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 56살에 魏良弼이 임정임의(任情任意)의 작의(作意)와 양지의 구별 제기와 왕양명 사구교
2019년 8월 7일
* 위양필(魏良弼, 1492-1575) 형제들은 왕양명이 강서성에서 농민반란을 진압할 때부터 찾아와서 배웠고 이후에도 가끔 찾아오거나 서신을 보내 물었던 학생이기 때문에 왕양명의 학술주장을 잘 이해하였습니다. 이들은 열심히 수양공부를 하였고 나중에는 강서성에서 왕양명의 여러 문인들과 함께 양명학 전파에 힘썼습니다.
위양필이 왕양명 56살(1527)에 여쭈었던 서신은 남아있지 않고 다만 왕양명의 답신이 남았는데, 왕양명 답신에서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위양필이 당시 왕양명 문인들의 양지 오해를 비판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위양필 본인이 체면이나 상황에서 양지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수양공부 문제를 여쭈었는데, 왕양명은 위양필이 아직 양지를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사실상 위양필의 양지 깨달음은 왕양명의 인증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첫째, 위양필은 왕양명 문인들의 양지 오해를 비판하였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유식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식(情識)의 작의(作意)를 양지라고 오해하고 있으며 이것은 본래면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왕양명이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정좌하고 의념이 떠오르면 시비와 선악을 분별하여 천리의 의념을 존양하고 인욕의 의념을 제거하라고 강조하여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옳지 않은 의념을 바로잡는 격물공부이며 소위 성의(誠意)공부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에도 학생들이 오해할 수 있는 잘못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의념을 구성하는 다섯 편행(遍行) 가운데 작의(作意)를 양지라고 학생들이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대체로 왕양명 문하에서 많은 학생들이 작의를 양지라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양명도 의념과 양지를 반드시 구별해야한다고 재차 강조하였습니다. 왕양명이 의념의 시비(是非) 둘을 들었지만 유식학에서는 선, 악, 무기 셋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의념의 시비 둘을 분별하거나 또는 의념의 선악과 무기 셋을 구별하거나 모두 정식(情識)이며, 전식성지(轉識成智)의 지(智)는 아닙니다. 따라서 양지를 오해하였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왕양명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존천리 거인욕의 성의(誠意)공부는 정식(情識)에 머물고 있으며 성인이 되는 입성(入聖)공부가 아니라고 반성한 것입니다. 이 문제는 왕양명이 56살 가을에 사구교(四句敎)를 거론하였던 심각한 문제와 연관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왕양명이 상분(相分)의 의념과 견분(見分, 실제로는 자증분)의 양지를 구분하라고 강조하였다는 것입니다. 왕양명은 상분이라는 의념을 유식학처럼 둘로 구분하였습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심소법에 해당하는 독영경(獨影境)과 실제 사물을 상대하여 떠오른 의념에 해당하는 대질경(帶質境) 둘로 구분하여 설명하였습니다. 둘 모두 상분에 해당합니다. 아무튼지 왕양명은 상분의 의념과 자증분의 양지를 구분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자가 「관심론(觀心論」에서 본심론(本心論:“本心以窮理”)에 근거하여 거울이 거울을 비출 수 없다는 비유(칼이 다른 물건을 자를 수 있지만 칼 자신을 자를 수 없고, 손가락으로 다른 것을 가리킬 수 있지만 손가락 자신을 가리킬 수 없다는 비유와 같음)를 들어 이심론(二心論:以心觀心)을 극구 부정하였습니다. 주자는 유가와 불교의 심성론을 구분하여 유가는 본심론이 있고 본심론의 핵심은 사물을 주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식유경(有識有境)의 심경(心境)론을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마음을 견분과 상분 둘로 구분하고 다시 자증분이 견분을 검증하는 관심(觀心) 수양공부를 선학(禪學)라고 맹렬하게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주자는 일심론에 근거하여 사량좌(謝良佐)와 호굉(胡宏)을 비롯하여 육상산까지 모두 선학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양명은 이심론을 부활시켰습니다. 왕양명은 유식학에서 말하였듯이 등불은 외부 사물들을 밝혀주고 동시에 등불 자신도 밝혀준다는 비유처럼 마음은 마음 자신도 밝혀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증분에 해당하는 양지입니다. 양지의 역할과 기능은 바로 격물입니다. 따라서 명나라 말기에 유식학을 연구하였던 양명학자들은 양지가 자증분이라고 간주하였던 까닭입니다.
