수 있다. 그런데 장동건은 이도저도 아니고, 악역이란 분장을 한 나약한 모습으로, 욕을 안 들으려고 작정한 사람 같다. 소울넘버 2번은 아무리 욕을 먹고 비웃음을 사더라도 그게 자신이란 걸 잘 알고, 세상에 위축되지 않고, 엑스칼리버 같은 명검은 아닐지라도 분명 뭐 하나는 정확히 찌를 수 있는 예리한 송곳이 자기 주머니 안에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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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학적으로 디아드는 기존의 세계에서 분리되려는 갈등과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갈망을 동시에 갖는다. 소울넘버 2번은 디아드의 이 양극단성을 표출하지 않으면 뚜렷한 인상을 즈 하 수 있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늘 그 자리에 머 면 자신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확실하게 만족시킬 수 없게 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소울넘버 2번 남자의 경우는 우유부단해 보이고 무기력하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게 된다.
그런 이유로 2번 내담자들은 자신이 조직에 맞는지 사업을 하면 잘할지를 물어보곤 하는데, 물어보면서도 솔직히는 둘 다 하기 싫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질문을 하는 소울넘버 2번들은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문제가 없게 하려고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든 상태에 가깝다. 그에 반해 조직 에서 상사와의 관계나 충돌로 문제가 생겨 이직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는 절박해 보이긴 해도 꽤 희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을 속이고 모두를 속이는 문제없는 사람이기보다는 문제가 많아 보여도 그렇게 자신을 보는 세상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는 더 좋다.
비슷한 맥락에서 소울넘버 2번은 조직이나 사업에 있어서 누구를 리드하는 것도 피곤하고 누구에게 리드당하는 것도 싫어 한다. 그럼 또 어쩌란 말이냐. 방법은 하나다. 스스로 독자 노선을 가야 한다. 요즘 신조어로 인싸가 아닌 아싸의 길을 전략적으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소울넘버 2번이 사회생활을 아예 못하거나 조직생활을 절대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자기 머리는 못 깎아도 남의 머리는 깎아주는 게 또 2번이다. 2번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대인 서비스업에 많이 종사하는 이유도 관계는 힘들지만 남들의 문제는 잘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소울넘버 2번 내담자들에게 그들의 역할로 상담이나 교육이 잘 맞을 것 같다고 조언하면 대다수가 손사래를 치며 “전 말도 잘 못 하고 남 앞에 서는 것도 힘들어요”라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들이 능수능란한 무대 체질이라고 한적은 없는데……. 내 말은 진짜 말 그대로, 그들은 상담과 교육의 역할을 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2번에게 상담과 교육을 권하는 이유는 당연히 타로카드 78장 중 가장 지혜로운 여사제이기때문이고, 그들의 역할이 새로운 시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산파이기 때문이다. 사업이나 장사도 대인 서비스업이긴 하지만, 2번에게는 치밀한 경영과 직원관리가 힘든 일이라서 믿을 만한 협업 관계의 사람이 없다면 혼자 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동업이 아니라 굳이 협업이어야 하는 이유는, 소울넘버 2번의 역할이 초반에 시작하는 사업이라면 초창기 멤버로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가능할 수 있도록 현실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산파가 어렵게 애를 받아줬다고 그 아이가 산파의 자식 인가? 애는 산모의 자식이고, 산파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그러니 동업이라면 초반에는 기여를 하겠지만 갈수록 자신의 입지는 좁아지고 욕심은 커질 수 있어서 결국 서로 불만이 생기게 된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도원결의하는 동업 같은 건 맞지 않고, 사업을 원하는 주체자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협업자로 함께하는 게 더 맞는다.
자신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함께하는 산파처럼, 소울넘버 2번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것을 문제라고 인식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내 역량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이동과 접점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달이 차고 기울고 다시 차는 것처럼 이들의 모든 경험은 역할을 위해 선순환할 뿐이고, 여전히 달빛은 밤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