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공 정운 장군의 묘

작성자강병진|작성시간09.08.05|조회수636 목록 댓글 2

제가 운영하는 오소재 민박에서 300미터 올라가면 충장공 정운 장군의 묘가 있습니다.

 

정운(鄭運)

 

출생연도/사망연도 : 1543년∼1592년

 

직업 : 조선 중기의 무신.

 

업적 :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송희립"과 함께 싸웠다.

 

난중일기에 나와있습니다.

9월 11일 [양력 10월 15일]<정묘>
<장계에서> 녹도만호 정운은 맡은 직책에 정성을 다하였고, 담략이 있어서 서로 의논할만한 사람이다. 사변이 일어난 이래 의기를 격발하여 나라를 위해서 제몸을 잊고 조금도 마음을 놓지 않고 변방을 지키는 일에 힘쓰기를 오히려 전보다 더욱 더 하므로 믿을 사람은 오직 정운등 두세 사람이다. 세번 승첩을 했을 때 언제나 선봉에 섰고, 이번에 부산포해전에서도 몸을 던져 죽음을 잊고 먼저 적의 소굴에 돌입하였으며, 하루 종일 교전하면서도 어찌나 힘을 다하여 쏘았던지 적들이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는바 이는 정운의 힘이 컸다. 그런데, 그날 돌아올 무렵에 철환을 맞아 죽었지만, 그 늠늠한 기운과 맑은 혼령이 쓸쓸히 아주 없어져서 뒷 세상에 아주 알려지지 못할까 애통하다. 이대원의 사당이 아직도 그 포구에 있으므로 같은 제단에 초혼하여 함께 제사를 지내어 한편으로는 의로운 혼령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남을 경계해야 겠다.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창진. 본관은 하동. 전라도 영암 출생.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봉사·웅천현감 등을 지냈으나 강직한 성격으로 인해 미움을 받기도 하였다. 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녹도만호로 이순신 휘하에서 출전, 옥포·당포 등의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그해 9월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하였다. 1604년 병조참판에, 1796년(정조 20) 병조판서 겸 의금부훈련원사로 추증되었으며, 흥양 쌍충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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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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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Lr영롱 | 작성시간 09.08.06 웬? 묘소개를?
  • 답댓글 작성자강병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8.06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일본놈을 무찌르다 전사한 녹도만호 정운장군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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