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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내린 눈으로 온세상이 하얗다. 군고구마 생각이 간절하다. 바삭바삭 구워진 껍질을 벗기고 노란 속살을 호호 불면서 먹던 그 맛을 생각한다. 올해는 고구마 풍년이 들어, 가는 곳마다 고구마 인심이 좋았다. 형제들이 보내 주어서 농사꾼 부럽지 않게 먹고 있다. 군 고구마는 아파트에서 굽기가 번거롭고 냄새 풍기기가 싫어서 만들어 먹지 않는다. 군 고구마 맛본지가 오래되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지만 근처에 군 고구마 장사도 눈에 띄지 않는다.
어릴 때 고구마는 간식 겸 주식이었다. 흉년들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부족하다 싶으면 어머니는 가을부터 밥 지을 때 밥솥에 고구마를 썰어 넣어 미리 양식을 늘려갔던 것이다. 고구마는 온돌방에서 가족과 함께 한겨울을 지낸다. 가을에 고구마를 수확해서 볏 집으로 엮은 섬에 넣어 가족이 거처하는 온돌방 구석에 보관한다. 밖에 놔두면 겨울에 얼어서 상하기 때문이다. 아궁이 낙엽 밑불에 묻었다가 동생들과 나누어 먹던 군 고구마 추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고구마는 다른 곡식과 달리 종자를 직파하지 않는다. 고구마 종자를 흙속에 묻고 온도를 맞추고 물을 주어 싹을 틔운 다음 줄기가 자라면 적당한 마디로 잘라서 모종한다. 비닐하우스나 온실이 없던 그 옛날 고구마 순을 기르기 위해서 온돌방 자리를 걷어내고 임시 온실을 만든다. 방바닥에 황토를 돋우어 그 속에 고구마 종자를 묻고 매일 물을 주어 습기를 유지하면 방안에서 고구마 순이 자라 올라온다. 건조한 온돌방 습도도 적당하게 유지되고 방안에 고구마 넝쿨이 뻗어 올라오니 이보다 더 좋은 친환경 침실이 어디 있겠는가.
부모님이 모시고 살던 증조모께서 나 어릴 때 업어 키우셨다고 한다. 증조할머니가 어느 가을날 손자를 등에 업고 각시낭골 언덕을 넘어 이웃마을 명월티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언덕을 숨차게 올라가서 잔디밭에 업은 증손자를 내려놓고 쉬고 있을 때 그 옆 밭에서 동방석이 엄마가 고구마를 캐고 있는 것을 보고 철모르는 증손자, 고구마 달라고 딩굴며 울었다고 한다. 동방석이 엄마가 그걸 알았는지 몰랐는지, 고구마를 주지 않아서 우리 증조모 눈물을 흘리며 손자를 끌어 업고 갔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도 어머니도 그게 몹시 서운했던 것 갔다. 내가 철이 들었을 때 어머니로부터 여러 번 들은 이야기다. 동방석이 엄마가 일하느라고 아이가 왜 울고 떼를 쓰는지 몰랐겠지요. 남의 것 달라고 우는 놈이 못되었지, 그 동방석이 엄마에게 서운했던 것 다 잊으세요.
80년 가까이 지난 먼 옛날이야기인데 아메리카대륙이 원산지라는 고구마가 과연 그 때 우리나라에서 재배 되었을까? 이조 영조39년(1783년)에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조엄이 쓰시마에서 고구마 종자를 들여와 제주도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우리 어릴 때는 구황식품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굶어 죽지 않으려고 먹었던 음식이지만, 요즘에는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사랑을 받고 있다. 주정, 녹말의 원료로 산업용에도귀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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