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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황제의 경일잠(敬一箴)과 송나라 정이천 「四勿箴」 및 范浚의 「心箴」

작성자이경룡|작성시간19.09.18|조회수447 목록 댓글 0


가정황제의 경일잠(敬一箴)과 송나라 정이천 四勿箴范浚心箴

2019918

 

 

가정황제가 경일잠(敬一箴)을 언제 지었고 언제 국자감과 전국 학교에 비석을 세웠는지에 관하여 말이 많았습니다. 현재 (嘉靖)池州府志』,卷第八雜著篇上藝文,「敬一箴을 보면 가정 5(1526) 621일에 썼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가정황제가 지은 程子四箴의 주석도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기록을 보면, 가정 61113일에 강관(講官) 고정신(顧鼎臣, 1473-1540)이 송나라 범준(范浚, 1102-1150)심잠(心箴)을 강연한 것을 듣고 느낀 것이 있어서 경일잠(敬一箴)을 지었다고 합니다. 가정황제가 장총(張璁) 등에게 말하자, 장총은 정이천의 사물잠(四勿箴)도 좋다고 건의하였고 가정황제가 程子四箴의 주석도 달았습니다. 장총은 이것들을 국자감과 전국 학교에 비석을 세우자고 건의하였습니다. 다른 기록들에는 가정황제의 경일잠서문만이 남아있습니다.

 

가정황제가 경일잠을 지어 국자감과 전국 학교에 비석을 세웠던 까닭은 황제가 신하들에게 충성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황제 권한을 신하들이 넘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명나라 태조와 성조는 황제 교육과 신하 교육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원나라 세조부터 황제와 신하의 교육을 나누었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황제권을 강화시킨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황제의 독재를 확립한 것입니다.

 

범준의 심잠이 중국 학계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주자 때문입니다. 주자가 19살 과거시험을 보려고 항주에 가는 길에 절강성 금화에 있는 범준의 집에 들렀으나 만나지 못하였고 과거시험에 합격한 뒤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렀으나 여전히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이후에 범준의 아들의 부탁을 받고 찾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범준은 북송시기 성리학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심학을 연구하였습니다. 주자는 범준의 스승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주자는 범준의 심잠天君泰然百體從令구절에 대하여 천군이 맹자의 대자(大者)이라고 해석하였고 맹자 집주에 글 일부를 인용하여 넣었고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따라서 주자는 범준의 심잠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절강성 금화지역에서 주자학을 계승한 북산 사선생(北山 四先生) 가운데 허겸(許謙)이 원나라 시기에 국자감 좨주를 맡았습니다.

 

송나라 주자학자 진덕수(眞德秀, 1178-1235)심경(心經)을 편집하면서 범준의 심잠을 인용하였습니다. 원나라 시기에는 호병문(胡炳文, 1250-1333)이 주자의 뜻에 따라 중시하고 심잠에 주석을 붙였습니다. 왕양명의 전습록에서도 심잠天君泰然百體從令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범준의 심잠은 사실상 도교의 종교적 상상력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천군은 순자(荀子)가 말한 천군이 아니고 도교의 옥황상제를 뜻합니다. 이 점이 후세 연구자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고려시기에는 이색(李穡) 선생이 원나라 시기에 북경에 있는 국자감에 다녔다고 합니다. 아마도 좨주 허겸(許謙)으로부터 심잠을 배웠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색 선생과 조선시기 서거정 선생 등이 시를 지으면서 범준의 심잠天君泰然百體從令구절을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조선시기에는 가정황제 경일잠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임진왜란 이후에 북경에 사신 갔던 사람들의 기록만이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율곡 선생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학자들도 범준의 심잠을 주목하였고 여러 연구가 나왔습니다. 하곡 정제두 선생과 심육 선생도 심잠을 인용하여 심학을 설명하였습니다. 대체로 이기 관점에서 천군이 이(), 백체가 기()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고려말기와 조선시기에는 주자의 영향 때문에 범준의 심잠주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심잠을 학술관점에서 평가하면 그다지 수준이 높거나 새로운 내용은 없습니다. 따라서 조선시기 학자들이 심잠을 주목하고 깊이 연구한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외국 학술이라도 걸러내서 연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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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황제,「경일잠(敬一箴)서문

 

()은 마음을 지키고 잠시라도 밖으로 놓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군주가 경()하면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가 경()하면 나라를 잃지 않고 경대부가 경()하면 봉지를 잃지 않고 지식인과 일반 백성들이 경()하면 목숨을 잃지 않습니다. 우임금은 군주가 군주의 일을 어렵게 여겨야하고 신하는 신하의 맡은 일을 어렵게 여겨야한다.”고 말하였습니다. 五子之歌에서는 내가 많은 백성들을 통치하면서 마치 썩을 밧줄로 6마리 말의 수레를 끄는 것처럼 위험하고 조심스럽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로서 어찌 경()하지 않겠습니까! ()이라는 한 마디를 널리 전파하면 세상을 밝아질 것입니다. ()은 마음을 순수하게 하여 천리(天理)에 완전히 합동하게 하고 아무런 인심(人心)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윤은 ()이 일()이 되도록 해야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둘이나 셋으로 나뉘면 일할 때마다 흉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일()이라는 한 마디를 널리 전파하면 세상을 밝아질 것입니다.

