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 54살의 사구교(四句敎) 원래 말뜻과 朱得之의『稽山承語』
2019년 7월 31일
목차:
왕양명 사구교(四句敎)에 관한 해설
朱得之 생평 소개:『靖江縣志(清、光緒五年1879刻本)』
『四庫全書總目』,卷一百二十五,子部三十五,雜家類存目二,『宵練匣』十卷【浙江巡撫採進本】
『稽山承語』 朱得之述(1-3),水野 實、永富 青地、三澤三知夫
朱得之 ,『明儒學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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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朱得之가 기록한 『계산승어(稽山承語)』 1권은 그가 왕양명 54-55살(1525-1526)에 소흥부 계산서원에 찾아와 배웠을 때 기록한 것입니다. 주득지가 기록한 왕양명 어록에서 왕양명이 이 시기에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득지 기록 제34조에 따르면 왕양명이 55살(1526) 봄에 회계산 향로봉에 동운(董澐), 왕기(王畿) 등 학생들과 함께 올라갔을 때 주득지도 참여하여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운과 왕기 두 사람의 기록에 따르면 회계산에 올라간 것은 왕양명 54살(1525) 8월이었습니다. 따라서 왕양명이 회계산에 54살 8월과 55살 봄 두 번 올라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산꼭대기에서 숨이 찬 것을 말하였다는 내용을 보면 54살 8월이 맞고 55살 봄은 잘못된 기록입니다. 따라서 왕양명이 사구교(四句敎)를 처음 꺼낸 것은 54살이며 55살이 아니라고 보아야합니다.
주목할 것은 왕양명 만년의 사구교(四句敎)에 관한 주득지 기록입니다. 왕양명이 56살(1527)에 광서성 반란을 진압하려고 떠날 즈음에 왕기(王畿)와 전덕홍(錢德洪)가 토론하면서 견해가 달랐기 때문에 왕양명에게 여쭈었습니다. 그래서 왕양명은 저녁에 소흥부 집안 천천교(天泉橋) 다리 위에서 둘을 불러놓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사구교(四句敎)입니다. 이때부터 왕양명 후학들은 왕기(王畿)의 사무설(四無說)과 전덕홍(錢德洪)의 사유설(四有說) 둘로 구분되었고 논쟁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주여등(周汝登, 1547-1629)이 1592년쯤에 남경에서 왕기의 학설을 강연하자, 허부원(許孚遠, 1535-1604)이 반박하여 강연이 멈추었는데 이때까지도 논쟁이 지속되었습니다. 물론 현재까지도 연구자들은 여전히 논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왕양명의 학술을 이해하는 입문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처럼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기와 전덕홍이 토론하기에 앞서 주득지의 기록에서도 사무설의 근거가 되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양명학 연구를 먼저 시작한 중국학계와 일본학계 모두 주득지의 기록을 주목하였습니다. 일본학계에서는 왕양명 자료를 수집한 학자로서 永富 青地가 있고 중국학계에서는 북경대학 교수 진래(陳來)입니다. 일본학자 永富 青地는 와세다대학 강사였을 때 이 자료를 정리하여 발표하였고 별다른 해설이나 주장은 없습니다. 중국학자 진래는 왕양명 사구교에서 왕기의 사무설과 전덕홍의 사유설 관점에서 왕양명 철학사상을 정리하여 『유무지경(有無之境--王陽明哲學的精神)』(1991)을 출판하였습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도 주목하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학자 永富 青地는 단지 주득지 기록에 관련된 『전습록』과 『명유학안』을 언급하였을 뿐이고, 중국학자 진래는 왕기와 전덕홍 관점에서 연구하면서 주로 심체(心體)에 치중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득지의 『계산승어(稽山承語)』에 관련된 『양명선생 유언록(陽明先生 遺言錄)』을 정지욱 선생이 번역하여 2009년 10월에 출판하였습니다.
왕양명의 사구교(四句敎)는 심의지물(心意知物) 넷에 대하여 선악(善惡)이 있는지 없는지 유무(有無)를 설명한 것이며, 일반적으로 논리적 증명을 말하는 사구(四句)는 아닙니다. 또한 현재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심의지물 가운데 주로 심체(心體) 또는 양지(良知)에 주목하였고 의(意)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득지 기록을 보면 왕양명이 의(意)에 주목하여 심지물 셋을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양명 일생동안 학생들에게 정좌를 가르치면서 강조하였던 성의(誠意)공부와도 일치합니다. 또한 뒤에 왕동(王棟)과 유종주(劉宗周) 등은 성의(誠意)의 의(意)에 주목하였습니다. 따라서 왕양명 사구교에서 의(意)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왕양명의 사구교가 왕양명의 학술종지를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의지물(心意知物)은 『대학』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며, 왕양명이 강조한 양지를 비롯한 심학의 본체를 깨닫는 수양공부에는 별반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왕양명 본인도 이 사구교에 따라 수양공부를 하였거나 양지를 깨달은 것이 아니며, 또한 왕양명이 학생들에게 정좌공부를 가르칠 때도 주목한 것은 성의(誠意)의 의념(意念)이며 심의지물 넷을 동등하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왕양명을 찾아와서 정좌를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였던 젊은 왕기와 전덕홍 두 문인이 심의지물의 선악 유무를 논의한 것은 양명학의 종지를 이해하거나 깨닫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설사 왕양명이 두 문인에게 서로 교수(交修)하라고 일렀으나 크게 주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 연구자들이 사구교에 지나치게 매달려 양명학을 연구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잘못된 연구방법입니다.
