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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禮 (上) 한글 번역 (2014년 5월 12일~7월 14일)

작성자이경룡|작성시간14.07.15|조회수716 목록 댓글 1

하곡 정제두 선생의 경의(經儀)를 읽기  앞서

여러분들과 함께 읽은 곡례(상하)를 번역하여 올립니다.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이경룡 올림

 

 

첨부파일 2-4 曲禮(上下) 한글 번역.hwp

 

 

禮記 曲禮(上下) 한글 번역

 

하곡학연구원 강좌기간 2014512~714

 

 

曲禮 上 第一 (번역)

 

 

1. 曲禮曰毋不敬儼若思安定辭安民哉

곡례왈무불경엄약사안정사안민재

 

곡례에 말하길 恭敬하는 마음을 갖고, 엄숙한 자세로 사려하고, 安靜하여 訟辭를 심판하여야만 백성을 평안하게 할 수 있다.

 

2. 敖不可長欲不可從志不可滿樂不可極

오불가장욕불가종지불가만낙불가극

 

오만한 마음을 자라게 두어서는 안되고, 욕망을 따라서는 안되고, 하고싶은 뜻을 채워서는 안되고, 즐기려는 향낙을 끝까지 가서는 안된다.

 

3. 賢者狎而敬之畏而愛之愛而知其惡憎而知其善積而能散安安而能遷臨財毋苟得臨難毋苟免很毋求勝分毋求多疑事毋質直而勿有

현자압이경지외이애지애이지기악증이지기선적이능산안안이능천림재무구득림난무구면흔무구승분무구다의사무질직이물유

 

나보다 현명한 사람을 가까이하되 공경하고, 심복하되 사랑하여야한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의 나쁜 악을 알아야하고,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그의 착한 선을 알아야한다. 재물을 모아쌓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고, 현재 편안한 처지를 편안히 여기더라도 때에 따라 처지를 바꿀 수 있어야한다. 재물을 앞에 놓고 구차하게 얻으려고 하지 말고, 어려운 일을 만나서도 구차하게 피하려고 하지 말고, 소송할 때 이기려고 하지 말고, 재물을 분배할 때 많이 차지하려고 하지 말아야한다. 의심가는 일에 대하여 잘아는 척 우기지 말고, 올바르게 잘 알더라도 스승과 벗이 가르쳐주었다고 하며 내가 알아낸 견해라고 주장하지 말라.

 

4. 若夫坐如尸立如齊禮從宜使從俗

약부좌여시입여제례종의사종속

 

대체로 앉을 때는 시동처럼 허리와 머리를 꼿꼿하게 바르게 하며 구부리지 않고, 설 때는 제사지낼 때처럼 좌우로 비스듬히 기울지 않고 바르게 서있어야한다. 예절은 세월과 지방에 따라 상황에 적절하게 하며, 외국에 사신 갔을 때는 현지 풍속에 따라야한다.

 

5. 夫禮者所以定親疏決嫌疑別同異明是非也

부예자소이정친소결혐의별동이명시비야

 

예절은 다음과 같은 표준인데, 大功 이상과 小功 이하의 친소를 결정하고, 서로 혼동되거나 비슷한 혐의를 결정하고, 어느 때는 같고 어느 때는 달라야하는지 동이를 분별하고, 예절에 맞는지 그른지 시비를 밝히는 표준이다.

 

禮不妄說人不辭費禮不踰節不侵侮不好狎

예불망열인불사비례불유절불침모불호압

 

예절은 남을 기쁘게 하려고 해서도 안되고, 실천하지 못할 말을 해서도 안된다. 예절은 절도를 넘어서도 안되고, 남을 능모해서도 안되고, 남을 함부로 좋아하고 따라서도 안된다.

 

修身踐言謂之善行行修言道禮之質也

수신천언위지선행행수언도예지질야

 

나 자신의 부족한 것을 늘리고 말을 실천하는 것이 선행이고, 행동이 자라서 늘어나고 말이 도의에 맞는 것이 예절의 근본이다.

 

禮聞取於人不聞取人禮聞來學不聞往教

례문취어인불문취인례문래학불문왕교

 

예절은 남에게서 배워온 것이라고 들었고,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없다. 예절은 내가 가서 배우는 것이라고 들었고, 남에게 가서 가르치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없다.

 

6. 道德仁義非禮不成教訓正俗非禮不備分爭辨訟非禮不決君臣上下父子兄弟非禮不定宦學事師非禮不親班朝治軍蒞官行法非禮威嚴不行禱祠祭祀供給鬼神非禮不誠不莊是以君子恭敬撙節退讓以明禮

도덕인의비례불성교훈정속비례불비분쟁변송비례불결군신상하부자형제비례불정환학사사비례불친반조치군리관행법비례위엄불행도사제사공급귀신비례불성불장

 

도덕과 인의는 예를 따라야만 배워 완성하며, 교훈하여 풍속을 바로잡는 것도 예를 따라 조절하여야만 완비되며, 분쟁과 소송도 예를 따라야만 판결한다. 군신상하와 부자형제의 관계도 예를 따라야만 결정한다. 관직에서나 학교에서 스승을 모시는 것도 예를 따라야만 가까이하며, 일반행정의 조정에서 반열을 나누어 의론하거나 군사행정에서 군대를 훈련하고 또한 관원을 임명하거나 법령을 실행할 때도 예를 따라야만 위엄있게 실행할 수 있다. 복을 빌거나 제사 지내고 국가 제사를 지내면서 귀신에게 제물을 올릴 때에도 예를 따라야만 마음이 정성스러워지고 모습도 장엄해진다. 그리하여 군자는 공경하고 자신을 억제하고 남에게 퇴양하여 예절을 밝힌다.

 

鸚鵡能言不離飛鳥猩猩能言不離禽獸今人而無禮雖能言不亦禽獸之心乎夫唯禽獸無禮故父子聚麀是故聖人作為禮以教人使人以有禮知自別於禽獸

앵무능언불리비조성성능언불리금수금인이무례수능언불역금수지심호부유금수무례고부자취우시고성인작위례이교인사인이유례지자별어금수

 

새 가운데 똑똑한 앵무새는 말할 수 있지만 하늘을 나는 새를 벗어나지 못하고, 짐승 가운데 똑똑한 유인원은 말할 수 있지만 땅을 걸어다니는 금수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으로서 예절이 없다면 말할 수 있더라도 금수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금수는 예절이 없기 때문에 부자가 암 사슴을 함께 취한다. 그리하여 성인이 나오셔서 예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사람마다 예절을 갖게하여 스스로 금수와 다르다는 것을 알도록 하였다.

 

太上貴德其次務施報禮尚往來往而不來非禮也來而不往亦非禮也

人有禮則安無禮則危故曰禮者不可不學也

태상귀덕기차무시보례상왕래왕이불래비례야래이불왕역비례야

인유례칙안무례칙위고왈례자불가불학야

 

먼 옛날 삼황오제시기에는 덕행을 숭상하였고 다음으로 삼왕시기이후에는 베풀면 보답하는 것에 힘써서 예가 완비되었다. 예는 베풀고 보답하는 왕래를 숭상하는데, 남에게 베풀었는데도 보답받지 못하는 것은 예가 아니고, 남의 베품을 받았는데도 보답하지 않는 것도 예가 아니다.

사람이 예절이 있으면 안정되고 예절이 없으면 위태롭다. 그래서 예를 반드시 배우라고 말한다.

 

夫禮者自卑而尊人雖負販者必有尊也而況富貴乎

富貴而知好禮則不驕不淫貧賤而知好禮則志不懾

부례자자비이존인수부판자필유존야이황부귀호

부귀이지호례칙불교불음빈천이지호례칙지불섭

 

예는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인데, 비록 노동 품팔이꾼과 장사하는 상인이라도 서로 남을 높이는데, 부자이거나 지위가 귀한 사람이라고 남을 높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자이거나 지위가 귀한 사람으로서 예절을 좋아해야한다는 것을 알면 사치하여 교만하거나 허세를 부려 넘치지 않고, 가난하거나 지위가 천한 사람도 예절을 좋아해야한다는 것을 알면 마음의 뜻을 지키며 겁먹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7. 人生十年曰幼二十曰弱三十曰壯有室四十曰強而仕五十曰艾服官政六十曰耆指使七十曰老而傳八十九十曰耄七年曰悼悼與耄雖有罪不加刑焉百年曰期

인생십년왈유이십왈약삼십왈장유실사십왈강이사오십왈애복관정륙십왈기지사칠십왈로이전팔십구십왈모칠년왈도도여모수유죄불가형언백년왈기이

 

사람이 태어나서 열 살이 되면 라고 하며 밖에서 잘 수 있으므로 글쓰기와 산수를 배운다. 스무살이 되면 이라고 하며 성인이 되는 관례를 치룬다. 서른살이 되면 이라고 하며 장가간다. 마흔살이 되면 이라고 하며 벼슬살이하면서 윗사람을 받들고 관청의 작은 일을 맡는다. 쉰살이 되면 머리카락이 쑥처럼 하얗게 쉬어서 라고 하며 大夫가 되면 아랫사람을 기르고 국가 대사에 참여한다. 예순살이 되면 라고 하며 몸소 일하지 않고 아랫사람들에게 지시한다. 일흔살이 되면 라고 하며 아들에게 집안일을 넘긴다. 여든살과 아흔살을 정신없고 잘 잊는 라고 하며 일곱살을 사려가 어려서 불쌍히 여겨 보살펴야하는 라고 하며, 는 죄를 짓더라도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백살이 되면 라고 하며 음식과 거처 등 일상생활을 모르기 때문에 자식의 봉양을 받아야한다.

