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거룩한 제물 되는 복된 삶”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창고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이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눅6:45),“결국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입으로 나오는 법이다.”(마12:34b)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말은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나옵니다. 말은 마음의 열매입니다. 말은 절대로 원인이 아닙니다. 결과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흔히 말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의 근원은 마음입니다. 말은 마음을 대변합니다.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겉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마음에 감사가 가득 차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말이 나옵니다.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 있으면 격려와 위로하는 말이 나옵니다. 마음에 원망과 분노가 가득 차 있으면 상대를 비난하고 상처를 주는 말이 나오기 쉽습니다. 마음에 믿음이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한 말이 나옵니다.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것이 그대로 말이 되어 나옵니다. 정말로 말을 고치고 싶다면 단순히 말을 조심하는 단계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말의 근원인 마음부터 먼저 달라져야 합니다. 마음을 송두리째 새롭게 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실제로 사도Παῦλος는 “너희는...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롬12:2a)라고 권면했습니다. 직역하면 “너희는...오직 마음의 새로워짐으로 변화되라.”입니다. "마음καρδία"은 감정, 의지, 생각의 중심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온 삶의 방식입니다. 입만 열면 자신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쉼 없이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 되어 살아왔던 삶의 방식입니다. 몸에 완전히 배어 있기 때문에 굳이 해야겠다고 계획하고 결정하거나 다짐하지 않아도 환경이 마련되기만 하면 언제든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습관입니다.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양보할 수 없는, 물론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을 때는 지금이라도 당장 버리겠다고 골백번도 더 다짐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관입니다.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면 좀처럼 바꾸기 어려운 정체성입니다. 이념입니다. 철학입니다. 사고하는 방식입니다. “새롭게 함ἀνακαίνωσις”은 “갱신, 쇄신, 재생” 등의 뜻입니다.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까지 유지되었던 사고 체계 자체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변화의 순서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감정, 의지, 생각이 바뀝니다. 습관, 가치관, 정체성, 이념, 철학, 사고방식 등이 바뀝니다. 말이 바뀝니다. 행동이 바뀝니다. 삶이 바뀝니다. 열매가 바뀝니다. 이렇게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사도의 권면은 하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마음에 채워져 있는 바로 그것이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말도 새로워지고, 말이 새로워지면 삶도 새로워집니다. 열매도 새로워집니다.
말이 곧 그 사람, 나입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무수히 많은 사건, 처했던 환경, 받았던 상처로 인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존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새로워지기가 정말로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절대로 바라지 않으면서도, 거의 평생 신앙생활을 해왔으면서도,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 일어서게 할 사명을 받은 목사로 생활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이고, 아픔과 상처를 주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말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4:22-24)라는 구절은 변화를 세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을 직역하면 “속임의 욕망을 따라 썩어져 가는”입니다. 교묘하고 그럴듯하게 속이는 거짓된 욕망에 스스로 이끌려서 지속적으로 부패해 왔었던 옛 존재 방식을 가리킵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존재 방식입니다.
추구하는 욕망을 위하여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일은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존재 방식입니다. “옛사람” 역시 아담 안에 있는 옛 존재 방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실제로 못 박힌 옛 자아입니다. 상대를 낮추고 나를 높이는 언행은 헛된 욕망입니다. 절대로 배부르지 않습니다. 절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옛사람을 벗으라는 단순히 나쁜 습관들 몇 가지를 고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죄 곧 지극히 나 중심적인 존재 방식에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말이 바뀔 수 없습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심령πνεῦμα”을 직역하면 “너희 마음(생각)의 영으로 또는 너희 정신의 영 안에서”입니다. 상황에 따라 들쑥날쑥 수시로 바뀌는, 그렇기에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감정의 변화가 아닙니다. 사고방식의 변화입니다.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방향성의 변화입니다. 생각의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내적 태도의 변화입니다. 영적 상태의 변화입니다. 존재 자체의 대전환입니다. 특히, “새롭게 되어ἀνανεοῦσθαι”의 시제는 현재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상태는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쉬지 말고 계속 성장하고 또 성숙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고는 절대로 말이 바뀔 수 없습니다.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새καινός”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 상태를 가리킵니다. 새사람은 단순히 성격이 좋아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해 주신 사람입니다. 의와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부인이라는 거룩한 희생 안에서 질적으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새사람을 입지 않고는 절대로 말이 바뀔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내면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또 성숙해 가는 과정입니다.