주득지 기록 제25조에 있는 양문징(楊文澄)이 누구인지를 현재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득지 기록 제6조에 실린 동운(董澐)이 당시에 관심을 가졌던 문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운은 평생 동안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생각이 아주 엄격하였고 이 문제를 왕양명에게 여쭈었다고 합니다. 왕양명은 “좋아한다는 글자는 원래부터 좋아한다는 글자이고, 싫어한다는 글자도 싫어한다는 글자이다.”라고 설명하였더니 동운이 깨달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왕양명의 말뜻은 선(善)을 좋아하는 것은 타고난 선천적인 것이라고 설명하였고 동운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것이 후천적인 판단이 아니고 선천적인 판단이라는 말뜻을 이해하고 기뻐하였습니다. 따라서 양지가 선천적이라는 뜻을 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동운이 왕양명과 함께 회계산에 올라갔을 때 지은 시를 보면, 그는 일념(一念)의 의(意)가 선(善)인지 악(惡)인지를 아는 양지에 주목하였습니다. 동운이 말한 일념(一念)은 왕양명이 강조한 미(微)를 말하는데, 왕양명은 『상서 대우모』 도심의 미(微)를 설명할 때 염염(念念)이라고 설명한 말뜻과 같습니다. 일념의 선악을 알고 존양과 제거를 결정하는 것이 격물이며, 왕기(王畿)의 현성양지(現成良知)는 일념의 선악을 격물하는 수양공부를 강조하였습니다. 사실상 왕기의 현성양지는 왕양명뿐만 아니라 동운의 영향도 받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담약수가 왕양명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일념(一念)이 올바른 때가 깨어있는(惺)이라고 말하였는데, 왕양명이 대답한 글에서는 깨어있는 것을 말하지 말고 차라리 허령(虛靈) 본체를 깨달으라고 직접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일념의 선악을 판별하는 양지가 허령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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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득지 어록 제6조 번역:
동운은 평생 동안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싫어하는 의지가 아주 강하였고 이것을 왕양명 선생에게 여쭈었다. 왕양명은 좋아한다는 글자는 원래부터 좋아한다는 글자이고, 싫어한다는 글자도 싫어한다는 글자이다.”고 설명하였다. 동운은 당장 이해하고 기뻐하였다.
6、董蘿石(董澐)平生好善惡惡之意甚嚴,自舉以問。師曰:“好字原是好字、惡字即是惡字。”董於言下躍然。
주득기 어록 제25조 번역:
양문징(楊文澄)이 여쭙기를 “의(意)는 선(善)도 있고 악(惡)도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의(意)의 선악을 어떻게 검사하여 알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왕양명이 대답하길 “선악이 없는 것이 심(心)이고, 선과 악이 있는 것이 의(意)이고, 선악을 아는 것이 양지(良知)이고, 선을 유지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이 격물(格物)이다.”고 하였다.
양문징이 여쭙기를 “의(意)는 확실하게 선과 악이 있습니까?”라고 다시 말하였다.
왕양명이 대답하길 “의(意)는 심(心)이 발동한 것이기 때문에 본래는 선(善)만 있고 악이 없지만 사욕에 흔들려서 악이 있는 것이다. 양지는 의(意)가 악이 된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학문의 핵심이 치양지(致良知)라고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25、楊文澄問:“意有善惡,誠之將何稽?”
師曰:“無善無惡者,心也;有善有惡者,意也;知善知惡者,良知也;爲善去惡者,格物也。”
曰:“意固有善惡乎?”
曰:“意者心之發,本自有善而無惡,惟動於私欲而後有惡也。惟良知自知之,故學問之要,曰致良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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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운, 『從吾道人語錄、求心錄』:
왕양명 선생의 시운에 공손히 맞추어 가르침을 구하다:
학문은 반드시 일념(一念)이 진실한 것부터 출발해야하며,
들어서 배운 것으로 나 자신(時人)의 진면목을 놀래키지 말아야합니다.
정묵(靜黙)하여 무위(無爲) 경지가 있다는 알게 되면,
원만하고 허정(虛靜)한 불칙의 신(神)을 타고났다는 것을 압니다.
곡식 씨앗은 영양분을 주고 가꾸어야하지만,
맑은 거울은 먼지를 씻어내려고 닦다가 거꾸로 거울을 얽습니다.
허령(虛靈)을 깨달아야만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는 본체를 발현시킬 수 있다는데,
진헌장 선생 문하에서 투명하고 영롱한 본체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董澐,『從吾道人語錄、求心錄』,제13조:
敬次先韻求教:
為學當從一念眞,莫將聞見駭時人。
要知靜默無為處,自有圓虛不測神。
穀種滋培須有事,鏡光拂拭反生塵。
藏而後發無方體,聽取江門碧玉陳。
참고자료:
藏而後發:
董澐, 『從吾道人語錄、求心錄』,제58조:
或疑白沙(陳獻章)“藏而後發”等語近禪。愚以為,未能直造不疑之地,只管求他近禪,都不是。
『明儒學案』,卷二,崇仁學案二,文敬胡敬齋先生居仁。胡居仁,『居業錄』,卷七:
陳公甫(陳獻章)云:“‘靜中養出端倪。’又云:‘藏而後發。’是將此道理來安排作弄,都不是順其自然。”
陳獻章(1428-1500),『陳獻章集』,卷二,「復張東白(張元禎,1437-1507)內翰」:
“夫道至無而動,至近而神,故藏而後發,形而斯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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董澐, 『從吾道人語錄、求心錄』,제4조:
甘泉先生(湛若水)寄先師詩云:
一念正時便是惺,須知惺處亦無情。
無情知見真知見,到了參前即性靈。
先師答之云:
休論寂寂與惺惺,不妄由來即性情。