 

大夫七十而致事若不得謝則必賜之行役以婦人適四方乘安車自稱曰老夫於其國則稱名越國而問焉必告之以其制

대부칠십이치사약불득사칙필사지행역이부인적사방승안차자칭왈로부어기국칙칭명월국이문언필고지이기제

 

대부는 일흔살이 되면 맡은 일을 임금에게 되돌려주며, 임금이 대부의 사임을 허락할 수 없으면 반드시 궤장을 내려주고, 일할 때에는 부인이 곁에서 일상생활의 수발을 들도록 하고, 멀리 갈 때는 1인용 앉는 수레를 타고, 스스로 노부라고 부르고 부모의 나라에서는 이름을 부른다. 외국에서 와서 방문하는 사람이 물으면 반드시 나라의 제도를 설명해준다.

 

8. 謀於長者必操杖以從之長者問不辭讓而對非禮也

모어장자필조장이종지장자문불사양이대비례야

 

나보다 연장자에게 가르침을 구할 때는 반드시 연장자의 궤장을 붙잡고 따른다. 연장자가 물으면 겸양하지 않고 대답하는 것은 예절이 아니다.

 

9. 凡為人子之禮冬溫而夏凊昏定而晨省在醜夷不爭

범위인자지례동온이하청혼정이신성재추이불쟁

 

대체로 부모님이 살아계신 자식의 예절은 겨울에는 따듯한지 여름에는 시원한지 살펴보고 아침과 저녁에는 안부를 살피고, 홧김에 자신을 잊을 수 있기 때문에 또레 무리들과 다투지 않는다.

 

10. 夫為人子者三賜不及車馬故州閭鄉黨稱其孝也兄弟親戚稱其慈也僚友稱其弟也執友稱其仁也交遊稱其信也

부위인자자삼사불급차마고주려향당칭기효야형제친척칭기자야료우칭기제야집우칭기인야교유칭기신야

 

대체로 부모님이 살아계신 자식은 임금의 명을 세 번 받으면 거마를 하사받지만 거마는 자신의 편안함에 그치고 부모님에게 영광이 미치지 않으므로 받지 않는다. 그래서 255002,50012,500에서 효자라고 이르고 형제와 친척은 자애롭다고 이르고 동료 관원들은 하다고 이르고 뜻을 같이 하는 벗들은 어질다고 이르고 어울리는 사람들은 믿음이 간다고 이른다.

 

見父之執不謂之進不敢進不謂之退不敢退不問不敢對此孝子之行也

견부지집불위지진불감진불위지퇴불감퇴불문불감대차효자지행야

 

아버지의 동지를 뵈면 아버지처럼 공경해야하므로 들어오라고 하지 않으면 함부로 들어가지 않고, 물러서라고 하지 않으면 함부로 물러서지 않고, 묻지 않으면 함부로 대답하지 않는 것이 효자의 행동이다.

 

11. 夫為人子者出必告反必面所遊必有常所習必有業恒言不稱老

年長以倍則父事之十年以長則兄事之五年以長則肩隨之群居五人則長者必異席

부위인자자출필고반필면소유필유상소습필유업항언불칭로

년장이배칙부사지십년이장칙형사지오년이장칙견수지군거오인칙장자필이석

 

부모님이 계신 아들은 나갈 때는 반드시 가는 곳을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님 얼굴을 뵈어 안부를 여쭙고 돌아온 것을 아뢴다. 나가는 곳도 반드시 부모님이 아시는 일정한 곳이고, 배우는 것도 반드시 부모님이 아시는 정당한 일이며, 항상 말하되 자신이 늙었다고 이르지 않는다. 연장자 나이가 곱절이면 아버지처럼 모시고, 십년 이상 연장자이면 형처럼 모시고 오년 이상 연장자와는 어깨 정도 거리를 두고 뒤에서 따른다. 무리가 다섯 명 이상이면 제일 연장자는 반드시 자리를 달리 앉는다.

 

12. 為人子者居不主奧坐不中席行不中道立不中門食饗不為概祭祀不為尸聽於無聲視於無形不登高不臨深不苟訾不苟笑

위인자자거불주오좌불중석행불중도립불중문사향불위개제사불위시청어무성시어무형불등고불림심불구자불구소

 

한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들은 방안의 서남쪽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앉을 때도 가운데 자리에 앉지 않고, 가운데 길로 걷지 않고, 가운데 문에 서지 않는다. 부모님의 모시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연회의 음식 분량과 제사 지내는 음식의 분량을 자신이 정하지 않고 부모님의 뜻을 따르고, 제사 지낼 때에는 시동이 되어 어른들의 절을 받지 않는다.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모습도 보이지 않으나 마음속으로는 듣고 보는 듯이한다. 위험하므로 높은 곳에 오르지 않고 깊은 곳에 다가가지 않는다. 함부로 남을 헐뜯지 않고 함부로 아첨하려고 웃지도 않는다.

 

13. 孝子不服闇不登危懼辱親也父母存不許友以死不有私財

효자불복암불등위구욕친야부모존불허우이사불유사재

 

효자가 남몰래 일을 도모하지 않고 위험한 곳에 오르지 않는 것은 혹시라도 부모님께 욕될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부모님을 잊어버리고 벗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죽음을 허락하는 약속을 하지 않고,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재물을 자기 것으로 하지 않는데 이것은 부모님과 떠나려는 뜻이 나타내기 때문이다.

 

14. 為人子者父母存冠衣不純素孤子當室冠衣不純采

위인자자부모존관의불순소고자당실관의불순채

부모님이 살아계신 아들은 모자와 옷깃을 흰색으로 꾸미지 않는다.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신 뒤 서른살 결혼하기 이전이지만 아버지 뒤를 계승한 아들만은 모자와 옷깃을 여전히 흰색으로 꾸미고 다른 아들들은 상관없다.

 

15. 幼子常視毋誑童子不衣裘裳立必正方不傾聽長者與之提攜則兩手奉長者之手負劍辟咡詔之則掩口而對

유자상시무광동자불의구상립필정방불경청장자여지제휴칙량수봉장자지수부검벽이조지칙엄구이대

 

어른들이 항상 어린 幼子에게는 속임수를 보여주지 말아야하고, 어린 童子는 더운 것을 참지 못하므로 따듯한 갓옷을 입히지 않는다. 유자와 동자가 서있을 때는 똑바로 서게 하고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여서 어른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한다. 어른이 어린이에게 손을 내밀면 어린이는 두손으로 어른의 손을 잡아야한다. 어른이 허리와 고개를 숙여서 말을 걸면 어린이는 입냄새가 어른에게 닿지 않도록 손으로 입을 가리고 대답한다.

 

16. 從於先生不越路而與人言遭先生於道趨而進正立拱手先生與之言則對不與之言則趨而退從長者而上丘陵則必鄉長者所視登城不指城上不呼

종어선생불월로이여인언조선생어도추이진정립공수선생여지언칙대불여지언칙추이퇴종장자이상구릉칙필향장자소시등성불지성상불호

 

선생님을 모시고 따라갈 때 수레 3대가 오갈 수 있는 큰길에서는 선생님을 앞질러 가서 다른 사람과 말을 걸지 않는다. 수레 2대가 오갈 수 있는 큰길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달려나가서 바르게 서서 인사 올리고, 선생님이 말을 걸면 대답하고 말을 걸지 않으면 얼른 물러난다. 어른을 따라 높은 언덕에 올라가면 어른이 물어보면 얼른 대답하기 위하여 반드시 어른이 보는 쪽을 향하여 본다. 어른을 따라 성벽 위에 올라가면 셩벽 아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있으므로 함부로 손가락으로 가르키거나 소리질러 부르지 않는다.

 

將適舍求毋固將上堂聲必揚戶外有二屨言聞則入言不聞則不入將入戶視必下入戶奉扃視瞻毋回戶開亦開戶闔亦闔有後入者闔而勿遂毋踐屨毋踖席摳衣趨隅必慎唯諾

장적사구무고장상당성필양호외유이구언문칙입언불문칙불입장입호시필하입호봉경시첨무회호개역개호합역합유후입자합이물수무천구무적석구의추우필신유낙

 

길을 떠나 남의 집에 머물 때에는 주인에게 필요한 물건을 요구할 수 있으나 내가 평상시에 사용하던 것이지만 주인에게 없는 물건은 억지로 요구하지 말라. 주인 집안으로 들어갈 때 주인이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인다. 객실 문앞에 신발 두 켤레가 있으면 객실 안에 세 사람이 있는데 객실 안의 말소리가 들릴 정도이면 들어가고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객실에 들어가려고 할 때는 반드시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들어갈 때는 손을 빗장을 들고 있는 것처럼 가슴에 대고 방안을 둘러보지 않는데 주인이 숨기거나 꺼리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들어온 뒤에는 들어올 때 문이 열려있으면 열어두고 닫혔으면 닫는다. 뒤에 따라들어올 사람이 있으면 문을 닫더라도 다 닫지 않는다. 먼저 들어간 사람의 신발을 밟지 않도록 하고 자리도 밟지 않도록 한다. 방안에서는 옷을 치켜들고 구석에 가서 앉고 주인이 물어야만 손님이 대답한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大夫士出入君門由闑右不踐閾

대부사출입군문유얼우불천역

 

대부와 사가 임금의 문을 출입할 때는 임금의 신하이므로 임금이 다니는 오른쪽 문으로 다니고 임금의 빈객이 다니는 왼쪽 문으로 다니지 않고,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

 

17. 凡與客入者每門讓於客客至於寢門則主人請入為席然後出迎客客固辭主人肅客而入主人入門而右客入門而左主人就東階客就西階客若降等則就主人之階主人固辭然後客復就西階主人與客讓登主人先登客從之拾級聚足連步以上上於東階則先右足上於西階則先左足

