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곡 정제두 선생의 창원 황씨 정경부인 묘표 (번역)
霞谷集, 卷六, 墓表
贈貞敬夫人昌原黃氏墓表 a_160_185a
惟我曾祖妣贈貞敬夫人黃氏, 葬安山郡磨河山西楸谷坐癸之原, 卽鄭氏先壟也, 以府君別葬于江華, 不克祔. 蓋我曾祖、考務功郞、承文院博士、贈領議政府君, 諱謹, 字汝頊, 迎日縣人, 圃隱文忠公之八世孫, 參奉贈贊成諱龜應之子.
夫人, 其繼配也. 黃氏本昌原大姓, 高麗平章事石奇之後, 高祖諱衡, 著武功, 爲工曹判書、莊武公. 曾祖諱琛, 漢城判尹. 祖諱大任, 同知中樞府事. 考諱致敬, 全羅道觀察使. 妣昌寧成氏, 司藝諱子濟之女, 以萬曆丙子十二月生夫人.
端莊有女行, 歸于議政府君. 戊戌府君捐館, 夫人育一男方三歲. 上奉姑夫人孝愼, 下訓孤幼崖母道, 其辛勤成立, 卒顯爲名輔, 則是惟我王父右議政諱維城. 夫人嘗從養于南原府, 崇禎乙亥八月十三日卒于府, 壽六十, 後累贈至今封. 孫男昌徵郡守, 尙徵進士. 郡守男齊賢寅平尉, 進士男齊斗, 齊泰方仕, 餘不能悉記. 齊斗等敬識此于墓石, 時崇禎後甲子八月日.
우리 증조할머니 정경부인 황씨는 안산군 마하산 서쪽 개래울에 있는 선영에서 계향(癸向)을 바라보는 묘지에 묻히셨습니다. 남편은 강화도에 묻히셔서 서로 합장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증조할아버지는 무공랑, 승문원 박사를 지내셨고 돌아가신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셨으며, 이름이 근(謹)이며 자는 여욱(汝頊)이며, 영일 정씨이며 포은 정몽주 선생의 8세손이며, 참봉을 지내셨고 돌아가신 뒤에 찬성에 추증되신 정구응(鄭龜應)의 아드님입니다.
황씨 부인께서는 계실이시며, 본관이 창원이며 고려왕조 평장사 황석기(黃石奇)의 후손입니다. 고조할아버지는 황형(黃衡)이시며 높은 무공을 세우셨고 공조 판서를 지내셨으며 장무공이라는 봉작을 받으셨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황침(黃琛)이시며 한성부 판윤을 지내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황대임(黃大任)이시며 중추부 동지사를 지내셨습니다. 아버지는 황치경(黃致敬)이시며 전라도 관찰사를 지내셨습니다. 어머니는 창녕 성씨이며 사예를 지내신 성자제(成子濟)의 따님이며 만력 병자년(4년, 1576) 12월에 정경부인을 낳으셨습니다.
부인께서는 단정(端正: 판단이 명료하고 행동이 분명하다.)하시고 장중(莊重: 생각이 넓고 신중하다.)하시며 여자의 도리를 잘 지키셨습니다. 영의정에 추증되신 증조할아버지께 시집오셨습니다. 무술년(만력 26년, 1598, 황씨부인 23살)에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혼자 세 살짜리 아들을 길렀습니다. 위로는 시어머님께 효도를 다하여 모셨고 아래로는 어린 아들을 가르쳐 길렀으며 어머니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온갖 고생을 다하시면서 부지런히 어린 아들을 길러 장가를 보내고 입신양명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끝내 훌륭한 영의정이 되셨으니 우리 할아버지 영의정 정유성(鄭維城)입니다.
부인께서는 일찍이 아드님이 전라도 관찰사를 지내시던 남원부(南原府)에 계셨을 때 숭정 을해년(1635) 8월 13일 돌아가셨으며 향년 60살이시며 뒤에 정경부인에 추증되셨습니다.
후손으로는 손자 정창징이 군수를 지냈고 정상징은 진사에 합격하였습니다. 정창징의 아들 정제현은 효종의 셋째 딸 숙휘공주(淑徽公主)에 장가들어 인평위(寅平尉)가 되었습니다. 진사에 합격한 정상징은 아들 정제두와 정제태를 두었고 정제태는 얼마 전에 출사하였습니다. 다른 후손들도 많지만 일일이 기록하지 않습니다.
정제두를 비롯한 손자들은 이 글을 비석에 새겨서 세웁니다.
숭정 뒤 갑자년(1684년, 정제두 선생 36살) 8월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