대체로 군주 자리에 오른 것은 하늘에서 부탁을 받은 것이고, 하늘의 밝은 명령을 받아 만방의 군주가 된 것입니다. 군주의 말과 행동 및 통치명령은 사실상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리고 위험한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에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마음을 아주 짧은 잠깐이라도 경()하지 않는다면 군주의 덕()이 어떻게 순수하게 되고 인욕에 섞이지 않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반드시 제사를 지낼 때 신명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을 느끼고 있어야합니다. 또한 통치명령을 백성들에게 내릴 때에도 단정하고 장엄하게 조심하여야하며 백성들의 인정(人情)에 어긋나지 않을까를 걱정해야합니다. 더구나 혼자 있을 때에는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꺼리지 말고 고쳐야하며, 나의 덕()이 어떤지를 생각하고 힘써서 닦고 게으르지 않아야합니다. 사건이나 사물이 닥치면 지극한 이치를 따져서 찾아내는 동안에 경()을 지키고 일()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천자의 직무를 다하여 조상과 가족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며, 구족(九族)을 가까이하고 백성들을 마음에 품어야하며, 어진 혜택이 주변 국가들에도 미치도록 해야합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커다란 황제의 대통을 계승하였는데 덕이 부족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어리석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을 지키는 지경(持敬)공부를 다하고 잘 다스려서 덕이 순수한 일덕(一德)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며, 삐뚤어지고 안일한 생각들을 없애고, 덕을 쌓은 사람들을 믿고 맡겨서 저를 잘 돕도록 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을 널리 찾아서 관직에 임용하여 순수한 왕도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하여, 태평스럽고 행복한 통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저는 서적을 읽다가 깨달은 것이 있기에 아래와 같이 적어서 스스로 힘쓰려고 합니다.

 

본문

사람마다 마음을 타고 났고 마음에는 모든 이치가 담겨있는데,

마음을 깨달아 실행하되 덕()이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습니다.

()하고 일()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하여야만 마음이 천리대로 순수해질 수 있고 경()하여야만 덕이 쌓입니다.

군주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많은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인정(仁政)을 펼쳐야만 하늘의 커다란 계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이 공경()한지 태만()한지 그리고 순수한지 섞였는지는,

반응을 보면 금방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북채로 북을 치면 북소리가 나듯이 알 수 있습니다.

황제로서 나는 하늘의 보살핌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가 되었는데,

덕이 부족하기에 크게 두렵습니다.

오로지 경()하고 일()하며 경일을 굳건히 지키며,

하늘을 무서워하고 백성을 부지런히 다스려서 잠시라도 쉬지 않겠습니다.

()이 무엇이겠습니까? 태만하거나 포기하려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며,

하늘 제사를 공경하고 정성스럽게 하고 종묘 제사를 잘 모시고 효심을 갖는 것입니다.

성스러운 조정에서는 엄숙한 마음을 갖고 한가하더라도 조심할 것이며,

반성하여 허물을 살피고 경건하게 조심하여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을 천리에 맞도록 순수하게 하고,

마음이 세 갈래로 갈라지지 않도록 하고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행동할 때는 했던 말을 살펴볼 것이고 끝날 때에도 처음처럼 하겠으며,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비워서 욕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 날마다 발전하겠습니다.

성현의 본받을 말씀은 모두 오경에 실려있으니,

저는 오경을 연구하여 좋은 것을 골라서 반드시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곁에서 저를 돕는 신하들이 충성과 올곧도록 할 것이며,

나는 이런 사람들을 임용하고 신하의 충성과 올곧음을 잘 분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일()이고 이것이 경()이며,

군주가 덕을 닦아야만 천하의 많은 나라들이 바르게 다스려질 것입니다.

하늘이 보살피고 백성들이 기억하는 군주가 되어 나라의 경사를 영원토록 하겠으며,

조상들을 빛내고 후손들이 잘살도록 하여 번영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제후들과 공경대부들은 물론이고,

일반지식인과 백성들은 모두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라야합니다.

이들은 경()하도록 일()하도록 힘쓰고 조금이라도 흩뜨리지 말아,

봉록과 관직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아 목숨을 다하길 바랍니다.

옛날에는 청동 그릇에 말씀을 새겨서 눈에 띌 때마다 마음을 조심하였으니,

은나라 탕임금은 경()하여 날마다 발전하였고 일()하여 천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 잠()을 지어 간절하게 성인이 되길 바라며,

나를 잇는 후손들도 아름다운 교화를 베풀어 안정된 나라를 만들기를 바랍니다.

