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황제의 경일잠(敬一箴)과 송나라 정이천 「四勿箴」 및 范浚의 「心箴」
2019년 9월 18일
가정황제가 「경일잠(敬一箴)」을 언제 지었고 언제 국자감과 전국 학교에 비석을 세웠는지에 관하여 말이 많았습니다. 현재 『(嘉靖)池州府志』,卷第八,雜著篇上,藝文,「敬一箴」을 보면 가정 5년(1526) 6월 21일에 썼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가정황제가 지은 「程子四箴」의 주석도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기록을 보면, 가정 6년 11월 13일에 강관(講官) 고정신(顧鼎臣, 1473-1540)이 송나라 범준(范浚, 1102-1150)의 「심잠(心箴)」을 강연한 것을 듣고 느낀 것이 있어서 「경일잠(敬一箴)」을 지었다고 합니다. 가정황제가 장총(張璁) 등에게 말하자, 장총은 정이천의 「사물잠(四勿箴)」도 좋다고 건의하였고 가정황제가 「程子四箴」의 주석도 달았습니다. 장총은 이것들을 국자감과 전국 학교에 비석을 세우자고 건의하였습니다. 다른 기록들에는 가정황제의 「경일잠」 서문만이 남아있습니다.
가정황제가 「경일잠」을 지어 국자감과 전국 학교에 비석을 세웠던 까닭은 황제가 신하들에게 충성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황제 권한을 신하들이 넘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명나라 태조와 성조는 황제 교육과 신하 교육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원나라 세조부터 황제와 신하의 교육을 나누었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황제권을 강화시킨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황제의 독재를 확립한 것입니다.
범준의 「심잠」이 중국 학계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주자 때문입니다. 주자가 19살 과거시험을 보려고 항주에 가는 길에 절강성 금화에 있는 범준의 집에 들렀으나 만나지 못하였고 과거시험에 합격한 뒤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렀으나 여전히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이후에 범준의 아들의 부탁을 받고 찾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범준은 북송시기 성리학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심학을 연구하였습니다. 주자는 범준의 스승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주자는 범준의 「심잠」 “天君泰然,百體從令” 구절에 대하여 천군이 맹자의 대자(大者)이라고 해석하였고 『맹자 집주』에 글 일부를 인용하여 넣었고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따라서 주자는 범준의 「심잠」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절강성 금화지역에서 주자학을 계승한 북산 사선생(北山 四先生) 가운데 허겸(許謙)이 원나라 시기에 국자감 좨주를 맡았습니다.
송나라 주자학자 진덕수(眞德秀, 1178-1235)가 『심경(心經)』을 편집하면서 범준의 「심잠」을 인용하였습니다. 원나라 시기에는 호병문(胡炳文, 1250-1333)이 주자의 뜻에 따라 중시하고 「심잠」에 주석을 붙였습니다. 왕양명의 『전습록』에서도 「심잠」 “天君泰然,百體從令”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범준의 「심잠」은 사실상 도교의 종교적 상상력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천군은 순자(荀子)가 말한 천군이 아니고 도교의 옥황상제를 뜻합니다. 이 점이 후세 연구자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고려시기에는 이색(李穡) 선생이 원나라 시기에 북경에 있는 국자감에 다녔다고 합니다. 아마도 좨주 허겸(許謙)으로부터 「심잠」을 배웠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색 선생과 조선시기 서거정 선생 등이 시를 지으면서 범준의 「심잠」 “天君泰然,百體從令” 구절을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조선시기에는 가정황제 「경일잠」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임진왜란 이후에 북경에 사신 갔던 사람들의 기록만이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율곡 선생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학자들도 범준의 「심잠」을 주목하였고 여러 연구가 나왔습니다. 하곡 정제두 선생과 심육 선생도 「심잠」을 인용하여 심학을 설명하였습니다. 대체로 이기 관점에서 천군이 이(理), 백체가 기(氣)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고려말기와 조선시기에는 주자의 영향 때문에 범준의 「심잠」 주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심잠」을 학술관점에서 평가하면 그다지 수준이 높거나 새로운 내용은 없습니다. 따라서 조선시기 학자들이 심잠을 주목하고 깊이 연구한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외국 학술이라도 걸러내서 연구하길 바랍니다.
---------------------------
가정황제,「경일잠(敬一箴)」 서문:
경(敬)은 마음을 지키고 잠시라도 밖으로 놓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군주가 경(敬)하면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가 경(敬)하면 나라를 잃지 않고 경대부가 경(敬)하면 봉지를 잃지 않고 지식인과 일반 백성들이 경(敬)하면 목숨을 잃지 않습니다. 우임금은 “군주가 군주의 일을 어렵게 여겨야하고 신하는 신하의 맡은 일을 어렵게 여겨야한다.”고 말하였습니다. 「五子之歌」에서는 “내가 많은 백성들을 통치하면서 마치 썩을 밧줄로 6마리 말의 수레를 끄는 것처럼 위험하고 조심스럽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로서 어찌 경(敬)하지 않겠습니까! 경(敬)이라는 한 마디를 널리 전파하면 세상을 밝아질 것입니다. 일(一)은 마음을 순수하게 하여 천리(天理)에 완전히 합동하게 하고 아무런 인심(人心)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윤은 “덕(德)이 일(一)이 되도록 해야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길(吉)하지 않은 것이 없다. 덕(德)이 둘이나 셋으로 나뉘면 일할 때마다 흉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일(一)이라는 한 마디를 널리 전파하면 세상을 밝아질 것입니다.
