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창2:10)라고 시작됩니다. 다른 성경은 이를 “에덴에서 강 하나가 흘러나와 동산을 적신 다음 네 줄기로 갈라졌다.”(공동번역),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에덴을 지나서는 네 줄기로 갈라져 네 강을 이루었다.”(표준 새 번역)라고 번역합니다. “네 곧 4”는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방위方位를 가리킵니다. 온 세상을 가리킵니다. 에덴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강이 발원했습니다. 동산을 풍성하게 적셨습니다. 동산을 벗어난 다음에는 네 줄기로 갈라졌습니다.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온 세상을 적셨습니다. 본문은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창2:11-12)라고 이어집니다. 에덴에서 발원하여 갈라져 나온 첫 번째 강의 이름은 “비손”입니다. “생육하다, 번성하다, 발전하다, 성장하다, 풍성하다, 증가하다.” 등의 뜻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과 바다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하루는, 아침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등어, 갈치, 동태 등 좋아하는 생선 요리로 화제話題가 옮겨갔습니다.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풍성하다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속으로부터 뜨거운 감사와 감격과 감동이 마치 솟구치듯 밀려올라왔습니다. 75억을 육박하는 지구촌 사람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셀 수 없이 많은 양을 소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에는 여전히 물고기들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땅은 심기만 하면 상상 이상의 열매를 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저주 받은 바다와 땅에서 이 정도로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면, 회복된 하나님 나라에서는 부족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이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이 정도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면,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축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게 만드는 바로 그 하나님 나라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예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창2:13)라고 이어집니다. 에덴에서 두 번째 갈라져 나온 강의 이름은 “기혼”입니다. “넘치도록 가득 찼다 또는 터져 나가다.” 등의 뜻입니다. 누르고 흔들어 차고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처음 시작한 선교지 생활은 그야말로 암담했었습니다. 수중에는 가진 물질도 없었습니다. 기도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르밧 과부와 까마귀를 구했습니다. 필사적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하나님 은혜가 누르고 흔들어 차고 넘쳤습니다. 무수히 많은 고비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습니다. 때로는 조금 넘쳤고, 때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온 세상 구석구석에 흘려보내기를 바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 통로가 되어주기를 바라십니다.
더할 나위 없이 복된 사명입니다. 반드시 순종해야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자신을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꺼지지 않는 불과 유황이 타는 지옥 불구덩이로부터 건져내시기 위하여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셨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환경과 상황과 조건이 아무리 어렵고 힘겨울지라도 상관없이 하나님 한 분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과 평안과 안식과 쉼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무조건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은 물론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도 온전히 바쳐서 충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부족이라는 단어 자체를 찾아볼 수 없는, 얼마나 가득 찼는지 당장이라도 비집고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은혜로 충만한 하나님 나라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겨운 환난과 시험 속에 던져져 있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참고, 견디며, 마침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과 평안과 안식과 쉼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은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창2:14a)라고 이어집니다. 에덴으로부터 세 번째 갈라져 나온 강 이름은 “힛데겔”입니다.
“능력 곧 에너지가 넘치는, 기운찬, 화살처럼 빠른” 등의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에너지가 넘칩니다. 기운이 넘칩니다. 화살처럼 빠르게 전파됩니다. 영혼을 순식간에 사로잡습니다.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누리게 된 사람은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을 휘어잡을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하고 강력한 세력이라 할지라도 결코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척 교회를 섬길 때였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찬양과 설교 등 무엇 하나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기도원에 머물러 있던 일주일 내내 그랬습니다. 마지막 예배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억울해서 그대로 내려올 수 없었습니다. 대성전 끝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제발 은혜 좀 부어주세요!”라는 말만 무수히 반복했습니다. 불현듯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평안이 밀려들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눅9:33a)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답답했던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지만, 마음만큼은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처럼 기뻤습니다.
선교지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두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모두 설교를 준비할 때였습니다. 저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은혜였습니다. 이후, 저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고, 말에는 확신과 자신감이 넘치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확실히 달라진 게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습니다. “비록 무화과는 열리지 않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고,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데없고, 목장에서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합3:17)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환호성을 지를 수 있습니다. 기뻐 뛸 수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경험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면 우리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 되어 있습니다. 간절히 사모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맛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창2:14b)라고 마무리됩니다. 에덴동산으로부터 네 번째 갈라져 나온 강의 이름은 “유브라데”입니다.
