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상의 태허와 이기론 및 본성론 (橫渠理氣辯)
2021년 1월 12일
아래 내용은 옛날부터 말이 많고 학자마다 다른 견해를 나타냈던 문제입니다. 주희는 장재가 형이상학을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왕정상은 오히려 주자가 형이상학 관점에서 장재를 비판한 것은 주자가 천문학을 몰라서 생긴 무지이며 쓸데없는 오해라고 반박하였습니다. 나중에 황종희는 왕정상이 주자의 형이상학을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반박하였습니다. 학자마다 시대마다 다른 견해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조선 학계에서는 이퇴계 선생은 서경덕 선생이 장재 이기론을 오해하였고 문제는 서경덕 선생이 형이상학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이퇴계 선생은 주자가 장재를 비판하였던 것과 똑같이 서경덕 선생을 비판하였습니다.
물론 현대 천문학과 물리학에서 보면 장재, 주자, 왕정상 등의 논의는 모두 추론이며 어떤 과학적 증거도 없습니다. 다만 현대 학술의 관점에서 보면 장재가 말한 원기(元氣)는 물질의 최소단위이며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자면 퀴크(quark)라고 보고 이해하면 낫습니다. 또 주자가 말한 이(理)가 기(氣)를 낳았다는 이생기(理生氣)는 절대자 신이 우주를 창조하였느냐는 문제로 바꾸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장재와 왕정상이 말한 기생리(氣生理)는 물질이 이념을 낳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종교적 창조주 또는 천문학의 빅뱅을 말하는 것입니다.
왕정상은 장재의 이기론에 근거하여 성리학의 형이상학을 부정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왕정상은 장재 이기론을 이해하고 결론 2가지를 말하였습니다. 첫째, 이기일물(理氣一物)이고 둘째, 이기성(理氣性) 셋은 일물(一物)입니다. 다시 말해 이기일물에 근거하여 이기성 일물을 논증하였습니다. 여기에 근거하여 정주학의 이기이물(理氣二物)과 이생기(理生氣)를 부정하였습니다.
왕정상은 장재의 이기론을 이해하고 3가지로 요약하였습니다.
첫째, 태허의 기(氣)와 만물의 기(氣)는 서로 왕래한다.
둘째, 태허의 기(氣)와 만물의 기(氣)는 동일한 기(氣)이다.
셋째, 태허의 기(氣)와 만물의 기(氣)는 동일하기에 기(氣)와 성(性)을 하나로 보아야 한다.
왕정상은 장재의 이기론에서 태허에서 만물로 만물에서 태허로 왕래하는 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태허에서 기(氣)가 뭉쳐서 형(形)을 이루고 다시 상(象)을 거쳐 물체(物)되다고 과정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성리학자의 형이상학에서 태허의 선천의 기(氣)와 후천의 기(氣)를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부정하였습니다.
왕정상은 주자 이기론의 요점이 3가지이며 종합하여 2개로 나누어 비판하였습니다.
주자 이기론의 핵심 내용은 3가지이며 첫째, 이(理)는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 둘째, 이(理)가 기(氣)를 끊임없이 낳는다. 셋째, 기(氣)는 뭉치면(聚) 있고(有) 흩어지면(散) 영원히 소멸한다(無).
왕정상의 결론은 정주학이 설정한 형이상학의 리(理)를 부정한 것입니다. 왕정상이 원기(元氣)라는 말을 사용하여 마치 선천의 원기를 말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태허의 원기와 만물의 기(氣)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다고 보았습니다.
왕정상이 태허를 말하여 마치 우주생성론에서 말하는 태허처럼 보이거나 또는 형이상학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우리가 쳐다보는 푸른 하늘을 포함한 우주를 말합니다. 따라서 왕정상의 기(氣)를 유물론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타당하지만 서양철학사에서 말하는 유물론에 가까운 뜻인지는 살펴서 비교하여야 합니다.