인생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영적으로 날마다 새로워지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당신 뜻의 계획에 따라 작정하신 새 사람 곧 새로운 피조물로 지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내적 변화입니다. 말의 변화입니다. 말에는 위대한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위로와 격려와 칭찬은 물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힘과 용기를 북돋워 줄 수도 있고, 씻을 수 없는 아픈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힘들여 쌓아온 친밀한 관계를 깨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인생을 그야말로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욕을 완전히 꺾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흔들리는 믿음을 든든하게 세워줄 수도 있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그나마 간직하고 있는 작은 믿음마저도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형제자매를 높여줄 수도 있고, 자신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습관처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말은 과연 무엇입니까? 말을 단순한 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진리, 인간의 책임을 담은 힘 있는 행위입니다.
지혜는 말의 중요성과 관련해서 “여호와께서는 거짓말하는 입술을 미워하신다.”(잠12:22a)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거짓말을 미워하십니다. 정직하고 진실한 말을 기뻐하십니다. 또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가 돋혀 있는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15:4)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따뜻하고 친절한 말들은 마치 생명나무 같습니다. 힘과 위로는 물론 희망까지도 안겨 줄 수 있습니다. 반면 비난, 조롱, 냉소, 모욕 같은 가시가 돋혀 있는 거친 말들은 마치 죽음 나무 같습니다. 마음에 오랫동안 남을 깊고 아픈 상처를 남깁니다.
지혜는 또 “입을 잘 놀리면 단것을 실컷 먹고 입술을 잘못 놀리면 쓴 것을 들이키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끝에 달렸으니 혀를 잘 놀려야 잘 먹을 수 있다.”(잠18:20-21)라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에는 반드시 합당한 결과가 따릅니다. 지혜롭고 신중한 말은 좋은 관계를 낳습니다. 신뢰를 낳습니다. 좋은 열매를 맛볼 수 있습니다. 거짓말, 험담, 분노, 혈기 등으로 가득 찬 말은 갈등과 상처를 만듭니다. 관계를 완전히 깨뜨릴 수도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해를 부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지혜롭게 말해야 합니다.
특히 시인은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 내 생각과 내 말이 언제나 당신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시19:14b)라고 노래했습니다. “입의 말”은 저와 여러분이 시도 때도 없이 쏟아내고 있는 모든 말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외적인 삶입니다. “마음의 묵상”은 심령 깊은 곳에서 쉬지 않고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생각을 가리킵니다. 의식하거나 의도하지 않아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생각들까지도 포함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내적인 삶입니다. “주 앞에”를 직역하면 “주의 얼굴 앞에서”입니다.
삶의 현장에 친히 임재하여 계신 하나님께서 주목하며 지켜보고 계시는 거룩한 자리를 가리킵니다. “열납לְרָצוֹן(레라촌)”은 “기뻐하다, 좋게 여기다, 호의를 베풀다,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마음에 들어 하다.” 등의 뜻입니다.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희생 제물은 언제나 여호와께서 제시한 기준에 맞아야 했습니다. 드리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드려지는 희생 제물과 드리는 사람이 당신이 제시한 기준에 합당하면 제사를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좋게 여기셨습니다. 인정하고 받아주셨습니다. 호의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하는 말과 마음속 생각은 물론 동기와 의도까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만한 아름다운 제물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이 쏟아내는 모든 말은 거룩한 제물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바뀌는 생각도 거룩한 제물입니다. 심령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도와 동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제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말과 생각과 묵상을 돌아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거룩한 제물 되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