둘째, 위양필이 체면이나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경우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왕양명은 위양필이 아직 양지를 철저하게 깨닫지 못하여 지행합일을 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서도 의념을 바로잡겠다는 결심이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심을 강화시키는 성절전일(誠切專一)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위양필은 뒤에 성절전일을 좌우명으로 삼고 본체를 깨달으려는 수양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결국에 왕양명은 위양필이 양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였다고 평가하였는데, 이것은 위양핑이 양지를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왕양명 평가를 참고하여 위양필이 강우학파에서 차지하는 학술적 지위도 평가하여야합니다.
셋째, 왕양명은 위양필이 아직 양지를 깨닫지 못하였다고 평가하였고 성절전일(誠切專一)한 학술태도를 일러주었습니다. 위양필은 양지를 깨닫기 위하여 본체와 공부의 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하였습니다. 본체를 깨달은 뒤부터 수양공부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본체를 깨닫지 이전에는 수양공부라고 말하기 어렵고 다만 불교에서 말하는 자량위(資糧位)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양필은 여러 서신에서 정명도와 왕양명의 가르침을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정명도의 가르침에서는 본체를 깨달은 뒤에는 본체의 자연(自然)입니다. 본체를 깨달은 뒤에는 본체가 스스로 수양공부를 작동시킨다는 뜻입니다. 왕양명의 가르침에서는 본체에 도달하여 합치되었을(合着) 때부터 수양공부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본체에 완전히 도달하였을(全着) 때부터 수양공부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왕양명을 찾아와서 배우고 있던 주득지(朱得之)도 왕양명이 제시한 본체와 수양공부의 관계에 관한 어록을 기록하였는데, 위양필이 기록한 것과 일치합니다. 중요한 것은 왕양명이 만년에 본체가 공부이고(本體卽工夫) 공부가 본체이라는 것(工夫卽本體)입니다.
넷째, 왕양명 만년에 양지의 오해를 없애기 위하여 사구교를 제시하였습니다. 왕양명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無善無惡이 心體이고, 有善有惡이 의(意)이고, 知善知惡이 양지이고, 爲善去惡이 格物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결국에는 평소에 가르쳤던 성의(誠意)공부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정식(情識)의 작의(作意)를 양지라고 오해하였습니다. 따라서 편행(遍行)의 작의를 有善有惡이라고 설명하였고 이러한 선념(善念)과 악념(惡念)이 없는 것이 心體라고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王畿가 이 문제를 꺼냈던 것입니다. 물론 錢德洪은 이의 없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구교 문제는 사실상 작의를 양지로 오해하는 문제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참고자료:朱熹,「觀心論」:
“夫心者,人之所以主乎身者也,一而不二者也,為主而不為客者也,命物而不命于物者也。故以心觀物,則物之理得。今復有物以反觀乎心,則是此心之外復有一心而能管乎此心也。”
* 본체와 공부의 관계 참고자료:
위양필 기록:
明道(程明道)云:“良知良能,存久自明,不待窮索。”是固本體之自然,達之天下萬世,所謂由仁義行。老師(王陽明)云:“合着本體,方是工夫。”此言良是。纔加一分意思,即為二物,而非本來面目。
明道(程明道)謂:“良知良能,存久自明,不待窮索安排。”老師(王陽明)又謂:“全着工夫,方是本體。”
朱得之,『稽山承語』,卷二:
“合著本體,方是工夫。做得工夫,方是本體。”
又曰:“做得工夫,方見本體。”
又曰:“做工夫的,便是本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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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 「위양필에게 보낸 답신」(1527):
자네 아우 위양정(魏良政)이 찾아와서 나는 자네 공부가 날로 발전하는 효과를 자세하게 들었고 또한 보내준 서신을 받았는데 성인이 되겠다는 의지가 간절하다는 것을 알고 한없이 기쁩니다.
