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황제의 도교 신앙과 도사 邵元節의 立敎主靜
2019년 9월 4일
가정황제는 아버지 朱祐杬이 도교를 좋아하였던 영향을 받고, 또한 자신이 건강하지 않고 자식이 없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도교를 많이 믿었습니다. 중국 역대 황제 가운데 도교 신앙에 빠졌던 황제는 당나라 현종, 송나라 휘종, 명나라 가정황제 3명을 꼽고 있습니다.
가정 원년 9월에 황후를 비롯하여 귀인(貴人) 2명을 맞아들였습니다. 11월에는 할머니 수안황후 소씨(壽安皇后 邵氏)가 세상을 떠나자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가정 2년에는 태감 최문(崔文)의 권유를 받아 궁중에서 초재(醮齋)를 지내 재앙을 물리고 복을 빌었습니다.
가정 3년(1524, 가정황제 17살) 2월에 내각 수보 양정화(楊廷和)가 사직한 뒤에는 태감 최문의 건의를 받아들여 강서성 용호산(龍虎山) 상청궁(上淸宮) 도사 邵元節(1459-1539)을 불러들이고 도교의 초재를 관장시켰습니다. 도사 邵元節은 범문태(范文泰)를 비롯하여 이백방(李伯芳)과 황태초(黃太初) 등을 사사하여 도교의 각종 의식을 배웠습니다. 가정황제는 궁중에서 소원절을 만났고 소원절이 “입교주정(立敎主靜)”을 설명하자 가정황제가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가정 10년(1531)에는 결혼한지 10년이 되어도 후사가 없자, 도사 소원절의 말을 듣고 각종 제사를 지내며 빌었고 결국 가정 12년(1533)에 큰아들, 가정 15년(1536)에 둘째 아들을 얻은 뒤에는 도교를 더욱 신앙하였습니다.
가정 18년(1539)에 가정황제가 남순을 갈 때 소월절이 병이 나서 도중문(陶仲文, 1479-1560)을 추천하였습니다. 소원절이 8월 죽은 뒤에 도중문은 20년 동안 가정황제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가정황제의 심각한 행동은 가정 18년 9월에 일어났습니다. 9월에 가정황제는 대학사들에게 “내가 황태자에게 국사를 맡기고 1-2년 동안 조용히 정좌하여 수양공부를 한 뒤에 다시 국사를 맡으려고 한다.(朕欲命東宮監國,朕靜攝一二年,然後親政。)”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하들이 도교를 배척하는 상소문을 올려 말렸습니다.
가정 19년 10월에는 황태자가 천연두 병에 걸렸고 도사 도중문이 제사를 지냈습니다. 결국 천연두 병이 낫자 가정황제는 도사 도중문의 제사 때문이라고 여기고 도중문을 더욱 총해하였습니다.
가정 22년에는 궁궐 노비 양금영(楊金英) 등이 가정황제를 죽이려고 하였다가 실패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가정황제는 크게 놀라서 오래 살려고 많은 제사를 지냈습니다.
가정 40년 2월에는 어사 王大任、姜儆、奚鳳 등을 전국에 보내 신선술(神仙術)과 각종 부적을 만드는 서적들을 찾아오라고 시켰습니다.
가정 45년 정월에는 가정황제의 병이 낫지 않자 도가의 선약을 먹겠다고 하여 많은 신하들이 말렸습니다.
-------------------------------
참고 자료:
도사 소원절이 가정황제에게 입교주정을 설명하였다는 기록은 『명사기사본말』에서 처음 기록하였습니다. 소원절은 가정황제에게 입교주정(立敎主靜)을 주장하였는데, 사람이 학술을 세우려면 주정(主靜)공부를 해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소원절이 지은 글을 편집한 문집 『太和文集』이 남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
참고자료:
『明史』,卷三百十七,佞幸:
漢史所載佞幸,如藉孺、閎孺、鄧通、韓嫣、李延年、董賢、張放之屬,皆以宦寺弄臣貽譏千古,未聞以武夫、健兒、貪人、酷吏、方技、雜流任親暱承寵渥於不衰者也。明興,創設錦衣衛,典新軍,暱居肘腋。成祖即位,知人不附己,欲以威讋天下,特任紀綱爲錦衣,寄耳目。綱刺廷臣陰事,以希上指,帝以爲忠,被殘殺者不可勝數。英宗時,門達、逮杲之徒,並見親信。至其後,廠衛遂相表裏,清流之禍酷焉。憲宗之世,李孜省、僧繼曉以祈禱被寵任,萬安、尹直、彭華等至因之以得高位。武宗日事般遊,不恤國事,一時宵人並起,錢寧以錦衣幸,臧賢以伶人幸,江彬、許泰以邊將幸,馬昂以女弟幸。禍流中外,宗社幾墟。世宗入繼大統,宜矯前軌,乃任陸炳於從龍,寵郭勳於議禮,而一時方士如陶仲文、邵元節、藍道行之輩,紛然並進,玉杯牛帛,詐妄滋興。凡此諸人,口銜天憲,威福在手,天下士大夫靡然從風。雖以成祖、世宗之英武聰察,而嬖幸釀亂,幾與昏庸失道之主同其蒙蔽。彼第以親己爲可信,而孰知其害之至於此也。至顧可學、盛端明、朱隆禧之屬,皆起家甲科,致位通顯,乃以秘術幹榮,爲世戮笑。此亦佞幸之尤者,附之篇末,用以示戒云。
邵元節:
邵元節,貴谿人,龍虎山上清宮道士也。師事范文泰、李伯芳、黃太初,咸盡其術。寧王宸濠召之,辭不往。世宗嗣位,惑內侍崔文等言,好鬼神事,日事齋醮。諫官屢以爲言,不納。嘉靖三年,徵元節入京,見於便殿,大加寵信,俾居顯靈宮,專司禱祀。雨雪愆期,禱有驗,封爲清微妙濟守靜修真凝玄衍範志默秉誠致一真人,統轄朝天、顯靈、靈濟三宮,總領道教,錫金、玉、銀、象牙印各一。