대체로 군주 자리에 오른 것은 하늘에서 부탁을 받은 것이고, 하늘의 밝은 명령을 받아 만방의 군주가 된 것입니다. 군주의 말과 행동 및 통치명령은 사실상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리고 위험한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에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마음을 아주 짧은 잠깐이라도 경(敬)하지 않는다면 군주의 덕(德)이 어떻게 순수하게 되고 인욕에 섞이지 않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반드시 제사를 지낼 때 신명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을 느끼고 있어야합니다. 또한 통치명령을 백성들에게 내릴 때에도 단정하고 장엄하게 조심하여야하며 백성들의 인정(人情)에 어긋나지 않을까를 걱정해야합니다. 더구나 혼자 있을 때에는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꺼리지 말고 고쳐야하며, 나의 덕(德)이 어떤지를 생각하고 힘써서 닦고 게으르지 않아야합니다. 사건이나 사물이 닥치면 지극한 이치를 따져서 찾아내는 동안에 경(敬)을 지키고 일(一)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천자의 직무를 다하여 조상과 가족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며, 구족(九族)을 가까이하고 백성들을 마음에 품어야하며, 어진 혜택이 주변 국가들에도 미치도록 해야합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커다란 황제의 대통을 계승하였는데 덕이 부족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어리석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敬)을 지키는 지경(持敬)공부를 다하고 잘 다스려서 덕이 순수한 일덕(一德)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며, 삐뚤어지고 안일한 생각들을 없애고, 덕을 쌓은 사람들을 믿고 맡겨서 저를 잘 돕도록 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을 널리 찾아서 관직에 임용하여 순수한 왕도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하여, 태평스럽고 행복한 통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저는 서적을 읽다가 깨달은 것이 있기에 아래와 같이 적어서 스스로 힘쓰려고 합니다.
본문:
사람마다 마음을 타고 났고 마음에는 모든 이치가 담겨있는데,
마음을 깨달아 실행하되 덕(德)이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습니다.
경(敬)하고 일(一)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일(一)하여야만 마음이 천리대로 순수해질 수 있고 경(敬)하여야만 덕이 쌓입니다.
군주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많은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인정(仁政)을 펼쳐야만 하늘의 커다란 계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이 공경(敬)한지 태만(怠)한지 그리고 순수한지 섞였는지는,
반응을 보면 금방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북채로 북을 치면 북소리가 나듯이 알 수 있습니다.
황제로서 나는 하늘의 보살핌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가 되었는데,
덕이 부족하기에 크게 두렵습니다.
오로지 경(敬)하고 일(一)하며 경일을 굳건히 지키며,
하늘을 무서워하고 백성을 부지런히 다스려서 잠시라도 쉬지 않겠습니다.
경(敬)이 무엇이겠습니까? 태만하거나 포기하려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며,
하늘 제사를 공경하고 정성스럽게 하고 종묘 제사를 잘 모시고 효심을 갖는 것입니다.
성스러운 조정에서는 엄숙한 마음을 갖고 한가하더라도 조심할 것이며,
반성하여 허물을 살피고 경건하게 조심하여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일(一)이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을 천리에 맞도록 순수하게 하고,
마음이 세 갈래로 갈라지지 않도록 하고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행동할 때는 했던 말을 살펴볼 것이고 끝날 때에도 처음처럼 하겠으며,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비워서 욕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 날마다 발전하겠습니다.
성현의 본받을 말씀은 모두 오경에 실려있으니,
저는 오경을 연구하여 좋은 것을 골라서 반드시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곁에서 저를 돕는 신하들이 충성과 올곧도록 할 것이며,
나는 이런 사람들을 임용하고 신하의 충성과 올곧음을 잘 분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일(一)이고 이것이 경(敬)이며,
군주가 덕을 닦아야만 천하의 많은 나라들이 바르게 다스려질 것입니다.
하늘이 보살피고 백성들이 기억하는 군주가 되어 나라의 경사를 영원토록 하겠으며,
조상들을 빛내고 후손들이 잘살도록 하여 번영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제후들과 공경대부들은 물론이고,
일반지식인과 백성들은 모두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라야합니다.
이들은 경(敬)하도록 일(一)하도록 힘쓰고 조금이라도 흩뜨리지 말아,
봉록과 관직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아 목숨을 다하길 바랍니다.
옛날에는 청동 그릇에 말씀을 새겨서 눈에 띌 때마다 마음을 조심하였으니,
은나라 탕임금은 경(敬)하여 날마다 발전하였고 일(一)하여 천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 잠(箴)을 지어 간절하게 성인이 되길 바라며,
나를 잇는 후손들도 아름다운 교화를 베풀어 안정된 나라를 만들기를 바랍니다.