첫째, 자네가 말한 대로 “(요즘 학자들이) 정식(情識)에서 떠오르는 의념(意念)을 양지라고 간주하고 있다.” 또는 “유식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오편행(五遍行) 가운데 작의(作意)를 양지라고 여기고 본래 선천적인 양지에 따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였는데, 양지를 오해한 잘못을 잘 지적하였습니다. 상분(相分)에 해당하는 의념(意念)과 견분(見分, 실제로는 自證分을 말함)에 해당하는 양지 둘은 마땅히 분명하게 구별해야합니다. 대상(物)을 상대하여 일어나는 의념은 모두 상분에 해당하는 의(意)입니다. 의념은 옳은 것도 있고 그른 것(시비 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유식학에서는 善, 惡, 無記 셋이 있다고 말함)도 있는데, 의념의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심왕(心王, 실제로는 자증분을 말함)이 양지입니다. 양지에 따라 판단하여야만 그른 의념들을 없앨 수 있습니다.
둘째,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는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같은 걱정들은 모두 어떤 대상이던지 반드시 양지를 어떤 대상에도 관철시키겠다는 결심이 아직 정말로 절실하고 집중하여 순수하게(專一)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만약에 정말로 절실하고 집중하여 순수하게 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이런 걱정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역、訟』 “군자는 일을 벌일 때 처음부터 잘 기획한다.(君子以作事謀始。)”는 것을 잘하지 못하고 또한 가볍게 생각했다거나 상황에 따라 대충 얼버무리는 잘못도 대상에 양지를 어떤 대상에도 관철시키겠다는 결심이 아직 정말로 진실하지도 않고 집중하여 순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양지를 깨달은 것이 아직 투철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양지를 철저하게 깨달았다면 어쩔 수 없는 체면 또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양지가 잘 발휘될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체면이나 상황을 제거해버렸다면 더 이상 양지가 제거할 대상도 없습니다. 따라서 양지가 체면에 제한을 받거나 상황에 끌려 다니겠습니까? 이것은 체면과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생각(私意, 개인적 의념)에 흔들린 것이며 아직 본연의 양지를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함께 공부하는 동학들도 양지를 어떤 상황의 대상에도 관철시켜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각가지 독영경(獨影境, 人情) 또는 외부 사물에 감응한 대질경(帶質境, 物理) 둘을 양지와 상관없는 것처럼 분리됩니다. 이런 까닭 때문에 이것은 정말로 주의해야합니다.
왕양명,「答魏師說(魏良弼)」(丁亥,1527):
師伊(魏良政)至,備聞日新之功,兼得來書,志意懇切,喜慰無盡!
所云“任情任意,認作良知”,及“作意爲之,不依本來良知,而自謂良知”者,既已察識其病矣。”意與良知當分別明白。凡應物起念處,皆謂之意。意則有是有非,能知得意之是與非者,則謂之良知。依得良知,即無有不是矣。
所疑“拘於體面”,“格於事勢”等患,皆是致良知之心未能誠切專一。若能誠切專一,自無此也。凡作事不能謀始與有輕忽苟且之弊者,亦皆致(良)知之心未能誠一,亦是見得良知未透徹。若見得透徹,即體面、事勢中,莫非良知之妙用。除卻體面、事勢之外,亦別無良知矣。豈得又爲體面所局,事勢所格?即已動於私意,非復良知之本然矣。今時同志中,雖皆知得良知無所不在,一涉酬應,便又將人情、物理與良知看作兩事,此誠不可以不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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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필, 「왕양명 선생님께 올리는 글」:
아우(魏良政)가 돌아와서, 선생님께서 명예가 더욱 높아지시고 조정에서는 선생님을 등용하려는 의지가 더욱 강력해졌고 아드님(王正聰, 1526년 겨울 12월 12일 未時 출생)을 얻으셨다는 소식을 상세하게 들었습니다. 훌륭하신 스승은 반드시 하늘의 뜻에 따라 국가의 임용을 받고 착한 사람은 반드시 후손을 둔다고 합니다. 하늘의 뜻과 사람의 바람이 서로 잘 맞았으니 앞으로 우리들의 학술이 크게 발전할 것입니다.