六年乞還山,詔許馳傳。未幾,趨朝。有事南郊,命分獻風雲雷雨壇。預宴奉天殿,班二品。贈其父太常丞、母安人,並贈文泰真人,賜元節紫衣玉帶。給事中高金論之,帝下金詔獄。敕建真人府於城西,以其孫啟南爲太常丞,曾孫時雍爲太常博士。歲給元節祿百石,以校尉四十人供灑掃,賜莊田三十頃,蠲其租。又遣中使建道院於貴谿,賜名仙源宮。既成,乞假還山。中途上奏,言爲大學士李時弟員外旼所侮。時上章引罪,旼下獄獲譴。比還朝,舟至潞河,命中官迎入,賜蟒服及“闡都輔國”玉印。
先是,以皇嗣未建,數命元節建醮,以夏言爲監禮使,文武大臣日再上香。越三年,皇子疊生,帝大喜,數加恩元節,拜禮部尚書,賜一品服。孫啟南、徒陳善道等咸進秩,贈伯芳、太初爲真人。
帝幸承天,元節病不能從。無何死,帝爲出涕,贈少師,賜祭十壇,遣中官錦衣護喪還,有司營葬,用伯爵禮。禮官擬諡榮靖,不稱旨,再擬文康。帝兼用之,曰文康榮靖。啟南官至太常少卿。善道亦封清微闡教崇真衛道高士。隆慶初,削元節稱諡。
陶仲文:
陶仲文,初名典真,黃岡人。嘗受符水訣於羅田萬玉山,與邵元節善。
嘉靖中,由黃梅縣吏爲遼東庫大使。秩滿,需次京師,寓元節邸舍。寓節年老,宮中黑眚見,治不效,因薦仲文於帝。以符水噀劍,絕宮中妖。莊敬太子患痘,禱之而瘥,帝深寵異。
十八年南巡,元節病,以仲文代。次衛輝,有旋風繞駕,帝問:“此何祥也?”對曰:“主火。”是夕行宮果火,宮人死者甚眾。帝益異之,授神霄保國宣教高士,尋封神霄保國弘烈宣教振法通真忠孝秉一真人。明年八月欲令太子監國,專事靜攝。太仆卿楊最疏諫,杖死,廷臣震懾。大臣爭諂媚取容,神仙禱祀日亟。以仲文子世同爲太常丞,子婿吳浚、從孫良輔爲太常博士。帝有疾,既而瘳,喜仲文祈禱功,特授少保、禮部尚書。久之,加少傅,仍兼少保。仲文起筦庫,不二歲登三孤,恩寵出元節上。乃請建雷壇於鄉縣,祝聖壽,以其徒臧宗仁爲左至靈,馳驛往,督黃州同知郭顯文監之。工稍稽,謫顯文典史,遣工部郎何成代,督趨甚急,公私騷然。禦史楊爵、郎中劉魁言及之。給事中周怡陳時事,有“日事禱祠”語。帝大怒,悉下詔獄,拷掠長系。吏部尚書熊浹諫乩仙,即命削籍。自是,中外爭獻符瑞,焚修、齋醮之事,無敢指及之者矣。
帝自二十年遭宮婢變,移居西內,日求長生,郊廟不親,朝講盡廢,君臣不相接,獨仲文得時見;見輒賜坐,稱之爲師而不名。心知臣下必議己,每下詔旨多憤疾之辭,廷臣莫知所指。小人顧可學、盛端明、朱隆禧輩,皆緣以進。其後,夏言以下冠香葉冠,積他釁至死。而嚴嵩以虔奉焚修蒙異眷者二十年。大同獲諜者王三,帝歸功上玄,加仲文少師,仍兼少傅少保。一人兼領三孤,終明世,惟仲文而已。久之,授特進光祿大夫柱國兼支大學士俸,廕子世恩爲尚寶丞。復以聖誕加恩,給伯爵俸,授其徒郭弘經、王永寧爲高士。時都禦史胡纘宗下獄,株連數十人。二十九年春,京師災異頻見,帝以咨仲文。封言慮有冤獄,得雨方解。俄法司上纘宗等爰書,帝悉從輕典,果得雨。乃以平獄功,封仲文恭誠伯,歲祿千二百石,弘經、永寧封真人。仇鸞之追戮也,下詔稱仲文功,增祿百石,廕子世昌國子生。三十二年,仲文言:“齊河縣道士張演建大清橋,浚河得龍骨一,重千斤。又突出石沙一脈,長數丈,類有神相。”帝即發帑銀助之。時建元嶽湖廣太和山,既成,遣英國公張溶往行安神禮,仲文偕顧可學建醮祈福。明年,聖誕,加恩,廕子錦衣百戶。
帝益求長生,日夜禱祠,簡文武大臣及詞臣入直西苑,供奉青詞。四方奸人段朝用、龔可佩、藍道行、王金、胡大順、藍田玉之屬,鹹以燒煉符咒熒惑天子,然不久皆敗,獨仲文恩寵日隆重,久而不替,士大夫或緣以進。又創二龍不相見之說,青宮虛位者二十年。
三十五年,上皇考道號爲三天金闕無上玉堂都仙法主玄元道德哲慧聖尊開真仁化大帝,皇妣號爲三天金闕無上玉堂總仙法主玄元道德哲慧聖母天後掌仙妙化元君,帝自號靈霄上清統雷元陽妙一飛玄君,後加號九天弘教普濟生靈掌陰陽功過大道思仁紫極仙翁一陽真人元虛玄應開化伏魔真忠孝帝君,再號太上大羅天仙紫極長生聖智昭靈統元證應玉虛總掌五雷大真人玄都境萬壽帝君。明年,仲文有疾,乞還山,獻上曆年所賜蟒玉、金寶、法冠及白金萬兩。既歸,帝念之不置,遣錦衣官存問,命有司以時加禮,改其子尚寶少卿世恩爲太常丞兼道錄司右演法,供事真人府。
仲文得寵二十年,位極人臣。然小心慎密,不敢恣肆。三十九年卒,年八十餘。帝聞痛悼,葬祭視邵元節,特諡榮康惠肅。世恩後至太常卿。隆慶元年坐與王金偽制藥物,下獄論死。仲文秩諡亦追削。
-----------------------
『명사기사본말(明史紀事本末)』,卷52,「세종이 도교를 숭상하다(世宗崇道教)」:
가정 2년 여름 4월에 난전(暖殿) 태감 최문(崔文)이 제사를 지내자고 황제를 유혹하여 건청궁(乾淸宮) 등 여러 곳에 제단을 세우고 밤낮으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또한 환관 10 여명에게 도교의 경전과 제례를 배우도록 시키고 상금을 많이 내려주었습니다. 대학사 양정화(楊廷和)와 구경(九卿) 가운데 교우(喬宇) 등이 상소문을 올려 “승려와 도사들을 멀리하시고 제사를 멈추시라.”고 아뢰었다. 급사중 주양(周琅)、장숭(張嵩)、장여(張汝)、안반(安盤) 등도 상소문을 올려 엄격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가정황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름 윤4월에 가정황제가 제사를 중지시켰습니다. 