범여객입자매문양어객객지어침문칙주인청입위석연후출영객객고사주인숙객이입주인입문이우객입문이좌주인취동계객취서계객약강등칙취주인지계주인고사연후객복취서계주인여객양등주인선등객종지습급취족련보이상상어동계칙선우족상어서계칙선좌족

 

대체로 손님과 함께 들어가는 경우에 들어가는 문마다천자의 문은 5, 제후의 문은 3, 대부의 문은 2개이다.손님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양보한다. 주인이 자는 침실에 와서는 주인이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펴겠다고 요청하고 자리를 펴놓은 뒤에 다시 나와서 손님을 맞이하며 손님에게 먼저 들어가시라고 하면 손님은 굳이 사양하며처음 사양은 禮辭, 둘째 사양은 固辭, 셋째 사양은 終辭라고 한다.주인이 손님에게 고개를 숙이는 절을 하고 인도하여 들어간다. 주인은 문에 들어설 때 오른쪽으로 들어가고 손님은 왼쪽으로 들어가며 주인은 동쪽 계단을 밟고 올라가고 손님은 서쪽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그런데 계단 앞에 이르렀을 때 손님 스스로 자신의 신분군주, 대부, 이 낮은 경우에는 주인의 동쪽 계단 앞으로 가서 주인의 뒤를 따라 올라가려고 하는데 주인이 두 번 고사할 경우에야만 손님은 다시 서쪽 계단으로 가서 올라간다. 주인과 손님은 서로 먼저 올라가라고 양보하며 주인이 먼저 계단에 발을 올려놓고 올라가야 손님도 뒤따라 올라가며, 계단을 오를 때는 먼저 한 발을 계단 위에 올려놓은 뒤에 다른 발도 올려서 모으고 이렇게 한 걸음씩 올라간다. 동쪽 계단으로 올라갈 때는 먼저 오른발을 올려놓고 서쪽 계단을 오를 때는 먼저 왼발부터 올려놓는다.

 

 

18. 帷薄之外不趨堂上不趨執玉不趨堂上接武堂下布武室中不翔並坐不橫肱授立不跪授坐不立

유박지외불추당상불추집옥불추당상접무당하포무실중불상병좌불횡굉수립불궤수좌불립

 

윗사람이 계시는 장막 밖에서는 공경하는 마음과 공손한 자세로 빨리 걷지 않고 자유롭게 걸으며, () 위에서는 좁기 때문에 빨리 걷지 않고, 옥기는 귀중하므로 옥기를 들고는 빨리 걷지 않는다. 당 위에서는 앞 발자국 뒤금치와 뒤 발자국 앞금치가 서로 다을 만큼 보폭을 줄여서 걷고 당 아래에서는 보폭을 넓게 벌려서 걷고, 방안()에서는 더욱 좁기 때문에 양팔을 휘저으며 빨리 걷지 않고, 나란히 앉을 때는 팔꿈치가 곁 사람에게 닫지 않도록 한다. 서있는 사람에게 물건을 줄 때는 무릎을 굻고 주지 않고 앉아있는 사람에게 줄 때는 일어나서 주지 않는다.

 

19. 凡為長者糞之禮必加帚於箕上以袂拘而退其塵不及長者以箕自鄉而扱之

奉席如橋衡請席何鄉請衽何趾席南鄉北鄉以西方為上東鄉西鄉以南方為上

 

범위장자분지례필가추어기상이몌구이퇴기진불급장자이기자향이급지

봉석여교형청석하향청임하지석남향북향이서방위상동향서향이남방위상

 

어른 자리 앞을 청소하는 예절은 빗자루를 쓰레받기 위에 얹어서 가지고 오고, 빗자루로 쓸 때도 한 손의 소매로 가리고 다른 손으로 비질을 하며 뒤로 물러나서 먼지가 어른에게 닿지 않도록 하며, 쓰레받기는 자기 쪽으로 하여 비질한다.

어른의 자리는 돌돌 말아서 왼쪽을 조금 높고 오른쪽을 조금 낮게 높이 들고 가서 앉으실 자리 방향을 묻고 이부자리는 발금치 쪽을 묻고 깐다. 자리가 남향이나 북향이면 서쪽이 위쪽이고 동향이나 서향이면 남쪽이 위쪽이다.

 

若非飲食之客則布席席間函丈主人跪正席客跪撫席而辭客徹重席主人固辭客踐席乃坐主人不問客不先舉將即席容毋怍兩手摳衣去齊尺衣毋撥足毋蹶

 

약비음식지객칙포석석간함장주인궤정석객궤무석이사객철중석주인고사객천석내좌주인불문객불선거장즉석용무작량수구의거제척의무발족무궐

 

음식을 대접할 손님이 아니고 예를 들어 설명하거나 묻으려는 손님이라면 손짓을 할 수 있도록 일장(一丈은 약 2.3m이며, 漢代에는 一尺이 약 23cm이었다.) 정도 거리를 두어 자리를 깐다. 주인이 꿇어앉아서 손님 자리를 바로 잡으면 손님도 꿇어앉아서 자리를 어루만져 바로 놓으며 사양한다. 손님은 감히 겹으로 깐 자리에 앉지 않으려고 자리 하나를 걷어내려고 하면 주인은 두 번 사양하며 손님이 자리에 앉은 뒤에야 자리에 앉는다. 주인이 묻지 않으면 손님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앉으려고 할 때 앉는 자세가 얼굴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 두 손으로 겉옷 아래 단을 한 자(23cm) 높이로 걷어올려서 앉고, 앉은 뒤에는 겉옷이 펄럭이지 않도록 무릎을 가지런히 덮어놓으며 꿇어앉아서도 발이 아프다고 꿈지럭거리는 것은 실례이므로 꿈지럭거리지 않는다.

 

20. 先生書策琴瑟在前坐而遷之戒勿越

虛坐盡後食坐盡前坐必安執爾顏

長者不及毋儳言正爾容聽必恭毋剿說毋雷同必則古昔稱先王

 

선생서책금슬재전좌이천지계물월

허좌진후식좌진전좌필안집이안

장자불급무참언정이용청필공무초설무뢰동필칙고석칭선왕

 

제자가 꿇어앉았다가 일어나서 나가려고 할 때 선생님의 서책과 거문고 비파가 앞에 있으면 꿇어앉아서 옮겨놓으며 절대로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제사를 올릴 때 자리 앞에 제물을 놓기 때문에 제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자리를 비울 만큼 뒤로 물러나 앉으며, 먹는 자리에서는 자리를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가까이 다가앉는다. 앉는 자세는 반드시 바르게 하고 편안한 얼굴 표정을 유지한다.

어른이 다른 일을 말하지 않으면 갑자기 말을 꺼내지 않는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들을 때는 공손하게 한다. 남의 견해를 나의 것처럼 말하지 말아야하며, 남의 견해에 함부로 부화뇌동하지 말아야한다. 의견을 제시하면서 법받아야할 경우에는 옛날을 들고 사람을 들 경우에는 선왕을 들어야 잘하는 것이다.

 

侍坐於先生先生問焉終則對請業則起請益則起

父召無諾先生召無諾唯而起

 

시좌어선생선생문언종칙대청업칙기청익칙기

부소무낙선생소무낙유이기

 

선생님을 모시고 앉아서 선생님께서 물으시는데 끝난 뒤에 대답하고, 배워야할 것을 여쭐 때는 일어나서 여쭙고 부족한 것을 더 여쭐 때도 일어나서 여쭌다.

아버지는 은혜가 깊고 스승은 도를 전해주시기 때문에 동등하므로 아버지께서 부르면 알았어요.”라고 대답한 뒤 행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선생님께서 불러도 대답만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라고 대답하고 얼른 일어나서 간다.

 

侍坐於所尊敬毋餘席見同等不起

燭至起食至起上客起燭不見跋

尊客之前不叱狗讓食不唾

 

시좌어소존경무여석견동등불기

촉지기식지기상객기촉불견발

존객지전불질구양식불타

 

스승, 어른, 덕이 높은 분, 지위가 높은 분 등 존경하는 분을 모시고 앉았을 때는 그 분의 자리 끝에 다가 앉아서 내 자리와 그 분의 자리 사이에 다른 자리를 깔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앉아 응대하기 좋도록 하며, 동등한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해가 져서 등불을 켜면 일어나고 식사가 들어오면 일어나고 높은 손님이 오면 일어나며, 등불이 다 탔으니까 손님에게 가라는 뜻을 나타내지 않기 위하여 등불의 손잡이가 보이지 않도록 한다.

존귀한 손님 앞에서 천한 말을 들으라는 뜻으로 개를 꾸짖지 않고, 음식을 사양하면서 맛이 없다는 뜻으로 침을 밷지 않는다.

 

21. 侍坐於君子君子欠伸撰杖屨視日蚤莫侍坐者請出矣

侍坐於君子君子問更端則起而對

侍坐於君子若有告者曰少間願有復也則左右屏而待

 

시좌어군자군자흠신찬장구시일조막시좌자청출의

시좌어군자군자문경단칙기이대

시좌어군자약유고자왈소간원유복야칙좌우병이대

 

군자를 모시고 앉았는데 군자가 하품을 하고 허리를 펴면서 기지개를 켜거나 지팡이와 신발을 만지거나 시간을 보면 곁에서 모시던 사람은 가겠다고 아뢴다.

군자를 모시고 앉았는데 군자가 다른 일을 물으면 일어나서 대답한다. 물론 군자는 다시 앉으라고 이른다.

군자를 모시고 앉았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와서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아뢰면, 왼쪽 앉았으면 왼쪽으로 오른쪽에 앉았으면 오른쪽으로 물러나서 기다린다.