글을 써서 서신을 보내주시고 가르침을 반복하여 일러주셔서, 저는 서신을 받들어 읽으면서 선생님께서 만나서 직접 가르쳐주시는 것 같아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보고 제가 지난날(강서성 감주 울고대 강학시기) 배운 공부가 정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수양공부가 엉성하였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보고 “군자가 일을 벌일 때 처음부터 잘 기획한다.” 또는 “가볍게 생각했다거나 상황에 따라 대충 얼버무리는 잘못”이 저의 잘못이라고 잘 지적해주셨다는 것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찌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항상 지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선생님의 가르침을 보고 “밝은 대낮에도 양지를 밝게 깨우지 못하고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고 또한 아주 짧은 순간순간에 양지가 우연히 나타나는 것도 모르는 체 살고 있다.(夢晝知晝之說)”는 선생님의 설명, 또한 “하늘의 태양이 밤낮없이 돌아가고 있듯이(通乎晝夜之道) 양지도 밤낮없이 작용하고 있다.”는 도리를 더욱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논어』에 공자께서 개천가에서 “흘러가는 물이 이렇게 흐르는구나, 밤낮없이!”라고 탄식하셨고, 『맹자』에 서자(徐子)의 물음에 맹자가 “샘물이 있는 개천물은 여름 갈수기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고, 공자께서 “대충 가볍게 넘어가는 순간에도 인(仁)을 어기지 않고 목숨이 오가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인을 어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던 뜻을 잘 이해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끊어지지 않도록 하여야만 맹자가 말한 것처럼 짧은 순간도 마음을 수습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며, 이렇게 마음을 수습하는 주체가 양지이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어리석은 제가 절강성 송양현(松陽縣)의 지현(知縣)을 맡고 있으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체면이나 상황의 제한을 받아 양지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선생님의 지극히 옳은 가르침을 받은 뒤에 지난날 잘못된 습관을 모두 버리려고 하였으나 아직도 때때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뒤에는 소급하여 고치지 못한다는 말은 지난날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지난 잘못을 소급하여 바르게 고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안연(顔淵)이 두 번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던 까닭은 본체를 끝까지 깨달았고 실제상황에도 넓게 적용하여 작은 틈새도 없었다는 것이며, 한마디로 말하여 정말로 절실하고 집중하여 순수하게 하였다(誠切專一)는 것이므로 선생님께서 일러주신 “정말로 절실하고 집중하여 순수하게 하였다.(誠切專一)”는 가르침입니다. 사량좌(謝良佐, 1050-1103)가 “인(仁) 본체는 내외가 없고, 군자는 원근(遠近)과 정조(精粗)를 불문하고 어느 것에도 깊이 사색한다.”고 말하였는데 이것도 정말로 절실하고 집중하여 순수하게 하라.(誠切專一)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오늘날 함께 공부하는 동학들도 양지를 어떤 상황의 대상에도 관철시켜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각가지 독영경(獨影境, 人情) 또는 외부 사물에 감응한 대질경(帶質境, 物理) 둘이 양지와 상관없는 것처럼 분리됩니다.”고 일러주신 가르침을 묵묵히 판단해보니 “정말로 절실하고 집중하여 순수하게 하라.(誠切專一)는 것을 못하는 잘못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단번에 어리석은 저의 마음속을 완전하게 스캔하셨습니까? 어떻게 조금도 숨겨진 것이 없이 스캔하셨습니까?