가정황제,「敬一箴」(並序):
夫敬者,存其心而不忽之謂也。元后敬則不失天下,諸侯敬則不失其國,卿大夫敬則不失其家,士庶人敬則不失其身。禹曰:“后克艱厥后,臣克艱厥臣。”「五子之歌」有云:“予臨兆民,如朽索之馭六馬。”爲人上者,奈何不敬?其推廣敬之一言,可謂明矣。一者,純乎理而無雜之謂也。伊尹曰:“德惟一,動罔不吉;德二三,動罔不凶。”其推廣一之一言,可謂明矣。
蓋位爲元后,受天付托,承天明命,作萬方之君,一言一動,一政一令,實理亂安危之所系。若此心忽而不敬,則此德豈能純而不雜哉?故必兢懷畏慎於郊禋之時,儼神明之鑒察;發政臨民,端莊戒謹,惟恐拂於人情。至於獨處之時,思我之咎何如,改之不吝;思我之德何如,勉而不懈。凡諸事至物來,究夫至理,惟敬是持,惟一是協。所以盡爲天子之職,庶不忝厥祖厥親,由是九族親之,黎民懷之,仁澤覃及於四海矣。
朕以沖人,纘承丕緒,自諒德寡,昧勉而行之。欲盡持敬之功,以馴致乎一德。其先務又在虛心寡欲,驅除邪逸,信任耆德,爲之匡輔。敷求善人,布列庶位,斯可行純王之道,以坐致太平雍熙之至治也。朕因讀書而有得焉,乃述此以自勖云:
人有此心,萬理咸具,體而行之,惟德是據。
敬焉一焉,所當先務,匪一弗純,匪敬弗聚。
元后奉天,長此萬夫,發政施仁,期保鴻圖。
敬怠純駁,應驗頓殊,徵諸天人,如鼓答桴。
朕荷天眷,爲民之主,德或不類,以爲大懼。
惟敬惟一,執之甚固,畏天勤民,不遑寧處。
曰敬惟何?怠荒必除,郊則恭誠,廟嚴孝趨。
肅於明庭,慎於閑居,省躬察咎,儆戒無虞。
曰一維何?純乎天理,弗三以三,弗二以二。
行顧其言,終如其始,靜虛無欲,日新不己。
聖賢法言,備見諸經,我其究之,擇善必精。
左右輔弼,貴於忠貞,我其任之,鑒別必明。
斯之謂一,斯之謂敬,君德既修,萬邦則正。
天親民懷,永延厥慶,光前裕後,綿衍蕃盛。
咨爾諸侯,卿與大夫,以至士庶,一遵斯謨。
主敬協一,罔敢或渝,以保祿位,以完其軀。
古有盤銘,目接心警,湯敬日躋,一德受命。
朕爲斯箴,拳拳希聖,庶幾湯孫,底於嘉靖。
---------------------
范浚(1102-1150),「心箴」:
茫茫堪輿,俯仰無垠。人於其間,眇然有身。
是身之微,太倉稊米。參爲三才,曰惟心耳。
往古來今,孰無此心!心爲形役,乃禽乃獸。
惟口耳目,手足動靜。投閑抵隙,爲厥心病。
一心之微,眾欲攻之。其與存者,嗚呼幾希!
君子存誠,克念克敬。天君泰然,百體從令。
범준(范浚, 1102-1150),「마음 가짐(心箴)」:
크고 넓은 하늘과 땅을 쳐다봐도 내려다봐도 끝이 없구나.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아주 작은 몸을 갖고 있네.
이 몸이 아주 작아 커다란 창고에 있는 쌀 한 톨에 지나지 않네.
사람은 하늘과 땅과 함께 우주를 이루는 까닭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네.
지난 옛날이나 오늘과 다가올 미래에 누가 이 마음을 타고 나지 않겠는가!
마음이 몸의 지배를 받는다면 짐승이 되는구나.
입은 맛을, 귀는 좋은 소리를, 눈은 아름다운 것을, 그리고 손발은 편안한 것을 찾는구나.
몸의 이러한 욕심들은 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와서 마음에 병을 일으키는구나.
마음은 아주 작고 힘없는데 많은 욕심들이 공격하는구나.
이러한 마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더라.
군자는 마음에 성(誠)을 지키면서 떠오르는 생각마다 경(敬)하게 하여야한다.
마음이라는 주인공이 태연하여야만 온몸이 마음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
참고자료:
『荀子、天論』:“心居中虛,以治五官,夫是之謂天君。”
『高上玉皇本行經集注』(明全真道士周玄貞撰):
本文:“與無鞅數眾,宣說靈寶清淨真一不二法門。”
注文:“天君泰然,則玉皇光明之座可升,百體從令,凝神會道,即天尊御座,與無鞅真聖宣靈寶清淨真一不二之法門也。”
(『中華道藏』,第6冊,344頁,上欗)
『呂祖前八品真經』,上卷,「忘情品第二」:
太乙元君。威攝萬靈。將軍嚴令。孰敢不從。守城野戰。正奇有倫。
--------------------------
『范香溪先生文集』,「朱子小傳」:
范浚,字茂明,婺之蘭谿人。隱居香溪,世號香溪先生。初不知從何學,其學甚正,近世言浙學者,多尚事功。浚獨有志聖賢之心學,無少外慕,屢辭徵,辟不就。所著文辭,多本諸經,而參諸子史。其考易、書、春秋,皆有傳註,以發前儒之所未發。於時家居授徒,至數百人,吾鄉亦有從其遊者。熹嘗屢造其門而不獲見,近始得學行之詳於先友呂伯恭,庸述小傳,以聞四方學者。
* 이 글은 청나라 건륭연간의 판본에 처음 등장하기 때문에 주자가 지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글은 주자 문집에 넣었습니다.