 

22. 毋側聽毋噭應毋淫視毋怠荒

遊毋倨立毋跛坐毋箕寢毋伏

斂髮毋髢冠毋免勞毋袒暑毋褰裳

 

무측청무교응무음시무태황

유무거립무파좌무기침무복

렴발무체관무면로무단서무건상

 

엿듣지 않고 큰소리로 대답하지 않고 곁눈질하지 않고 피곤하거나 게으른 자세를 하지 않는다.

걸어다닐 때는 거만한 자세를 하지 않고, 서있을 때는 비스듬히 한 발로 버티고 서지 않고, 앉을 때는 두 발을 쭉 펴지 않고, 누울 때는 엎드려 자지 않는다.

머리털을 가발처럼 늘어지지 않도록 잘 묶어야하며, 모자를 함부로 벗지 않으며, 일하면서 피곤하다고 웃옷을 함부로 벗지 않으며, 덥다고 함부로 아래 옷을 걷어올리지 말아야한다.

 

23. 侍坐於長者屨不上於堂解屨不敢當階就屨跪而舉之屏於側鄉長者而屨跪而遷屨俯而納屨

離坐離立毋往參焉離立者不出中間

 

시좌어장자구불상어당해구불감당계취구궤이거지병어측향장자이구궤이천구부이납구

리좌리립무왕참언리립자불출중간

 

어른을 모시고 앉을 때 신발을 신고 당()에 오르지 않고, 신발을 벗을 때는 계단을 마주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계단에 오르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신발을 신을 때는 꿇어앉아 들고 옆으로 가서 신는다. 안에 계신 어른을 향하여 신발을 신을 때는 꿇어앉아 바깥을 향하여 놓인 신발을 안쪽으로 돌려놓고 엎드려 신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거나 나란히 서있을 때 끼어들어가지 않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있을 때 사이로 지나가지 않는다.

 

24. 男女不雜坐不同椸枷不同巾櫛不親授

嫂叔不通問諸母不漱裳

外言不入於捆內言不出於捆

 

남녀불잡좌불동이가불동건즐불친수

수숙불통문제모불수상

외언불입어곤내언불출어곤

 

남자는 당()에 있고 여자는 방()에 있기 때문에 남녀가 함께 앉지 않으며, 옷걸이를 같이 사용하지 않고, 수건과 빗을 같이 쓰지 않고, 직접 주고받지 않는다.

수숙은 서로 안부를 물으려고 오가지 않으며, 서모에게는 신분이 천하여 웃옷을 빨게 하지만 아래옷을 빨게 하지 않는다.

남자는 문지방 안에 있는 여자들의 일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문지방 밖에 있는 남자들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

 

女子許嫁非有大故不入其門

女子子已嫁而反兄弟弗與同席而坐弗與同器而食

父子不同席

男女非有行媒不相知名非受幣不交不親

故日月以告君齊戒以告鬼神為酒食以召鄉黨僚友以厚其別也

取妻不取同姓故買妾不知其姓則卜之

寡婦之子非有見焉弗與為友

 

여자가 정혼한 뒤에는 머리에 끈을 묵고 특별히 재난이나 큰 병이 아니면 그 집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고모, 자매, 딸이 시집간 뒤에 집에 돌아왔을 때 형제들은 이들과 함께 앉지 않으며 함께 밥그릇을 놓고 먹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존비가 다르므로 함께 나란히 앉지 않는다.

남녀는 중매가 오가지 않았으면 상대방의 이름을 알려고 하지 않으며, 폐백을 받기 전에는 서로 교제하지 않고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그래서 혼인 날짜를 중매는 관가에 알리고, 재계하여 사당에서 조상신에게 아뢰고,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동네 사람과 친구들을 부르는 것은 남녀의 구별을 나타내는 도덕윤리를 두텁게 하려는 까닭이다.

아내를 얻을 때 같은 동성에서 찾지 않는다. 그러므로 첩을 사들일 때 성을 알지 못하면 점을 쳐서 가부를 결정한다.

과부의 아들이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지 않으면 벗으로 삼지 않는다.

 

25. 賀取妻者曰某子使某聞子有客使某羞

貧者不以貨財為禮老者不以筋力為禮

 

하취처자왈모자사모문자유객사모수

빈자불이화재위례로자불이근력위례

 

혼인을 축하하려는 사람이 갈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을 시켜 보내는데 대신 축하하러간 사람은 누가 저를 시켰으며 그대의 혼인 잔치를 듣고 저에게 대신 가서 예물을 올려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예물로 보내온 재물의 많고 적음을 예로 요구하지 않고, 늙은이에게는 일어나거나 꿇어앉아 절하는 근력을 예로 요구하지 않는다.

 

26. 名子者不以國不以日月不以隱疾不以山川

男女異長男子二十冠而字父前子名君前臣名

女子許嫁笄而字

 

명자자불이국불이일월불이은질불이산천

남녀이장남자이십관이자부전자명군전신명

녀자허가계이자

 

아이의 이름은 자기 나라의 국명이나 십간십이지 또는 숨겨진 병명 또는 산천으로 이름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이름들은 상용하므로 죽은 뒤에 피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들과 딸은 따로 장유의 순서를 매기며, 남자는 20세에 관례를 치루고 자()를 짓는다. 아버지 앞에서는 이름을 부르고 임금 앞에서는 신하의 이름을 부른다.

여자는 정혼한 뒤부터 성인(成人)이 되므로 비녀를 꽂고 자()를 짓는다.

 

27. 凡進食之禮左殽右胾食居人之左羹居人之右膾炙處外醯醬處內蔥渿處末酒漿處右以脯修置者左朐右末

 

범진식지례좌효우자식거인지좌갱거인지우회자처외혜장처내총내처말주장처우이포수치자좌구우말

 

일반적으로 음식을 상에 올려 배열하는 예는 왼쪽에 익혔지만 뼈를 발리지 않은 고기(, ), 오른쪽에는 뼈를 발린 고기(, )를 놓는다. 밥은 사람의 왼손 가까이 놓고 국은 사람의 오른손 가까이 놓는다. 얇게 저민 고기와 구은 고기는 효자 밖에 놓고 식초와 간장은 효자 안쪽에 사람 가까이 놓는다. 찐 파는 식초와 간장의 왼쪽에 놓고 술과 마실 것은 오른쪽에 놓는다. 말린 육포(생강과 계피로 양념한 육포는 수()이고 소금에 절여 말린 육포는 포()이다.)는 모양이 굽은 것은 왼쪽에 놓고 곧은 것은 오른쪽에 놓는다.

 

客若降等執食興辭主人興辭於客然後客坐

主人延客祭祭食祭所先進殽之序遍祭之

三飯主人延客食胾然後辯殽主人未辯客不虛口

 

객약강등집식흥사주인흥사어객연후객좌

주인연객제제식제소선진효지서편제지

삼반주인연객식자연후변효주인미변객불허구

 

손님의 지위와 연령이 낮은 경우에는 밥을 받으면 일어나서 사양하고 이때 주인이 일어나서 손님에게 사양한 뒤에 손님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음식을 먹기 전에 주인이 손님을 인도하여 음식을 조금 떼어서 그릇 사이의 땅에 놓아 옛날에 처음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고맙다는 제를 올리는데, 밥을 떼어서 제를 올리는 순서는 주인이 먼저 올린 음식부터 제를 지내고 고기도 차례대로 모두 제를 올린다.

먼저 밥을 세 번 먹은 뒤에 주인이 손님을 인도하여 크게 자른 고기를 먹고 그 뒤에는 반찬을 골고루 먹는다. 주인이 다 먹지 않았을 경우 손님은 다 먹었는 뜻으로 술이나 물을 마셔서 입을 가시지 않는다.

 

侍食於長者主人親饋則拜而食主人不親饋則不拜而食

共食不飽共飯不澤手

毋摶飯毋放飯毋流歠毋吒食毋嚙骨毋反魚肉毋投與狗骨毋固獲毋揚飯

 

시식어장자주인친궤칙배이식주인불친궤칙불배이식

공식불포공반불택수

무단반무방반무류철무타식무교골무반어육무투여구골무고획무양반

 

어른과 함께 식사할 때 주인이 몸소 음식을 놓아주면 절하고 먹고 주인이 몸소 음식을 놓아주지 않으면 절하지 않고 먹는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음식을 먹을 경우 혼자 배부르게 먹으려고 들지 않는다. 밥을 함께 먹을 경우에는 밥을 뭉쳐야하므로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밥을 뭉쳐서 덩어리로 만들지 말고, 더 뜬 밥을 그릇에 다시 담지 말고, 입에 가득 물어서 침이 흐르도록 먹지 말고, 쩝쩝 소리를 내며 먹지 말고, 뼈를 우두득 씹지 말고, 먹던 생선을 그릇에 다시 담지 말고, 먹고난 뼈다귀를 개에게 던져주지 말고, 맛있는 음식을 반드시 먹겠다고 덤비지 말고, 더운 밥을 빨리 식혀 먹으려고 헤젖지 말아야한다.

 

飯黍毋以箸毋嚃羹毋絮羹毋刺齒毋歠醢

客絮羹主人辭不能亨客歠醢主人辭以窶

濡肉齒決幹肉不齒決毋嘬炙

卒食客自前跪徹飯齊以授相者主人興辭於客然後客坐

 

기장밥을 젓가락으로 먹지 말고, 국에 있는 나물을 씹어먹어야하며 마시지 말고, 주인 앞에서 국에 간을 맞추지 말고, 이빨을 쑤시지 말고, 젖국을 마시지 말아야한다.