최근에 저보(邸報)를 보고 대학사 비굉(費宏, 1468-1535)과 석보(石珤, 1464-1528) 두 분이 2월에 사직하셨고, 양일청(楊一清,1454-1530, 號邃庵)이 반드시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고, 뒤를 이을 후임자는 반드시 오(吳) 모씨와 가영(賈詠, 1464-1547) 두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번에 북경에 올라가시면 조정은 반드시 선생님께 관직에 임명하실 것이지만, 선생님께서는 관직을 하셔도 되고 안 하셔도 됩니다. 저의 생각에는 여러 대학사들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도 괜찮고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 또는 육부(六部)에 결원이 있는 자리에 임명 받으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북경에 올라가셔서 요순시대의 정치를 회복하셔야하며 높은 관직을 얻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황제를 교화시키셔야하는데 아마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가정황제는 왕양명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못난 저는 송강현 지현을 맡았지만 덕성과 재능이 부족하여 하늘의 뜻을 따르지도 못하고 백성들의 바람에도 영합하지 못하고 있는데, 가뭄이 닥치고 굶주린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기에 보살펴서 구제하고 있지만 아주 힘듭니다. 다행히 보리(大麥)와 밀(小麥)이 잘 익어서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절강성 송양현(松陽縣)에 또 전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군대를 다시 징발하는데 갱도(坑道) 파는 병력(송양현에는 銀銅鉛을 캐는 광산이 많기에 갱도 파는 인력이 있음. 『松陽縣志』, 권1, 「坑冶」)은 송양현에서 징발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전쟁과 기근에 관하여 “자로(子路)는 3년을 다스리면 용감한 군대도 만들고 도의를 아는 풍속도 이룰 수 있다.”(『論語、先進』)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핵심요지를 알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선생님께서 핵심요지를 모두 가르쳐주셔서 저의 큰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저는 크게 기쁠 것입니다.
魏良弼,「奉陽明王先生」:
小价來,備聞老師譽處益隆,朝廷向用之意益篤,公子發祥。大德必受命,仁者必有後,天道人道,同符合轍,吾道亨泰,指日而待也。
既蒙手教下臨,誨諭諄復,捧讀皆如老師耳提面命,心志益覺有進。於此益知向之所問學未精,而工夫疏略。於此知“作事不能謀始”、“苟且輕忽之弊”,深中(愚)生之病,敢不拜命佩服?於此益知“夢晝知晝”之說、“通乎晝夜”之道,而知“川上之嘆”、“水哉”之稱、“造次必於是,顛沛必於是”,而無一毫間斷,方才是心無一刻不收,而所致者皆良知也。
不肖居此,自慚無補於生民,局於體面、事勢。蓋聞老師至教,欲得盡去昔日之陋,而時有不可為,殊不知過於前者,不可追於後而改之者,謂不復踵前日之病云耳,非謂追前而改正之也。顏子之不貳過,只是知得透徹、致得周遍、無一毫罅隙可投,只是一個誠切專一,即老師所謂“誠切專一”。上蔡謂:“仁者心無内外,遠近精粗,君子無入不自得也。”只是一個誠切專一。
又蒙示“今時同志中,雖皆知得良知無所不在,一涉應酬,又將人情、物理與良知看作兩事”,靜言思之,深坐此病,豈老師經歷愚生腹中查刷一遍過來?何無一毫遁情如此?
近得邸報,費(費宏)、石(石寶)二老先生去位,繼之者必邃庵(楊一淸)也,後此必吳、賈(賈詠)二先生也。老師此行,朝廷必有以處,老師無可無不可也。愚謂繼諸公之後亦可,補府部之缺亦可,第欲得此道之行,回古風於唐虞,非得位,得君轉移,終覺難也。
不才叨此下邑,德薄才疏,不能上順天心,下副民望,遭此荒旱,飢口嗷嗷,撫字賑恤,頗覺疲困。幸賴二麥穰穰,生民有濟。而平陽又報有警,師旅又興,坑兵不調於松陽矣。思古人師旅、飢饉,“比及三年,有勇知方”之說,展轉再三,莫究其所旨歸也。惟老師終教之,不勝大願。
참고자료:
* 『論語、子罕』:“子在川上曰:‘逝者如斯夫,不舍晝夜。’”
『孟子、離婁下』:“徐子曰:‘仲尼亟稱於水,曰:“水哉水哉!” 何取於水也?’ 孟子曰:‘原泉混混,不舍晝夜;盈科而後進,放乎四海。有本者如是,是之取爾。苟爲無本,七八月之間雨集,溝澮皆盈其涸也,可立而待也!故聲聞過情,君子恥之。’”
* 『論語、里仁』:“君子無終食之間違仁,造次亦如是,顛沛亦如是。”
* 『王陽明全集』,卷一:“蕭惠問死生之道,先生曰:‘知晝夜即知死生。’問晝夜之道,曰:‘知晝則知夜。’曰:‘晝亦有所不知乎?’先生曰:‘汝能知晝!懵懵而興,蠢蠢而食,行不著,習不察,終日昏昏,只是夢晝。惟息有養,瞬有存,此心惺惺明明,天理無一息間斷,才是能知晝。這便是天德,便是通乎晝夜之道而知,更有甚麽死生?’”