笑得殷勤諸老子,翻從知見覓虛靈。
동운, 『從吾道人語錄、求心錄』,제27조:
「靜默箴」:
多言量淺好動懆。故惟靜惟默,真體呈露,顏也如愚,程也如塑,從事於斯,庶幾無誤。外惟靜默,內不多事,耳若無聞,目若無眠,孔也惡佞,孟也惡智,從事於斯,庶幾無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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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得之 생평:
『靖江縣志(清、光緒五年1879刻本)』,卷十四,儒學,「朱得之」:
朱得之,字本思,居城西七里長安團。以歲貢官桐廬縣丞,尋掛冠歸。少負大志,聞王文成公(王守仁)良知之說,心契之,遂往受學。文成公嘗以入道最勇,可與任重致遠稱之。大抵得之之學,體虛靜,宗自然。最得力處,在立志之真。自起居食息,一言一動,皆以心檢點,其間雖幽獨,無少懈。教人亦以立志為至。其脫父於難事最烈,與經紀文成公之喪,在及門中尤為篤摯。某年,郡城大旱,太守夜夢,城隍神語:明日南門外有眇一目書生,可請祈雨。清晨,遇得之狀貌,與神語符,以祈雨請。得之登臺,講中庸第一章,講將畢而雨立降。郡人稱之曰朱中庸。嘗修靖江邑志,為文獻資著述詳。藝文志、郡邑志俱列理學,祀毘陵先賢祠。
弟庶之,歲貢生,東陽縣丞,亦以學行稱。子正中,吏員盤石衛知事。正定,歲貢生,常熟訓導,陞通山教諭。從子正初。
正初,字在明,援例仕鴻臚署丞。意落落不治生產,好古玩,多蓄法帖、名畫及漢晉間彝器。性尤愛客 囿亭臺榭,選聲命酒且揮千緡,海內名流,無不仰有正初者,能詩書法,亦道俊,與王世貞兄弟、李維禎諸公往來酬和。詩卷成帙,嘗偕王穉登同修馬沙小志,餘著作詳藝文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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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得之,稽山承語、烹芹漫語、印古心語
『四庫全書總目』,卷一百二十五,子部三十五,雜家類存目二:
『宵練匣』,十卷(浙江巡撫採進本):
明﹑朱得之撰。得之自號參元子,烏程人,一云靖江人。是書,凡分三編,曰稽山承語,紀其聞於師者也;曰烹芹漫語,紀其聞於友者也;曰印古心語,紀其驗於經典而有得於心者也。皆提唱心學,陽儒陰釋,其曰宵練匣者,案『列子』宵練劍名,晝則見影不見光,夜則見光不見形,觸物而不覺,喻其析理之入微,不在名象間也。曰匣者,理寓於書,如劍藏於匣也,即其名之不衷,而書可想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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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山承語』 朱得之述(1-3),水野 實、永富 青地、三澤三知夫:
『稽山承語』朱得之述(一):1-21조
『稽山承語』朱得之述(二):22-34조
『稽山承語』朱得之述(三):35-45조
해제(水野 實)
朱得之 간략한 생평 자료는 명유학안 南中 王門에 실려 있다. 강소성 靖江 출신이다. 생졸연대 미상이다. 『老子通義』와 『莊子通義』 등 저술이 있다.
왕양명 연보에도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 언제 와서 배웠는지를 알 수 없다.
稽山承語는 왕양명이 1521년 8월부터 1527년 9월까지 6년간 머물렀던 시기 가운데 계산서원에 와서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다. 어록에서 연도를 기록한 것은 乙酉十月, 丙戌春暮, 嘉靖丁亥 셋이 있다. 계산승어는 왕양명이 ‘치양지설’을 제창한 만년의 사상을 전해주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이 책의 소재를 확인한 것은 20여 년 전이다. 舊都立日比谷圖書館(현재 都立中央圖書館)의 河田文庫에 있는데 『陽明先生遺言錄』과 함께 1冊된 寫本이고, 끝에 佐藤一齋라고 쓰여 있고 天保8년(1837), 閭東刻 『陽明文集』에 실린 필사본이었다. 1권이고 어록 55조목이다.
閭東刻 『陽明文集』에 실린 어록은 현재 일본에는 없다. 대만 국립중앙도서관,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에 있다. 복사를 하려고 하였으나 복사를 허가하지 않아 구하지 못하여 유감이다. 佐藤一齋의 필사본이 현재 일본에 있다. 東北大學圖書館 狩野文庫本이 있는데 복사하였고 廣島大學교수 吉田公平씨의 秘藏本이 있는데 북경대학교수 陳來씨에 의하여 공개되었다.
『陽明先生遺言錄』은 永富青地(현재 早稻田대학 강사), 三澤三知夫(현재 早稻田대학 대학원) 2인의 협력을 받아 현재 주석작업을 하고 있다.(『防衛大學校紀要』70輯) 이 책 가운데 善本인 佐藤一齋의 필사본을 定本으로 삼고 원문을 번역하고 훈독을 하고 어려운 용어를 해설하고 출처를 밝히고 있다. 교감에서는 狩野文庫本(吉田公平)과 다른 것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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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山承語』 (1-45조) 譯註
卷一
小序(역자가 지은 임시 명칭)
傳於師,習於心。是故書紳之下已非得意忘言者伍矣。矧茲又出書紳之下乎!惟予衰眊、莫振宗風、追述之。永心喪也。
訓讀:
語譯:
書紳:論語 “子張書諸紳”
得意忘言:莊子 外物
1、問、正其不正、以致其良知於事物相接之時、其工夫則有著落矣。事物未相接時、如何用功。師曰、只是謹獨。
어역:
愼獨:『大學』 誠意章, 『中庸』 首章
2、問、格物以致其良知、謂之學。此知行合一之訓也。如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何如。曰、正言知行不一之弊。『中庸』言道之不明不行、亦言知行不一之故乎。曰、然。故曰、人莫不飲食也,鮮能知味也。
어역:
如學而不思則罔:論語 爲政
道之不明不行:中庸 四章
3、師曰、千聖傳心之要、只是一個微字、所謂不覩不聞也、是所謂道心也。惟精惟一、只是存此致此而已。
어역:
一個微字:尙書 大禹謨
不覩不聞:中庸 首章
4、謙虛之功與勝心正相反。人有勝心、爲子則不能孝、爲臣則不能敬、爲弟則不能恭、與朋友則不能相信相下。至於爲君亦未仁、爲父亦未慈、爲兄亦不能友。人之惡行、雖有大小、皆由勝心生出。勝心一堅、則不復有改過徙義之心矣。
어역:
友:爾雅:善兄弟、爲友。
교감:
『戒庵老人漫筆』,卷七과 현재 『王陽明全集』,卷三二에 語錄 4條 가운데 2條가 실려있다.
皆由勝心生出은 語錄 4條에서는 生 글자가 없다.
5、『中庸』論前定、只是良知不昧而已。
6、董蘿石(董澐)平生好善惡惡之意甚嚴、自舉以問。師曰、好字原是好字、惡字即是惡字。」董於言下躍然。
어역:
董蘿石:董蕓이고 字復宗이고 號蘿石이고 절강성 海寧 사람이다.
교감:
好善惡惡之意甚嚴:어록에는 之意 두 글자가 없다.