손님이 국에 간을 맞추면 주인은 요리를 잘못하였다고 사과한다. 손님이 젖국을 마시면 주인은 가난하여 맛있게 만들지 못하였다고 사과한다.

젖어 물렁한 고기는 이빨로 씹어서 자르고, 마르고 딱딱한 고기는 이빨로 자르지 말고 손으로 잘라야하며, 구운 고기는 큰 덩어리를 한입에 넣지 말아야한다.

식사를 마쳤으면 손님은 앞으로 다가가서 꿇어앉아 밥그릇과 반찬 그릇을 모두 거두어 돕는 사람에게 건네준다. 주인이 일어나서 손님에게 사양한 뒤에야 손님은 자리에 앉는다.

 

侍飲於長者酒進則起拜受於尊所長者辭少者反席而飲

長者舉未釂少者不敢飲長者賜少者賤者不敢辭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실 경우 어른이 술을 주려고하면 얼른 일어나서 술병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절하고 받는다. 어른이 이런 행동을 말리면 젊은 사람은 자리로 돌아와서 마신다.

어른이 술잔을 들고 다 마시지 않았으면 젊은 사람은 감히 마실 수 없다. 어른이 술을 내려주면 젊은이와 천한 사람은 사양하지 말고 마셔야한다.

 

賜果於君前其有核者懷其核

禦食於君君賜餘器之溉者不寫其餘皆寫

 

임금 앞에서 과일을 받았을 경우 먹은 뒤에 씨를 품안에 간직하고 땅바닥에 버리지 않는다.

임금을 모시고 식사할 경우 임금께서 남은 음식을 내려주면 임금의 그릇을 더럽힐 수 없으므로 씻을 수 있는 그릇은 다른 그릇에 옮겨담지 않고 씻을 수 없는 그릇이면 모두 다른 그릇에 옮겨담아서 먹는다.

 

餕餘不祭父不祭子夫不祭妻

 

먹다남은 음식으로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가 높더라도 남긴 음식으로는 아들 제사를 지내지 않고, 남편이 높더라도 남긴으로는 아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禦同於長者雖貳不辭偶坐不辭

羹之有菜者用梜其無菜者不用梜

 

어른을 모시고 식사할 경우 비록 성찬이라도 어른을 위하여 차린 것이므로 사양하지 않으며, 손님 접대하는 자리에 앉았을 경우에도 손님을 위하여 차린 것이므로 사양하지 않는다.

국에 나물이 있으면 젓가락을 쓰고 나물이 없으면 젓가락을 쓰지 않고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為天子削瓜者副之巾以絺為國君者華之巾以綌為大夫累之士疐之庶人齕之

 

천자를 위하여 참외를 깍는 경우 껍질을 깍은 뒤에 넷쪽으로 자르고 다시 가로로 잘라서 고운 갈포로 덮어서 올린다. 국군을 위해서는 반으로 자르고 다시 가로로 잘라서 거친 갈포로 덮어서 올린다. 대부를 위해서는 국군 경우처럼 껍질을 깍고 자르되 덮지 않고 올린다. ()는 직접 껍질을 깍고 꼭지를 잘라낸 뒤 씹어먹고, 서인은 직접 껍질을 깍은 뒤에 씹어먹는다.

 

28. 父母有疾冠者不櫛行不翔言不惰琴瑟不禦食肉不至變味飲酒不至變貌笑不至矧怒不至詈疾止復故

有憂者側席而坐有喪者專席而坐

 

부모님께서 병들면 성인이 된 아들은 머리를 빗지 않고, 걷는 것도 날 듯이 걷지 않고, 우스겟소리를 하지 않고, 거문고와 비파를 타지 않고, 고기를 먹어도 많이 먹지 않고 술을 마셔도 얼굴이 빨갛토록 많이 마시지 않고, 웃어도 잇몸이 드러나도록 웃지 않고 화를 내도 남을 소리쳐서 꾸짖지 않는다. 병이 다 나으면 평상생활로 돌어간다.

부모님이 아프면 자식들은 1인용 자리에 앉아 손님을 맞고 싶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고,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안된 자식들은 두 겹을 깐 자리에 앉지 않는다.

 

29. 水潦降不獻魚鱉

獻鳥者佛其首畜鳥者則勿佛也

獻車馬者執策綏獻甲者執胄

獻杖者執末獻民虜者操右袂

獻粟者執右契獻米者操量鼓

獻孰食者操醬齊()獻田宅者操書致

 

빗물이 많이 내려서 쉽게 잡을 수 있으면 백성들은 물고기와 자라가 흔하므로 높은 사람에게 바치지 않는다.(납세하지 않는다.)

야생의 새들 잡아서 바칠 때는 쪼일 위험이 있으므로 새 머리를 비틀어서 바치고, 사육한 새를 바칠 때는 머리를 비틀지 않고 바친다.

수레와 말을 바칠 때는 직접 바치는 것이 아니고 작고 가벼운 말채찍과 수레고삐를 바치는 것으로 대신한다.

갑옷을 바칠 때는 작고 가벼운 투구를 바치는 것으로 대신한다.

지팡이를 바칠 때는 지팡이 끝이 더러우니까 끝을 쥐고 바친다.

정벌에서 잡아온 포로를 바칠 때는 도망가지 못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오른 소매를 잡아서 바친다.

좁쌀을 바칠 때는 먼저 쓴 문서의 오른쪽을 바치고 도정한 쌀을 바칠 때는 됫박을 바친다. 왜냐하면 좁쌀은 남겨두고 먹을 수 있으므로 급하지 않아 좁쌀로 바꿀 수 있는 문서의 중요한 오른쪽 쪽지를 바치고, 쌀은 곧 먹어야하므로 쌀을 되질할 수 있도록 됫박을 바친다고 한다.

익은 음식을 바칠 때는 간장과 절인 채소를 함께 바친다.

경작지와 집을 바칠 때는 자세하게 작성한 문서를 바친다.

 

凡遺人弓者張弓尚筋弛弓尚角右手執簫左手承弣

尊卑垂帨若主人拜則客還辟辟拜主人自受由客之左接下承弣鄉與客並然後受

 

일반적으로 남에게 활을 줄 때 메운 활은 줄이 위로 가도록 하고, 풀어진 활은 활등이 위로 가게 하여, 오른손으로 활 끝을 쥐고 왼손으로 활 가운데를 바쳐서 준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신분이 모두 대부이면 존()이고 모두 사()이면 비()인데, 두 사람의 신분이 같으면 서로 허리에 묶은 끈이 내려오도록 허리를 굽혀 절한다.

물건을 주고 받을 때 받는 사람이 받기 전에 먼저 주는 사람에게 절을 하는데, 받는 주인이 절을 하면 주는 손님은 조금 비켜서는데 주인이 절을 할 수 있도록 조금 비켜서는 것이다. 주인이 직접 받을 경우에는 손님의 왼쪽에서 한 손으로 활의 아래를 잡고 다른 손으로 활줄을 바쳐서 받되 손님과 나란히 남쪽을 향한 뒤에 받는다.

 

進劍者左首進戈者前其鐏後其刃

進矛戟者前其鐓進几杖者拂之

效馬效羊者右牽之效犬者左牽之執禽者左首飾羔鴈者以繢

受珠玉者以掬受弓劍者以袂飲玉爵者弗揮

凡以弓劍苞苴簞笥問人者操以受命如使之容

 

양쪽에 날이 달린 검을 드릴 때는 손잡이가 왼쪽으로 하여 드리고, 창을 드릴 때는 손잡이가 손님의 앞쪽으로 창날이 뒤쪽으로 가도록 하여 드린다.

창자루가 긴 모() 또는 창끝이 둘인 극()을 드릴 때는 손잡이 끝에 붙인 쇠장식을 손님의 앞쪽으로 하여 드린다.(어쨌거나 칼날이 주는 사람쪽이고 손잡이가 받는 사람쪽으로 하여 준다.)

앉는 자리(, ) 또는 지팡이를 드릴 때는 먼지를 깨끗하게 털어서 드린다.

말과 양을 바치는 경우에는 목줄을 오른손으로 잡는 것이 편하므로 오른손으로 잡고 드리고, 개를 드릴 경우에는 목줄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개가 무는 것을 방지하면서 드리고, 날개있는 새를 드릴 경우에는 손님이 왼쪽에 있기 때문에 잡기 좋도록 새의 목이 왼쪽으로 가도록 잡고 드린다.

어린 양새끼와 오리를 드릴 경우에는 색실로 수놓은 천으로 덮어서 드린다.

주옥을 받을 경우에는 두 손으로 꼭잡고 받는다.

활이나 칼을 받을 경우에는 손이 보이지 않도록 소매로 손을 가리고 받는다.

옥잔으로 술을 마실 경우 술잔에 남은 것을 쏟으려고 술잔을 흔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화살과 칼, 물고기와 고기를 싼 보자기, 밥과 음식을 담은 그릇을 받아 남에게 갖다주려는 심부름꾼은 조심스럽게 명령을 받을 때, 마치 임금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사신가는 모습처럼 조심하여 받는다.

 

凡為君使者已受命君言不宿於家

君言至則主人出拜君言之辱使者歸則必拜送於門外

若使人於君所則必朝服而命之使者反則必下堂而受命

 

일반적으로 임금의 사신이 된 사람은 명령을 받았으면 곧바로 길을 떠나야지 자기 집에 가서 잠을 잔 뒤에 떠나서는 안된다.

임금의 명령을 받는 집에 사신이 도착하면 주인은 밖으로 나와서 절하고 임금께서 사신을 시켜서 명령을 전하는 노고에 절하고 받으며, 사신이 돌아갈 때는 반드시 문밖까지 나와서 절하여 보낸다.

