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하시려
빌립보서 2장 5절 – 8절 2022년 1월 23일 주일 말씀지
영광길을 말처럼 힘차게 달려가게 하시려 2장부터 하나 하나 양식으로 주시는데 겸손하게 하셔서 기어코 나에게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혼자 예배당만 잘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제 복음이 믿어지게 하셨고 진리로 자라나게 하셨으니 직분자로써 아직도 믿어지지 않은 자들과 자라나지 못한 자들에게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살피게 하셔서 남은 생애를 예수님처럼 겸손히 섬기는 일을 하다가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20:28-
섬기는 것은 복음으로 영을 살리고 진리로 영적 성장을 이르도록 이끌어 주는 것인데 그 일은 권면, 위로, 교제, 긍휼, 자비를 베푸는 것인데 모두 기쁨으로 수고와 희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일을 할 때에 겸손히 낮아지는 생활로 은혜를 더해주셔서 열매가 나타나는데 이때 남 앞에서 조금이라도 우쭐하며 선 줄로 아는 자는 이미 넘어진 자입니다. (고전10:12) 넘어진 자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중지됨으로 원죄에 지게 되는 것이요 사도 요한을 통해서는 내 안에 미움이 있으면 살인하는 자요 영생이 없는 자라 하셨습니다. 요1서3:15-
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복음이 믿어지게 하신 성도와 진리로 자라나게 하사 일하게 하시는 집사와 더욱 자라나 집사와 성도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고 거짓에 속지 않게 살피는 감독들 안에 있는 것은 자라난 영(靈)입니다. (빌1:1) 이제 신부의 믿음으로 더 자라나 단장되게 하시려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보고 이 마음을 품으라 명령하는 것은 설교요 이 마음이 자기 속에 있어 어떤 마음인가를 나타내주시고 양식으로 되새기는 자들에게 성령의 역사로 이 마음이 품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는 자가 누구인가? (마24:45) 하셔서 참으로 귀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집사되고 장로와 목사가 되어 그 어떤 일 좀 했다고 해서 자기 이름이나 내고 업적 자랑에 빠졌다면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사울 왕과 (삼상15:12) 압살롬과 (삼하18:18) 같아서 일은 했지만 영광의 보좌 왼편에 떨어진 염소들같이 상과 영광을 다 잃는 자가 됩니다. 마25:45-
아가서를 통해서 이 마음을 석류 한쪽 같은 뺨으로 나타내주셨는데 (아4:3) 자신이 나타나는 것이 부끄러워 너울 속에 살짝 가리운 발그스레한 뺨이 바로 겸손입니다. 아6:7-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1장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게 하셔서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어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날마다 열매맺는 생명으로 사나 죽으나 한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에 예수님처럼 사도들처럼 그 몸 전 생애를 드리는 심장이요
2장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갖게 하시는데 먼저는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나같은 죄인까지 품어 죄사함의 평안을 주셨습니다. 마11:29-
그리스도는 예수의 마음은 불러서 믿게 하신 후 항상 성령 안에서 살아가면 너무나 좋겠지만 누구라도 잠시라도 평안 중에 깨어있지 못하면 세상과 육신에 다시 기울어질 때도 있는데 그런 자들을 정죄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며 회개케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인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도 그리스도의 피를 나타내주셨는데 (엡2:13) 믿고 난 이후에 지은 죄를 사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인 것입니다. 그래야 일한 것을 하나도 잃지 않고 다 상으로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도 정죄치 않으심을 깨달았으니 이제 자신도 그 누가 아무리 잘못하여도 정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롬8:1-
예수님이 십자가에 택자들을 위하여 끌려가실 때 채찍에 맞으심으로 맞은 자리마다 피가 흘렀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머리에 가시관을 씌움으로 손과 발에 못박히심으로 흘린 피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의 피요 (롬3:25) 이 피가 믿어짐으로 지난 죄는 사함을 얻게 하사 이제 담대히 성소에 들어가는 힘이 생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히10:19-
돌아가신 후에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죽었는가?’ 하여 창으로 허리를 찌르매 피와 물이 나왔는데 (요19:34) 이것이 그리스도 피인 것입니다. 히9:14-
누구라도 다윗처럼 원죄에 짐으로 정욕에 빠지고 솔로몬처럼 교만해져서 온갖 실수와 남을 미워하는 잘못된 자리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때 또 다시 죄짓는 자신을 보며 낙심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롬7:24-
사람마다 속에 선과 악이 있는데 악은 교만이며 원죄의 역사이며 선은 겸손하여 생명역사에 쓰임 받고 영생에 이르는 것입니다. 말로는 겸손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교만이 더 강한 것은 누구라도 성령의 역사로 가죽옷 구원이 더욱 믿어지지 않으면 결코 끝까지 겸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 아래에 아담과 나다나엘뿐 아니라 택자 모두들 있을 때 보았다 하심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은 다른 복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1:48-
복음이 믿어지게 하시는 가난한 심령이 바로 겸손한 심령인데 아버지 앞에 나와서 양식을 받음으로 더 겸손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라도 깨어있지 못하면 교만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그때도 내버려 두시지 않고 열매 맺은 것이 불타지 않게 하시려고 책망과 징계의 채찍까지 들어 때리사 기어코 회개하게 하시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있어야 성도를 섬기는 일을 끝까지 기쁨으로 하게 됩니다. 롬15:5-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이 말씀으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으로는 나와 하나님은 하나라 하셨습니다. 요10:30-
신학교마다 삼위 일체 기독론(基督論)을 배우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신학자들은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마태로는 베들레헴에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려 오신 예수를 (마1:21) 마가로는 종으로 오셔서 할 일을 다하고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를 (막16:19) 누가로는 나사렛에 사는 마리아에게 찾아오셔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눅1:34-35) 위로부터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눅24:49-