* 公子發祥:왕양명 1526년 겨울 12월 12일 未時에 아들 王正聰을 얻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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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魏良弼의 학술주장 자료:
明道(程明道)云:“良知良能,存久自明,不待窮索。”
老師(王陽明)云:“合着本體,方是工夫。”
魏良弼,『太常少卿魏水洲先生文集』,卷三,
「寄王真庵、戚南玄書」:
別來聞高擢,深喜吾道得人,惟不知真庵所得。此心懸懸,山居孤寂,有疑與問,亦惟形影自作商量耳。明道云:“良知良能,存久自明,不待窮索。”是固本體之自然,達之天下萬世,所謂由仁義行。窮索安排,固已墮於外道。“存”之一字,恐已涉於窮索。只一“存”字,覺非本體之流行矣。循其性之自然,本無爲也。老師云:“合着本體,方是工夫。”此言良是。纔加一分意思,即為二物,而非本來面目。困勉之資,去道頗遠。一念真切,即此而在,不能時時如是,故加困勉,則固非循其性之自然,又焉能合着本體而謂之工夫耶?悠悠我思,遠莫能致,附此請教。
魏良弼,「復南野歐陽宗伯」:
夫學有疑有問,亦惟形影自作商量耳。明道謂:“良知良能,存久自明,不待窮索安排。”是固天性自然,達之天下萬世無二,所謂由仁義行者也。窮索安排,固已墮於外道,“存”之一字,恐亦非自然之流行矣。“率性之謂道”,循其自然之良知,即謂之道,本無爲也。老師又謂:“全着工夫,方是本體。”困勉之資,不免有為,安所致其本體之知?曰困曰勉,非所謂安排?不免墮於窮索。而言久存者何物?所謂良知良能又何物也?一貫之學,不免為二物矣。
魏良弼,「寄大宗伯歐南野年兄」:
別來無由親炙,某心甚懸懸。此學有疑有問,亦唯形影自作商量耳。明道謂:“良知良能,存久自明,不待窮索安排。”是固天性之自然,達之天下萬世無二,所謂由仁義行者也。窮索安排,固已墮於外道;“存”之一字,恐亦非自然之流行矣。率性之謂道,循其自然之良知,即謂之道,本無爲也。老師又謂:“全着工夫,方是本體。”困勉之資,不免有爲,安所致其本體之知?曰困曰勉,非所謂安排?不免墮於窮索爾。舍窮索而言久存者何物?所謂良知良能者,又何物也?一貫之學,尚不免為二物矣。山居寂寥,覺者甚寡,仰望吾兄,遠莫能致。適因王生,附此請教。風便幸盡言以告。
魏良弼,「答念庵羅太史」:
先師謂“良知存乎心悟”,悟由心得,信非講求得來。用志不分,乃凝於神;神凝,知自致耳。要得神凝,須絕外誘。固非頑空打坐,亦非歌舞講求,要自有悟處。知尊諭入頭血脉,乃為實得,乃為直致,乃為克己復禮,乃為持志養氣。信古人不欺我也。
魏良弼,「語錄」,示諸生語凡十四條
十三:
或問:先生之學,只是致良知。不知先儒許多作用,如主敬、窮理等語,亦可用否?曰:千蹊萬徑,皆可適用,豈不可用?但致良知之訣,不必外求字樣。凡爲人者,孰無良知?細體認之,無時無處莫非良知感觸,但人未能識透得。人皆可為堯舜,因無堅確必為聖人之志,不能契悟此良知之體,便昏惰過了此生。倘有大見識、大志氣、大契悟,則良知炯然,致之自不容已。此實作聖之功、易簡可久之道也。較諸窮理主敬等語,外添字樣,一時不見頭面,如吃饅頭不即見餡,此賢人之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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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得之,『稽山承語』,卷二:“合著本體,方是工夫;做得工夫,方是本體。又曰:做得工夫,方見本體。又曰:做工夫的,便是本體。”
『傳習錄拾遺』:
先生曰:“合著本體的,是工夫;做得工夫的,方識本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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