 

 

가정황제,「敬一箴(並序)

敬者存其心而不忽之謂也元后敬則不失天下諸侯敬則不失其國卿大夫敬則不失其家士庶人敬則不失其身禹曰后克艱厥后臣克艱厥臣五子之歌有云予臨兆民如朽索之馭六馬爲人上者奈何不敬其推廣敬之一言可謂明矣一者純乎理而無雜之謂也伊尹曰德惟一動罔不吉德二三動罔不凶其推廣一之一言可謂明矣

蓋位爲元后受天付托承天明命作萬方之君一言一動一政一令實理亂安危之所系若此心忽而不敬則此德豈能純而不雜哉故必兢懷畏慎於郊禋之時儼神明之鑒察發政臨民端莊戒謹惟恐拂於人情至於獨處之時思我之咎何如改之不吝思我之德何如勉而不懈凡諸事至物來究夫至理惟敬是持惟一是協所以盡爲天子之職庶不忝厥祖厥親由是九族親之黎民懷之仁澤覃及於四海矣

朕以沖人纘承丕緒自諒德寡昧勉而行之欲盡持敬之功以馴致乎一德其先務又在虛心寡欲驅除邪逸信任耆德爲之匡輔敷求善人布列庶位斯可行純王之道以坐致太平雍熙之至治也朕因讀書而有得焉乃述此以自勖云

 

人有此心萬理咸具體而行之惟德是據

敬焉一焉所當先務匪一弗純匪敬弗聚

元后奉天長此萬夫發政施仁期保鴻圖

敬怠純駁應驗頓殊徵諸天人如鼓答桴

朕荷天眷爲民之主德或不類以爲大懼

惟敬惟一執之甚固畏天勤民不遑寧處

曰敬惟何怠荒必除郊則恭誠廟嚴孝趨

肅於明庭慎於閑居省躬察咎儆戒無虞

曰一維何純乎天理弗三以三弗二以二

行顧其言終如其始靜虛無欲日新不己

聖賢法言備見諸經我其究之擇善必精

左右輔弼貴於忠貞我其任之鑒別必明

斯之謂一斯之謂敬君德既修萬邦則正

天親民懷永延厥慶光前裕後綿衍蕃盛

咨爾諸侯卿與大夫以至士庶一遵斯謨

主敬協一罔敢或渝以保祿位以完其軀

古有盤銘目接心警湯敬日躋一德受命

朕爲斯箴拳拳希聖庶幾湯孫底於嘉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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范浚(1102-1150),「心箴」:

茫茫堪輿俯仰無垠人於其間眇然有身

是身之微太倉稊米參爲三才曰惟心耳

往古來今孰無此心心爲形役乃禽乃獸

惟口耳目手足動靜投閑抵隙爲厥心病

一心之微眾欲攻之其與存者嗚呼幾希

君子存誠克念克敬天君泰然百體從令

 

 

범준(范浚, 1102-1150),「마음 가짐(心箴)」:

크고 넓은 하늘과 땅을 쳐다봐도 내려다봐도 끝이 없구나.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아주 작은 몸을 갖고 있네.

이 몸이 아주 작아 커다란 창고에 있는 쌀 한 톨에 지나지 않네.

사람은 하늘과 땅과 함께 우주를 이루는 까닭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네.

지난 옛날이나 오늘과 다가올 미래에 누가 이 마음을 타고 나지 않겠는가!

마음이 몸의 지배를 받는다면 짐승이 되는구나.

입은 맛을, 귀는 좋은 소리를, 눈은 아름다운 것을, 그리고 손발은 편안한 것을 찾는구나.

몸의 이러한 욕심들은 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와서 마음에 병을 일으키는구나.

마음은 아주 작고 힘없는데 많은 욕심들이 공격하는구나.

이러한 마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더라.

군자는 마음에 성()을 지키면서 떠오르는 생각마다 경()하게 하여야한다.

마음이라는 주인공이 태연하여야만 온몸이 마음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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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荀子天論』:心居中虛以治五官夫是之謂天君

 

高上玉皇本行經集注(明全真道士周玄貞)

本文與無鞅數眾宣說靈寶清淨真一不二法門

注文天君泰然則玉皇光明之座可升百體從令凝神會道即天尊御座與無鞅真聖宣靈寶清淨真一不二之法門也

(中華道藏』,6344上欗)

 

呂祖前八品真經』,上卷,「忘情品第二」:

太乙元君威攝萬靈將軍嚴令孰敢不從守城野戰正奇有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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范香溪先生文集』,「朱子小傳」:

范浚字茂明婺之蘭谿人隱居香溪世號香溪先生初不知從何學其學甚正近世言浙學者多尚事功浚獨有志聖賢之心學無少外慕屢辭徵辟不就所著文辭多本諸經而參諸子史其考易春秋皆有傳註以發前儒之所未發於時家居授徒至數百人吾鄉亦有從其遊者熹嘗屢造其門而不獲見近始得學行之詳於先友呂伯恭庸述小傳以聞四方學者

 

* 이 글은 청나라 건륭연간의 판본에 처음 등장하기 때문에 주자가 지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글은 주자 문집에 넣었습니다.