朱子,『孟子集注』,卷十一,告子章句上:
公都子問曰:「鈞是人也,或為大人,或為小人,何也?」孟子曰:「從其大體為大人,從其小體為小人。」
注:鈞,同也。從,隨也。大體,心也。小體,耳目之類也。
曰:「鈞是人也,或從其大體,或從其小體,何也?」曰:「耳目之官不思,而蔽於物,物交物,則引之而已矣。心之官則思,思則得之,不思則不得也。此天之所與我者,先立乎其大者,則其小者弗能奪也。此為大人而已矣。」
注:官之為言司也。耳司聽,目司視,各有所職而不能思,是以蔽於外物。既不能思而蔽於外物,則亦一物而已。又以外物交於此物,其引之而去不難矣。心則能思,而以思為職。凡事物之來,心得其職,則得其理,而物不能蔽;失其職,則不得其理,而物來蔽之。此三者,皆天之所以與我者,而心為大。若能有以立之,則事無不思,而耳目之欲不能奪之矣,此所以為大人也。然此天之此,舊本多作比,而趙注亦以比方釋之。今本既多作此,而注亦作此,乃未詳孰是。但作比字〔一〕,於義為短,故且從今本云。范浚「心箴」曰:「茫茫堪輿,俯仰無垠。人於其間,眇然有身。是身之微,大倉稊米,參為三才,曰惟心耳。往古來今,孰無此心?心為形役,乃獸乃禽。惟口耳目,手足動靜,投閒抵隙,為厥心病。一心之微,眾欲攻之,其與存者,嗚呼幾希!君子存誠,克念克敬,天君泰然,百體從令。」
『四書章句集注』,孟子告子上:
公都子曰: “冬日則飲湯,夏日則飲水,然則飲食亦在外也?”此亦上章耆炙之意。
范氏曰:“二章問答,大指略同,皆反復譬喻以曉當世,使明仁義之在內,則知人之性善,而皆可以為堯舜矣。”
程子為講官,言於上曰:“人主一日之閑,接賢士大夫之時多,親宦官宮妾之時少;則可以涵養氣質,而薰陶德性。”時不能用,識者恨之。
范氏曰:“人君之心,惟在所養。君子養之以善則智,小人養之以惡則愚。然賢人易疏,小人易親,是以寡不能勝眾,正不能勝邪。自古國家治日常少,而亂日常多,蓋以此也。”
范浚心箴曰:“茫茫堪輿,俯仰無垠。人於其間,眇然有身。是身之微,大倉稊米,參為三才, 曰惟心耳。往古來今,孰無此心?心為形役,乃獸乃禽。惟口耳目,手足動靜,投閑抵隙,為厥心病。一心之微,眾欲攻之,其與存者,嗚呼幾希!君子存誠,克念克敬,天君泰然,百體從令。”
-------------------------
雲峰胡氏,「註心箴」:
元、胡炳文(1250-1333)註
茫茫堪輿,俯仰無垠;音銀。人於其間,眇然有身。是身之微,太倉稊杜兮反。米;參爲三才,曰惟心爾。堪輿,謂天地。言天地至大,而人處天地間,此身至小,不過如太倉一粒梯米而已。然人之所以可與天地參爲三才者,惟在此心,心之體豈不甚大?
往古來今,孰無此心?心爲形役,乃獸乃禽。此言此心之大,往古來今,人人有之。若純乎義理,則是從其大體;若役於形氣,則是從其小體。彼禽獸之心,終日役役,不過飲食、牝牡而已。人之心而爲形所役,與禽獸何異?嗚呼!人之心,其大也,本可以參天地;而役於小者,不能異乎禽獸。亦獨何哉?可以反而思矣。
惟口耳目,手足動靜;投間去聲。抵隙,乞逆反。爲厥心病。此言口欲味,目欲色,耳欲聲,四肢欲安佚;本心微有間隙,彼則乗之而入矣。
一心之微,眾欲攻之;其與存者,嗚呼幾平聲。希。此言此心之發於義理者甚微,而役扵形氣者甚衆。以彼之衆,攻我之微,如國勢方弱,而四面受敵,其不亡者罕矣。
君子存誠,克念克敬。天君泰然,百體從令。前八句,是説小人之從其小體;此四句,是說大人之從其大體。曰誠,曰念,曰敬,念即思之謂,而敬即存誠之方也。一誠足以消萬僞,一敬足以敵千邪。所謂先立乎其大者,莫切於此。「天君泰然」,是先立乎其大者;「百體從令」,是小者弗能奪。朱子曰:「范氏之箴,葢得其旨,未可易之也。」愚故從而釋之云。
---------------------------
한국 자료:
이색, 『목은집』,제25권,「가을 더위」:
秋暑困衰翁,凍雨一洗之。劃時五內涼,兀坐靜言思。
靈臺方寸地,外物莫能移。奈何觸寒熱,勢窘難支持。
稽首謝天君,泰然其在玆。
金時習(1435-1493), 梅月堂文集卷之二十三 / 雜說
敬 a013_419d
古人三十年二十年未得箇入處。只在此病。聖學不如此。只欲眞實脚踏田地。須要穩密涵養。故蘭陵云。君子存誠。克念克敬。天君泰然。百體從令。
李珥(1536-1584), 栗谷先生全書卷之十五 / 雜著 二
學校模範(壬午製進)○事目附 a044_331d
五曰存心。謂學者欲身之修。必須內正其心。不爲物誘。然後天君泰然。百邪退伏。方進實德。故學者先務。當靜坐存心。寂然之中。不散亂。不昏昧。以立大本。而若一念之發。則必審善惡之幾。善則窮其義理。惡則絶其萌芽。存養省察。勉勉之已。則動靜云爲。無不合乎義理當然之則矣。
鄭齊斗, 霞谷集卷九 / 存言[下]
○此心爲血氣所使。客氣所乘。爲外物所動。衆岐所溺。爲私意所奪。利欲所牽。爲事勢所制。習染所拘。使意荒而志廢。心窒而志昏。使其志氣庸陋卑下輕忽苟簡。使其心地虛詐不誠奇譎無恒。以至於傲滿怠慢忌克吝滯昏昧繆擾陰柔餒喪。無有一正。以至於將迎計較意必穿錯智解意想。紛紜相尋。無有一是。其千邪萬惡。皆由此出。知其爲血氣而克之。客氣而去之。知其爲外慕而絶之。他歧而黜之。知其爲私意而拔之。利欲而遏之。勿以事勢而撓之。習染而安之。諸病旣去。天君泰然。百體從令。
沈錥, 樗村先生遺稿卷之三十六 / 雜著
[經說] a208_164a
其心收斂 | 天君泰然 | 存其心 |
不容一物 | 百軆從令 |
戒愼恐懼 | 洞洞屬屬 | 寂然不動 | 養其性 |
戰戰兢兢 | 感而遂通天下之故 |
沈潮(1694-1756), 靜坐窩先生集卷之十一 / 雜著
朱子感興詩解주-D001 b073_281d
微月墜西嶺 止 寂感無邊方。右第九篇。
微月墜西嶺。則人欲消矣。爛然衆星光。則天理長矣。太乙有常居以下。正是天君泰然。百軆從令之意也。盖心爲一身之主。居中而應乎外。譬如太乙之中天而照四國。然惟聖人爲然。衆人不然。每循物欲於軀殼之外。故一身無主。萬事無綱也。人心要如此之此。卽有常居而照四國也。寂感無邊方者。卽在中之意。心之在中。未應已應皆然也。何文定曰上下兩篇。皆是爲在上之君子言之。恐不然。