이 때 급사중 정일붕(鄭一鵬)이 상소문을 올려 “제가 제사 비용을 담당하는 광록시(光祿寺)를 점검하였더니 정덕황제가 돌아가시고 가정황제께서 즉위하신 정덕 16년부터 궁궐에서는 일상적인 식비 이외에 요구한 비용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제사를 자주 지내고 각종 비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건청궁과 곤녕궁을 비롯하여 여러 궁에 제단을 만들었고, 서천(西天)、서번(西番)、한경(漢經) 등 여러 창고 및 정덕황제의 하씨(夏氏) 황후께서 머무시던 오화궁(五花宮)의 서난각(西暖閣)、동차각(東次閣)에도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제사를 밤낮으로 지내거나 이틀에 한 번 또는 하루에 두 번 지내고 있습니다. 황제와 신하들이 만나 정책을 결정하는 경연은 열지 않으셔서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태평시대를 만드는 정책을 손상시키고 천하 사람들의 열망을 잃는 것이 경연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제사를 지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쁜 환관 위빈(魏彬)과 장예(張銳) 같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예전에는 정덕황제를 속여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고 천하의 재물을 많이 소모시켰습니다. 정덕황제께서 잘못하셨는데 황제께서도 잘못을 반복하시겠습니까? 황제께서는 이들을 죽이고 멀리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바라건대 서천(西天) 창고를 보훈창으로 바꾸어 역대 황제들의 명령문서들을 보관하고, 서번(西番) 창고를 고훈창으로 바꾸어 오경, 제자, 역사 서적을 보관하고, 한경(漢經) 창고를 청납청으로 바꾸어 신하들의 상소문을 보관하여야합니다. 또한 환관 가운데 조심스러운 사람들에게 창고 열쇠를 맡기고 황제께서 경연을 마치신 뒤에 창고에 가셔서 쉬신다면 황제의 수명이 요순임금처럼 길지 않겠으며, 통치도 요순임금처럼 다스려지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가정황제는 “기근이 들었으니 제사를 잠시 중지하라.”고 말하였습니다.
『明史紀事本末』,卷五十二,「世宗崇道教」:
二年夏四月,暖殿太監崔文以禱祀誘帝,乾清諸處各建醮,連日夜不絕。又命內監十餘人習經教於宮中,賞賚不貲。大學士楊廷和、九卿喬宇等疏“請斥遠僧道,停罷齋醮”。給事中周琅、張嵩、張汝、安盤等交章劾文,乞置重典。俱不報。
閏四月,停齋祀。時給事中鄭一鵬上言:“臣巡光祿,見正德十六年以來,宮中自常膳外少有所取。邇者禱祀繁興,制用漸廣。乾清、坤寧諸宮,各建齋醮。西天、西番、漢經諸廠,至於五花宮、西暖閣、東次閣亦各有之。或連日夜,或間日一舉,或一日再舉。經筵俱虛設而無所用矣,傷太平之業,失天下之望,莫此爲甚。臣謂挾此術者,必皆魏彬、張銳之餘黨。曩以欺先帝,使生民塗炭,海內虛耗。先帝已誤,陛下豈容再誤!陛下急誅之遠之可也。伏願改西天廠爲寶訓廠,以貯祖宗禦制諸書;西番廠爲古訓廠,以貯《五經》、子、史諸書;漢經廠爲聽納廠,以貯諸臣奏疏,選內臣謹畏者司其管鑰,陛下經筵之暇,遊息其中,則壽何以不若堯、舜,治何以不若唐、虞哉!”帝曰:“天時饑饉,齋祀暫且停止。”
『명사(明史)』,卷206,정일붕 전(鄭一鵬 傳):
가정황제는 환관 최문(崔文)의 건의를 받아들여 건청궁(乾清宮)과 곤녕궁(坤寧宮) 등 여러 궁을 비롯하여 서천(西天), 서번(西番), 한경(漢經) 등 여러 창고 및 오화궁(五花宮)의 양난각(兩暖閣)과 동차각(東次閣)에도 제단(醮)을 만들었다. 호과 좌급사(戶科 左給事) 정일붕(鄭一鵬)은 상소문을 올려, “기도와 제사를 자주 지내시는데 반드시 태감 위빈(魏彬)과 장예(張銳) 같은 무리들의 짓일 것입니다. 정덕황제께서 잘못을 저질렀는데 황제폐하께서 잘못을 반복하시겠습니까? 제가 제사 비용을 담당하는 광록시(光祿寺)를 순시하였는데 제사 1회 비용이 18,000냥이나 되었습니다. 황제폐하께서는 백성들의 원망을 사는 것을 참고 총애하시는 환관들의 마음이 다치는 것을 참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현재 하늘에서는 재앙이 자주 일어나고, 서울(북경) 길거리에는 굶어죽은 사람들 시체를 자주 보이며, 변경지역을 지키는 군졸들은 밤낮 무기를 들고 있지만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와 도교를 위하여 이렇게 많은 비용을 쓰시는데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가정황제는 “알았다(聞)”고 답변하였습니다.……
궁중에서 쓰는 비용도 날마다 증가하여 천순(天順, 1457-1464)에 몇 배가 많았습니다. 정일붕이 상소문을 올려, “현재 재앙에 쓰는 비용이 부족하여 황제의 태창(太倉)에서 지급을 보조 받고 있습니다. 건청궁, 인수궁, 미앙궁 등 여러 궁에서 비용이 남으면 모두 귀척(貴戚)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광록시에 남겨두어 황후의 덕을 현창하시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가정황제는 건청궁과 곤녕궁 2개 궁의 비용 가운데 잠시 동안 1/10을 절감시켰습니다.