 

 

朱子,『孟子集注』,卷十一告子章句上

公都子問曰:「鈞是人也或為大人或為小人何也?」孟子曰:「從其大體為大人從其小體為小人。」

同也隨也大體心也小體耳目之類

 

:「鈞是人也或從其大體或從其小體何也?」:「耳目之官不思而蔽於物物交物則引之而已矣心之官則思思則得之不思則不得也此天之所與我者先立乎其大者則其小者弗能奪也此為大人而已矣。」

官之為言司也耳司聽目司視各有所職而不能思是以蔽於外物既不能思而蔽於外物則亦一物而已又以外物交於此物其引之而去不難矣心則能思而以思為職凡事物之來心得其職則得其理而物不能蔽失其職則不得其理而物來蔽之此三者皆天之所以與我者而心為大若能有以立之則事無不思而耳目之欲不能奪之矣此所以為大人也然此天之此舊本多作比而趙注亦以比方釋之今本既多作此而注亦作此乃未詳孰是但作比字〕,於義為短故且從今本云范浚心箴:「茫茫堪輿俯仰無垠人於其間眇然有身是身之微大倉稊米參為三才曰惟心耳往古來今孰無此心心為形役乃獸乃禽惟口耳目手足動靜投閒抵隙為厥心病一心之微眾欲攻之其與存者嗚呼幾希君子存誠克念克敬天君泰然百體從令。」

 

 

四書章句集注』,孟子告子上

公都子曰冬日則飲湯夏日則飲水然則飲食亦在外也此亦上章耆炙之意

范氏二章問答大指略同皆反復譬喻以曉當世使明仁義之在內則知人之性善而皆可以為堯舜矣

 

程子為講官言於上曰人主一日之閑接賢士大夫之時多親宦官宮妾之時少則可以涵養氣質而薰陶德性時不能用識者恨之

范氏人君之心惟在所養君子養之以善則智小人養之以惡則愚然賢人易疏小人易親是以寡不能勝眾正不能勝邪自古國家治日常少而亂日常多蓋以此也

 

范浚心箴茫茫堪輿俯仰無垠人於其間眇然有身是身之微大倉稊米參為三才曰惟心耳往古來今孰無此心心為形役乃獸乃禽惟口耳目手足動靜投閑抵隙為厥心病一心之微眾欲攻之其與存者嗚呼幾希君子存誠克念克敬天君泰然百體從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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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峰胡氏,「註心箴」:

胡炳文(1250-1333)

 

茫茫堪輿俯仰無垠音銀人於其間眇然有身是身之微太倉稊杜兮反參爲三才曰惟心爾堪輿謂天地言天地至大而人處天地間此身至小不過如太倉一粒梯米而已然人之所以可與天地參爲三才者惟在此心心之體豈不甚大

 

往古來今孰無此心心爲形役乃獸乃禽此言此心之大往古來今人人有之若純乎義理則是從其大體若役於形氣則是從其小體彼禽獸之心終日役役不過飲食牝牡而已人之心而爲形所役與禽獸何異嗚呼人之心其大也本可以參天地而役於小者不能異乎禽獸亦獨何哉可以反而思矣

 

惟口耳目手足動靜投間去聲抵隙乞逆反爲厥心病此言口欲味目欲色耳欲聲四肢欲安佚本心微有間隙彼則乗之而入矣

 

一心之微眾欲攻之其與存者嗚呼幾平聲此言此心之發於義理者甚微而役扵形氣者甚衆以彼之衆攻我之微如國勢方弱而四面受敵其不亡者罕矣

 

君子存誠克念克敬天君泰然百體從令前八句是説小人之從其小體此四句是說大人之從其大體曰誠曰念曰敬念即思之謂而敬即存誠之方也一誠足以消萬僞一敬足以敵千邪所謂先立乎其大者莫切於此天君泰然」,是先立乎其大者百體從令」,是小者弗能奪朱子曰:「范氏之箴葢得其旨未可易之也。」愚故從而釋之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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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료

 

이색, 목은집』,25,「가을 더위」:

秋暑困衰翁凍雨一洗之劃時五內涼兀坐靜言思

靈臺方寸地外物莫能移奈何觸寒熱勢窘難支持

稽首謝天君泰然其在玆

 

 

金時習(1435-1493), 梅月堂文集卷之二十三 / 雜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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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人三十年二十年未得箇入處只在此病聖學不如此只欲眞實脚踏田地須要穩密涵養蘭陵君子存誠克念克敬天君泰然百體從令