柳長源(1724-1796), 東巖先生文集卷之八 / 書
答姪兒範休問目 甲午 b088_324d
配此理者氣也。害此理者亦氣也。故無此形氣。此理無所頓著。非此形氣。此理無所壞了。世間甚事。不因形氣上錯了乎。故理爲之主。則氣爲之助。所謂天君泰然。百體從令者是也。理不得爲主。則氣爲之賊。所謂耳目手足。爲厥心病者是也。故形氣譬則治世之能臣。亂世之奸雄。如何。
李野淳(1755-1831), 廣瀨文集卷之七 / 雜著
心箴圖 b102_570a
韓汝愈,遁翁先生文集卷之四 / 雜圖 辨解附
聖人以天地萬物爲一體圖 b044_503a
--------------------------
-----------------------------
가정 5년(1526, 가정황제 19살) 10월에 이부상서 楊一淸과 어사 熊爵이 왕양명을 병부상서에 추천하였으나 가정황제는 왕양명 본인과 학술이 “竊負儒名”, “非方正之學”이라고 비난하고 임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해 10월에 「경일잠(敬一箴)」을 지었고, 費宏의 건의를 받아 국자감과 지방 학교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명 가정황제 실록』을 보면 가정5년 당시 19살이었던 가정황제가 비굉의 영향을 받아 「경일잠」을 지어 국자감에 비석을 세웠던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에 속경남 교수는 여기에 근거하여 『왕양명 연보 장편』(1796쪽)에서 가정황제가 비굉의 영향을 받아 「경일잠」을 짓고 정주학 입장에서 육왕학을 배척하였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가정황제 개인적 입장에서는 대례의(大禮議) 때문에 당연히 주자학을 싫어하였고 양명학도 싫어하였습니다. 가정황제가 양명학을 싫어하였던 까닭은 도교의 主靜공부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가정황제는 도교의 내단 수련공부를 하면서 나중에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도교의 내단 수련공부에서 보면 왕양명의 수양공부는 수준이 높지 않고 평범하며 또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종교적 신념도 없습니다. 따라서 가정황제가 결코 주자학을 수호하기 위하여 양명학을 배척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북경 관계(官界)에서 보면, 왕양명이 주신호 반란을 진압한 뒤에 전공을 병부상서 왕경(王瓊)에게 돌리고 공로의 일부를 비굉에게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비굉은 왕양명의 북경 등용을 막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에 대례의(大禮議) 때문에 득세하고 있던 석서(席書)를 비롯하여 장총(張璁)과 계악(桂萼)이 왕양명을 북경 등용에 추천하고 있었으나, 장총과 계악이 서로 좋은 상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장총은 왕양명을, 계악은 위교(魏校)를 지지하였습니다. 위교는 주자학 입장에서 왕양명을 이단학술이라고 비난하였고, 계악은 왕양명을 훌륭한 학자이며 좋은 관원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위교의 영향을 받아 왕양명의 북경 등용에는 소극적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선시기 조선 사신이 국자감에 가서 직접 비석을 보았고 소문을 듣고 기록하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가정6년에 가정황제는 강관 고정신이 범준(范浚)의 「심잠(心箴)」을 시강하는 것을 듣고 장총(張璁)과 적난(翟鑾)에게 「심잠」이 좋다고 말하였고, 장총 등은 정이천의 「사물잠(四勿箴)」도 좋다고 건의하였답니다. 가정황제는 정이천의 글도 읽어본 뒤에 2편에 주석을 달고 또한 「경일잠」을 짓고 주석도 달았다고 합니다. 조선 사신의 기록은 장총의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명실록』이나 명나라 다른 기록은 비굉의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가정황제가 항상 비굉 등과 상의하였다고 하며 비굉이 「경일잠」을 비석에 써서 세우자고 건의하였다고 합니다. 조선과 명나라 양측의 기록이 서로 다릅니다. 명나라 기록에 따르면 비굉이 왕양명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가정황제가 왕양명을 싫어하였고 그래서 경일잠을 써서 국자감 등에 세웠던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조선과 명나라 어느 쪽의 기록이 정확한지는 현재 알 수 없습니다.