『明史』,卷二百六,列傳第九十四,鄭一鵬傳
(嘉靖)帝用中官崔文言,建醮乾清、坤寧諸宮,西天、西番、漢經諸廠,五花宮兩暖閣、東次閣,莫不有之。一鵬言:“禱祀繁興,必魏彬、張銳餘黨。先帝(正德)已誤,陛下豈容再誤?臣巡視光祿,見一齋醮蔬食之費,爲錢萬有八千。陛下忍斂民怨,而不忍傷佞幸之心。況今天災頻降,京師道殣相望;邊境戍卒,日夜荷戈,不得飽食,而爲僧道靡費至此,此臣所未解。”報聞。……
宮中用度日侈,數倍天順時。一鵬言:“今歲災用詘,往往借支太倉,而清寧、仁壽、未央諸宮,每有贏積,率饋遺戚裏。曷若留供光祿,彰母後德?”帝命乾清、坤寧二宮暫減十之一。
-------------------------------
『明史紀事本末』,卷五十二,「世宗崇道教」:
五年,以道士邵元節爲“真人”,吳尚禮爲“左至靈”。
가정 5년에 도사 소원절(邵元節)을 진인(眞人)으로 올려주고 오상례(吳尚禮)를 좌지령(左至靈)이라고 호칭을 올려주었다.
十五年春正月,加致一真人邵元節道號,賜玉帶冠服。元節,興安(貴溪)人。仙源范文泰見而奇之,授以『龍圖龜範』之秘。嘉靖初,徵入京,召對便殿,首以“立教主靜”之說進,帝嘉納之。已,爲禱雪輒應,命爲致一真人,領金籙醮事,給玉金銀象印鎊一。會帝有事南郊,召元節分獻風雲雷雨壇,頂置奉天殿,班二品,並封其師爲“真人”。敕建真人府都城西,落成,命夏言作記刻之庭。歲給祿一百石,遣緹騎四十人充掃除役,贈田三十頃,蠲其租徭。至是,寵待益隆。
가정 15년 봄 정월에 소원절(邵元節, 1459-1539)에게 치일진인(致一真人)이라는 호칭을 내려주고 옥대와 관복을 하사하였습니다. 도사 소원절은 강서성 흥안현 출신이었고 선원현 출신의 도사 범문태(范文泰)가 소원절의 재능을 보고 기특하게 여기고 『용도귀범(龍圖龜範)』의 비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가정 초기(3년)에 황제의 부름을 받고 북경에 들어와서 편전에서 황제를 뵈었고 “입교주정(立敎主靜)을 아뢰자 황제가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가정 15년에 눈을 내리는 제사를 올렸는데 반응이 있어 눈이 내리자, 가정황제가 치일진인(致一眞人)이라는 호칭을 내리고 제사를 관장시키고 옥, 금은, 상아도 만든 도장을 하사하였습니다. 가정 15년에 가정황제가 남교에 제사를 지낼 때 소원절을 불러 바람와 구름을 비롯하여 번개와 비를 내리게 하는 제단을 담당하도록 시켰고 가장 높은 봉천전에 머물도록 하고 2품 관품을 내리고 그의 스승에게도 진인(眞人) 호칭을 내렸다. 황성의 서쪽에 진인부(眞人府) 건물을 짓고 낙성식에는 하언(夏言)에게 건축기록문을 지어 비석에 새겨 마당에 세우도록 하였다. 해마다 봉록 100석을 내리고 비단을 장식한 기병 40명을 보내 청소를 담당하도록 하였고, 밭 30경도 주고 세금을 면제시켰다. 이때부터 가정황제가 소원절에 더욱 총애하였다.
『明史紀事本末』,卷五十二,「世宗崇道教」:
嘉靖元年春三月,簿錄大能仁寺妖僧齊瑞竹財資及玄明宮佛像,毀括金屑一千餘,悉給商以償宿逋。齊瑞竹,正德間賜玉璽書金印,賞賚無算。至是,從工部侍郎趙璜言也。禮部郎中屠塤發檄,遍查京師諸婬祠,悉拆毀之。
七月,帝漸興寺觀,崇奉諸教。汪珊疏言十漸,其三言:“議復諸不經婬寺觀,非初罷之意。”章下所司。
二年夏四月,暖殿太監崔文以禱祀誘帝,乾清諸處各建醮,連日夜不絕。又命內監十餘人習經教於宮中,賞賚不貲。大學士楊廷和、九卿喬宇等疏“請斥遠僧道,停罷齋醮”。給事中周琅、張嵩、張汝、安盤等交章劾文,乞置重典。俱不報。
閏四月,停齋祀。時給事中鄭一鵬上言:“臣巡光祿,見正德十六年以來,宮中自常膳外少有所取。邇者禱祀繁興,制用漸廣。乾清、坤寧諸宮,各建齋醮。西天、西番、漢經諸廠,至於五花宮、西暖閣、東次閣亦各有之。或連日夜,或間日一舉,或一日再舉,經筵俱虛設而無所用矣。傷太平之業,失天下之望,莫此爲甚。臣謂挾此術者,必皆魏彬、張銳之餘黨。曩以欺先帝,使生民塗炭,海內虛耗。先帝已誤,陛下豈容再誤!陛下急誅之遠之可也。伏願改西天廠爲寶訓廠,以貯祖宗禦制諸書;西番廠爲古訓廠,以貯《五經》、子、史諸書;漢經廠爲聽納廠,以貯諸臣奏疏,選內臣謹畏者司其管鑰,陛下經筵之暇,遊息其中,則壽何以不若堯、舜,治何以不若唐、虞哉!”帝曰:“天時饑饉,齋祀暫且停止。”