 

 

李珥(1536-1584), 栗谷先生全書卷之十五 / 雜著 二

學校模範(壬午製進)事目附 a044_331d

五曰存心謂學者欲身之修必須內正其心不爲物誘然後天君泰然百邪退伏方進實德故學者先務當靜坐存心寂然之中不散亂不昏昧以立大本而若一念之發則必審善惡之幾善則窮其義理惡則絶其萌芽存養省察勉勉之已則動靜云爲無不合乎義理當然之則矣

 

 

鄭齊斗, 霞谷集卷九 / 存言[]

此心爲血氣所使客氣所乘爲外物所動衆岐所溺爲私意所奪利欲所牽爲事勢所制習染所拘使意荒而志廢心窒而志昏使其志氣庸陋卑下輕忽苟簡使其心地虛詐不誠奇譎無恒以至於傲滿怠慢忌克吝滯昏昧繆擾陰柔餒喪無有一正以至於將迎計較意必穿錯智解意想紛紜相尋無有一是其千邪萬惡皆由此出知其爲血氣而克之客氣而去之知其爲外慕而絶之他歧而黜之知其爲私意而拔之利欲而遏之勿以事勢而撓之習染而安之諸病旣去天君泰然百體從令

 

 

沈錥, 樗村先生遺稿卷之三十六 / 雜著

[經說] a208_164a

其心收斂

天君泰然

存其心

不容一物

百軆從令

 

戒愼恐懼

洞洞屬屬

寂然不動

養其性

戰戰兢兢

感而遂通天下之故

 

 

沈潮(1694-1756), 靜坐窩先生集卷之十一 / 雜著

朱子感興詩解-D001 b073_281d

微月墜西嶺 止 寂感無邊方右第九篇

微月墜西嶺則人欲消矣爛然衆星光則天理長矣太乙有常居以下正是天君泰然百軆從令之意也盖心爲一身之主居中而應乎外譬如太乙之中天而照四國然惟聖人爲然衆人不然每循物欲於軀殼之外故一身無主萬事無綱也人心要如此之此卽有常居而照四國也寂感無邊方者卽在中之意心之在中未應已應皆然也何文定曰上下兩篇皆是爲在上之君子言之恐不然

 

 

柳長源(1724-1796), 東巖先生文集卷之八 /

答姪兒範休問目 甲午 b088_324d

配此理者氣也害此理者亦氣也故無此形氣此理無所頓著非此形氣此理無所壞了世間甚事不因形氣上錯了乎理爲之主則氣爲之助所謂天君泰然百體從令者是也理不得爲主則氣爲之賊所謂耳目手足爲厥心病者是也故形氣譬則治世之能臣亂世之奸雄如何

 

 

李野淳(1755-1831), 廣瀨文集卷之七 / 雜著

心箴圖 b102_570a

 

韓汝愈遁翁先生文集卷之四 / 雜圖 辨解附

聖人以天地萬物爲一體圖 b044_50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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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5(1526, 가정황제 19) 10월에 이부상서 楊一淸과 어사 熊爵왕양명을 병부상서에 추천하였으나 가정황제는 왕양명 본인과 학술이 竊負儒名”, “非方正之學이라고 비난하고 임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해 10월에 경일잠(敬一箴)을 지었고, 費宏의 건의를 받아 국자감과 지방 학교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명 가정황제 실록을 보면 가정5년 당시 19살이었던 가정황제가 비굉의 영향을 받아 경일잠을 지어 국자감에 비석을 세웠던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에 속경남 교수는 여기에 근거하여 왕양명 연보 장편(1796)에서 가정황제가 비굉의 영향을 받아 경일잠을 짓고 정주학 입장에서 육왕학을 배척하였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가정황제 개인적 입장에서는 대례의(大禮議) 때문에 당연히 주자학을 싫어하였고 양명학도 싫어하였습니다. 가정황제가 양명학을 싫어하였던 까닭은 도교의 主靜공부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가정황제는 도교의 내단 수련공부를 하면서 나중에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도교의 내단 수련공부에서 보면 왕양명의 수양공부는 수준이 높지 않고 평범하며 또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종교적 신념도 없습니다. 따라서 가정황제가 결코 주자학을 수호하기 위하여 양명학을 배척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북경 관계(官界)에서 보면, 왕양명이 주신호 반란을 진압한 뒤에 전공을 병부상서 왕경(王瓊)에게 돌리고 공로의 일부를 비굉에게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비굉은 왕양명의 북경 등용을 막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에 대례의(大禮議) 때문에 득세하고 있던 석서(席書)를 비롯하여 장총(張璁)과 계악(桂萼)이 왕양명을 북경 등용에 추천하고 있었으나, 장총과 계악이 서로 좋은 상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장총은 왕양명을, 계악은 위교(魏校)를 지지하였습니다. 위교는 주자학 입장에서 왕양명을 이단학술이라고 비난하였고, 계악은 왕양명을 훌륭한 학자이며 좋은 관원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위교의 영향을 받아 왕양명의 북경 등용에는 소극적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선시기 조선 사신이 국자감에 가서 직접 비석을 보았고 소문을 듣고 기록하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가정6년에 가정황제는 강관 고정신이 범준(范浚)심잠(心箴)을 시강하는 것을 듣고 장총(張璁)과 적난(翟鑾)에게 심잠이 좋다고 말하였고, 장총 등은 정이천의 사물잠(四勿箴)도 좋다고 건의하였답니다. 가정황제는 정이천의 글도 읽어본 뒤에 2편에 주석을 달고 또한 경일잠을 짓고 주석도 달았다고 합니다. 조선 사신의 기록은 장총의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명실록이나 명나라 다른 기록은 비굉의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가정황제가 항상 비굉 등과 상의하였다고 하며 비굉이 경일잠을 비석에 써서 세우자고 건의하였다고 합니다. 조선과 명나라 양측의 기록이 서로 다릅니다. 명나라 기록에 따르면 비굉이 왕양명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가정황제가 왕양명을 싫어하였고 그래서 경일잠을 써서 국자감 등에 세웠던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조선과 명나라 어느 쪽의 기록이 정확한지는 현재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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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史』,本紀第十七世宗一

