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 55살에 구양덕에게 일러준 양지의 昭明靈覺와 自慊
2019년 8월 21일
* 歐陽德(1496-1554)은 20살(1517)에 향시에 합격한 뒤에 2번 진사시험을 포기하고, 왕양명이 강서성 감주(贛州) 울고대(鬱孤臺)와 통천암(通天岩)에서 정좌를 가르칠 때 찾아와서 배웠습니다. 구양덕은 1523년(구양덕 28살, 왕양명 52살)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안휘성 육안주(六安州) 지주로 부임하여 지방행정에 몰두하였고 1527년(구양덕 32살, 왕양명 56살) 북경에 올라가서 편수(編修)를 지내며 동학들과 함께 공부하였고 또한 왕양명을 위하여 로비활동도 하였습니다.
아래 서신은 구양덕이 육안주 지주를 지낼 때 왕양명이 답신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구양덕은 서신에서 1521-1522년(구양덕 26-27살, 왕양명 50-51살) 이전에는 침공수적(沈空守寂)의 병에 걸렸고 최근에는 안배사색(安排思索)의 병에 걸렸다고 실토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구양덕은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이전에는 정좌하여 마음의 본체를 깨달으려고 노력하였고, 이후에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많은 문제들을 따져보고 계획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좌할 때는 양지 깨달음에 치중하였고 관직생활하는 동안에는 견문(見聞)에 치중하였기 때문에 양지와 견문의 관계에 관하여 견문이 양지의 발용(發用)이라고 여기고 왕양명 선생에게 여쭈었습니다. 양양명은 여전히 양지에 치중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양덕의 입장 변화는 사실상 왕양명이 50살에 강서성 감주에서 절강성 소흥부로 돌아온 뒤에 가르침이 바뀌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왕양명이 대답한 글에서 양지의 소명영각(昭明靈覺)을 강조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정좌하여 공적(空寂)에 깊이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아무런 것도 생각하지 않는 상태(無思無慮)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양지의 밝기가 더욱 밝아집니다. 그러나 일생생활에서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를 따지고 계획하는 생각(思慮)을 해야합니다. 생각하는 경우에 양지의 역할은 생각하는 주인공(心王, 見分)을 검증하는데, 양지는 해가 높이 떠서 대낮처럼 밝은 상태에서 생각하는 판단작용(心王, 見分)이 오류 없이 제대로 판단하는지를 검증합니다. 왕양명은 양지가 판단작용을 아주 밝게 검증하는 것(昭明靈覺)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왕양명은 양지가 판단작용을 밝게 검증하는 역할을 양지의 발용유행(發用流行)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이 바쁘더라도 틈틈이 정좌하여 양지를 유지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불교 참선은 정혜(定慧)를 겸수하라고 강조합니다. 왕양명이 정좌하여 공적(空寂)에 깊이 들어가라고 가르친 것은 선정(禪定)을 강조한 것이고, 출정(出定)하여 사려할 때에는 양지가 판단작용을 밝게 검증하라는 것은 지혜(智慧)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를 강조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 각조(覺照)입니다. 왕양명이 구양덕 경우에는 정좌하여 양지를 잘 유지하라고 일렀던 것은 정혜를 겸수하되 지혜를 더욱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양덕은 양지와 사려의 관계를 몰랐기 때문에 단지 양지와 사려에 관하여 지행합일의 공부라고 보았습니다. 왕양명이 답신에서 잘 설명해주었지만 구양덕의 다음 글을 보면 그는 끝내 왕양명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왕양명이 세상을 떠나고 한참 뒤에 구양덕은 다시 왕용계를 찾아가서 정좌를 배웠습니다.
구양덕이 지방관으로서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구양덕은 겨우 20대 후반의 지방관으로서 산적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어렵고 또한 노련한 서리(胥吏, 아전)들의 농간에 속지 않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구양덕은 행정사무를 지칠 때까지 처리하며 견문(見聞)의 지식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또한 서리들에게 속지 않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여쭈었습니다.