五年,以道士邵元節爲“真人”,吳尚禮爲“左至靈”。
七年春正月,大學士楊一清等言:“宮寢之中,非祀天之所,每日拜祝,恐勞且褻,請已之。”報聞。
十年十一月,遣行人召大學士張孚敬還朝,建祈嗣醮欽安殿,以禮部尚書夏言充醮壇監禮使,侍郎湛若水、顧鼎臣充迎嗣導引官。文武大臣遞日進香,上親行初、終兩日禮。
十一年冬十月,編修楊名上《修省疏》,斥汪鋐、郭勳之奸,乞罷工作禱祀。上怒,收系械訊,瀕死,謫戍。
十三年五月,上禦重華殿,召大學士張孚敬、武定侯郭勳等五人,入觀祀天青爵,作《紀樂同遊詩》。
十四年夏四月,大興隆寺災,禦史諸演請“順天心,絕異端”。敕禮部尚書夏言覆奏,改僧錄司於大隆善寺,僧徒還俗者聽,並移姚廣孝神位。廣孝神位,帝更定祀典,撤太廟配享,移入大興隆寺者也。
十五年春正月,加致一真人邵元節道號,賜玉帶冠服。元節,興安(貴溪)人。仙源范文泰見而奇之,授以《龍圖龜範》之秘。嘉靖初,征入京,召對便殿,首以“立教主靜”之說進,帝嘉納之。已,爲禱雪輒應,命爲致一真人,領金籙醮事,給玉金銀象印鎊一。會帝有事南郊,召元節分獻風雷靈雨壇,頂奉天殿,班二品,並封其師爲“真人”。敕建真人府都城西,落成,命夏言作記刻之庭。歲給祿一百石,遣緹騎四十人充掃除役,贈田三十頃,蠲其租徭。至是,寵待益隆。
夏四月,詔求紅黃玉以禮神。五月,除禁中佛殿,建慈慶、慈寧宮。時帝欲除去釋殿,召武定侯郭勳、大學士李時、禮部尚書夏言入視大服千善殿,有金鑄象神鬼婬褻之狀,又金函玉匣,藏貯佛首佛牙之類及支離傀儡,凡萬三千餘斤。言退上疏,力請“瘞之中野,不得瀆留宮禁”。帝曰:“朕思此類,智者以爲邪穢而不欲觀,愚民無知,必以奇異奉之,雖瘞中野,必有竊發以惑民者。其毀之通衢,永除之。”於是禁中邪穢迸斥殆盡。
十一月,大修金籙醮於立極殿七日夜,以謝儲祥。以大臣爲上香監禮、迎嗣引導等使如舊。十二月,以皇嗣生,錄致一真人邵元節禱祀功,加授禮部尚書,
給一品服俸,賜白金、文綺、寶冠、法服、貂裘。授其徒邵啟爲等祿秩有差。先是,上命中使即貴溪山中建仙源宮。既成,元節乞暫還山。已而帝遣錦衣千戶孫經往趨起之,舟至潞河,命中使迎入,賜彩蟒衣並“闡教輔國”玉印。時帝以祈嗣設醮,旦夕有雲氣見於圻壇。上大悅,越三日,皇子生,遂有是命。
十七年,命建金籙大齋於內皇壇,白鶴繞壇,卿雲捧日,賞賚天師張彥羽頁有加。嘉靖初,彥羽頁 入賀。上賜問,以“清心寡欲”對,加封正一嗣教真人,賜金冠、玉帶、蟒衣、銀幣,遂留京邸。既而請還山,上遣行人持詔召之,稱卿不名。宅毀,爲作治。給事中黃臣諫曰:“昔者欒巴、郭憲巽酒止火,彥羽頁宅毀,陛下又安用治之?”上不從。彥頨尋卒,詔如列侯,例賜卹典。“天師永緒”,上所命名也。
十八年八月,致一真人邵元節死。時上躬視顯陵,元節留京師。一日晨起,召其徒語之曰:“我殆將逝矣,安得走行在一見皇帝?”言未既,卒。帝駐蹕裕州,聞之慟,手詔敕行在禮部贈諡,命中官錦衣護其喪。喪還,敕有司營葬,卹典如伯爵例。
以方士陶典真爲神霄保國宣教高士。典真,一名仲文,黃岡人,少爲縣掾,喜神仙方術,嘗授符術羅田萬玉山。而邵元節微時,亦往來仲文家。嘉靖初,仲文授遼東庫大使,秩滿至京師。時元節貴幸,比老欲請骸鼻,未有間。會宮中黑眚見,元節治之無驗,遂薦仲文代已。試宮中,稍能絕妖,帝寵異之。至是,扈駕南巡至衛輝,白晝有旋風繞駕不散,帝以問仲文,對曰:“當火。”遣仲文禳之,仲文曰:“火終不免,可謹護聖躬耳!”是夜,行宮果災,宮中死者無算。錦衣陸炳排闥入,負帝出,竟無恙。明日,敕行在吏部授仲文是職,給誥印,許攜其家於官。
九月,上諭輔臣曰:“朕欲命東宮監國,朕靜攝一二年,然後親政。”太仆卿楊最上言:“聖諭至此,不過信方士調攝耳。夫堯、舜性之,湯、武身之,非不知修養可以成仙,以不易得也。不易得,所以不學。豈堯、舜之世無仙人,堯、舜之智不知學哉?孔子謂‘老子猶龍’。龍,即仙也。孔子非不知老子之爲仙,不可學也。不可學,豈易得哉?臣聞皇上之諭,始則驚而駭,繼則感而悲。犬馬之誠,惟望端拱穆清,恭默思道,不邇聲色,保復元陽。不期仙而自仙,不期壽而自壽。黃白之術,金丹之藥,皆足以傷元氣,不可信也。”帝覽之大怒,逮系鎮撫司考訊,久之死獄中。
十九年春正月,上疾不朝,拜天玄極殿。二月,建宮祈禳三日。八月,萬壽聖節,建三晝夜醮,告天玄極殿。郭勳以方士段朝用見,曰:“能化物爲金銀。”因以所化銀器進,上大悅,曰:“殆天授也。”因授朝用紫府宣忠高士,薦其器於太廟,加勳祿米百石。十一月,進陶仲文爲忠孝秉一真人,領道教事。尋加少保、禮部尚書,又加少傅,食一品俸。