(五年冬十月)庚午頒禦制敬一箴於學宮

 

明世宗肅皇帝實錄』,卷六十九

(嘉靖五年十月)乙卯禮部尚書席書言新建伯王守仁服闋年餘尚未拜封請差官催取從之

 

(嘉靖五年十月)辛酉升兵部左侍郎王時中爲本部尚書先是兵部缺尚書吏部會推者再俱未允試監察禦史熊爵乃言本兵重地貴在得人新建伯王守仁尚書彭澤皆壯猷元老可當是任章下所司至是吏部復以時中請遂用之

 

(嘉靖五年十月)庚午上制敬一箴及注范浚心箴」、程頤視聽言動四箴頒賜大學士費宏宏等疎謝因言此帝王傳心之要法致治之要道奏請敕工部於翰林院蓋亭豎立以垂永久仍敕禮部通行兩京國學並在所提學官摹刻於府州縣學使天下人士服膺聖訓有所興起上命如議行

兵部右侍郎張璁詹事府詹事桂萼兩疎論大學士費宏專擅威福大肆奸貪極言醜詆章下所司

 

我太祖識人心道心倚伏之幾操而存之罔敢自暇自逸即其觀心亭所建蓋真得虞廷十六字之傳矣世廟留心聖學每與費宏等討論允當至是為敬一箴并註范五箴頒之天下學宮益以廣太祖之教其為世道慮也至矣宜其赫然為中興令主歟兵部右侍郎張璁詹事桂萼兩疏論大學士費宏擅專威福大肆奸貪極言醜詆章下所司

 

(嘉靖七年戊子二月)庚申命工部建敬一亭於翰林院鐫御製敬一箴」、五箴註乃行兩京國子監及天下儒學一體摹刻立石

 

(嘉靖九年庚寅)九月壬辰禮科給事中高金奏陛下龍御之初凡法祖法師國王佛子有害正道者悉從屏逐近又諭禮官革姚廣孝之配享天下歎服以為崇正闢邪乃今真人邵元節誤蒙殊恩以為聖治累臣願削去真人之號褫其紫主之貴奪其親師贈祭之典庶乎異端斥而正道崇矣上令錦衣衞逮問所使且令禮部議聞李時謂撤配享者所以正祀典而用元節者所以為祈禳事既不同惟上裁之

 

嘉靖八年二月戊辰, (「嘉靖八年二月戊辰」,原脫嘉靖八年」,「戊辰壬辰」,據明實錄世宗實錄卷九八嘉靖八年二月戊辰條補。) 新建伯王守仁因病篤離任死南安守仁方圖離任不暇奏請吏部以情有可原乞從寬宥上意以擅離重地非大臣事君之道況學術事功多有可議會官詳定。」禮科給事中周延上疏救之調外任

 

甲戌, (「甲戌」,原無據明實錄世宗實錄卷九八嘉靖八年二月甲戌條補。) 吏部會議王守仁功罪:「守仁事不師古言不稱師欲立異以為名則非朱熹格物致知之論知眾論之不與則著朱熹晚年定論之書號召生徒互相倡和其門人為之辯謗至謂杖之不死投之江不死以上瀆天聽幾於無忌憚矣若夫剿捕逆濠論功足錄宜免奪伯爵以彰國家之大信申禁邪說以正天下之人心。」

 

上曰:「守仁放言自肆詆毀先儒用詐任情壞人心術邇來士子傳習邪說皆其倡導至於宸濠之變仗義討賊功固可錄所封伯爵姑令終身仍榜諭天下敢有踵襲邪說果於非聖者重治不饒。」

 

