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 45살 「與陸原靜」과 『전습록』의 陸澄 기록
2019년 1월 16일
* 왕양명이 45살에 육징(陸澄)에게 보낸 서신은 『전습록』 상권(上卷)에 실린 육징이 기록한 어록의 맥락을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육징은 1514년 과거시험에 떨어진 뒤 7월 이후에 왕양명이 남경 홍로시(鴻臚寺)에 있을 때 찾아와서 시창(寺倉)에 머물면서 배웠습니다. 내용은 주로 왕양명이 45살 7월에 아우 3명에게 보낸 서신에서 처음 말한 입지(立志)공부입니다. 그런데 현재 남아있는 왕양명과 양명 후학의 문헌자료에서는 입지공부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실제적인 요령이 남아있지 않아서 전모를 알 수 없습니다. 소위 영업 비밀에 해당하였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왕양명 학술의 핵심은 알 수 없습니다.
서애(徐愛)가 육징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왕양명이 직접 육징에게 정좌를 시키고 입지공부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육징은 입지공부를 하면서 존천리 거인욕의 방법(存養省察)도 배웠습니다. 육징은 “왕양명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지 않았으면, 저는 한 평생을 헛되게 살았겠구나!(微夫子,幾不喪吾生!)”라고 말하고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사실상 왕양명이 입지공부를 처음 직접 가르쳤던 학생은 바로 육징입니다. 따라서 육징의 기록은 왕양명 학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육징이 왕양명의 입지공부를 왕양명에게서 어느 정도 배웠지만 깊이 체득하지 못하였습니다.
육징이 비록 열심히 묻고 배워서 서애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왕양명 문하에서 상당히 높이 평가를 받았습니다. 육징이 기록한 88개 조목의 어록이 『전습록』 상권에는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어록 내용이 그다지 깊지 못합니다. 더구나 육징이 학생으로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 왕양명의 학술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서애(徐愛)도 당시에 왕양명의 입지공부를 배웠지만, 그다지 깊이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습록』에 실린 서애의 서문에는 왕양명의 『대학』 고본과 「주자만년정론」의 내용을 반영하고 또한 왕양명이 용장에서 정양(靜養)하였던 수양공부를 『상서、대우모』의 구절을 빌려 정일(精一)공부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습록』에 실린 서애의 기록 14개 조목을 보면, 왕양명이 45살 7월부터 가르쳤던 입지공부를 반영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양명 45살 7월 이후의 학술내용에 관하여 서애의 14개 조목 어록보다는 육징이 기록한 88개 조목의 어록이 더 낫습니다. 그렇지만 서애와 육징의 수양공부를 보면, 『전습록』은 왕양명의 학술 주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현재 『전습록』에 의지하여 양명학을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주목할 것은 육징은 왕양명이 지은 『大學』과 『中庸』의 주석을 물었고 왕양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답장을 회피하였습니다. 문인들이 이렇게 요구하고 따라서 왕양명도 『大學』과 『中庸』을 통합하여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맹자』의 良知와 『대학』의 致知를 결합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대학』의 요지가 誠意라고 주장하였는데 사실상 誠意에서 致知로 바꾼 계기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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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육징에게 보낸 서신(與陸原靜)」:
서신을 받고 네가 아팠던 병이 나았다니 아주 기쁘다! 또한 서신에서 열심히 물은 것은 아직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열심히 공부하려는 뜻이 태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더욱 기쁘다! 앞으로 배운 것을 잘 발휘하여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을 네가 아니면 누구에게 맡기겠느냐? 네가 물은 『大學』과 『中庸』의 주석은 옛날에 초고를 대충 만든 적이 있는데, 내 공부가 아직 익지 않았는데도 남들에게 가르치려고 빨리 마치려는 생각이 들어 벌써 불에 태워버렸다. 최근에는 조금 나아졌지만(「朱子晩年定論」) 아직 완성되지 않아, 앞으로 여러분들과 상의하여 완성하려고 한다. 그래서 답장을 보내지 못한다. 개략적인 뜻은 일찍이 너에게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네가 앞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면 알 것인데 급하게 나의 결론을 찾는 것도 너의 옛날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博學”에 관한 이야기는 일찍이 상세하게 토론하였다. 지금 다시 이렇게 찾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이런 태도는 너의 의지가 아직 견고하지 못하고 세상 누습에 흔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내 자신이 과연 공리(功利)를 얻으려는 마음을 없앤다면, 전곡(錢穀)과 병갑(兵甲) 같은 재무와 군사 문제도 땔나무 하고 물 깃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그러니 무엇인들 실학(實學)이 아니며? 무슨 일인들 천리(天理)가 아니겠느냐? 제자백가, 역사, 시문 같은 것들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내 자신이 공리를 얻으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날마다 도덕과 인의를 말한들 공리를 얻으려는 일인데, 제자백가, 역사, 시문 같은 것들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모든 것을 멀리하겠습니다.”라는 말도 아직 구습에 빠져서 평소 공부가 힘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속견을 씻어내고 처음의 뜻으로 돌아가서 다시 “날마다 먹고 마셔서 몸을 기른다.”는 비유, 또한 “나무를 기르면서 북 주고 물 준다.”는 비유를 다시 생각해보면 저절로 풀릴 것이다. 『大學』에서 “사물에는 본말과 시종이 있으니, 먼저 선후를 알아야 올바른 방법이다.”고 하였다. 너의 말은 아직도 시종과 본말이 서로 일치시키지 못하고, 본말과 시종이 저절로 순서를 이루는 것을 따르지 못하면서도 개인적인 생각에 빨리 이루려고 한다.
