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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 55살 중앙정치에 대한 입장과 56살 양일청의 추천을 사양하였던 마음

작성자이경룡|작성시간19.08.14|조회수49 목록 댓글 0



왕양명 55살 중앙정치에 대한 입장과 56살 양일청의 추천을 사양하였던 마음

2019814

 

* 왕양명은 55(1526)에 양일청(楊一淸)이 이부 상서로서 내각에 복직하는 것을 알고 양일청에게 서신을 올렸습니다. 이 서신에서 왕양명은 당시 대학사 수보 비굉(費宏, 1468-1535)이 조정의 권한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설사 양일청이 내각에 들어가더라도 별다른 할 일이 없고 다만 나중에 내각이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공동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평론하였습니다. 글의 내용은 왕양명이 비굉을 아주 몹쓸 소인으로 여기고 미워하였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왕양명은 양일청이 내각에 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이미 들어갔을 때는 왕양명은 양일청에게 아주 높은 평가기준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렇게 높은 기준은 오히려 왕양명 자신이 내각에 들어간다면 실현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왕양명이 양일청에게 요구한 높은 기준은 사실상 왕양명이 평소에 갖고 있던 리더십을 잘 보여줍니다. 이것을 왕양명의 리더십이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왕양명 56살에 양일청이 북경에 임용되도록 추천하였으나 왕양명은 끝내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왕양명 서신에서 보여준 태도이며 왕양명의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왕양명은 북경에서 병부 상서직을 받아 내각에 들어가서 국정을 맡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비굉의 반대에 막혀서 실현시킬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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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청(楊一清, 1454-1530)

비굉(費宏, 1468-1535)

왕양명(王陽明, 1472-1529)

 

* 아래 서신의 연도에 관하여 왕양명 연보는 가정 2癸未年(1524)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속경남 선생은 왕양명 연보 장편(1771)에서 가정 55월 경자(庚子)일에 양일청이 입각한 사료에 근거하여 가정 5丙戌年(1526)이라고 고쳤습니다.

 

* 양일청(楊一清, 1454-1530)의 내각 경력

1차 임용1515년 윤415168

2차 임용1526615299

 

양일청은 정덕 10(1515) 4월에 이부 상서로서 무영전 대학사가 되어 내각에 들어왔고 이듬해 8월에 사직하였습니다. 다시 가정 5(1526) 5월에 이부 상서와 무영전 대학사에 복직하여 내각에 들어왔고 8월에 근신전 대학사가 되었고, 가정 8(1529) 9월에 사직하였습니다.


그런데 석서가 황제 앞에서 양일청과 비굉을 동등하게 대우하여야한다고 말하며 비굉을 희롱하였지만 황제는 오히려 비굉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양일청의 입각과 승진은 아무래도 석서의 영향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던 비굉의 권력은 석서와 양일청 모두 능가하였습니다. 양일청은 석서가 왕양명을 북경 관직에 추천하고 있다는 의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양일청은 이듬해 가정 6년에 직접 왕양명을 추천하였으나 왕양명은 사양하였습니다. 왕양명은 비굉이 반대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明史』,109,「宰輔年表()」:

正德十年乙亥(楊一清)閏四月吏部尚書兼武英殿大學士入

正德十一年丙子(楊一清)八月致仕

 

明史』,110,「宰輔年表()」:

嘉靖五年丙戌(楊一清)五月復吏部尚書武英殿大學士加少師仍兼太子太傅入七月加兼太子太師謹身殿大學士

嘉靖六年丁亥(楊一清)八月晉左柱國華蓋殿大學士

嘉靖八年己丑(楊一清)九月致仕


國榷』,卷五十二

嘉靖五年五月庚子太子太傅提督陝西兵部尚書兼左都御史楊一清復吏部尚書武英殿大學士進少師直閣席書一清既少師則殿名當遞轉費宏欺靳上以手定不之改

 

가정 55월 경자일에 태자태보병부 상서 겸 좌도어사 양일청이 이부 상서 겸 무영전 대학사에 복직하였고 소사를 더하여 내각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서 석서가 양일청도 소사가 되었으니까 전각(殿閣) 명칭도 바꾸어야합니다.”고 말하면서 비굉을 희롱하였다. 함께 있던 가정황제가 전각 명칭을 고치지 말라고 손짓하여 고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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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청 내각 원로에게 올린 글(2)」:

 

얼마 전에 서신을 올렸는데 날짜를 계산하면 벌써 받으셨을 것입니다.