“결실하다, 유익하다, 달콤하다, 풍성하다.” 등의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합니다. 풍성합니다. 누구에게나 다 유익합니다. 에덴 곧 하나님 나라는 하루가 다르게 풍성하게 증가 하고, 얼마나 풍성한 지 미어터질 정도로 가득차고, 온 세상을 향해 화살처럼 빠르게 확산되고,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하고 유익한 열매들이 넘치는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 등 어떤 공로도 없었지만, 아니 공로를 세워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지만 존재하는 순간부터 공기처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 나라는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를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꺼지지 않는 불과 유황이 타는 지옥 불구덩이로부터 건져내시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거룩한 희생 제물로 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 구별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선물로 주어집니다. 간과하지 말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처음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 자리에 앉기로 결정했습니다. 범죄 했습니다. 저주를 자초自招했습니다. 영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과 환경적 저주가 임했습니다. 값없이 누리고 있었던 에덴으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온 세상을 기름지고 윤택하고 풍성하게 하는 근원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박탈剝奪당하고 말았습니다. 존재하는 사실 자체가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선지자는 “성전 정면은 동쪽을 향해 나 있었는데 그 성전 문턱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물은 제단 남쪽으로 해서 성전 오른쪽 벽에서 뻗은 선을 타고 흘러 내려갔다. 나는 그분에게 이끌리어 북문을 나가 바깥 길로 해서 바깥 동문께로 돌아가 보았다. 물이 그 대문 오른쪽에서 솟아나는 것이 보였다.”(겔47:1b-2)라고 외쳤습니다.
성전의 성소로부터 강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선지자는 또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온갖 생물들이 번창하며 살 수 있다. 어디로 흘러 들어가든지 모든 물이 단물이 되기 때문에 고기들이 득실거리게 된다.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생명이 넘친다.”(겔47:9), “이 강가 양쪽 언덕에는 온갖 종류의 과일 나무들이 자라며 잎이 시드는 일이 없다. 그 물이 성소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다달이 새 과일들이 나와서 열매가 끊어지는 일이 없다. 그 열매들은 양식이 되고 잎들은 (치료하는) 약이 된다.”(겔47:12)라고 외쳤습니다.
그 강물이 지나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만물이 소성했습니다. 번성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네 강과 흡사합니다. 사도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천사는 또 수정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그 도성의 넓은 거리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나뭇잎은 만국 백성을 치료하는 약이 됩니다.”(계22:1-2)라고 묘사했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로부터 강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생명수 강이 되었습니다. 만국을 소성시켰습니다. 에덴동산과 네 강, 에스겔 성소와 성소로부터 흐르는 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와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 강이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목해야할 존재 한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시는 분입니다. 온 세상 사방으로 보내심을 받은 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름짐, 윤택함, 풍성함, 달콤함 등을 화살처럼 빠르게 퍼뜨려서 온 세상을 완벽하게 소성시키는 분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도록 할 분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요4:13-14),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7:38-39a)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에덴으로부터 발원하여 온 세상으로 흐르는 강물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물론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소성시키십니다. 한 가지 더 확인해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비손 강이 흐르는 땅을 채우고 있었던 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 등 보석들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입니다. 사도는 “그 도성은 크고 높은 성곽과 열두 대문이 있었고, 열두 대문에는 천사가 하나씩 있었으며 또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계21:12)라고 외쳤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는 열두 문이 있습니다. 문에는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씩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구원하기로 작정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너는 판결흉패에...보석을 물리되 첫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니...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라.”(출28:15-21)라는 말씀에 따르면, 대제사장의 흉패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보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성도들입니다. 대제사장은 이 흉패를 매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인류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석 같은 성도들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십니다.
사도는 또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계21:14), “그 성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계21:19-20)라고 외쳤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귀한 보석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그 위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엡2:20a)라는 사도의 외침에 따르면, 열두 기초석을 꾸미고 있는 보석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은 금, 베델리엄, 호마노 곧 진귀한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시온, 하나님 나라 곧 에덴을 누릴 수 있는 거룩한 존재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놀라운 존재로 재창조하셨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10:10b)라는 말씀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나타내신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잃어버렸던 에덴의 축복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이 창세전부터 예비 된 하나님 나라의 기름짐과 윤택함과 풍성함과 달콤함을 얻고 또 얻고 더 얻어서 더할 나위 없이 넘치도록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무리 크고, 놀랍고, 탁월하고, 세상 사람들은 최고라고 추켜세우는 그 무엇도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심장이 터져서 물과 피가 분리될 정도로 혹독한 총체적 곧 영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신 이유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놓아야할 부와 명예와 권세와 자랑에 마음을 빼앗길 이유가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 주인처럼 행세하며 살아왔다면 철저히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뜻, 의지, 계획, 목적까지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기까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오늘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재창조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사는 모든 순간 더할 나위 없이 기름지고 윤택하고 풍성한 하나님 나라 곧 에덴의 축복을 누리는 복된 삶, 아무리 어렵고 힘겨운 환난과 시험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풍성하게 누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 곧 에덴의 축복 때문에 얼마든지 참고 견디며 마침내는 이기고 승리하는 보석같이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