---------------------------
『明史』,本紀,第十七,世宗一
(五年冬十月)庚午,頒禦制「敬一箴」於學宮。
『明世宗肅皇帝實錄』,卷六十九:
(嘉靖五年十月)乙卯,禮部尚書席書言:“新建伯王守仁服闋,年餘,尚未拜封。請差官催取,從之。
(嘉靖五年十月)辛酉,升兵部左侍郎王時中爲本部尚書。先是,兵部缺尚書,吏部會推者再,俱未允。試監察禦史熊爵乃言:“本兵重地,貴在得人。新建伯王守仁、尚書彭澤皆壯猷元老,可當是任。”章下所司。至是吏部復以時中請,遂用之。
(嘉靖五年十月)庚午,上制「敬一箴」及注,范浚「心箴」、程頤「視聽言動四箴」頒賜大學士費宏等。宏等疎謝,因言:“此帝王傳心之要法、致治之要道。”奏請敕工部,於翰林院蓋亭豎立,以垂永久。仍敕禮部通行兩京國學,並在所提學官摹刻於府州縣學,使天下人士服膺聖訓,有所興起。上命“如議行。”
兵部右侍郎張璁、詹事府詹事桂萼,兩疎論大學士費宏“專擅威福,大肆奸貪,極言醜詆。”章下所司。
按:我太祖識人心道心倚伏之幾,操而存之,罔敢自暇自逸,即其觀心亭所建,蓋真得虞廷十六字之傳矣。世廟留心聖學,每與費宏等討論允當。至是為「敬一箴」并註、程、范五箴,頒之天下學宮,益以廣太祖之教,其為世道慮也至矣。宜其赫然為中興令主歟!兵部右侍郎張璁、詹事桂萼兩疏論大學士費宏,“擅專威福,大肆奸貪,極言醜詆。”章下所司。
(嘉靖七年戊子二月)庚申,命工部建敬一亭於翰林院,鐫御製「敬一箴」、五箴註,乃行兩京國子監及天下儒學,一體摹刻立石。
(嘉靖九年庚寅)九月壬辰,禮科給事中高金奏:“陛下龍御之初,凡法祖、法師、國王、佛子有害正道者,悉從屏逐。近又諭禮官革姚廣孝之配享,天下歎服,以為崇正闢邪。乃今真人邵元節,誤蒙殊恩,以為聖治累。臣願削去真人之號,褫其紫主之貴,奪其親師贈、祭之典,庶乎異端斥而正道崇矣!”上令錦衣衞逮問所使,且令禮部議聞。李時謂:“撤配享者,所以正祀典,而用元節者,所以為祈禳。事既不同,惟上裁之。”
嘉靖八年二月戊辰, (「嘉靖八年二月戊辰」,原脫「嘉靖八年」,「戊辰」作「壬辰」,據明實錄世宗實錄卷九八嘉靖八年二月戊辰條補、改。) 新建伯王守仁因病篤離任,死南安。守仁方圖離任,不暇奏請,吏部以情有可原,乞從寬宥。上意以「擅離重地,非大臣事君之道。況學術、事功多有可議,會官詳定。」禮科給事中周延上疏救之,調外任。
甲戌, (「甲戌」,原無,據明實錄世宗實錄卷九八嘉靖八年二月甲戌條補。) 吏部會議王守仁功罪,言:「守仁事不師古,言不稱師。欲立異以為名,則非朱熹格物致知之論;知眾論之不與,則著「朱熹晚年定論」之書。號召生徒,互相倡和。其門人為之辯謗,至謂杖之不死,投之江不死,以上瀆天聽,幾於無忌憚矣。若夫剿捕逆濠,論功足錄。宜免奪伯爵以彰國家之大信,申禁邪說以正天下之人心。」
上曰:「守仁放言自肆,詆毀先儒,用詐任情,壞人心術。邇來士子,傳習邪說,皆其倡導。至於宸濠之變,仗義討賊,功固可錄,所封伯爵,姑令終身。仍榜諭天下,敢有踵襲邪說果於非聖者,重治不饒。」
按:守仁勛業,粹乎無容議矣。至其詆程、朱而宗佛佬,則邪正之辨乃在於此。吏部會議功罪,昭彰甚明。故世廟亦以為詆毀先儒,壞人心術,仍欲榜諭天下。此其扶正而闢邪,有功於吾道也甚大。然未及四十餘年,輒為流說所惑,從祀孔廷,豈徒操戈於程、朱之門,抑亦伏謁於老佛之梵矣。若曰精於玄釋,杖之不死,投之江不死,又何死於南安乎?噫,與其離任而死,孰若死於官邸,猶免擅離之罪哉!