 

당신(楊一淸)께서 내각(內閣)에 들어가셔서 국가권력을 잡으신다니, 천하의 관원들과 지식인들 모두 기뻐하며 웃는 얼굴로 서로 축하하고 있는데 천하의 태평이 곧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의 문하생으로서 정말로 당신을 걱정하는데, 천하의 태평이 아주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어려움을 구제해야하는데, 오늘 당신 이외에는 마땅한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당신께서 막중한 임용을 회피하시고 싶어도 피할 수 없으십니다. 1만 가마를 싣는 커다란 배의 키는 한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데, 속도와 방향을 어찌 당신 혼자 마음대로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일을 처리할 때는 당신 혼자 배를 조정하는 권력을 갖지 못하시고, 일이 실패하였을 때는 배를 엎은 죄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받아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천하의 태평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배를 책임지고 조정하는 전권을 갖지 못하면서도 배가 엎어지면 공동책임을 져야한다면 미리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좋지만, 당신께서는 회피하실 수도 없습니다. 임용을 회피할 수 없고 전권을 가질 수도 없다면 공동책임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지만, 당신께서는 끝내 공동책임조차 면하실 수 없습니다.

 

천하의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과연 끝까지 어찌 해결할 수 없겠습니까? 천하의 온갖 걱정을 맡았을 때에 천하의 권한을 잡을 수 있습니다. 천하의 권한을 잡았을 때에 천하의 걱정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권한을 잡지 못하였을 때는 권한을 잡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나 권한이 나에게 오고 있을 때에는 권한을 손에 쥐는 것이 아주 쉽습니다. 커다란 배가 평온할 때는 사람들이 조종하겠다며 서로 다투는데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람과 파도가 세어 엎어질 듯하고 앞을 예측할 수 없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여 놀라고 기운도 잃고 살기도 바쁠 때는 누가 다시 배를 조정하겠다고 나서서 다투겠습니까? 이때 나서서 배를 조정하는 권한을 혼자 맡는다면, 다투었던 사람들은 맡은 사람에게 의지하고 다른 소리를 내지 않기에, 어려운 일을 잘 해결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차하게 남들처럼 의기 소침한다면 분명히 함께 물에 빠져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까닭에 권한이 나에게 오고 있을 때 권한을 손에 쥐는 것이 쉽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옛날 지도자들은 상황(物情)의 흐름을 잘 통찰하였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잘 잡았고, 상황 뒷면에 있는 변화의 원리를 잘 알기 때문에 상황을 유리하게 잘 이끌어갔습니다. 그래서 움직일 때마다 성공하였고 어느 일을 하더라도 길하여 이롭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은나라의 이윤(伊尹)과 주나라의 주공(周公, 姬旦)이 이렇게 하였습니다. 한나라와 당나라에서도 훌륭한 지도자들은 대체로 이와 같이 비슷하게 하였습니다. 한나라와 당나라의 지도자들은 비록 학술이 이윤과 주공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백성을 안정시켜 국가를 튼튼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처세는 후세에 자기 혼자 살려고 하거나 책임을 면해보려고 힘쓰는 못난 지도자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권력은 천하의 이익과 손해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소인이 권력을 훔치면 나쁜 죄악을 많이 지을 것이고, 군자가 권력을 사용하면 좋은 희망을 이루어줄 것입니다. 그래서 군자는 국가권력에서 하루라도 떠날 수 없고, 소인은 국가권력에 하루라도 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천하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데 권력을 쥐지 못하였다는 것은 마치 천하에서 가장 좋은 보검의 칼날을 쥐고 남에게 칼자루를 맡긴 것과 같으니 다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군자는 권력을 잡는 것도 올바른 원칙이 있습니다. 지성(至誠)을 바탕으로 삼아 자신의 도덕심을 세우고, 좋은 사람들을 늘려서 나를 돕는 착한 사람들의 세력을 늘려갑니다. 어떤 것도 받아들이는 커다란 포용력을 보여주어, 사람들이 누구나 건의하고 도와줄 수 있도록 언론을 개방합니다.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확대시켜서, 사람들이 누구나 기분을 평온하게 갖도록 하여 상대방을 경계하거나 경쟁하지 않도록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는 도덕적 절개를 나타내어, 사람들이 누구나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바로잡아줍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기민함을 갖고 상황을 파악하여, 간신들이 꼼짝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사람들이 반드시 나에게 의지하도록 하는 지혜를 나타내서, 사람들의 신임을 받습니다. 공개적으로 일을 처리하여, 내가 아래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높여주고(내가 어렵고 힘든 일을 내가 맡는다는 뜻), 겸손하게 공적을 양보하여, 내가 뒤에 있으면서 사람들이 먼저 포상을 받도록 합니다. 이렇게 하면 공적이 천하에서 가장 크더라도 아무도 시기질투하지 않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을 착하게 하고 이익이 되게 하더라도 아무도 나와 경쟁하려고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당신께서 잘하실 수 있는 것이며, 평소에 배양하여 가지신 것입니다. 다만 어떨 결에 어려운 천하를 맡아 권한을 잡으셨습니다. 어려운 천하를 맡는 것을 어찌 군자가 회피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맡으셨으니까, 천하의 실패책임도 끝내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실 테니 실패책임까지도 맡으셔야합니다. 천하의 일을 맡아 잘해야만, 천하의 실패책임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인들은 책임을 요행히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갖가지 잔꾀를 내어 회피하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더 큰 재앙을 만들어 끝내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책임을 맡는 사람은 오직 충성심이 강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군자이어야 하며 소인은 안 됩니다.