7、天地皆仁之滓。天下歸仁、萬物皆備於我也。
어역:
歸仁:論語 顔淵
萬物皆備於我:孟子 盡心上
8、修道之謂教以下許多說話、工夫只是修道以仁。
9、良知無動靜。動靜者、所遇之時也。不論有事無事、專以致吾之良知爲念。此學者最要緊處。
어역:
動靜者、所遇之時:傳習錄 上卷 제43조와 中卷 「答陸原靜書」에 있다.
10、實夫問、心即理、心外無理、不能無疑。師曰、道無形體,萬象皆其形體。道無顯晦、人所見有顯晦。以形體而言、天地一物也。以顯晦而言、人心其機也。所謂心即理也者、以其充塞氤氳而言謂之氣、以其脈絡分明而言謂之理、以其流行賦畀而言謂之命、以其稟受一定而言謂之性、以其物無不由而言謂之道、以其妙用不測而言謂之神、以其凝聚而言謂之精、以其主宰而言謂之心、以其無妄而言謂之誠、以其無所倚著而言謂之中、以其物無可加而言謂之極、以其屈伸消息往來而言謂之易、其實則一而已。今夫茫茫堪輿、蒼然隤然、其氣之最麄者歟。稍精則爲日月星宿風雨山川、又稍精則爲雷電鬼怪草木花彙、又精而爲鳥獸魚鱉昆蟲之屬、至精而爲人、至靈至明而爲心。故無萬象則無天地、無吾心則無萬象矣。故萬象者、吾心之所爲也。天地者、萬象之所爲也。天地萬象、吾心之糟粕也。要其極致、乃見天地無心、而人爲之心。心失其正、則吾亦萬象而已。心得其正、乃謂之人。此所以爲天地立心、爲生民立命、惟在於吾心。此可見心外無理、心外無物。所謂心者、非今一團血肉之具也、乃指其至靈至明、能作能知者也。此所謂良知也。然而無聲無臭、無方無體、此所謂道心惟微也。以此驗之、則天地日月四時鬼神莫非壹體之實理、不待有所彼此比擬者。古人之言合德合明、如天如神、至善至誠者、皆自下學而言、猶有一(二?)也。若其本體、惟吾而已、更何處有天地萬象。此大人之學所以與天地萬物一體也。一物有外、便是吾心未盡處、不足謂之學。此乙酉(1525)十月與宗範、正之、惟中聞於侍坐時者、丁亥(1527)七月追念而記之、已屬渺茫、不若當時之釋然、不見師友之形骸、堂宇之限隔也。
어역:
實夫:未詳。어록에서 董實夫가 나오는데 董蕓의 一族이라고 생각된다.
氤氳:白虎通 嫁娶에서 周易 繫辭下에서 “天地氤氳、萬物化淳”이 있다.
爲天地立心、爲生民立命:張載 張氏語錄에 있다.
宗範:未詳
正之:黃弘綱, 字正之, 號洛村, 강서성 雩縣 사람이다.
惟中:稽山承語, 제34조 王惟中이 있는데 未詳이다.
乙酉:1525
丁亥:1527
11、誠者天之道,言實理之本體;「思誠者人之道」,聖賢皆謂之思誠,惟有工夫則人道也。
12、幹卦通六爻作一人看,只是有顯晦,無優劣;作六人看,亦只有貴賤,無優劣。在自己工夫上體驗,有生熟、少壯、疆老之異,亦不可以優劣論也。
13、問志道、據德、依仁、遊藝?曰:藝即義也。即事曰藝,即心曰義,即孔子自序志學之旨也。
14、「擇不處仁」,非擇裏也。
15、「以約失之者鮮」,「凡事豫則立」也。
16、一友自負無私意,適其從兄責仆人於私寓,自悔深切,入以告於師,且請教。此友在傍微哂。師顧曰:此非汝之私意乎?見兄之有過,幸己之無敗露,私意重矣。此友方知私意是如此。
卷二
17、心之良知謂之聖。
18、良知無有不獨,獨知無有不良。
19、問乾坤二象?曰:本體要虛,工夫要實。
20、合著本體,方是工夫;做得工夫,方是本體。又曰:做得工夫,方見本體。又曰:做工夫的便是本體。
21、師設燕以投壺樂賓,諸友請教。曰:今此投壺,俱要位天地,育萬物。眾皆默然。投畢,賓退,實夫不悟,以問正之。正之曰:難言也。曰:此會何人得位育意?正之曰:惟弘綱三矢,自此而出。明旦,眾入謝燕,實夫起問,師曰:昨日投壺,惟正之三矢得此意。實夫凜然。
22、天理、人欲甚精微,自家工夫不可放過,不可影過,不可混過。
23、一日,師曰:四方英賢來此相依,共明此學,豈非此生至樂!然某見一人來,心生一喜,又添一憂。喜在吾道之遠及。憂其人或言之未瑩,以啟人之疑;行之未篤,以來人之謗。疑謗一興,阻喪向善之誠者多矣。諸君宜相體以求自立也。
24、問喜怒哀樂?師曰:樂者,心之本體也。得所樂則喜,反所樂則怒,失所樂則哀。不喜不怒不哀時,此真樂也。
25、楊文澄問:意有善惡,誠之將何稽?師曰:無善無惡者,心也;有善有惡者,意也;知善知惡者,良知也;爲善去惡者,格物也。曰:意固有善惡乎?曰:意者心之發,本自有善而無惡,惟動於私欲而後有惡也。惟良知自知之,故學問之要,曰致良知。
어역:
楊文澄:未詳
無善無惡者,心也;有善有惡者,意也;知善知惡者,良知也;爲善去惡者,格物也。:전습록, 하권, 제115조.