왕양명 대답은 간단합니다. 열심히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동기가 업적과 사익의 공리(功利)인지 아니면 떳떳한 것인지(自慊)를 되물었습니다. 견문의 지식공부를 하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 동기가 공리였다면 양지가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고, 양지가 작동하였다면 마음이 떳떳하였을(自慊) 것이라고 검증방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또한 남에게 속지 않으려고 미리 방어하거나 남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도 일종의 사기(詐欺)이고, 또한 무방비 상태에서 속는 것도 바보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따라서 양지가 항상 자각상태에 있으면 상대방이 속이려고 하는 순간에 양지가 알아채어 사기를 막는다고 쉽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양지의 각조(常覺常照)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물론 양지를 깨달았더라도 현실생활에서 항상 각조상태를 유지하면서 사기를 발견하고 막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구양덕의 화두는 사실상 양명후학의 분화를 말합니다. 공적(空寂)을 강조하는 수양공부로 가려는 사람들이 왕용계의 사무설(四無說)와 강우학파의 귀적(歸寂)입니다. 또한 사려를 밝게 검증하는 지혜를 강조하는 각조(覺照) 방향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왕용계와 나근계(羅汝芳)의 현성양지(現成良知)입니다. 사실상 구양덕은 양지를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명 후학 안에서 어떤 문파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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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歐陽德(1496-1554),字崇一,號南野。江西省 泰和縣人。
* 『傳習錄』(中):
‘錄先師手書,凡八篇。……其餘指‘知行之本體’,莫詳於「答人論學」與「答周道通」、「陸清伯」、「歐陽崇一」四書。“
왕양명,「答歐陽崇一」:
① 崇一(歐陽德)來書云:“師云:‘德性之良知,非由於聞見。若曰多聞,擇其善者而從之,多見而識之,則是專求之見聞之末,而已落在第二義。’
竊意良知雖不由見聞而有,然學者之知,未嘗不由見聞而發。滯於見聞固非,而見聞亦良知之用也。今曰‘落在第二義’,恐爲專以見聞爲學者而言。若致其良知而求之見聞,似亦知行合一之功矣。如何?”
良知不由見聞而有,而見聞莫非良知之用,故良知不滯於見聞,而亦不離於見聞。孔子云:“吾有知乎哉?無知也。”良知之外,別無知矣。故“致良知”是學問大頭腦,是聖人教人第一義。今云專求之見聞之末,則是失卻頭腦,而已落在第二義矣。近時同志中,蓋已莫不知有致良知之說,然其功夫尚多鶻突者,正是欠此一問。大抵學問功夫只要主意頭腦是當,若主意頭腦專以致良知爲事,則凡多聞多見,莫非致良知之功。蓋日用之間,見聞酬酢,雖千頭萬緒,莫非良知之發用流行,除卻見聞酬酢,亦無良知可致矣。故只是一事。若曰致其良知而求之見聞,則語意之間未免爲二,此與專求之見聞之末者雖稍不同,其爲未得精一之旨,則一而已。“多聞,擇其善者而從之,多見而識之”,既云擇,又云識,其良知亦未嘗不行於其間;但其用意乃專在多聞多見上去擇識,則已失卻頭腦矣。崇一於此等處見得當已分曉,今日之問,正爲發明此學,於同志中極有益。但語意未瑩,則毫厘千里,亦不容不精察之也。
② 來書云:“師云:‘『繫』言“何思何慮”,是言所思所慮只是天理,更無別思別慮耳,非謂無思無慮也。心之本體,即是天理,有何可思慮得?學者用功,雖千思萬慮,只是要復他本體,不是以私意去安排思索出來。若安排思索,便是自私用智矣。學者之敝,大率非沈空守寂,則安排思索。’
德(歐陽德)辛、壬之歲(1521-1522)著前一病(沈空守寂),近又著後一病(安排思索)。但思索亦是良知發用,其與私意安排者何所取別?恐認賊作子,惑而不知也。”
“思曰睿,睿作聖。”“心之宮則思,思則得之。”思其可少乎?沈空守寂與安排思索,正是自私用智。其爲喪失良知,一也。良知是天理之昭明靈覺處,故良知即是天理。思是良知之發用。若是良知發用之思,則所思莫非天理矣。良知發用之思自然明白簡易,良知亦自能知得。若是私意安排之思,自是紛紜勞擾,良知亦自會分別得。蓋思之是非邪正,良知無有不自知者。所以認賊作子,正爲致知之學不明,不知在良知上體認之耳。
참고자료:
『尚書、洪範』:“思曰睿,睿曰聖。”
『孟子、告子上』:“心之官則思,思則得之,不思則不得也。”
③ 來書又云:“師云:‘爲學終身只是一事,不論有事無事,只是這一件。若說寧不了事,不可不加培養,卻是分爲兩事也。’
竊意覺精力衰弱,不足以終事者,良知也。寧不了事,且加休養,致知也。如何卻爲兩事?若事變之來,有事勢不容不了,而精力雖衰,稍鼓舞亦能支持,則持志以帥氣可矣。然言動終無氣力,畢事則困憊已甚,不幾於暴其氣已乎?此其輕重緩急,良知固未嘗不知,然或迫於事勢,安能顧精力?或困於精力,安能顧事勢?如之何則可?”