二十年春正月,逮系禦史楊爵下詔獄。爵上言曰:“君人者奉天安民,而使之各得其所也。今饑民顛連無告,委命溝壑,而土木之工十年不止。又重委部臣,遠建雷壇,以一方士之故,脧民膏血,民何以得其所哉?執左道以惑眾,聖主所必誅。今異言異服,列於廷苑;金紫赤紱,賞及方術。保傳之位,坐而論道。非極天下之選,不足以當此貴,而畀之迂怪之徒,名器之濫,至此極矣。陛下以天縱之聖,爲上天元子。若遠宗帝道,近守祖法,則和氣致祥,罔有天災。山川鬼神,亦莫不寧。安用此邪佞之術,列諸法禁之地,而藉之以爲福哉?古人有言:‘君聖則臣直。’若震之以天威,加之以危禍,如往年楊最,言出而身即死,近日羅洪先等以言罷黜,國體治道,所損實多。臣恐忠藎杜口,則讒諛交進,安危休戚,無由以見,而堂陛之近,遠於萬裏矣。”疏入,帝大怒,命鎮撫司長系之。
二十二年春二月,段朝用下獄論死。初,朝用以黃白術結郭勳幹進,久之技窮。勳有罪系獄,脅索勳賂,捶死勳家廝役張瀾,復上疏瀆奏。帝怒,收送法司論死。
宮婢楊金英等謀弑伏誅,帝曰:“朕非賴天地鴻恩,遏除宮變,焉有今茲!朕晨起至醮朝天宮七日。”醮之日,白鶴四十餘翔空中,群臣賀。
二十三年冬十月,大同邊卒獲叛人王三,上曰:“叛惡就擒,固義勇之效力,實神鬼有以默戮之。”加秉一真人禮部尚書,陶仲文爲少師,餘如故。前此大臣無兼總三孤如仲文者。
二十四年三月,建祈年醮朝天宮。
秋八月,永和王知燠獻白鹿上壽,遂告鹿瑞於太廟。是時,上重箕仙。箕下,亦命有司掩骴骼,出故禦史楊爵、給事中周怡、工部郎中劉魁詔獄。皆從之。爵、怡、魁甫出三日,吏部尚書熊浹諫止箕仙,復逮獄如故。浹乞休,命錦衣衛遣校尉送原籍爲民。
二十五年秋七月,久雨,上曰:“鹿瑞龜祥,洊呈去歲。今朕辰日近,醴泉復出承華,雖聖賢不恃以怠也,而不可不敬謝。其自二十五日至八月望舉謝,停封貢事,毋慢!”八月,加封陶仲文伯爵,仲文特進、光祿大夫、柱國,兼支大學士俸,任一子尚寶司丞。
二十九年夏四月,加封陶仲文恭誠伯。先是,春不雨,上以問仲文,仲文曰:“疑有冤獄。”時楊武知縣王濂以罪坐絞,子策走京師,誣巡撫胡纘宗私隙,故入人罪。述纘宗《迎駕詩》有“穆王八駿空飛電,湘竹英、皇淚不磨。”爲詛咒。上怒,逮訊久不決。至是,因仲文言釋之。是夜,漏下四鼓,大雨。明日,傳旨封仲文,賜誥,歲祿一千二百石。
三十年夏五月,復事鎮鹵法壇。先是,帝從陶仲文請,設立符鎮鹵法壇,嚴事之,曰:“褫鹵魄,勿窺我邊圉。”至是,帝以馬市成,諳達款塞,欲撤之。忽報鹵有異謀,帝諭群臣曰:“朕於十九日欲撤鎮鹵法壇,二十日即有警報。玄威所至,亦不可忘。”遂益敬事之。冬十月,邊吏獲叛人哈舟兒、陳通事,禮部上言:“二逆就擒,實賴玄貺所致,至宜告謝雷霆洪應壇,行獻俘禮。”從之。
三十一年二月,太上道君誕辰,建醮永壽宮九日。
三月,詔修太和山玄帝宮。
三十三年秋七月,命駙馬都尉鄔景和、安平伯方承裕、吏部尚書李默、禮部尚書王用賓、左都督陸炳、吏部左侍郎程文德、禮部左侍郎閔如霖、吏部右侍郎郭樸、吳山並直西內,撰《玄文》。景和以不諳玄理,辭免。俄以金幣賜玄修諸臣,猶及景和。景和自疏無功,辭,願洗心滌慮,效馬革裹屍之報。帝怒曰:“景和故出不詳語,當擬怨訕律。”乃革爵安置昆山。時諸臣覬撰玄營進,景和獨不屑直贊。
夏四月,舉祀高玄大典,止封停刑。工部尚書趙文華乞歸,以病請。上方修詳細,禁奏疏,尤諱言疾。疏入,觸上怒,罷。
三十五年夏四月丁巳,命翰林院侍讀嚴訥、修撰李春芳並爲翰林學士,右春坊右中允董份直西內撰玄。自是詞臣多舍本職,往往求供奉,希進用。九月,廢徽王載侖爲庶人。王善伺上意,上宮中有需,王輒先時獻。道者南陽梁高輔年八十餘,手甲長數寸,善導引。王厚遇之,進之上,拜散人。高輔謹,有所賜予皆辭。王使人求謝,不能應。王故煉女癸服之,上亦需此。高輔馳求,王不與。而王方自恣,興土木,詐稱張世德,自走南京市美女。事聞,奪爵幽鳳陽,王聞之,自殺。
是歲,上睿皇帝道號三天金闕無上玉堂都仙法主玄元道德哲慧聖尊開真仁化大帝,獻皇後號三天金闕無上玉堂總仙法主玄元道德哲慧聖母天後,孝烈皇後號九天金闕玉堂輔聖天後掌仙妙化元君。上自號靈霄上清統雷元陽妙一飛玄真君,後加號九天弘教普濟生靈掌陰陽功過大道思仁紫極仙翁一陽真人元虛玄應開化伏魔忠孝帝君,再號太上大羅天仙紫極長生聖智昭靈統三元證應玉虛總掌五雷大真人玄都境萬壽帝君。
三十六年冬十月,玄嶽諸山獻紫芝。已而總督胡宗憲、巡撫阮鶚、禦史路楷等相繼上者,不可勝計。
三十七年夏四月,總督胡宗憲獻白鹿。五月,復獻白鹿於齊雲山,帝曰:“一歲二瑞,天眷也。”命告謝玄極殿、太廟。以宗憲忠敬,升一級,百官表賀。秋七月,禮部類進四方獻芝,凡千八百六十有四,詔更求廣徑尺以上者。