26、或問三教同異?師曰:道大無外,若曰各道其道,是小其道矣。心學純明之時,天下同風,各求自盡,就如此廳事,元是統成一間,其後子孫分居,便有中有傍。又傳,漸設藩籬,猶能往來相助。再久來,漸有相較相爭,甚而至於相敵。其初只是一家,去其藩籬,仍舊是一家。三教之分,亦只似此,其初各以資質相近處學成片段,再傳至四五,則失其本之同,而從之者亦各以資質之近者而往,是以遂不相通。名利所在,至於相爭相敵,亦其勢然也。故曰「仁者見之謂之仁,知者見之謂之知」,纔有所見,便有所偏。
27、童克剛問:傳習錄中以精金喻聖,極爲明切,惟謂孔子分兩不同萬鎰之疑,雖曾有軀殼起念之說,終是不能釋然。師不言,克剛請之不已。師曰:看《易經》便知道了。克剛必請明言。師乃歎曰:蚤知如此起疑生辨,當時便多說這一千也得。今不自煆煉金之程色,只是問他人金之輕重,柰何?克剛曰:堅若蚤得聞教,必求自見,今老而幸遊夫子之門,有疑不決,懷疑而死,終是一憾。師乃曰:伏羲作《易》,神農、黃帝、堯、舜用《易》。至於文王演卦於羑裏,周公又演爻於居東,二聖人比之用易者,似有間矣。孔子則又不同,其壯年之志,只是東周,故夢亦周公,嘗曰:「文王既沒,文不在茲乎!」自許自志,亦止二聖人而已。況孔子玩《易》,韋編乃至三絕,然後歎易道之精,曰:「假我數年,五十以學《易》,可以無大過。」比之演卦、演爻者,更何如?更欲比之用《易》如堯、舜,則恐孔子亦不自安也。其曰:「我非生而知之者,好古敏以求之者。」又曰:「若聖與仁,則吾豈敢。抑爲之不厭。」乃其所至之位。
어역:
童克剛:童世堅이고 連城 사람이다.
卷三
28、一友問:某只是於事不能了。師曰:以不了了之良知。又曰:所謂了事,也有不同。有了家事者,有了身事者,有了心事者。今汝所謂了事,蓋以前程事爲念,雖云了身上事,其實有居室產業之思在此,是欲了家事也。若是單單只了身事,言必信,行必果者,已是好男子;至於了心事者,果然難得。若知了心事,則身、家之事,一齊都了;若只在家事、身事上著腳,世事何曾得有了時?
29、或問客氣?師曰:客與主對。讓盡所對之賓,而安心居於卑末,又能盡心盡力供養諸賓;賓有失錯,又能包容,此主氣也。惟恐人加於吾之上,惟恐人怠慢我,此是客氣。
30、人之材力自是不同,有能洪大者,有能精詳者。精詳者終不能洪大,如史稱漢高帝雄才大畧。大可以該小,畧可以該詳,可也,謂能提綱挈領也。不然,迂疏而已,反不如精詳者,雖小,自有實用。
31、一友初作尹,問曰:爲尹之道,不可輕聽人言,不能不聽人言。逆詐億不信,既非君子之道;如舜之好問好察,何以知人之不我欺也?師曰:只要自家主意明白,主意堅定在我,一以愛民爲心,誠然如保赤子。凡以愛民之言欺我,我即用之,欺我者乃助我者也。凡以殃民之言欺我,與我主意不合,必不肯聽,又何患聽言之難也。
32、古人琴瑟簡編,莫非是學;校築魚鹽,莫非作聖之地。且如歌詩一事,一歌之間,直到聖人地位。若不解良知上用功,縱歌得盡如法度,亦只是歌工之悅人耳。若是良知在此歌,真是瞬息之間,邪穢蕩滌,渣滓消融,直與太虛同體,方是自慊之學。
33、歌詩之法,直而溫,寬而栗,剛而無虐,簡而無傲,「歌永言,聲依永」而已,其節奏抑揚,自然與四時之敘相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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歌永言,聲依永:尙書 堯典
34、丙戌(1526)春莫,師同諸友登香爐峯,各盡足力所至,惟師與董蘿石、王正之、王惟中數人至頂。時師命諸友歌詩,眾皆喘息不定,蘿石僅歌一句,惟中歌一章,師復自歌,婉如平時。蘿石問故。師曰:我登山不論幾許高,只登一步。諸君何如?惟中曰:弟子輩足到山麓時,意已在山頂上了。師曰:病是如此。
어역:
丙戌:1526
王正之:未詳
王惟中:未詳
35、客有論慮患不可不遠者,師曰:見在福享用不盡,只管經營未來,終身人役而已。
36、或問:「犯而不校」與「不報無道」何以不同?師曰:有意無意耳。又曰:犯而不校,非是不與人校長短。且如大明律,不曾有罪,懸法設科,人自犯之,乃犯也。設使彼有九分九厘罪過,我有一厘不是,均是犯法,非彼犯我也。聖門之教,只是自反自責,故曰不校。必是我全無不是,彼全無是處,然後謂之犯。如此而又不校,愛敬調停之心不倦不厭,方是好學。
卷四
37、甘於盤問學,終日只依良知而行,不覺常有出入之病。曰:只是不懇切。又曰:且如於盤登此樓,初登時只是一樓,既登見其欵制,坐定見其精粗,又見有何物在中,少頃,又見物之精粗,尚有未見未知者。至於外人,聞說此樓,欲見者但望之而已,何由知其中之委曲。此猶致良知之學也。雖云淺深有得,亦豈便能盡良知之蘊,須是盤桓精察日久,日見日得,其樂至於左右逢原,方是良知用事。
어역:
甘于盤:未詳
38、問:舉業有妨於爲學,何如?曰:梳頭吃飯,亦妨於爲學否?即此是學。舉業只是日用間一事,人生一藝而已。若自能覺破得失外慕之毒,不徒悅人而務自慊,亦遊藝適情之一端也。
39、問:舉業必守宋儒之說,今既得聖賢本意,而勘破其功利之私,況文義又不可通,則作文之時,一從正意,乃爲不欺也。今乃見如此而文如彼,何如?曰:論作聖真機,固今所見爲近。然宋儒之訓,乃皇朝之所表章,臣子自不敢悖。且如孔顏論爲邦,行夏時,乘殷輅,豈即行其言乎?故師友講論者,理也;應舉之業;制也。德位不備,不敢作禮樂,吾從周,無意必也。惟體古訓以自修,可也。