守仁勛業粹乎無容議矣至其詆程朱而宗佛佬則邪正之辨乃在於此吏部會議功罪昭彰甚明故世廟亦以為詆毀先儒壞人心術仍欲榜諭天下此其扶正而闢邪有功於吾道也甚大然未及四十餘年輒為流說所惑從祀孔廷豈徒操戈於程朱之門抑亦伏謁於老佛之梵矣若曰精於玄釋杖之不死投之江不死又何死於南安乎與其離任而死孰若死於官邸猶免擅離之罪哉

 

費縣志』,「敬一箴」:

明世宗嘉靖五年作敬一箴」,頒之太學遂詔郡邑學校皆鐫石並刻程子四箴」、「范子心箴」,作亭覆之今無是亭敬一箴碑在學署之前程子四箴」、「范子心箴臥碑在明倫堂上蓋亭廢而移臥碑獨留箴碑於此也

 

沂州府志』,卷十三學校,「敬一亭」:

明嘉靖五年作敬一箴」,頒之太學遂詔郡邑學校皆鐫石並刻程子四箴」、「范子心箴」,作亭覆之

 

조선실록』:

其碑曰: ‘嘉靖六年, 皇帝敎張璁翟鑾: “講官謂范浚 心箴, 大有功於正心, 予讀之, 其味甚無窮張璁等啓曰: 非特此程子四箴, 亦有補於心學。」皇帝於是, 心箴四勿箴, 皆註之, 又作敬一箴而註之, 幷刻于石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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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황제,「경일잠(敬一箴)서문

 

()은 마음을 지키고 잠시라도 밖으로 놓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군주가 경()하면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가 경()하면 나라를 잃지 않고 경대부가 경()하면 봉지를 잃지 않고 지식인과 일반 백성들이 경()하면 목숨을 잃지 않습니다. 우임금은 군주가 군주의 일을 어렵게 여겨야하고 신하는 신하의 맡은 일을 어렵게 여겨야한다.”고 말하였습니다. 五子之歌에서는 내가 많은 백성들을 통치하면서 마치 썩을 밧줄로 6마리 말의 수레를 끄는 것처럼 위험하고 조심스럽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로서 어찌 경()하지 않겠습니까! ()이라는 한 마디를 널리 전파하면 세상을 밝아질 것입니다. ()은 마음을 순수하게 하여 천리(天理)에 완전히 합동하게 하고 아무런 인심(人心)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윤은 ()이 일()이 되도록 해야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둘이나 셋으로 나뉘면 일할 때마다 흉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일()이라는 한 마디를 널리 전파하면 세상을 밝아질 것입니다.

대체로 군주 자리에 오른 것은 하늘에서 부탁을 받은 것이고, 하늘의 밝은 명령을 받아 만방의 군주가 된 것입니다. 군주의 말과 행동 및 통치명령은 사실상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리고 위험한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에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마음을 아주 짧은 잠깐이라도 경()하지 않는다면 군주의 덕()이 어떻게 순수하게 되고 인욕에 섞이지 않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반드시 제사를 지낼 때 신명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을 느끼고 있어야합니다. 또한 통치명령을 백성들에게 내릴 때에도 단정하고 장엄하게 조심하여야하며 백성들의 인정(人情)에 어긋나지 않을까를 걱정해야합니다. 더구나 혼자 있을 때에는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꺼리지 말고 고쳐야하며, 나의 덕()이 어떤지를 생각하고 힘써서 닦고 게으르지 않아야합니다. 사건이나 사물이 닥치면 지극한 이치를 따져서 찾아내는 동안에 경()을 지키고 일()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천자의 직무를 다하여 조상과 가족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며, 구족(九族)을 가까이하고 백성들을 마음에 품어야하며, 어진 혜택이 주변 국가들에도 미치도록 해야합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커다란 황제의 대통을 계승하였는데 덕이 부족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어리석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을 지키는 지경(持敬)공부를 다하고 잘 다스려서 덕이 순수한 일덕(一德)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며, 삐뚤어지고 안일한 생각들을 없애고, 덕을 쌓은 사람들을 믿고 맡겨서 저를 잘 돕도록 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을 널리 찾아서 관직에 임용하여 순수한 왕도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하여, 태평스럽고 행복한 통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저는 서적을 읽다가 깨달은 것이 있기에 아래와 같이 적어서 스스로 힘쓰려고 합니다.

 

본문

사람마다 마음을 타고 났고 마음에는 모든 이치가 담겨있는데,

마음을 깨달아 실행하되 덕()이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습니다.

()하고 일()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하여야만 마음이 천리대로 순수해질 수 있고 경()하여야만 덕이 쌓입니다.