三十八年六月,以陶世恩爲太常寺丞。世恩以陰曆尚寶少卿,爲言官所列奪官。至是,仲文乞復子原職,帝命改爲太常寺寺丞兼道錄司右演法。是時仲文請假還裏,帝下璽書褒諭之,遣錦衣千戶一人護歸仍。賜白金彩繒以示眷懷,令有司歲時存問。
三十九年二月,浙江總督胡宗憲上汪直獄,上曰:“玄祐也。”命告玄極殿,而論宗憲功有差。已而宗憲獻芝草五、白龜二。上悅,賜金帛金彩鶴衣一襲。禮部請謝玄告廟,許之。不數日,白龜亡,上曰:“天降靈物,朕固疑處塵寰不久也。”
十一月,秉一真人陶仲文死。仲文習祈禳術得幸,賜坐,稱爲師。然亦小心,憚帝威嚴,不敢他有所幹。列爵五等,死諡榮康惠肅,以伯禮葬。隆慶初,奪爵,籍其家。
四十年二月,分遣禦史王大任、姜儆、奚鳳等往天下訪求仙術異人及符篆秘方諸書。
十一月,禮部奏四方進芝凡七百六十九本,命采五色盈尺者。淮王獻白雁二,賜金幣,帝曰:“天降祥羽,其告廟。”
四十一年三月,萬壽宮成。宮災於四十年十一月,不三月而告成。宮中有壽源、萬春、太玄、仙禧諸殿,極其宏麗。上悅,加大學士徐階等秩有差。
夏四月癸酉,方士鄠縣王金進五色龜、靈芝,授太醫院禦醫,命成國公朱希忠告廟,表賀。壬寅,大學士嚴嵩免。初,方士藍道行以箕幸,上故有所問,密封使中官至箕所焚之。不能答,則咎中官穢。中官乃合方士,啟示而後焚之,每答具如旨。上問:“今天下何以不治?”對曰:“賢不竟用,不肖不退耳。”則問其賢否,對曰:“賢如徐階、楊博,不肖如嵩。”上心動。會禦史鄒應龍劾之,上曰:“人惡嚴嵩久矣。(詳嚴崇用事)朕以其贊玄壽君,特優眷。乃縱逆子負朕,其令致仕。”已而上思嵩贊玄功,意忽忽不樂,諭徐階欲傳位,退居西內,導祈長生。階諫,上曰:“必皆仰奉上命,闡玄修仙乃可。有再言嵩者,並鄒應龍斬之。”嵩知上意,密賂左右發道行怙權及矯稱玉詔諸不法事,竟以妖言律論死。
秋七月,內苑獻嘉禾一莖三穗者、兩穗者三十有一。群臣賀。
十二月辛酉,甘露降顯陵松上,守備太監張方、奉祀都督僉事蔣華等以進,上悅,告郊廟。
四十二年夏四月,嚴嵩上《祈鶴文檢》及《法秘》。嵩罷,歸至南昌,延道士藍田玉等爲上醮鐵柱觀,田玉因以所藏《召鶴符驗法書》附奏,嵩、田玉皆賞賚有差。
秋八月,禦苑龜生卵者五。巡撫湖廣都禦史徐南金獻白鵲,言出自景陵,群臣表賀。
四十三年三月,妖人李應幹等伏誅。應幹居河南之濟源,一目微眇,兩手涅“日”、“月”字,懷、衛間不逞者多附之。陰鑄印章數百,太白旗數十,付徒眾爲符驗,約四月八日起兵。時山東、宣、大、真、順諸處妖人尤眾,互相煽結。而呂某者,潛入京,以白社法惑眾,陰結無賴千餘人。其黨有以偽告身二帙,辟穀藥餌一裹,首告大學士徐階者,緝獲鞫實奏聞。應幹匿山西,久之乃獲,俱伏誅。
五月乙卯,桃夜降於禦幄,左右雲其空墮。上喜,修迎恩典五日。丙辰,桃復降。是夜,白兔生二子。上益喜,謝玄、告廟。頃之,壽鹿亦生二子,群臣表賀。上以奇祥三錫,手詔答之。
四十四年春正月,帝不豫,帝注意玄修。先是,王大任奉命陝西、湖廣,招至方外士王金等,能合內養諸藥。薑儆奉命江西、廣東,亦得能通符法者還。復命,俱授翰林侍講。儆不自安,乞還裏。大任仍在朝,不爲翰林所齒。上雖修玄西內,而權網總攬。夜分至五鼓,猶覽決章奏。自王金等以修煉幸,與陶仲文子世恩希求恩澤,乃偽造五色靈龜、靈芝,以爲天降瑞征。又與陶仿、劉文彬、申世文、高守中偽造《諸品仙方》、《養老新書》及以金石藥進禦。其方詭秘不可辨,性燥熱,非《神農本草》所載。帝服,稍稍火發,不能愈。然仿竟得遷太醫院使,世恩太常寺卿,金太醫院禦醫,文彬太常寺博士。
三月,方士熊顯、趙添壽各進《法書》數十冊,帝令留覽,賜冠帶、銀幣遣還。添壽又進《法秘》,乞留覽虛觀祈咒。五月,方士胡大順、藍田玉等伏誅。初,有藍道行者,以方術見帝,帝頗信之。已而事敗,下獄死。胡大順者,故陶仲文徒也。亦以事敗,斥去。希復進用,乃偽造《萬壽金書》一帙,詭稱呂祖以箕授者。用黑鉛取白,名“先天玉粉丸”,命其黨何廷玉齎至京。時嚴世蕃已敗,乃資以賄,因道行徒藍田玉通內侍趙楹獻之。帝曰:“既雲箕書,扶箕者何在?”田玉等遽謂帝念之也,遂與羅萬象者,詐偽旨,征大順至京,更名胡以寧,薦於帝,具奏求圖書及建宮地。及至,則大順也。帝惡之。時宮中屢有氛孽,田玉等遂以爲藍道行下獄,故至此。欲以動帝,帝頗惑之。以問徐階,階力言:“大順小人,不畏法紀,而田玉尤甚。且宮孽已久,恐非道行下獄所致。”帝悟,階又言:“田玉乃嚴世蕃黨,妄進白鉛,其意叵測。至妄傳密旨,罪惡尤重。”帝乃命收大順等下錦衣獄,獄具,帝猶欲寬之,復問階,階曰:“聖旨至重。若聽詐傳,他日夜半出片紙有所指揮,將若之何?”於是並楹論死。