『費縣志』,「敬一箴」:
“明世宗嘉靖五年作「敬一箴」,頒之太學,遂詔郡邑學校皆鐫石,並刻「程子四箴」、「范子心箴」,作亭覆之。今無是亭,而「敬一箴」碑在學署之前,程子「四箴」、「范子心箴」臥碑在明倫堂上。蓋亭廢而移臥碑,獨留箴碑於此也。”
『沂州府志』,卷十三,學校,「敬一亭」:
明嘉靖五年作「敬一箴」,頒之太學,遂詔郡邑學校皆鐫石,並刻「程子四箴」、「范子「心箴」,作亭覆之。
『조선실록』:
其碑曰: ‘嘉靖六年, 皇帝敎張璁、翟鑾曰: “講官謂范浚 「心箴」, 大有功於正心, 予讀之, 其味甚無窮。張璁等啓曰: 「非特此。程子「四箴」, 亦有補於心學。」”皇帝於是, 「心箴」與「四勿箴」, 皆註之, 又作「敬一箴」而註之, 幷刻于石。’云云。
--------------------------------
가정황제,「경일잠(敬一箴)」 서문:
경(敬)은 마음을 지키고 잠시라도 밖으로 놓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군주가 경(敬)하면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가 경(敬)하면 나라를 잃지 않고 경대부가 경(敬)하면 봉지를 잃지 않고 지식인과 일반 백성들이 경(敬)하면 목숨을 잃지 않습니다. 우임금은 “군주가 군주의 일을 어렵게 여겨야하고 신하는 신하의 맡은 일을 어렵게 여겨야한다.”고 말하였습니다. 「五子之歌」에서는 “내가 많은 백성들을 통치하면서 마치 썩을 밧줄로 6마리 말의 수레를 끄는 것처럼 위험하고 조심스럽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로서 어찌 경(敬)하지 않겠습니까! 경(敬)이라는 한 마디를 널리 전파하면 세상을 밝아질 것입니다. 일(一)은 마음을 순수하게 하여 천리(天理)에 완전히 합동하게 하고 아무런 인심(人心)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윤은 “덕(德)이 일(一)이 되도록 해야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길(吉)하지 않은 것이 없다. 덕(德)이 둘이나 셋으로 나뉘면 일할 때마다 흉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일(一)이라는 한 마디를 널리 전파하면 세상을 밝아질 것입니다.
대체로 군주 자리에 오른 것은 하늘에서 부탁을 받은 것이고, 하늘의 밝은 명령을 받아 만방의 군주가 된 것입니다. 군주의 말과 행동 및 통치명령은 사실상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리고 위험한 국가를 안정시키는 것에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마음을 아주 짧은 잠깐이라도 경(敬)하지 않는다면 군주의 덕(德)이 어떻게 순수하게 되고 인욕에 섞이지 않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반드시 제사를 지낼 때 신명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을 느끼고 있어야합니다. 또한 통치명령을 백성들에게 내릴 때에도 단정하고 장엄하게 조심하여야하며 백성들의 인정(人情)에 어긋나지 않을까를 걱정해야합니다. 더구나 혼자 있을 때에는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꺼리지 말고 고쳐야하며, 나의 덕(德)이 어떤지를 생각하고 힘써서 닦고 게으르지 않아야합니다. 사건이나 사물이 닥치면 지극한 이치를 따져서 찾아내는 동안에 경(敬)을 지키고 일(一)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천자의 직무를 다하여 조상과 가족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며, 구족(九族)을 가까이하고 백성들을 마음에 품어야하며, 어진 혜택이 주변 국가들에도 미치도록 해야합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커다란 황제의 대통을 계승하였는데 덕이 부족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어리석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敬)을 지키는 지경(持敬)공부를 다하고 잘 다스려서 덕이 순수한 일덕(一德)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며, 삐뚤어지고 안일한 생각들을 없애고, 덕을 쌓은 사람들을 믿고 맡겨서 저를 잘 돕도록 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을 널리 찾아서 관직에 임용하여 순수한 왕도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하여, 태평스럽고 행복한 통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저는 서적을 읽다가 깨달은 것이 있기에 아래와 같이 적어서 스스로 힘쓰려고 합니다.
본문:
사람마다 마음을 타고 났고 마음에는 모든 이치가 담겨있는데,
마음을 깨달아 실행하되 덕(德)이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습니다.
경(敬)하고 일(一)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일(一)하여야만 마음이 천리대로 순수해질 수 있고 경(敬)하여야만 덕이 쌓입니다.