왕정상은 이기일물(理氣一物)과 원기의 취산(聚散) 두 가지에 근거하여 사람의 본성은 있으나 본성(性)이 이(理)만이 아니라 기(氣)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성상근(性相近)과 태어난 뒤의 습관에 달렸다는 말에 근거하여 본성은 기(氣)와 습관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보았기에 성성(成性) 또는 습성(習性)을 주장하였습니다. 본성이 불변불멸한다는 불교와 성리학의 본성론을 부정하였습니다. 반증으로 갓난이를 깜깜한 방에서 기르고 사람이나 바깥 구경을 시켜주지 않으면 나중에 자라서 예의 도덕과 각종 지식을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주자와 왕정상의 서로 다른 견해는 영혼이나 귀신이 있느냐? 돌아가신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야 하느냐? 반드시 고요히 정좌하여 타고난 본성을 깨달아야 하느냐? 과학 지식과 윤리 의식은 서로 다르냐? 등등 많은 현실적인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토론하는 문제입니다.
장재의 문자 표현이 명료하지 못한 곳이 있기에 달리 이해하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왕정상은 나름대로 이해하고 별 탈이 없었습니다.
도표 : 왕정상의 理氣一物과 氣의 聚散 이해
* 아랫글을 참고하여 도표를 그렸습니다.
| 造化:元氣, 性 | |
| 理氣一物, 氣之聚散 | |
| 학술 근거:『論語、陽貨』:“性相近也,習相遠也。 | |
| 太虛 | 萬物 |
| 聚:元氣→形→象→物 | |
| 元氣←形←象←物:散 | |
| 死不亡 | 生 |
| 魂魄 | 精神 |
| 靈, 神, 知覺 | |
| 有 | |
| 靜 | 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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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상, 「장재 이기의 해석(橫渠理氣辯)」:
장재 선생은 말하길,
첫째, “태허에는 기(氣)가 없을 수 없고, 기(氣)는 뭉쳐서 만물이 되지 않을 수 없고, 만물이 흩어져서 태허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기(氣)가 이렇게 태허와 만물 사이를 오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둘째(번역 1), “기(氣)로 이루어진 물체가 흩어져서 태허로 들어가면 (氣)의 형상이 없어지더라도 기(氣)라는 존재는 유지한다. 또 태허에서 기(氣)가 뭉쳐서 어떤 형상이 되더라도 기(氣)라는 존재는 유지한다.”
둘째(번역 2), “기(氣)가 물체로 되면 기(氣)는 흩어져서 물체에 들어가서 기(氣)가 태허에서 가졌던 형상이 없어지더라도 기(氣)라는 존재는 유지한다. 또 태허에서 기(氣)가 뭉쳐서 어떤 형상으로 되더라도 기(氣)라는 존재는 유지한다.”
셋째, “태허에서 뭉쳐서 만물의 물체가 되더라도 기(氣)라는 존재는 유지하고, 물체가 흩어져서 태허로 들어가도 기(氣)라는 존재는 유지한다. 따라서 만물이 죽더라도 없어지지 않는 기(氣)라는 존재를 성(性)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재 선생의 세 가지 견해는 조화(造化)의 비밀을 풀었고 사람 본성의 근원을 밝혔기에 후학들에게 비밀과 근원을 풀어준 공헌이 큽니다.
그런데 주자 혼자만이 이런 견해가 틀렸다고 보고 글을 지어 부정하였습니다. 따라서 나는 주자의 오해를 풀려고 합니다.
첫째, 주자는 말하길 “성(性)은 이(理)이며 뭉치고 흩어지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뭉쳐서 태어나고 흩어져서 죽는 것은 기(氣)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정신(精神) 또는 죽은 사람의 혼백(魂魄)이 가진 인지기능(知)과 감각기능(覺)은 모두 기(氣)의 작용이다. 그래서 기(氣)가 뭉쳐서 살아있으면 지각(知覺)기능이 있고 흩어져서 죽으면 지각기능이 없어진다. 그런데 이(理)는 본래부터 기(氣)의 뭉침이나 흩어짐에 따라 있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주자의 주장은 성(性)과 기(氣)가 원래부터 각기 나뉘어 2개(二物)입니다. 기(氣)는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 둘이 있으나, 성(性)은 기(氣)의 밖에서 우뚝하게 독립되어 있기에 기(氣)의 뭉침과 흩어짐에 따라 성(性)이 있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체! 잘못이 아주 심합니다!