 

저는 당신께서 추천해주시는 은혜를 입었지만 작은 어리석음이라도 보답해드릴 수 없어서 못난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바라건대 저의 진심을 살펴보시고 저의 무능함을 불쌍하게 여겨주시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寄楊邃庵閣老()」:

 

前日嘗奉啟計已上達

自明公進秉機密天下士夫忻忻然動顏相慶皆爲太平可立致矣門下鄙生獨切生憂以爲猶甚難也亨屯傾否當今之時舍明公無可以望者則明公雖欲逃避乎此將亦有所不能然而萬斛之舵操之非一手則緩急折旋豈能盡如己意臨事不得專操舟之權而僨事乃與同覆舟之罪此鄙生之所謂難也夫不專其權而漫同其罪則莫若預逃其任然在明公亦既不能逃矣逃之不能專又不得則莫若求避其罪然在明公亦終不得避矣

天下之事果遂卒無所爲歟夫惟身任天下之禍然後能操天下之權操天下之權然後能濟天下之患當其權之未得也其致之甚難而其歸之也則操之甚易萬斛之舵平時從而爭操之者以利存焉一旦風濤顛沛變起不測眾方皇惑震喪救死不遑而誰復與爭操乎於是起而專之眾將恃以無恐而事因以濟苟亦從而委靡焉固淪胥以溺矣故曰其歸之也則操之甚易此也古之君子洞物情之向背而握其機察陰陽之消長以乘其運是以動必有成而吉無不利旦之於商周是矣其在漢蓋亦庶幾乎此者雖其學術有所不逮然亦足以定國本而安社稷則亦斷非後世偷生苟免者之所能也

夫權者天下之大利大害也小人竊之以成其惡君子用之以濟其善固君子之不可一日去小人之不可一日有者也欲濟天下之難而不操之以權是猶倒持太阿而授人以柄希不割矣故君子之致權也有道本之至誠以立其德植之善類以多其輔示之以無不容之量以安其情擴之以無所競之心以平其氣昭之以不可奪之節以端其向神之以不可測之機以攝其奸形之以必可賴之智以收其望坦然爲之下以上之退然爲之後以先之是以功蓋天下而莫之嫉善利萬物而莫與爭

此皆明公之能事素所蓄而有者惟在倉卒之際身任天下之禍決起而操之耳夫身任天下之禍豈君子之得已哉既當其任知天下之禍將終不能免也則身任之而已身任之而後可以免於天下之禍小人不知禍之不可以幸免而百詭以求脫遂致釀成大禍而已亦卒不能免故任禍者惟忠誠憂國之君子能之而小人不能也

某受知門下不能效一得之愚以爲報獻其芹曝伏惟鑒其忱悃而憫其所不逮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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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청 내각 원로에게 올린 글(3)(1527, 왕양명 56)

 

제가 평소에 내각 원로의 추천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답신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이유는 제가 선생님의 문하에서 벗어나려던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지위 차이가 너무 커서 한가하고 무익한 이야기를 올려 선생님의 눈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의심받은 일은 현명한 사람이 하지 않는데, 저는 자신이 현명하지 못하여 서신을 올리는 것을 한심스럽게 여깁니다. 저는 요즘 병이 깊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관원으로서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며 나중에 죄를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원로께서 추천해주셨는데, 이것은 선생님께서 아래 사람을 깊이 보살펴주시는 정성을 다하신 것인데, 제가 어찌 감격스런 고마움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저의 능력과 분수를 재보고 따져보아도 욕심 때문에 구차하게 관직을 얻는다면, 나중에 잘못되었을 때는 선생님께서 사람을 잘못 추천하셨다는 처벌을 받게 하는 걱정을 끼칩니다. 이것은 국가의 관직 임명을 받고 놀라서 어찌할 줄 모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삼가 사양하는 상주문을 올려 현재 맡고 있는 남경 병부 상서로 퇴직하길 바랍니다. 바라건대 선생님께서 저의 재능이 부족한 것을 독려해주시고 어떻게든지 제가 사직하도록 도와주시고, 제가 퇴직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면 남은여생은 선생님께서 주신 것이니 고마운 감격스러움은 끝이 있겠습니까!

 

제가 외람된 것도 잊고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말씀드리며, 엎드려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寄楊邃庵閣老()(丁亥, 1527, 왕양명 56)

 

某素辱愛下然久不敢奉狀者非敢自外於門牆實以地位懸絕不欲以寒暄無益之談塵瀆左右

蓋避嫌之事賢者不爲然自歎其非賢也非才多病待罪閑散猶懼不堪乃今復蒙顯擢此固明公不遺下體之盛某亦寧不知感激但量能度分自計已審貪冒苟得異時僨事將爲明公知人之累此所以聞命驚惶而不敢當耳

謹具奏辭免祈以原職致仕伏惟明公因材而篤於所不能特賜曲成俾得歸延病喘於林下則未死餘年皆明公之賜其爲感激寧有窮已乎

懇切至情不覺瀆冒伏冀宥恕不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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