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말기 교육환경과 송렴(宋濂, 1310-1381)의 취학 경험담 (「送東陽馬生序」(1378년)
2021년 8월 17일
이 글은 명나라 초기 교육사상을 연구할 때 꼭 인용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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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렴(宋濂, 1310-1381)의 「고향 학생 마군칙을 보내며 써준 글(送東陽馬生序)」(1378년)︰
나는 어렸을 때 배우는 것을 좋아하였단다. 집안이 가난하여 책을 사서 볼 수 없기에 책이 있는 집에서 빌어와서 손으로 베껴 썼고 반환 날짜를 꼭 지켜서 반환하였단다. 날씨가 몹시 추운 겨울에는 벼루 먹물도 딱딱하게 얼고 손가락도 펴지 못할 만큼 굳었으나 게을리 하지 않았단다. 베낀 뒤에는 직접 걸어가서 반환하고 절대로 약속한 날짜를 넘기지 않았단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책을 잘 빌려주었기에 내가 많은 서적을 읽을 수 있었단다. 성인이 된 뒤에는 성현의 학술을 배우고 싶었으나 훌륭한 스승이나 유명한 사람을 찾아가서 배울 수도 없었고 겨우 고향에 계신 백리 밖의 선생님을 찾아가 글공부를 하였단다. 선생님은 실력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학생들이 방안에 가득하게 찾아왔는데 선생님께서는 말씀이나 안색을 조금도 따듯하게 하지 않으셨단다. 나는 의문이 있으면 선생님 곁에 서서 질문하였고 고개를 숙이고 귀를 기울여 들었단다. 때로는 선생님께서 야단치실 때 나는 더욱 공손하고 예절을 다하고 한마디도 대들면서 말씀드리지 않았단다. 선생님께서 화를 푸신 뒤에야 다시 기회를 봐서 질문하였단다. 그래서 내가 어리석지만 그나마 많이 배울 수 있었단다.
내가 선생님을 찾아가 공부할 때는 책가방(篋)을 메고 걸어갔는데 골짜기가 깊은 높은 산에는 한겨울에 바람이 세고 무릎이 빠질 만큼 큰 눈이 내려서 발이 시리고 손등이 떠져도 몰랐단다. 학교에 도착하면 팔다리가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하였는데 여자 종이 따라주는 따듯한 물을 마시고 뱃속을 녹이고 이불로 몸을 둘러싸고 한참 지나서야 몸이 녹았단다. 공부하는 동안에 여관에 묵으면 주인이 하루에 밥 두 끼를 주고 고기 같은 맛있는 음식은 주지 않았단다. 학교 학생들은 모두 비단옷을 입고 장식 달린 멋있는 모자를 쓰고 허리에는 백옥을 차고 왼쪽 허리에는 칼도 차고 오른쪽 허리에는 향낭을 차고 있어서 화려한 모습이 마치 신선 같았단다. 그런데 나는 낡은 옷을 입고 그들과 어울렸으나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았단다. 나는 잘 배워서 마음이 기뻤기에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입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단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힘들었으나 지금 70살이나 되지만 학문을 이루지 못하였단다. 그래도 나처럼 재능이 뛰어나지 않으나 다행히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황제의 은총을 받아 높은 관원이 되어 황제의 고문을 맡고 있었기에 세상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른단다. 나보다 재능이 뛰어나고 더욱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은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단다.
현재 학생들은 태학에서 공부하고 국가에서 날마다 학비를 대주고 부모님께서 해마다 겨울옷과 여름옷을 보내주셔서 춥고 배고픈 걱정이 없다. 크고 넓은 건물에 앉아서 경전을 읽고 있으며 나처럼 여기저기 선생님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태학에는 교수님들이 계셔서 궁금한 것은 곧바로 여쭈어 알 수 있다. 또 있어야 할 서적들도 모두 학교에 있기에 나처럼 책을 베껴 쓰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빌어 보지 않아도 된다. 학업이 늘지 않고 인품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주 나쁘지 않다면 나처럼 전념하려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선생님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란다.
절강성 금화부 동양현(東陽縣)의 학생 마군칙(馬君則)은 태학에서 2년 동안 공부하였는데 선후배들도 그가 열심히 공부한다고 칭찬하였습니다. 내가 남경에서 근무하는 동안에 학생이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나를 찾아와서 지은 글을 보여주었는데 글 내용이 시원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말씨가 공손하고 표정도 평온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힘들게 공부하였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서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하니 내도 힘들게 공부한 경험을 적어줍니다. 고향 학생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일러주는 것이 나의 뜻입니다. 내가 운이 좋아서 출세하여 고향에서 자랑한다고 욕한다면 어찌 나를 아는 사람이겠는가!
宋濂,「送東陽馬生序」(1378年)︰
余幼時即嗜學。家貧,無從致書以觀,每假借於藏書之家,手自筆錄,計日以還。天大寒,硯冰堅,手指不可屈伸,弗之怠。錄畢,走送之,不敢稍逾約。以是人多以書假余,余因得遍觀群書。既加冠,益慕聖賢之道,又患無碩師、名人與遊,嘗趨百里外,從鄉之先達執經叩問。先達德隆望尊,門人弟子填其室,未嘗稍降辭色。余立侍左右,援疑質理,俯身傾耳以請;或遇其叱咄,色愈恭,禮愈至,不敢出一言以復;俟其欣悅,則又請焉。故余雖愚,卒獲有所聞。
當余之從師也,負篋曳屣,行深山巨谷中,窮冬烈風,大雪深數尺,足膚皸裂而不知。至舍,四支僵勁不能動,媵人持湯沃灌,以衾擁覆,久而乃和。寓逆旅,主人日再食,無鮮肥滋味之享。同舍生皆被綺繡,戴朱纓寶飾之帽,腰白玉之環,左佩刀,右備容臭,燁然若神人;余則縕袍敝衣處其間,略無慕艷意。以中有足樂者,不知口體之奉不若人也。蓋余之勤且艱若此,今雖耄老,未有所成,猶幸預君子之列,而承天子之寵光,綴公卿之後,日侍坐備顧問,四海亦謬稱其氏名,況才之過於余者乎?
今諸生學於太學,縣官日有廩稍之供,父母歲有裘葛之遺,無凍餒之患矣;坐大廈之下而誦『詩』、『書』,無奔走之勞矣;有司業、博士為之師,未有問而不告,求而不得者也;凡所宜有之書,皆集於此,不必若余之手錄,假諸人而後見也。其業有不精,德有不成者,非天質之卑,則心不若余之專耳,豈他人之過哉!
東陽馬生君則,在太學已二年,流輩甚稱其賢。余朝京師,生以鄉人子謁余,撰長書以為贄,辭甚暢達,與之論辯,言和而色夷。自謂少時用心於學甚勞,是可謂善學者矣!其將歸見其親也,余故道為學之難以告之。謂余勉鄉人以學者,余之志也;詆我誇際遇之盛而驕鄉人者,豈知余者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