군주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많은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인정(仁政)을 펼쳐야만 하늘의 커다란 계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이 공경()한지 태만()한지 그리고 순수한지 섞였는지는,

반응을 보면 금방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북채로 북을 치면 북소리가 나듯이 알 수 있습니다.

황제로서 나는 하늘의 보살핌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가 되었는데,

덕이 부족하기에 크게 두렵습니다.

오로지 경()하고 일()하며 경일을 굳건히 지키며,

하늘을 무서워하고 백성을 부지런히 다스려서 잠시라도 쉬지 않겠습니다.

()이 무엇이겠습니까? 태만하거나 포기하려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며,

하늘 제사를 공경하고 정성스럽게 하고 종묘 제사를 잘 모시고 효심을 갖는 것입니다.

성스러운 조정에서는 엄숙한 마음을 갖고 한가하더라도 조심할 것이며,

반성하여 허물을 살피고 경건하게 조심하여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을 천리에 맞도록 순수하게 하고,

마음이 세 갈래로 갈라지지 않도록 하고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행동할 때는 했던 말을 살펴볼 것이고 끝날 때에도 처음처럼 하겠으며,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비워서 욕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 날마다 발전하겠습니다.

성현의 본받을 말씀은 모두 오경에 실려있으니,

저는 오경을 연구하여 좋은 것을 골라서 반드시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곁에서 저를 돕는 신하들이 충성과 올곧도록 할 것이며,

나는 이런 사람들을 임용하고 신하의 충성과 올곧음을 잘 분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일()이고 이것이 경()이며,

군주가 덕을 닦아야만 천하의 많은 나라들이 바르게 다스려질 것입니다.

하늘이 보살피고 백성들이 기억하는 군주가 되어 나라의 경사를 영원토록 하겠으며,

조상들을 빛내고 후손들이 잘살도록 하여 번영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제후들과 공경대부들은 물론이고,

일반지식인과 백성들은 모두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라야합니다.

이들은 경()하도록 일()하도록 힘쓰고 조금이라도 흩뜨리지 말아,

봉록과 관직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아 목숨을 다하길 바랍니다.

옛날에는 청동 그릇에 말씀을 새겨서 눈에 띌 때마다 마음을 조심하였으니,

은나라 탕임금은 경()하여 날마다 발전하였고 일()하여 천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 잠()을 지어 간절하게 성인이 되길 바라며,

나를 잇는 후손들도 아름다운 교화를 베풀어 안정된 나라를 만들기를 바랍니다.

 

 

가정황제,「敬一箴(並序)

敬者存其心而不忽之謂也元后敬則不失天下諸侯敬則不失其國卿大夫敬則不失其家士庶人敬則不失其身禹曰后克艱厥后臣克艱厥臣五子之歌有云予臨兆民如朽索之馭六馬爲人上者奈何不敬其推廣敬之一言可謂明矣一者純乎理而無雜之謂也伊尹曰德惟一動罔不吉德二三動罔不凶其推廣一之一言可謂明矣

蓋位爲元后受天付托承天明命作萬方之君一言一動一政一令實理亂安危之所系若此心忽而不敬則此德豈能純而不雜哉故必兢懷畏慎於郊禋之時儼神明之鑒察發政臨民端莊戒謹惟恐拂於人情至於獨處之時思我之咎何如改之不吝思我之德何如勉而不懈凡諸事至物來究夫至理惟敬是持惟一是協所以盡爲天子之職庶不忝厥祖厥親由是九族親之黎民懷之仁澤覃及於四海矣

朕以沖人纘承丕緒自諒德寡昧勉而行之欲盡持敬之功以馴致乎一德其先務又在虛心寡欲驅除邪逸信任耆德爲之匡輔敷求善人布列庶位斯可行純王之道以坐致太平雍熙之至治也朕因讀書而有得焉乃述此以自勖云

 

人有此心萬理咸具體而行之惟德是據

敬焉一焉所當先務匪一弗純匪敬弗聚

元后奉天長此萬夫發政施仁期保鴻圖

敬怠純駁應驗頓殊徵諸天人如鼓答桴

朕荷天眷爲民之主德或不類以爲大懼

惟敬惟一執之甚固畏天勤民不遑寧處

曰敬惟何怠荒必除郊則恭誠廟嚴孝趨

肅於明庭慎於閑居省躬察咎儆戒無虞

曰一維何純乎天理弗三以三弗二以二

行顧其言終如其始靜虛無欲日新不己

聖賢法言備見諸經我其究之擇善必精

左右輔弼貴於忠貞我其任之鑒別必明

斯之謂一斯之謂敬君德既修萬邦則正

天親民懷永延厥慶光前裕後綿衍蕃盛

咨爾諸侯卿與大夫以至士庶一遵斯謨

主敬協一罔敢或渝以保祿位以完其軀

古有盤銘目接心警湯敬日躋一德受命

朕爲斯箴拳拳希聖庶幾湯孫底於嘉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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