신하가 만약에 임금 있는 곳으로 사신을 보낼 경우에는 반드시 관복을 입고 사신에게 명령해야하며, 사신이 돌아오면 반드시 당() 아래로 내려와서 임금의 명령을 받는다.

 

30. 博聞強識而讓敦善行而不怠謂之君子

君子不盡人之歡不竭人之忠以全交也

 

널리 배우고 억지로 기억하되 겸양하고, 선행을 돈독하게 하되 게으르지 않아야 군자라고 이를 수 있다.

군자는 남이 나를 끝까지 즐겁게 해주도록 요구하지 않고, 남이 나를 끝까지 떠받들어주도록 요구하지 않아야만, 서로의 사귐을 온전히 할 수 있다.

 

禮曰君子抱孫不抱子此言孫可以為王父尸子不可以為父尸

為君尸者大夫士見之則下之君知所以為尸者則自下之

尸必式乘必以几

()者不樂不吊

 

옛날 예경에 말하길 군자는 손자를 안아주고 아들은 안지 않는다.”하였다. 이 말은 손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위하여 시동이 될 수 있으나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하여 시동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종묘에서 제사지내는 날에 임금의 시동의 된 사람을 만나면 대부와 사()는 수레에서 내려서 경의를 나타낸다. 임금일지라도 제사를 마친 날에는 시동이 되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 수레에서 내려서 경의를 나타낸다.

시동이 되었던 사람은 경의를 나타내는 사람에게 수레에서 내리지 않고 수레에서 안전손잡이 나무를 짚고 머리를 숙여 답례하고, 수레를 탈 때는 반드시 자리에 앉는다.

재계를 해야하는 사람은 정명(精明)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마음을 풀어주는 음악을 듣지 않으며, 마음을 슬프게 움직이는 다른 사람의 조문을 가지 않는다.

 

31. 居喪之禮毀瘠不形視聽不衰升降不由阼階出入不當門隧

 

상중에 지켜야할 예절에는 슬퍼서 수척하게 마르더라도 뼈가 드러나도록 해서는 안되고 시력과 청력이 쇠퇴하도록 해서는 안되고 당()에 오르내릴 때에는 돌아가신 분이 오르내리던 동쪽 계단으로 다니지 않고, 문밖을 나다니더라도 가운데 문으로 다니지 않는다.(삼년상을 마치고 신주를 사당에 모신 부제(祔祭) 이후에는 평상시처럼 다닌다.)

 

居喪之禮頭有創則沐身有瘍則浴有疾則飲酒食肉疾止復初

不勝喪乃比於不慈不孝

五十不致毀六十不毀七十唯衰麻在身飲酒食肉處於內

生與來日死與往日

知生者吊知死者傷知生而不知死吊而不傷知死而不知生傷而不吊

 

상중에 지켜야할 예절에는 머리에 부스럼이 났으면 머리를 감고, 몸에 종기가 났으면 몸을 씻으며, 병이 났으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지만 병이 나으면 처음 행동으로 돌아간다.

상례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자손에게 따듯하지 못하고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하는 만큼이나 큰 잘못이다.

50살이 넘어서는 몸을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하며, 60살이 넘어서는 몸을 훼손하지 않으며, 70살이 넘어서는 몸에 최마복을 입는 것에 그치고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으면서 방안에서 지낸다.

성복(成服)과 장() 등은 살아있는 사람의 일이므로 돌아가신 이튿날부터 계산하며, 염빈(殮殯)과 매장은 돌아가신 분의 일이므로 당일부터 3일을 계산한다.

살아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조문을 가고 돌아가신 분을 아는 사람은 슬퍼한다. 살아있는 사람을 알되 돌아가신 분을 알지 못하면 조문하되 슬퍼하지 않고, 돌아가신 분을 알되 살아있는 사람을 알지 못하면 슬퍼하되 조문하지 않는다.

 

吊喪弗能賻不問其所費

問疾弗能遺不問其所欲

見人弗能館不問其所舍

賜人者不曰來取與人者不問其所欲

 

남의 상례에 조문할 때 부의를 낼 수 없으면 장례비용을 묻지 않고,

남의 병을 위문갈 때 위문품을 줄 수 없으면 병자가 하고싶은 것을 묻지 않는다.

행인을 만나서 내 집에 재워줄 수 없으면 어디에서 묵는지를 묻지 않는다.

남에게 물품을 내려줄 때는 와서 가져가라.”고 이르지 않고, 남에게 물품을 줄 때는 이 물품을 바라는 것인지 아닌지를 묻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서로 은정(恩情)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32. 適墓不登壟助葬必執紼

臨喪不笑揖人必違其位

望柩不歌入臨不翔當食不嘆

鄰有喪舂不相里有殯不巷歌

適墓不歌哭日不歌

送喪不由徑送葬不辟塗潦

臨喪則必有哀色執紼不笑臨樂不嘆

介胄則有不可犯之色

故君子戒慎不失色於人

 

묘지에 가서 봉분에 올라가지 않으며 장례를 도우려면 반드시 상여의 줄을 잡는다.

상례에 가서는 웃지 않고 남에게 읍()할 때는 반드시 자리를 비켜선다.

영구를 바라보며 노래하지 않고, 상례에 가서 두 팔을 휘저으면서 걷지 않고, 음식을 앞에 놓고 탄식하지 않는다.

다섯 집의 이웃 가운데 상사가 있으면 방아를 찧으면서 장단을 맞추어 돕는 짓을 하지 않는다.

스물다섯 집의 마을 가운데 빈소가 있으면 길거리에서 노래하지 않는다.

묘지에 가서 노래하지 않고, 우는 날에는 노래하지 않는다.

상여가 나갈 때는 샛길로 가지 않고, 상여가 나갈 때는 물이 고인 길이나 진흙길을 피하지 않는다.

상례에 가서는 반드시 슬픈 안색을 하고, 상여 줄을 잡았으면 웃지 않고, 슬픈 음악이 나오더라도 탄식하지 않고,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으면 감히 법접할 수 없는 안색을 해야한다.

그래서 군자는 계신(戒愼)하여 남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한다.

 

國君撫式大夫下之大夫撫式士下之

禮不下庶人刑不上大夫刑人不在君側

 

국군(國君)이 수레 위에서 안전손잡이를 잡고 머리 숙여 인사하면 대부는 수레에서 내려서 답례하고, 대부가 수레 위에서 안전손잡이를 잡고 머리 숙여 인사하면 사()는 수레에서 내려서 답례해야한다.

()는 사()까지 미치고 서인까지는 미치는 것이 아니고, 오형(五刑)、大辟)은 서인에서 사()까지 집행하되 대부 이상은 올라가서 집행하지 않는다.(달리 번역하면 예는 서인을 배제하지 않고 형은 대부를 우대하지 않는다.”)

 

*(신분을 나누어 예와 형이 미친다는 해석은 上下及上及下라고 본 것이다. 이런 해석에 따라 정현과 공영달은 서민은 살림살이가 여유 없어서 예물을 준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민의 예를 제작하지 않았고, 대부는 어진 賢者이므로 법을 어기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하여 대부의 형벌을 제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가 범법하였다면 서민의 刑書에 따르지 않고 따로 八議에 따라 형벌을 결정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다른 해석은 上下尊卑라고 보아 예는 서민을 배제하지 않고 형은 대부를 우대하지 않는다.”라고 예와 형의 평등한 집행을 강조하여 번역한다. 둘 가운데 어떤 것이 옳은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을 받은 사람은 원한이 많아 해칠 수 있으므로 임금 곁에 두지 않는다.

 

33. 兵車不式武車綏旌德車結旌

 

병거는 위무(威武)를 숭상하고 경()을 숭상하지 않으므로 병거 위에서는 안전손잡이를 잡고 머리 숙여 인사하지 않고, 무거는 잘 꾸민 깃발을 활짝 펼치고, 특히 천자의 다섯 수레 가운데 혁거(革車)인 병거를 제외하고 네 종류 수레(玉車金車象車木車)의 덕거(德車)는 깃발을 말아서 깃대에 감는다.

 

34. 史載筆士載言

前有水則載青旌前有塵埃則載鳴鳶前有車騎則載飛鴻前有士師則載虎皮前有摯獸則載貔貅

前朱鳥而後玄武左青龍而右白虎招搖在上急繕其怒進退有度左右有局各司其局

 

국군(國君)이 회동(會同, 회는 회맹이고 동은 제후들이 함께 천자를 알현하는 것)하러 갈 때 수행하는 사신(史臣)의 수레에는 기록할 도구를 싣고 회동을 담당한 사()의 수레에는 회맹에 필요한 문서를 싣고 간다.

국군을 수행하는 군대(일례로 국군은 2,500명의 , 500명의 가 경비한다.)는 선도 수레에 깃발을 꽂아서 뒤 따라오는 군인들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데, 앞길에 물이 있으면 물새를 그린 청작(靑雀) 깃발을 걸고, 앞길에 흙먼지가 일어나면 바람이 일어난다는 뜻을 가진 입 벌린 솔개를 그린 깃발을 달고, 앞길에 정열한 전거(戰車)들이 있으면 줄을 지어 나는 큰 기러기를 그린 깃밧을 달고, 앞길에 군대가 있으면 호랑이 껍질을 그린 깃발을 달고, 앞길에 맹수가 나타나면 가장 사납게 공격적인 짐승 비휴(豼貅)를 그린 깃발을 달아 뒷 사람들을 경고한다.