왕양명,『文錄(一)』,「與陸原靜(丙子,1516,양명 45살)」:
書來,知貴恙已平復,甚喜!書中勤勤問學,惟恐失墜,足知進修之志不怠,又甚喜!異時發揮斯道,使來者有所興起,非吾子誰望乎?所問『大學』、『中庸』注,向嘗略具草稿,自以所養未純,未免務外欲速之病,尋已焚毀。近雖覺稍進,意亦未敢便以爲至,姑俟異日山中與諸賢商量共成之,故皆未有書。其意旨大略,則固平日已爲清伯(陸澄,字淸伯)言之矣。因是益加體認研究,當自有見,汲汲求此,恐猶未免舊日之病也。
“博學”之說,向已詳論。今猶牽制若此,何邪?此亦恐是志不堅定,爲世習所撓之故。使在我果無功利之心,雖錢穀、兵甲,搬柴運水,何往而非實學?何事而非天理?況子、史、詩、文之類乎?使在我尚存功利之心,則雖日談道德仁義,亦只是功利之事,況子、史、詩、文之類乎?“一切屏絕”之說,是猶泥於舊習,平日用功未有得力處,故云爾。請一洗俗見,還復初志,更思“平日飲食養身”之喻、“種樹栽培灌溉”之喻,自當釋然融解矣。“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吾子之言,是猶未是終始本末之一致也,是不循本末終始天然之序,而欲以私意速成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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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愛,『橫山全集』,卷下,「送陸子清伯(陸澄)行序」︰
“予(徐愛)曰︰‘夫道也者,虛其體也,一其用也。唯克己可以致虛,故謙者,克之萌也,唯凝神可以致一,故專者,凝之漸也。其機則然,故曰清伯且來。’……越數日,清伯(陸澄)果齋潔執弟子禮,來叩陽明夫子之門,夫子納焉。先定之以立志,次培之以濯□,見乃密之以存養省察之功。自天地之變化,群言之同異,雖靡所不辯,而恒化□以不言之教。久之,清伯(陸澄)憮然曰︰‘微夫子,幾不喪吾生!’”
* 서애,「육징(陸澄)이 떠남을 배웅하는 글」은 “서애(徐愛)의 정좌와 응신치일(凝神致一) 수양공부 (왕양명 44살)”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하곡서원, 2018년 10월 17일)
『전습록』,16조:問立志。先生曰:“只念念要存天理,即是立志。能不忘乎此,久則自然心中凝聚,猶道家所謂結聖胎也。此天理之念常存,馴至於美大聖神,亦只從此一念存養擴充去耳。”
『전습록』,30조:“種樹者必培其根,種德者必養其心。欲樹之長,必於始生時刪其繁枝;欲德之盛,必於始學時去夫外好。如外好詩文,則精神日漸漏泄在詩文上去;凡百外好皆然。”又曰:“我此論學是無中生有的工夫,諸公須要信得及只是立志。學者一念爲善之志,如樹之種,但勿助勿忘,只管培植將去,自然日夜滋長,生氣日完,枝葉日茂。樹初生時,便抽繁枝,亦須刊落。然後根幹能大。初學時亦然。故立志貴專一。
『전습록』,39조:一日,論爲學工夫。先生曰:“教人爲學,不可執一偏:初學時心猿意馬,拴縛不定,其所思慮多是人欲一邊,故且教之靜坐、息思慮。久之,俟其心意稍定,只懸空靜守如槁木死灰,亦無用,須教他省察克治。省察克治之功,則無時而可間,如去盜賊,須有個掃除廓清之意。無事時將好色好貨好名等私逐一追究,搜尋出來,定要拔去病根,永不復起,方始爲快。常如貓之捕鼠,一眼看著,一耳聽著,才有一念萌動,即與克去,斬釘截鐵,不可姑容與他方便,不可窩藏,不可放他出路,方是真實用功,方能掃除廊清。到得無私可克,自有端拱時在。雖曰何思何慮,非初學時事。初學必須思省察克治,即是思誠,只思一個天理。到得天理純全,便是‘何思何慮’矣。”
『전습록』,42조:澄問『學』、『庸』同異。先生曰:“子思括『大學』一書之義,爲『中庸』首章。”
『전습록』,44조:澄在鴻臚寺倉居,忽家信至,言兒病危。澄心甚憂悶不能堪。先生曰:“此時正宜用功。若此時放過,閑時講學何用?人正要在此等時磨煉。
『전습록』,53조:唐詡問:“立志是常存個善念,要爲善去惡否?”曰:“善念存時,即是天理。此念即善,更思何善?此念非惡,更去何惡?此念如樹之根芽,立志者長立此善念而已。‘從心所欲,不逾矩’,只是志到熟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