마태와 마가와 누가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나타냈고 요한으로는 태초부터 삼위로 계셨던 예수님의 신성부터 나타내사 (요1:1) 아들들의 생명을 살리시려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요1:4) 내 생명을 살려주시고 (요3장-5장) 자라게 하시고 (6장-12장) 열매맺게 하시고 (15장) 순교 전까지 나를 어린양을 먹이는 생명 역사에 쓰시는 것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요21장) 그러니 요한복음의 양식을 부지런히 나눠야 하고 받아야 하건만 게으른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삼위되신 하나님과 본체의 형상이라 나타내주셨습니다. 히1:3-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성부를 나타내시는 성자이며, 요1:18-
그 성부와 성자를 믿게 하시는 성령이십니다. 고전2:10-
성령은 성부와 성자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를 나타내고 믿어지게 하시는 이가 성령입니다. 신학에서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을 삼각형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나타내는데 그러면 자칫 서열로 보게 됩니다. 둥그런 원 안에 세 개의 똑같은 원으로 삼위를 나타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삼위가 동등인 것으로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 고 하심에 육의 것만 아는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시면서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하나님과 동등으로 여긴다고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요5:18-
사도 바울로 나타내주신 복음으로만이 우리로 믿게 하신 하나님은 삼위의 하나님이시며 서로 동등이 되신 것을 밝히 보게 됩니다. (엡4:4,5,6) 주후 313년에 로마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음으로 교회 핍박이 끝나고 신앙에 자유를 얻었는데 그때부터 성경을 제멋대로 말하는 알미니안 주의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잘못 나타냄으로 결국 325년에 니케아 종교회의를 하여 삼위의 하나님이 한 본질이라고 결론을 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증인들은 예수님을 피조물 중에 으뜸이라 비하시킴으로 이단이라 하는 것이요 지금도 삼위로 계셔서 역사하시는 산자의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다른 복음을 말하여 여전히 이러면 천국가고 잘못하면 지옥간다고 하며 끝이 다른 이단(異端)들이 되는 것입니다.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하나님과 동등 된 성자 예수님께서는 택자들을 섬기는 종으로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지셨습니다. 왜 이렇게 되셨습니까? 이미 아담 때 가죽옷 구원을 이루셨으니 이제 십자가 구원까지 이루셔서 성령으로 영광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삼위로 계신 하나님이 한 본질로(삼위), 한 목적으로 (아들들의 영광) 역사하셔서 성부는 택하시고 성자는 구원을 이루시고 성령은 열매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정녕 죽는 자리에 떨어짐도 없이 죄도 없이 영광을 입혀 버리면 가장 아름답게 지음 받은 천사장보다 더 교만하여 영광성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것을 미리 아시고 성자의 구원 역사와 성령의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역사를 예정해 놓고 아들들을 택하여 지으신 것이요 (롬8:29) 아담 때 가죽옷 구원을 입히신 것이요 (창3:21) 4000년 후 십자가 구원까지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루신 구원을 보지 못하고 구원받으려 애쓰는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요19:30-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종으로 오시되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이미 창세기1:26절에 우리(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성자의 구원 사역) 우리가 흙으로 사람을 만들자 (성령의 역사로 열매맺게) 하심으로 우리의 형상은 아들들로 영광을 함께 누리시려는 삼위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입니다. 겔1:28-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사람의 모양은 성자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종같이 섬기는 일을 하실 것을 미리 예정하신 것이 모양(模樣)입니다. 롬8:3-
사람의 모양이라 하니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 인간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 아니라 성자 예수님을 사람의 육신의 모양대로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택하여 지으신 아들들의 영에다가 육을 입히실 때 흙으로 빚어 사람으로 만드신 것은 원죄가 심겨져 죄만 지을 수밖에 없게 하셨다는 것이요 (창3:19) 또한 흙이니 말씀에 씨를 심어 열매를 거두시려는 것입니다. (마13:3) 사람의 모양을 입고 오셨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심으로 원죄는 전혀 없으신 것을 누가로 나타내주셨습니다. 눅1:31-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성자 예수님께서 택자들의 십자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성령을 주시려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것 자체가 낮아지신 것입니다.
오셔서 33년 동안 고생만 하시다가 죄없이 잡혀가 채찍에 맞으시고 죽게 된 것은 택자들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기 위함인 것이었습니다. (히9:28) 이미 구약에 예언하신 대로 참혹한 십자가로 구원의 역사가 이뤄지는 것을 보시기에 즐거이 지신 것입니다. 히12:2-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대접을 받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한말씀 한말씀을 생명의 영식으로 주셨고 최종적으로는 죽으셨습니다. 가장 낮아지시고 죽어주시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택자인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이 낮아지신 것처럼 우리의 삶도 낮아지게 하시려 주시는 오늘의 양식인 것입니다. 빌2:3-
예수님이 그 영을 살리시려 이 땅에 오신 뜻인 영생인 것을 바로 알았다면 그 일에 전심을 다하게 되는데 (마25:40,45)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하나님께 한 것은 한 생명을 복음으로 살리고 진리로 자라게 하는 일에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는 이제 막 복음으로 살림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종의 육체를 가지고 제자들을 섬기셨는데 한말씀 한말씀을 다 나눠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나눠주신 말씀들은 생명의 떡이요 다 내 영에 필요한 양식입니다. 받아먹은 양식을 되새기게 하사 성령으로 거룩케 하여 열매맺게 하사 영광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받을 영광이 크고 상을 받고 싶은 자는 이 땅에서 높은 자리에서 호령하는 자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섬기는 겸손한 자인 것입니다. 마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