출정하는 군대의 행진은 하늘을 본받아서 앞에는 주작 깃발, 뒤에는 현무 깃발, 왼쪽에는 청룡 깃발, 오른쪽에는 백호 깃발을 걸고 모두 하늘 사방의 별자리 가운데 각기 중앙에 있는 별자리를 나타낸다. 중요한 것은 북두칠성 가운데 제7성을 나타내는 초요 깃발은 하늘을 지배하는 천제(天帝)를 뜻하며 행진의 중군(中軍)에 높이 걸어서 행군을 지휘하는데, 군대의 분노하는 사기가 팽팽하게 굳세도록 지휘한다. 따라서 군대가 전진할 때 한번 치고 한번 자르는 것(一擊一刺)이 벌()인데 6-7 걸음을 전진한 뒤에는 정렬하고 또 적과 마주쳐서는 4-5 걸음을 전진한 뒤에는 정렬하는데 이렇게 전진하고 정렬하는 것을 진퇴의 법도가 있다고 한다. 또한 전후좌우와 중군에는 각기 좌우 부분으로 나누고 담당자가 지휘한다.

 

35. 父之讎弗與共戴天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늘과 마찬가지이므로 아들의 하늘을 살해한 원수에게 복수해야하며 하늘을 함께 머리 위에 이는 것은 효자가 아니다.

 

兄弟之讎不反兵

친형제(자매와 삼촌 포함)의 원수를 복수하기 위하여 항상 무기를 휴대하여야 하며, 만약에 휴대하지 못하여 집에 되돌아가서 무기를 갖고나와 복수하지 않은 만큼 항상 무기를 휴대하여야한다.

 

交遊之讎不同國

 

벗을 죽인 원수와는 같은 나라에서 함께 관원이 되지 않는다. 물론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벗을 위하여 목숨의 위험이 있는 복수를 하지 않으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벗을 위하여 복수한다고 한다.

 

*위와 같은 복수는 영원토록 백세까지라도 복수해야한는 춘추공양전의 주장이 있고 또한 5세까지만 복수한다는 주례의 주장이 있다. 정현과 공영달은 5세 복수를 따르고 있다.

 

36. 四郊多壘此卿大夫之辱也地廣大荒而不治此亦士之辱也

 

옛날에는 왕국의 성() 밖 가까이 50리의 근교(近郊)100리의 원교(遠郊)가 있는데(나라마다 크기가 달라 근교와 원교의 거리 범위도 다를 수 있다.) 여기에 군대가 주둔하는 방어시설이 많은 것은 외국의 침략을 자주 받는다는 뜻이므로 경대부의 통치 잘못이다. 또한 이런 지역이 넓고 내버려두고 경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경대부의 통치가 잘못되어 인구가 적다는 뜻이며 또한 직접 직무를 담당한 사()의 잘못도 된다는 뜻이다.

 

37. 臨祭不惰

 

제사를 지낼 때는 마음을 경()하여야 하며 태만하여서는 안된다. 정현은 제사가 태만하면 귀신이 歆享하지 않기 때문에 귀신이 없다(無神)고 하였다.

 

祭服敝則焚之祭器敝則埋之

龜莢敝則埋之牲死則埋之

 

제복이 헤어지면 불에 태우고, 제기가 낡았으면 귀신이 사용할 수도 있고 또한 사람이 폐기된 제기를 다시 사용하여 귀신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땅에 묻는다.

제사 지낼 때 점쳤던 거북 등껍질과 시초는 땅에 묻고, 제사 지낸 희생이 죽으면 땅에 묻는다.

 

凡祭於公者必自徹其俎

 

군왕이 종묘에서 제사 지낼 때 대부와 사()가 제사를 돕는데, 제사를 마친 뒤에 제기에 담았던 고기를 대부에게는 사람을 시켜서 집으로 보내고, ()는 직접 고기를 집으로 가져간다. ()가 직접 가져가는 것은 군왕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38. 卒哭乃諱

禮不諱嫌名二名不偏諱

逮事父母則諱王父母不逮事父母則不諱王父母

君所無私諱大夫之所有公諱詩書不諱臨文不諱廟中不諱

夫人之諱雖質君之前臣不諱也婦諱不出門

大功小功不諱

入竟而問禁入國而問俗入門而問諱

 

졸곡제를 지낸 뒤에는 돌아가신 분의 귀신을 묘()에 모셔서 경()하기 때문에 이름을 말하지 않고 피한다.

 

*(매장한 뒤 우제(虞祭)를 지내고 우제를 지낸 뒤에 모두 마친다는 졸곡제를 지낸다. 졸곡제를 지내기 전에는 슬퍼서 자주 울지만 졸곡제를 지낸 뒤에는 아침 저녁에만 운다. 그래서 졸곡제 이전에는 돌아가신 분을 살아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상제(喪祭)이고 졸곡제 이후에는 돌아가신 분을 귀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길제(吉祭)라고 한다.)

 

()에 따르면 돌아가신 분 이름의 글자를 피하되 같은 발음의 글자는 피하지 않고, 두 글자 이름이라도 한 글자만 휘하지 않고 모두 피한다.

(또는 두 글자 가운데 한 글자만 피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는 이름이 두 개인 경우에도 이름 하나를 피하거나 모두 피한다.)

서민은 어려서 부모님 모두 돌아가셔서 고아가 되었으면 부모님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을 피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살아계셔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름을 피하는 것을 들었다면 당연히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름을 피한다. 또한 사()는 돌아가신 조부모와 부모의 사당이 있으므로 사() 이상의 신분은 어려서 고아가 되었더라도 당연히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름을 피한다.)

국군 앞에서는 신하가 자기 조상의 이름을 피하는 가휘(家諱)를 하지 않고, 대부 앞에서는 국군의 이름을 피하고, 등 경전을 읽으면서는 이름의 글자를 피하지 않고, 문장을 지으면서는 이름의 글자를 피하지 않고, 종묘에서 제사 지낼 때 제문이나 축문에서 할아버지를 제사 지내면 아버지 이름을 피하지 않고 아버지를 제사 지내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름을 피하며, 고조 할아버지를 제사 지내면 증조 이하의 이름을 피하지 않는다.

국군 부인의 조상 이름을 피하는 가휘(家諱)는 비록 신하가 국군과 대화하는 경우에도 피하지 않는데 국군 부인의 가휘는 부인의 집안(婦宮門)에서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오등급 상복(喪服斬衰齊衰大功小功緦麻) 가운데 대공 이하의 친속은 이름을 피하지 않고 그 이상의 친속은 이름을 피한다.

다른 지방에 들어가면 그 국가의 금기사항을 물어서 법을 어기지 않아야하며, 다른 성() 안에 들어가면 유행하는 풍속을 묻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주인이 손님을 대문 밖에서 맞이하여 대문에 들어설 때 손님은 주인의 조상과 군주의 피휘를 물은 뒤에 대문에 들어간다. 이것은 주인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39. 外事以剛日內事以柔日

凡卜筮日旬之外曰遠某日旬之內曰近某日

喪事先遠日吉事先近日為日假爾泰龜有常假爾泰筮有常

卜筮不過三卜筮不相襲

龜為卜筴為筮卜筮者先聖王之所以使民信時日敬鬼神畏法令也所以使民決嫌疑定猶與也故曰疑而筮之則弗非也日而行事則必踐之

 

성문 밖의 교외(郊外)에서 제사 지내는 신()은 외신(外神)이라고 하여 열흘 가운데 홀수일(甲丙戊庚壬五日)에 제사 지내고, 종묘에서 제사 지내는 신은 내신(內神)이라고 하여 열흘 가운데 짝수일(乙丁己辛癸五日)에 제사 지낸다. 물론 사직(社稷)은 교내(郊內)에 있으므로 짝수일에 제사 지낸다.

일반적으로 거북 등껍데기와 시초로 점을 쳐서 택일할 경우에 열흘 이후의 어떤 날을 먼 어느 날이라고 하고 열흘 이내의 어떤 알을 가까운 어느 날이라고 부른다.

상장(喪葬)과 연상(練祥)의 날짜는 자손으로서 얼른 치루고 싶지 않기 때문에 먼 어느 날을 먼저 고르고, 천신지지(天神地祗)에 제사 지낼 날짜와 관례(冠禮)와 혼례(婚禮)와 같은 길상한 제사 날짜는 가까운 어느 날을 잡는다. 거북 등껍데기로 날짜를 점칠 때는 점복을 치는 사람이 좋은 날을 가리기 위하여 너희 귀하신 거북이가 알려주는 길흉이 영험하다는 것을 빌립니다.”라고 이르고, 시초로 날짜를 점칠 때도 좋은 날을 가리기 위하여 너희 귀하신 시초가 알려주는 길흉이 항상 영험하다는 것을 빌립니다.”라고 이르고 점복을 친다.

거북 등껍데기와 시초로 점복을 칠 때 세 번 불길하다고 나오면 점복을 그치며 더 이상 점복을 치지 않는다. 또한 거북 등껍데기로 복()을 쳐서 불길하다고 하여 다시 시초로 바꾸어 점을 치거나 또는 시초로 점을 치다가 다시 거북 등껍데기로 바꾸어 복을 치지 않는다.

거북 등껍데기로 길흉을 판정하는 것이 복()이고 시초로 길흉을 판정하는 것이 서()이다. 복서는 옛날 성왕께서 백성들이 시일(時日)을 믿도록 하고 귀신을 공경하도록 하고 법령을 두려워하도록 만든 근거이며, 따라서 이 근거에 따라 백성들이 이것인가 저것인가를 의심하는 것을 결판토록 하고 이럴까 저럴까 머뭇거리는 것을 판정토록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이 되어 점복을 쳐서 길일을 가렸으면 더 이상 아니라고 의심하지 않으며, 길일이 와서 제사를 지내면 반드시 좋다.”라는 말이 전해온다.