八月,禦幾及褥各得藥丸一,躬謝太極殿,告宮廟。冬十月,戶部主事海瑞上言:“陛下即位初年,敬一箴心,冠履辨分。除孔廟之像,立敬聖之祠,瘞斥元世祖於國門之外。宦官外戚,悉奪其權,天下忻忻謂煥然更始。無何而銳精未久,妄念牽之,謬謂長生可得,一意修玄,土木興作。二十餘年不視朝政,法紀弛矣。數行推廣事例,名器濫矣。二王不相見,人以爲薄於父子。以猜疑誹謗戮辱臣下,人以爲薄於君臣。樂西苑而不返大內,人以爲薄於夫婦。今愚民之言曰:‘嘉者,家也。靖者,盡也。’謂‘民窮財盡,靡有孑遺也’。然而內外臣工,修齋建醮,相率進香;天桃天樂,相率表賀。陛下誤爲之,群臣誤順之。臣愚謂陛下之誤多矣,大端在玄修。夫玄修所以求長生也。堯、舜、禹、湯、文、武之爲君,聖之至也,未能久世不終。下之方外士,亦未見有曆漢、唐、宋至今存者。陛下師事陶仲文,仲文則既死矣。仲文不能長生,而陛下獨何求之?至謂天賜仙桃、藥丸,怪妄尤甚。臣聞伏羲禦宇,龍馬圖河;大禹隨山,神龜書洛。天不愛道,猶日月星辰昭布森列,焉可誣也。宋真宗獲天書幹裕山,孫諫曰:‘天何言哉,豈有書也!’桃必采乃得,藥必搗乃成。茲無因而至,有脛行耶?雲天賜之,有手授耶?然則玄修之無益可知矣。陛下玄修多年,靡有一獲。左右奸人,揣逆聖意,投桃設藥,以謾長生,理之所無,斷可見已。陛下誠翻然悟悔,日旦視朝,與輔宰、九卿、侍從、言官,講求天下利害。洗數十年君道之誤,置身堯、舜、禹、湯、文、武之域,使諸臣亦洗心數十年阿君之恥,置身皋、夔、伊、傅、周、召之列。內之宦官宮妾,外之陰恩敘勞,多有無事而官者。上之內廚內庫,下之寶物貨賄,多有無事而積者。諸臣必有爲陛下言者矣。諸臣言之,陛下行之,在一節省間耳。官之侵漁,將之怯懦,吏之爲奸,諸臣必有爲陛下言者矣。諸臣言之,陛下行之,在一振作間耳。陛下爲此,非勞也。民熙物洽,熏爲泰和,陛下性中真藥也。道與天通,命由我立,陛下性中真壽也。此理之所有,可旋至立效。乃縣思服食不終之餌,鑿想遙興輕舉之方,切切然散爵祿、竦精神,求之終身而不得。大臣持祿外爲諛,小臣畏罪面爲順。君道不正,臣職不明,此天下第一事也。”疏上,帝大怒,命逮系瑞下鎮撫。
交城王表相得白兔於藐姑射山,撰頌以獻,賜金袞。
四十五年春正月,上久病不痊,諭大學士徐階,欲幸承天,拜顯陵,取藥服氣。階奏止之。是年冬,帝崩於幹清宮,詔曰:“朕奉宗廟四十五年,享國長久,累朝未有。一念惓惓,惟敬天勤民是務。祗緣多病,過求長生,遂至奸人注惑。自今建言得罪諸臣,存者召用,沒者卹錄,見監者即釋復職。”
穆宗踐阼,釋戶部主事海瑞於獄中,逮方士王金、陶仿、申世恩、劉文彬、高守中、陶世恩下詔獄,論死。
谷應泰曰:宋臣李沆之言曰:“人主當知四方艱難,不則土木禱祠,次第並作。”而伊尹之訓太甲,亦曰:“酣歌恒舞,時謂巫風。”此皆豫大之良規,嗣王之炯戒矣。世宗起自藩服,入纘大統,累葉升平,兵革衰息,毋亦富貴吾所已極,所不知者壽耳。以故因壽考而慕長生,緣長生而冀舉。惟備福於箕疇,乃希心於方外也。爰考初政,即設齋宮。及其末年,猶餌丹藥。蓋遊仙之志,久而彌篤,未有若斯之甚者也。
方其前星未耀,玄鳥方來,瑤筐誕祥,高禖有應,世宗信之,欣然以天神可降焉。於是命道士邵元節爲致一真人,金銀象印,陪祀南郊,風雨靈壇,職司秘籙。而且祠神紅玉,分諮詔使;享天青爵,召視重華。雖黃帝憑五城以授神人,漢武寵文成以延方士,未爲過也。繼又召真人張彥羽頁,設金大齋。則有白鶴降庭,卿雲捧日。去天尺五,幾於呼吸可通矣。
然元節身死,玉棺不來;彥羽頁 宅火,巽酒不滅。而世宗之意,冀遇其真。復召陶仲文者,拜爲神仙高士。徐市既去,更用盧生;混康以還,復征靈素。即蓬萊之想愈殷,祈年之觀益麗矣。乃若旋風四繞,則行宮果災;疑獄初平,即春霖早霈。以至白鹿一雙,獻於浙地;紫芝千本,貢自荊州。又且雲氣降於祈壇,綏桃來於禦幄。比之建章宮中,芝房露掌;玉津園裏,幡節樓台。以今准古,史不勝書,宜世宗之甘心於此也。雖其後段朝用下獄被戮,胡大順、藍田玉等以次伏誅,不過少翁牛腹致疑,新平玉杯得譴耳。而仲文死後,更訪異人,羈縻弗絕,一至此乎!
更可駭者,世宗清虛學道,不禦萬幾,奸嵩擅權,二十餘載。二世居深宮而趙高柄國,徽宗稱道君而蔡京專政。陰行蠱惑,吾無責焉。至於周琅、鄭一鵬等諫之於前,楊爵、海瑞等爭之於後,而永嘉再相,同遊撰詩;貴溪典禮,充壇監醮。豈王旦附會祥符,寇准依阿幹佑,爲國大臣,氵典氵忍宜爾耶!然而世宗初禦,括毀佛金,燒除佛骨,海內喁喁,想聞聖學。而乃於佛則絀,於道則崇。崔伯深不事胡神,更奉天師;孔祭酒詆訶佛法,心存道黨。較長短,即二氏何擇也。究之金石燥烈,鼎湖既有龍升;王、陶論死,雲中不乏雞犬。語雲:“服食求神仙,多爲藥所誤。”又雲:“君以此始,必以此終。”籲!可慨也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