군주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많은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인정(仁政)을 펼쳐야만 하늘의 커다란 계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이 공경(敬)한지 태만(怠)한지 그리고 순수한지 섞였는지는,
반응을 보면 금방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북채로 북을 치면 북소리가 나듯이 알 수 있습니다.
황제로서 나는 하늘의 보살핌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가 되었는데,
덕이 부족하기에 크게 두렵습니다.
오로지 경(敬)하고 일(一)하며 경일을 굳건히 지키며,
하늘을 무서워하고 백성을 부지런히 다스려서 잠시라도 쉬지 않겠습니다.
경(敬)이 무엇이겠습니까? 태만하거나 포기하려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며,
하늘 제사를 공경하고 정성스럽게 하고 종묘 제사를 잘 모시고 효심을 갖는 것입니다.
성스러운 조정에서는 엄숙한 마음을 갖고 한가하더라도 조심할 것이며,
반성하여 허물을 살피고 경건하게 조심하여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일(一)이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을 천리에 맞도록 순수하게 하고,
마음이 세 갈래로 갈라지지 않도록 하고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행동할 때는 했던 말을 살펴볼 것이고 끝날 때에도 처음처럼 하겠으며,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비워서 욕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 날마다 발전하겠습니다.
성현의 본받을 말씀은 모두 오경에 실려있으니,
저는 오경을 연구하여 좋은 것을 골라서 반드시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곁에서 저를 돕는 신하들이 충성과 올곧도록 할 것이며,
나는 이런 사람들을 임용하고 신하의 충성과 올곧음을 잘 분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일(一)이고 이것이 경(敬)이며,
군주가 덕을 닦아야만 천하의 많은 나라들이 바르게 다스려질 것입니다.
하늘이 보살피고 백성들이 기억하는 군주가 되어 나라의 경사를 영원토록 하겠으며,
조상들을 빛내고 후손들이 잘살도록 하여 번영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제후들과 공경대부들은 물론이고,
일반지식인과 백성들은 모두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라야합니다.
이들은 경(敬)하도록 일(一)하도록 힘쓰고 조금이라도 흩뜨리지 말아,
봉록과 관직을 지키고 죄를 짓지 않아 목숨을 다하길 바랍니다.
옛날에는 청동 그릇에 말씀을 새겨서 눈에 띌 때마다 마음을 조심하였으니,
은나라 탕임금은 경(敬)하여 날마다 발전하였고 일(一)하여 천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 잠(箴)을 지어 간절하게 성인이 되길 바라며,
나를 잇는 후손들도 아름다운 교화를 베풀어 안정된 나라를 만들기를 바랍니다.
가정황제,「敬一箴」(並序):
夫敬者,存其心而不忽之謂也。元后敬則不失天下,諸侯敬則不失其國,卿大夫敬則不失其家,士庶人敬則不失其身。禹曰:“后克艱厥后,臣克艱厥臣。”「五子之歌」有云:“予臨兆民,如朽索之馭六馬。”爲人上者,奈何不敬?其推廣敬之一言,可謂明矣。一者,純乎理而無雜之謂也。伊尹曰:“德惟一,動罔不吉;德二三,動罔不凶。”其推廣一之一言,可謂明矣。
蓋位爲元后,受天付托,承天明命,作萬方之君,一言一動,一政一令,實理亂安危之所系。若此心忽而不敬,則此德豈能純而不雜哉?故必兢懷畏慎於郊禋之時,儼神明之鑒察;發政臨民,端莊戒謹,惟恐拂於人情。至於獨處之時,思我之咎何如,改之不吝;思我之德何如,勉而不懈。凡諸事至物來,究夫至理,惟敬是持,惟一是協。所以盡爲天子之職,庶不忝厥祖厥親,由是九族親之,黎民懷之,仁澤覃及於四海矣。
朕以沖人,纘承丕緒,自諒德寡,昧勉而行之。欲盡持敬之功,以馴致乎一德。其先務又在虛心寡欲,驅除邪逸,信任耆德,爲之匡輔。敷求善人,布列庶位,斯可行純王之道,以坐致太平雍熙之至治也。朕因讀書而有得焉,乃述此以自勖云:
人有此心,萬理咸具,體而行之,惟德是據。
敬焉一焉,所當先務,匪一弗純,匪敬弗聚。
元后奉天,長此萬夫,發政施仁,期保鴻圖。
敬怠純駁,應驗頓殊,徵諸天人,如鼓答桴。
朕荷天眷,爲民之主,德或不類,以爲大懼。
惟敬惟一,執之甚固,畏天勤民,不遑寧處。
曰敬惟何?怠荒必除,郊則恭誠,廟嚴孝趨。
肅於明庭,慎於閑居,省躬察咎,儆戒無虞。
曰一維何?純乎天理,弗三以三,弗二以二。
行顧其言,終如其始,靜虛無欲,日新不己。
聖賢法言,備見諸經,我其究之,擇善必精。
左右輔弼,貴於忠貞,我其任之,鑒別必明。
斯之謂一,斯之謂敬,君德既修,萬邦則正。
天親民懷,永延厥慶,光前裕後,綿衍蕃盛。
咨爾諸侯,卿與大夫,以至士庶,一遵斯謨。
主敬協一,罔敢或渝,以保祿位,以完其軀。
古有盤銘,目接心警,湯敬日躋,一德受命。
朕爲斯箴,拳拳希聖,庶幾湯孫,底於嘉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