 

40. 君車將駕則僕執策立於馬前已駕僕展軨效駕奮衣由右上取貳綏跪乘執策分轡驅之五步而立君出就車則僕並轡授綏左右攘辟車驅而騶至於大門君撫僕之手而顧命車右就車門閭溝渠必步

 

국군의 마차에 멍에를 메려고 하면 마부는 채찍을 쥐고 말이 놀라지 않도록 말 앞에 선다. 멍에를 메었으면 마부는 두 바퀴의 축을 감싼 할두(轄頭)를 살펴본 뒤 안에 들어가서 멍에를 메웠다고 보고하고 밖으로 나와서 마차 뒤에서 옷의 먼지를 털고 오른쪽에서 올라가서 둘째 손잡이를 잡고 올라가서 꿇어앉아 채찍을 잡고 말고비를 둘로 나눠쥐고 5보 정도 마차를 몰아 세우고 일어서서 국군을 기다린다. 국군이 밖으로 나와서 마차에 올라타려고 하면 마부는 말고비를 오른손에 몰아쥐고 왼손으로 첫째 손잡이를 건네드려서 올라타도록 한다. 국군이 마차에 올라앉으면 여러 신하들은 좌우로 비켜선다. 마차가 출발하면 국군을 호위하는 용사(勇士)는 마차 뒤를 따라 달려간다. 마차가 대문에 이르면 국군이 마부의 고비를 잡은 손등을 가볍게 눌러 마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고 용사에게 마차를 타라고 이른다. 마부가 가운데 타고 국군이 왼쪽에 타고 용사가 오른쪽에 탄다. 호위하는 용사는 마차가 성문이나 마을문(里門) 또는 배수로에 이르면 반드시 내려서 국군이 사람들에게 인사하기 편하도록 하며 또한 마차가 넘어지거나 엎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걸어간다.

 

*고비를 나눠쥐는 방법은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이면 가운데 두 마리가 복마(服馬)이고 바같 좌우 두 마리가 곁마(驂馬)이며 고비가 모두 8개인데 곁마의 안쪽 고비는 마차 앞턱의 나무()에 묶으므로 모두 고비 6개를 한 손에 쥐었다가 좌우로 3개씩 나누어 두 손에 쥔다. 그런데 동한시기 경학자들부터 천자 마차의 끄는 말이 6필이냐 4필이냐 논쟁이 오래 되었으나 최근 2002년 낙양에서 6필이 끄는 마차가 발굴되어 소위 천자육가(天子六駕)가 확인되었다.

 

凡僕人之禮必授人綏

若僕者降等則受不然則否

若僕者降等則撫僕之手不然則自下拘之

 

일반적으로 모든 마부의 예절에는 반드시 타는 사람에게 손잡이를 건네주어야한다.

마부의 신분이 승차자보다 낮을 경우 예를 들어 사()가 대부의 마차를 몰거나 대부가 경()의 마차를 몰 경우에는 승차자는 마부가 손잡이를 건네줄 때 손잡이를 그냥 받아잡고 마차에 오르고, 신분이 서로 같은 경우에는 사양하고 받지 않고 마차에 오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부의 신분이 낮을 경우 승차자는 마부가 손잡이를 건네주는 손등을 가볍게 눌러 고맙다고 나타낸다. 그러나 신분이 서로 같은 때에는 승차자는 마부가 건네주는 손잡이를 사양하면서도 마부의 손 아래로 손을 내밀어 받아잡고 마차에 오른다.

 

客車不入大門婦人不立乘犬馬不上於堂

故君子式黃發下卿位入國不馳入里必式

 

손님의 마차는 주인집의 대문 밖의 서쪽에 세우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부인은 안거(安車)를 타기 때문에 서서 타고가지 않는다.

개와 말은 예물로는 천하기 때문에 손님과 주인이 당() 위에서 예물을 주고받을 때 끌고 올라가지 않고 개의 목줄이나 말의 재갈을 준다. 그러나 새끼 양, 거위, 비단, 옥을 예물로 줄 경우에는 갖고 들어간다.

그러므로 국군은 마차를 타고 가다가 머리가 노랗게 쉰 노인을 보면 존경하는 뜻으로 인사를 하고(머리가 처음에는 하얗게 쉬고 더 늙으면 노랗게 쉰다), ()이 성문 안에 들어서면 동북쪽 위치에서 북쪽을 향하여 국군에게 절하는 장소를 국군이 지날 때에는 어진 사람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미리 마차에서 내려서 걸어지나간 뒤에 다시 마차에 올라탄다. 성문 안에 들어가서는 사람들을 다치지 않도록 마차를 달리지 않고, 25 집이 사는 마을의 이문(里門)에 들어가면 마을에 있을 어진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반드시 머리 숙여 인사한다.

 

君命召雖賤人大夫士必自禦之

介者不拜為其拜而蓌拜

祥車曠左乘君之乘車不敢曠左左必式

 

국군이 사신을 시켜서 대부와 사를 부를 경우에 심부름 온 사신의 신분이 아무리 천하더라도 대부와 사는 국군의 명령을 존중하므로 반드시 스스로 나가서 맞이한다.

갑옷을 입은 사람은 절하지 않는다, 절을 하려면 절하는 자세를 망쳐서 군사의 위용을 우습게 만들거나 남을 속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를 때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타던 마차의 왼쪽 자리를 비워서 영혼이 타도록 한다.

국군은 모두 5종류 마차가 있는데 국군이 어느 한 마차에 타면 나머지 마차에는 신하들이 탈 수도 있다. 신하가 국군의 다른 마차에 탈 때는 국군이 앉는 왼쪽자리를 비워두지 않고 탄 뒤에도 감히 우쭐하지 않고 안전손잡이를 잡고 인사를 한다. 왜냐하면 왼쪽자리를 비워두면 상거처럼 국군이 죽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僕禦婦人則進左手後右手

禦國君則進右手後左手而俯

 

마부가 부인이 왼쪽자리에 탄 마차를 몰 때에는 마부가 왼손을 내밀어 말고비를 잡고 오른손을 뒤로 하는데, 마부가 왼손을 내밀고 오른손을 뒤로 하였기 때문에 부인과는 서로 등을 지는 모양이 되어 어떤 의심도 받지 않는다.

마부가 국군이 왼쪽자리에 탄 마차를 몰 때에는 오른손을 내밀어 말고비를 잡고 왼손을 뒤로 하여 서로 마주 향하게 하면서 몸을 수구려 국군을 존경하는 자세가 되도록 한다.

 

國君不乘奇車

車上不廣欬不妄指

立視五巂式視馬尾顧不過轂

國中以策彗恤勿驅塵不出軌

 

국군은 규정에 없는 이상한 마차를 타지 않는다.

마차 위에서는 크게 기침하거나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놀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차 위에서 서서 앞을 바라볼 경우에 멀리 마차바퀴의 5배 거리 곧 16.5(23m) 전방을 바라본다. 마차에서 안전손잡이를 잡고 고개 숙여 인사할 때 시선을 날리지 않도록 묶은 말꼬리까지 쳐다보고 인사하고, 고래를 돌려 되돌아볼 때에는 마차 바퀴()까지만 돌아본다.

성안에서는 채찍을 쓰지 않고 대나무로 만든 빗자루 같은 것으로 말 궁뎅이를 쓰다듬어 말이 달리지 않도록 하며, 먼지가 마차길 밖으로 날리지 않도록 한다.

 

*(마차에서 전방 23m를 바라보는 것을 계산해보면 다음과 같다. 漢代 마차의 바퀴 높이가 66이고 당시 원주율 π=3이므로 바퀴 둘레는 198촌이다. 바퀴둘레가 1이므로 599척이다. 16척이므로 99척은 16.5보이다. 현재 길이로 계산하면 漢代 1척이 현재 23.1cm이므로 99척은 약 23m이다. 대략 23m 전방을 쳐다보면서 마차를 몰았을 것입니다. 또한 당시 마차의 속도는 대략 자전거 속도와 비슷하여 15~20km/h이며 성안에서는 보행 속도와 비슷하여 대략 시속 5km/h이라고 합니다.)

 

國君下齊牛式宗廟(공영달 주소에 따르면 國君下宗朝式齊牛)

大夫士下公門式路馬

乘路馬必朝服載鞭策不敢授綏左必式

步路馬必中道

以足蹙路馬芻有誅齒路馬有誅

 

국군은 종묘에 이르면 마차에서 내리고 제사에 쓸 희생 소를 보면 고개 숙여 절한다.

대부와 사()는 국군의 대문에 이르면 마차에서 내리고 길에서 국군 마차의 말을 마주치면 고개 숙여 절한다.

국군의 마차에 탈 때는 반드시 조복(朝服)을 입어야하며, 채찍을 쥐었지만 채찍질하지 않으며, 함부로 승차용 손잡이를 오른쪽 자리에 앉을 사람에게 주지 않으며, 왼쪽자리에 앉을 경우에도 안전손잡이를 잡고 고개 숙여 인사하여 자만하지 않는다.

국군 마차의 말을 끌고 갈 경우에는 반드시 길 가운데를 걸어간다.

국군 마차의 말에게 먹이는 꼴을 발로 차거나 밟으면 벌책을 받고, 말의 이빨을 보고 나이를 세면 벌책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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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야생의춤 | 작성시간 14.07.16 예절은 남에게서 배워온 것이라고 들었고,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없다.
    예절은 내가 가서 배우는 것이라고 들었고,
    남에게 가서 가르치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없다.

    공자님의 배우면 기쁘지아니한가란 말 생각납니다.
    마음에 닿는 옛사람들의 가르침 명심하여 새겨야겠어요 교수님 !!!
    더운 날 줄곧 펼쳐주시는 열정 많이 배우지못해도 달룽 한개만이라도 실천할 수 있도록 애쓰렵니다. 야생의 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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