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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황제(1507-1566)가 1521년에 황제 자리를 계승한 까닭

작성자이경룡|작성시간19.09.18|조회수57 목록 댓글 0



가정황제(1507-1566)1521년에 황제 자리를 계승한 까닭

2019918

 

 

* 가정황제가 사촌형 무종의 뒤를 세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각 수보 양정화(楊廷和) 등은 북송시기 정이천의 주장에 따라 사촌형 무종을 아버지라고 불러야하며 친아버지를 아저씨라고 불러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가정황제가 처음에는 말을 듣더니 곧이어 반대하고 친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하고 사촌형 무종의 아들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대례(大禮)를 논의하였다는 뜻에서 대례의(大禮議)라고 합니다.

 

이때 석서(席書)를 비롯하여 장총(張璁)과 계악(桂萼) 등이 가정황제에 동의하였고, 송나라 상황과 가정황제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정이천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왕양명은 석서를 비롯하여 장총과 계악을 지지하였습니다.

 

대례의 문제는 가정황제 재위기간 몇 년 동안에 정리되었지만 나중에 청나라 고증학까지 영향을 미쳐서 사당에서 신위 배치, 대소종 문제, 위인후(爲人後) 문제, 묘소 배치 등 많은 논의를 일으켰고 고증학의 중요한 연구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가정황제가 황제 자리를 계승하였던 까닭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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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憲宗(朱見深, 成化, 在位1464-1487)

헌종의 첫째와 둘째 아들은 일찍 죽고 후사가 없고, 셋째 아들 朱祐樘이 황위를 계승하여 제9대 효종이 되었고, 넷째 아들 朱祐杬興獻王이 되었고 아들 2명을 두었음.

 

9孝宗(朱祐樘, 憲宗의 셋째아들, 弘治, 在位1487-1505)

효종은 아들 2명을 두었는데, 큰아들 朱厚照가 황위를 계승하여 武宗이 되었고 둘째 아들 朱厚煒는 어려서 죽음.

 

10武宗(朱厚照, 正德, 在位1506-1521)

무종은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났음.

 

11世宗(朱厚熜, 嘉靖, 在位1522-1566)

무종의 후사가 없기 때문에 내각수보 양정화(楊廷和) 등이 상의하여 제8憲宗의 넷째 아들 興獻王 朱祐杬의 둘째 아들 朱厚熜을 불러들여 효종의 뒤를 잇는 제11世宗으로 삼았음.

 

* 황위 계승표

8憲宗

朱見深

9孝宗

첫째

둘째

셋째 朱祐樘(孝宗)

넷째 朱祐杬(興王)

10武宗

 

첫째 朱厚照

(武宗)

둘째 朱厚煒

(일찍 죽음)

첫째 朱厚熙

(일찍 죽음)

둘째 朱厚熜

(興獻王)

11世宗

 

둘째 朱厚熜(世宗)

 

 

* 황제 생졸년과 재위기간

 

8憲宗

朱見深(1447129-148799, 향년 41), 在位(1464-1487), 연호 成化

 

9孝宗

朱祐樘(1470730-150568, 향년 36), 在位(1487-1505), 연호 弘治

 

10武宗

朱厚照(14911027-1521420, 향년 31), 在位(1505-1521), 연호 正德

 

11世宗

朱厚熜(1507916-1567123, 향년 60), 在位(1521-1567), 연호 嘉靖

 

朱祐杬(1476722-1519713, 향년 43)

成化23(1487)에 흥왕(興王)에 봉해지고 弘治7(1494)에 봉지 호광성 안륙주(湖廣安陸州)에 이사 갔고 正德14(1519)에 죽었고 향년 43살이었음. 무종이 시호 ()”을 내려주어 이때부터 흥헌왕(興獻王)이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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