40、嘉靖丁亥(1527),得之將告歸,請益。師曰:四方學者來此相從,吾無所卑益也,特與指點良知而已。良知者,是非之心,吾之神明也。人皆有之,但終身由之而不知者眾耳。各人須是信得及,盡著自己力量,真切用功,日當有見。六經、四子,亦惟指點此而已。近來學者與人論學,不肯虛心易氣,商量個是當否,只是求伸其說,不知此已失卻爲學之本,雖論何益?又或在此聽些說話,不去實切體驗,以求自得,只管逢人便講。及講時,又多參以己見影響、比擬輕議先儒得失。若此者,正是立志未真,工夫未精,不自覺其粗心浮氣之發,使聽者虛謙問學之意,反爲蔽塞,所謂輕自大而反失之者也。往時有幾個樸實頭的,到能反己自修,及人問時,不肯多說,只說我聞得學問頭腦,只是致良知,不論食息語默,有事無事,此心常自烱然不昧,不令一毫私欲幹涉,便是必有事焉,便是慎獨,便是集義,便是致中和。又有一等,淵默躬行,不言而信,與人並立而人自化,此方是善學者,方是爲己之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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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心易氣:稽康의 養生論:練骸易氣, 染骨柔筋。
41、問:責善朋友之道,意何如?師曰:相觀而善,乃處友之道,相下則受益,相上則損。纔責善便忘己而逐人,便有我勝於彼之意。孟子此言,爲章子子父責善,不善用其好善之心,故云然。蓋謂責善在朋友中猶可用,若父子兄弟之間,絕不可用。非謂朋友專以責善爲道也,故曰「忠告而善道之,不可則止」:「朋友數,斯疏矣」。然則朋友中有過而不覺不改,柰何?曰:以善服人者,未有能服人者也。以善養人,然後能服天下。
42、一日,師曰:長途飯肆,望見行旅,便出道中要留欲飯之,其饑者則樂從,飽者則惡其留,雖多憎口,留客之意,終是不厭不息,是有所利也。某今所爲實似之,見有過者強留之,強飯之。我之取於諸友者多矣,既業飯肆,亦自不能已於強客也。
43、孔子歿,門人以有若似夫子,請以所事夫子事之,曾子雖不可,某竊有取於其事。未論有若之德何如,但事有宗盟,則朋友得以相聚相磨,而當年同志之風不息,庶乎學有日新之幾,亦無各是其是之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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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盟:강학의 주재자
44:諸君聞吾之言,未能領悟者,只作亂說,不必苦求通曉,苦求記憶。且只切己用功,見善即遷,知過即改,常令此心虛明不滯,後日當有不待思索,自然契合,自然記憶者。
45、或問:裴公休序《圓覺經》曰:「終日圓覺而未嘗圓覺者,凡夫也;欲證圓覺而未極圓覺者,菩薩也;具足圓覺而住持圓覺者,如來也。」何如?曰:我替他改一句,終日圓覺而未嘗圓覺者,凡夫也;欲證圓覺而未極圓覺者,菩薩也;具足圓覺而住持圓覺者,羅漢也;終日圓覺而未嘗圓覺者,如來也。
어역:
裴公休:裴休
序《圓覺經》曰:「終日圓覺而未嘗圓覺者,凡夫也。:《圓覺經》,제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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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儒學案(南中學案)』,卷二十五,「前言」:
南中之名王氏學者,陽明在時,王心齋、黃五嶽、朱得之、戚南玄、周道通、馮南江,其著也。陽明歿後,緒山、龍溪所在講學,於是涇縣有水西會,寧國有同善會,江陰有君山會,貴池有光嶽會,太平有九龍會,廣德有復初會,江北有南譙精舍,新安有程氏世廟會,泰州復有心齋講堂,幾乎比戶可封矣。而又東廓、南野、善山先後官留都,興起者甚眾。略載其論學語於後。其無語錄可考見者附此。
戚賢字秀夫,號南玄。江北之全椒人。嘉靖丙戌進士。仕至刑科都給事中,以薦龍溪,失貴谿指,謫官致仕。陽明在滁州,南玄以諸生旅見,未知信向。其後爲歸安令,讀論學諸書,始契於心,遂通書受學。爲會於安定書院,語學者“千聖之學,不外於心,惟梏於意見,蔽於嗜欲,始有所失。一念自反,即得本心。”在京師會中,有談二氏者,即正色阻之。龍溪偶舉黃葉止兒啼公案,南玄勃然曰:“君是吾黨宗盟,一言假借,便爲害不淺。”龍溪爲之愧謝。南玄談學,不離良知,而意氣激昂,足以發之。
馮恩字子仁,號南江,華亭人。嘉靖丙戌進士。陽明征思、田,南江以行人使其軍,因束脩爲弟子。擢爲南道禦史,劾都禦史汪鋐、大學士張孚敬,下詔獄。會審,鋐執筆,南江立而庭辯,論死。其後減戍赦歸。
貢安國字元略,號受軒,宣州人。師南野、龍溪。主水西、同善之會。緒山與之書曰:“昔人言‘鴛鴦繡出從君看,莫把金針度與人’,吾黨金針是前人所傳,實未繡得鴛鴦,即嘵嘵然空持金針,欲以度人,人不見鴛鴦,而見金針,非徒使之不信,並願繡鴛鴦之心,亦阻之矣。”後官山東州守,講學於志學書院。
查鐸字子警,號毅齋,涇縣人。嘉靖乙醜進士,爲刑科給事中。不悅於新鄭,外轉至廣西副使。學於龍溪、緒山,謂“良知簡易直截,其他宗旨,無出於是。不執於見即曰虛,不染於欲即曰寂,不累於物即曰樂,無有無,無始終,無階級,俛焉日有孳孳,終其身而已。”
沈寵字思畏,號古林,宣城人。登嘉靖丁酉鄉書。官至廣西參議。師事受軒。受軒學於南野、龍溪而返,謂古林曰:“王門之學在南畿,盍往從之?”於是古林又師南野、龍溪。在閩建養正書院,在蘄黃建崇正書院。近溪立開元之會於宣州,古林與梅宛溪主其席。疾革,有問其胸次如何,曰:“已無物矣。”宛溪名守德,字純甫。官至雲南左參政。其守紹興時,重修陽明講堂,延龍溪主之。式祕圖楊珂之閭,非俗吏也。