“寧不了事,不可不加培養”之意,且與初學如此說,亦不爲無益。但作兩事看了,便有病痛。在孟子言“必有事焉”,則君子之學終身只是集義一事。義者宜也。心得其宜之謂義。能致良知,則心得其宜矣,故集義亦只是致良知。君子之酬酢萬變,當行則行,當止則止,當生則生,當死則死,斟酌調停,無非是致其良知,以求自慊而已。故君子素其位而行,思不出其位,凡謀其力之所不及而強其知之所不能者,皆不得爲致良知。而凡勞其筋骨,餓其體膚,空乏其身,行拂亂其所爲,動心忍性以增益其所不能者,皆所以致其良知也。若云“寧不了事,不可不加培養”者,亦是先有功利之心,較計成敗利鈍而愛憎取舍於其間,是以將了事自作一事,而培養又別作一事,此便有是內非外之意,便是自私用智,便是義外,便有“不得於心,勿求於氣”之病,便不是致良知以求自慊之功矣。所云“鼓舞支持,畢事困憊已甚”,又云“迫於事勢,困於精力”,皆是把作兩事做了,所以有此。凡學問之功,一則誠,二則偽,凡此皆是致良知之意欠誠一真切之故。『大學』言誠其意者,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慊。曾見有惡惡臭,好好色,而須鼓舞支持者乎?曾見畢事則困憊已甚者乎?曾有迫於事勢,困於精力者乎?此可以知其受病之所從來矣。
④ 來書又有云:“人情機詐百出,禦之以不疑,往往爲所欺;覺則自入於逆億。夫逆詐即詐也,億不信即非信也,爲人欺又非覺也。不逆不億而常先覺,其惟良知瑩徹乎?然而出入毫忽之間,背覺合詐者多矣。”
“不逆不億而先覺”,此孔子因當時人專以逆詐、億不信爲心,而自陷於詐與不信,又有不逆不億者,然不知致良知之功,而往往又爲人所欺詐,故有是言。非教人以是存心而專欲先覺人之詐與不信也。以是存心,即是後世猜忌險薄者之事,而只此一念,已不可與人堯、舜之道矣。不逆不億而爲人所欺者,尚亦不失爲善,但不如能致其良知而自然先覺者之尤爲賢耳。崇一謂其惟良知瑩徹者,蓋已得其旨矣。然亦穎悟所及,恐未實際也。蓋良知之在人心,亘萬古,塞宇宙,而無不同,不慮而知,恒易以知險,不學而能,恒簡以知阻,先天而天不違,天且不違,而況於人乎?況於鬼神乎?夫謂背覺合詐者,是雖不逆人而或未能無自欺也,雖不億人而或未能果自信也,是或常有求先覺之心,而未能常自覺也。常有求先覺之心,即已流於逆億而足以自蔽其良知矣,此背覺合詐之所以未免也。君子學以爲己,未嘗虞人之欺己也,恒不自欺其良知而已。未嘗虞人之不信己也,恒自信其良知而已。未嘗求先覺人之詐與不信也,恒務自覺其良知而已。是故不欺則良知無所偽而誠,誠則明矣。自信則良知無所惑而明,明則誠矣。明誠相生,是故良知常覺常照。常覺常照,則如明鏡之懸,而物之來者自不能遁其妍媸矣。何者?不欺而誠,則無所容其欺,苟有欺焉,而覺矣。自信而明,則無所容其不信,苟不信焉,而覺矣。是謂易以知險,簡以知阻,子思所謂‘至誠如神,可以前知’者也。然子思謂‘如神’,謂‘可以前知’,猶二而言之。是蓋推言思誠者之功效,是猶爲不能先覺者說也。若就至誠而言,則至誠之妙用即謂之神,不必言“如神”。至誠則無知而無不知,不必言“可以前知”矣。
왕양명,「與歐陽崇一」(丙戌,1526):
正之(黃宏綱)諸友(王畿,錢德洪)下第歸,備談在京相與之詳,近雖仕途紛擾中,而功力略無退轉,甚難甚難!得來書,自咎真切,論學數條,卓有定見,非獨無退轉,且大有所進矣。文蔚(聶豹)所疑,良不爲過。孟子謂“有諸己之謂信”,今吾未能有諸己,是未能自信也,宜乎文蔚之未能信我矣。乃勞崇一(歐陽德)逐一爲我解嘲,然又不敢盡謂崇一解嘲之言爲口給。但在區區,則亦未能一一盡如崇一之所解者,爲不能無愧耳!固不敢不勉力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