蕭彥號念渠,戶部侍郎。諡定肅。涇縣人。師事緒山。
蕭良榦字以寧,號拙齋。仕至陝西布政使。師緒山、龍溪。水西講學之盛,蕭氏之力也。
戚袞字補之,號竹坡,宣城人。項城知縣。初及東廓、南野之門,已受業龍溪。龍溪語之曰:“所謂志者,以其不可奪也。至於意氣,則有時而衰。良知者,不學不慮,自然之明覺,無欲之體也。吾人不能純於無欲,故有致知之功。學也者,復其不學之體也;慮也者,復其不慮之體也。故學雖博而守則約,慮雖百而致則一,非有假於外也。若見聞測識之知,從門而入,非良知之本然矣。吾人謹於步趨,循守方圓,謂之典要,致知之學,變動周流,惟變所適。蓋規矩在我,而方圓自不可勝用,此實毫釐之辯也。”竹坡往來出入,就正於師友者,凡七八年,於是始知意氣不可以爲志,聞識不可以爲知,格式不可以爲守。志益定,業益精,其及人益廣也。
張棨字士儀,號本靜,涇縣人。五歲口授諸書,即能了了。夜聞雞聲,呼其母曰:“《小學》雲:‘事父母,雞初鳴,鹹盥漱。’今雞鳴矣,何不起?”母笑曰:“汝才讀書,便曉其義耶?”曰:“便當爲之,豈徒曉焉而已?”南野爲司成,因往從之,累年不歸。繼從東廓、緒山、龍溪,歸而聚徒講學。以收斂精神爲切要,以對景磨瑩爲實功,以萬物一體爲志願,意氣眉睫之間,能轉移人心。
章時鸞號孟泉,青陽人。河南副吏。學於東廓。
程大賓字汝見,號心泉,歙人。貴州參政,受學緒山。緒山謂之曰:“古人學問,不離七情中用功,而病痛亦多由七情中作。”
程默字子木,休寧人。廣州府同知。負笈千裏,從學陽明。疾革,指《六經》謂其子曰:“當從此中尋我,莫視爲陳言也。”
鄭燭字景明,歙人。河間府通判。及東廓之門。人見其衣冠質樸,以爲率真者,曰:“率真未易言,先須識真耳。”
姚汝循字敘卿,號鳳麓,南京人。嘉靖丙辰進士。官終嘉定知州。近溪嘗論明德之學,鳳麓舉日說雲:“德猶鑑也,匪翳弗昏,匪磨弗明。”近溪笑曰:“明德無體,非喻所及。且公一人耳,爲鑑爲翳,復爲磨者,可乎?”聞之遂有省,浸浸寤入。有妄子以陽明爲詬病,鳳麓曰:“何病?”曰:“惡其良知之說也。”曰:“世以聖人爲天授,不可學久矣。自良知之說出,乃知人人固有之,即庸夫小童,皆可反求以入道,此萬世功也,子曷病?”
殷邁字時訓,號秋溟,留守衛人。曆官禮部侍郎。與何善山遊,與聞緒言,所著有《懲忿窒欲編》。
薑寶字廷善,丹陽人。曆官南禮部尚書。受業荊川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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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得之,『明儒學案』의 기록:
『明儒學案』,卷二十五,「明經朱近齋先生得之」:
朱得之字本思,號近齋,直隸靖江人。貢爲江西新城丞,邑人稱之。從學於陽明,所著有《參玄三語》。其學頗近於老氏,蓋學焉而得其性之所近者也。其語尤西川云:“格物之見,雖多自得,未免尚爲見聞所梏。雖脫聞見於童習,尚滯聞見於聞學之後,此篤信先師之故也。不若盡滌舊聞,空洞其中,聽其有觸而覺,如此得者尤爲真實。子夏篤信聖人,曾子反求諸己,途徑堂室,萬世昭然。”即此可以觀其自得矣。
「語錄」:
1、董蘿石平生好善惡惡甚嚴,自舉以問陽明先生,曰:“好字原是好字,惡字原是惡字。”董於言下躍然。
2、董實夫問:“心即理,心外無理,不能無疑。”陽明先生曰:“道無形體,萬象皆是形體;逆無顯晦,人所見有顯晦。以形體言天地,一物也;以顯晦言人心,其機也。所謂心即理者,以其充塞氤氳,謂之氣;以其脈絡分明,謂之理;以其流行賦畀,謂之命;以其稟受一定,謂之性;以其物無不由,謂之道;以其妙用不測,謂之神;以其凝聚,謂之精;以其主宰,謂之心;以其無妄,謂之誠;以其無所倚著,謂之中;以其無物可加,謂之極,以其屈伸消息往來,謂之易。其實則一而已。今夫茫茫堪輿,蒼然隤然,其氣之最粗者歟?稍精則爲日月星宿風雨山川,又稍精則爲雷電鬼怪草木花蘤,又精而爲鳥獸魚鱉昆蟲之屬,至精而爲人,至靈至明而爲心。故無萬象則無天地,無吾心則無萬象矣。故萬象者,吾心之所爲也,天地者,萬象之所爲也。天地萬象,吾心之糟粕也。要其極致,乃見天地無心,而人爲之心。心失其正,則吾亦萬象而已;心得其正,乃謂之人。此所以爲天地立心,爲生民立命,惟在於吾心。此可見心外無理,心外無物。所謂心者,非今一團血肉之具也,乃指其至靈至明能作能知,此所謂良知也。然本無聲無臭無方無體,此所謂道心惟微也。此大人之學,所以與天地萬物一體也。一物有外,便是吾心未盡處,不足謂之學。
3、問“喜怒哀樂”。陽明先生曰:“樂者心之本體也,得所樂則喜,反所樂則怒,失所樂則哀。不喜不怒不哀時,此真樂也。”
4、楊文澄問:“意有善惡,誠之將何稽?”陽明先生曰:“無善無惡者,格物也。”曰:“意固有善惡乎?”曰:“意者心之發,本自有善而無惡,惟動於私欲而後有惡也。惟良知自知之故,學問之要,曰‘致良知’。”
5、或問“客氣”。陽明先生曰:“客與主對,讓盡所對之賓,而安心居於卑末,又能盡心盡力供養諸賓,賓有失錯,又能包容,此主氣也。惟恐人加於吾之上,惟恐人怠慢我,此是客氣。”
6、人生不可不講者學也,不可暫留者光陰也。光陰不能暫留,甚爲可惜!學不講自失爲人之機,誠爲可恥!自甘無恥,自不知惜,老至而悔,不可哀乎!孔子曰:“學如不及,猶恐失之。”“朝聞道,夕死可矣。”旨哉!
7、或問“三教同異”。陽明先生曰:“道大無名,若曰各道其道,是小其道矣。”心學純明之時,天下同風,各求自盡。就如此廳事,元是統成一間,其後子孫分居,便有中有傍,又傳,漸設籓籬,猶能往來相助。再久來,漸有相較相爭,甚而至於相敵。其初只是一家,去其籓籬,仍舊是一家。三教之分,亦只如此,其初各以資質相近處,學成片段,再傳至四五,則失其本之同,而從之者亦各以資質之近者而往,是以遂不相通。名利所在,至於相爭相敵,亦其勢然也。故曰:“仁者見之謂之仁,知者見之謂之知。”才有所見便有所偏。
8、天地萬物之機,生生不息者,只是翕聚,翕聚不已,故有發散,發散是其不得已。且如嬰兒在母腹中,其混沌皮內有兩乳端,生近兒口,是兒在胎中翕而成者也,故出胎便能吸乳。
9、人之養生,只是降意火。意火降得不已,漸有餘溢,自然上升,只管降,只管自然升,非是一升一降相對也。降便是水,升便是火,《參同契》“真人潛深淵,浮遊守規中”,此其指也。
10、或問“金丹”。曰:“金者至堅王利之象,丹者赤也,言吾赤子之人也。煉者,喜怒哀樂,發動處是火也。喜怒哀樂之發,是有物牽引,重重輕輕,冷冷熱熱,煆煉得此心端然在此,不出不入,則赤子之心不失,久久純熟,此便是丹成也。故曰:‘貧賤優戚,玉汝於成。動心忍性,增益不能。’此便是出世,此是飛昇沖舉之實。謂其利者,百凡應處,迎之而解,萬古不變,萬物不離,大人之心,常如嬰兒,知識不遂,純氣不散,則所以延年者在是,所以作聖者在是。故曰:‘專氣致柔如嬰兒,清明在躬,志氣如神,嗜欲將至,有開必先。’所以知幾者在是,所以知天者在是。”
11、太虛浮雲,過化也。乾乾不息於誠,存神也。存神則過化矣,所過不化,不存神也。存神而過化,所以與天地同流。
12、此身之外,一絲一縷皆裝綴。故緊隨身不可須臾離者,貧賤也。或得或失者,富貴也。於其不可離者,必求離之,於其不可保者,必欲得之,此所以終身役役,卒歸於惡也。
13、三代教人,年未五十者,不可衣帛,未七十者,不得食肉,是天下莫非素縞也。今自嬰兒時便厚味華衣,豈知古人愛養生命之道。佛法戒殺,其徒不腥不錦,意正如此。若得天下如此風味,便省許多貨財,便有許多豊裕,息貪息爭,無限好處,雍熙之風,指日可見。惜乎欲重情勝,而不能從也。
14、往古聖人,立言垂訓,宗旨不同,只是因時立教,精明此性耳。堯、舜曰“中”,湯、文曰“敬”,蓋以中有糊塗之景,將生兩可之病,故以敬爲中,提省人,使之常惺惺也。敬則易流於有意,故孔子曰“仁”。仁易無斷,故孟子曰“仁義”。仁義流而爲假仁襲義,故周子曰“誠”。誠之景,乃本體無思無爲者也。人不易明,將流於訐直,故程子復以敬爲宗。敬漸流於孤陋,故朱子以致知補之。致知漸流於支離,故先師辨明聞見與良知,特揭良知爲宗。千古聖學之要,天地鬼神之機,良知二字盡之矣。
15、混沌開闢之說,亦是懸度,只是就一日晝夜昏明之間,便可見戌亥時,果人消物盡乎?但自古至今,生氣漸促,其醇氣之耗,智巧之深,終非古比。
16、或問“事物有大小,應之不能無取舍”。此正是功利之心,千駟萬踵之取予一念也。眾人在事上見,故有大小;聖人卻只在發念處見,故不論事物之大小,一念不安,即不忍爲人,無善可爲,只不可爲惡,有心爲善,善亦惡也。
「尤西川(尤時熙,1503-1580)紀聞」:
1、近齋說:“陽明始教人存天理,去人欲。他日謂門人曰:‘何謂天理?’門人請問,曰:‘心之良知是也。’他日又曰:‘何謂良知?’門人請問,曰:‘是非之心是也。’”
2、近齋言:“陽明云:‘諸友皆數千裏外來,人皆謂我有益於朋友,我自覺我取朋友之益爲多。’又云:‘我全得朋友講聚,所以此中日覺精明,若一二日無朋友,志氣便覺自滿,便覺怠惰之習復生。’”又說:“陽明逢人便與講學,門人疑之。歎曰:‘我如今譬如一箇食館相似,有客過此,吃與不吃,都讓他一讓,當有吃者。’”
3、近齋曰:“陽明在南都時,有私怨陽明者,誣奏極其醜詆。始見頗怒,旋自省曰:‘此不得放過。’掩卷自反,俟其心平氣和再展看。又怒,又掩卷自反。久之真如飄風浮靄,略無芥帶。是後雖有大毀謗,大利害,皆不爲動。嘗告學者曰:‘君子之學,務求在己,而己毀譽榮辱之來,非惟不以動其心,且資之以爲切磋砥礪之地,故君子無入而不自得,正以無入而非學也。’”
4、近齋說:“陽明不自用,善用人。人有一分才也,用了再不錯,故所向成功。”
5、近齋曰:“昔侍先師,一友自言:‘覺功夫不濟,無奈人欲間斷天理何?’師曰:‘若如汝言,功夫盡好了,如何說不濟,我只怕你是天理間斷人欲耳。’其友茫然。”
6、近齋解格物之格,與陽明大指不殊,而字說稍異。予問:“曾就正否?”近齋歎曰:“此終天之恨也。”
7、一日與近齋夜坐,予曰:“由先生說沒有甚麼。”曰:“沒有甚麼呀!”
8、近齋曰:“精粗一理,精上用功。”他日舉似,則曰:“本無精粗。”
9、近齋曰:“三年前悟知止爲徹底,爲聖功之准。近六月中病臥,忽覺前輩言過不及與中,皆是汗浸之言,必須知分之所在,然後可以考其過不及與中之所在。爲其分之所當爲中也,無爲也。不當爲而爲者,便是過,便是有爲;至於當爲而不爲,便是不及,便是有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