또 일반적인 주자학자들은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四端)이 사람의 본성(性)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을 말하면, 마음의 사랑(愛)에서 나온 것이 인(仁)이고, 마음의 올바름(宜)에서 나온 것이 의(義)이고, 마음의 공경함(敬)에서 나온 것이 예(禮)이고, 마음의 앎(知)에서 나온 것이 지(智)입니다. 먼저 사람의 지각 작용이 사랑(愛), 올바름(宜), 공경함(敬), 앎(知)을 만들어내고 나중에 여기에 근거하여 인의예지 사단을 설정하였습니다. 순서를 말하면 만약에 사람이 없다면 마음도 없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인의예지 사단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따라서 사람이 살아있어야만(生) 성(性)이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죽었다면(無生) 성(性)도 없어집니다. 어떻게 살고 죽는 것(生死) 없이 성(性)을 독립시켜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결론을 말하면 성(性)이 있느냐 없느냐는 기(氣)의 뭉침과 흩어짐에 따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형(形)과 기(氣)를 벗어나서 기(氣)의 뭉침과 흩어짐에 상관없이 성(性)이 있고 없고를 말하는 견해는 불교에서 “사대(고대 인도의 地水火風空 5종 요소에서 불교의 四大는 地水火風을 말함) 이외에 진성(眞性)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틀려도 한참 틀린 주장이 아닙니까? 틀렸다는 것은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틀렸다고 압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정신(精神)과 죽은 사람의 혼백(魂魄)은 기(氣)의 작용이며 사람이 살아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인의예지 사단은 성(性)이라고 나중에 설정한 것이며 살아있는 사람의 도리(理)입니다. 사람의 지각(知覺) 작용과 영(靈)은 성(性)의 작용(才:晉、袁准,「才性論」︰“性言其質,才名其用。”)입니다. 기(氣), 성(性), 재(才) 셋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性)을 말하면서 (氣)를 떼어놓아도 안 되고, 기(氣)를 말하면서 성(性)을 버려도 안 됩니다. 이 견해는 공자가 “사람이 타고난 본성(性)은 서로 가깝다.(性相近)” “살면서 물든 습관(習)이 서로 멀다.(習相遠)(『論語、陽貨』:“性相近也,習相遠也。”)고 말한 핵심 내용입니다.
둘째, 주자가 또 말하길 “기(氣)는 흩어져 없어지지만, 이(理)가 날마다 기(氣)를 낳기에 기(氣) 확실히 아주 많아지고 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 이 견해는 조화를 깊이 알지 못한 것입니다.〔왕정상은 氣가 理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氣는 영원히 존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기(氣)는 태허(虛)로 돌아갔고 이(理)는 기(氣)에서 생깁니다. 기(氣)가 흩어지더라도 여전히 우주 안에 있고 아예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장재가 “만물이 흩어지면 태허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주자 자신도 “이(理)가 기(氣)에서 생겨났다.(理根於氣)”고 말하였듯이 이(理)는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재는 “신(神)과 성(性) 모두를 기(氣)가 본래부터 갖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주자가 “기(氣)는 이(理)에서 생긴다.”고 말하였는데 저는 이(理)가 도대체 무슨 물체이기에 무슨 씨앗이기에 기(氣)를 낳을 수 있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理)가 어떤 물체도 아니고 어떤 씨앗도 아니면서 기(氣)를 낳는다면 노장처럼 허무에 노닐거나 불교처럼 신통력으로 허공에서 날아다닌다는 황당한 미신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주자의 말을 고쳐서 “기(氣)가 흩어져서 태허의 본체로 되돌아가고, 태허에서 기(氣)가 음양 작용하여 날로 만물을 낳기에 만물은 확실히 아주 많아지고 끝이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장재가 말한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조화의 음양작용과 사람 본성의 있고 없고를 어떻게 기(氣)를 빼놓고 이(理)에서만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
王廷相,「橫渠理氣辯」:
張子曰:
“太虛不能無氣,氣不能不聚而為萬物,萬物不能不散而為太虛,循是出入,皆不得已而然也。”
“氣之為物,散入無形,適得吾體;聚而有象,不失吾常。”
“聚亦吾體,散亦吾體,知死之不亡者,可與言性矣。”
橫渠此論,闡造化之秘,明人性之源,開示後學之功大矣。
而朱子獨不以為然,乃論而非之,今請辯其惑。
朱子曰:“性者理而已矣,不可以聚散言。其聚而生,散而死者,氣而已矣。所謂精神魂魄,有知有覺者,皆氣所為也,故聚則有,散則無。若理,則初不為聚散而有無也。”
由是言之,則性與氣原是二物,氣雖有存亡,而性之在氣外者卓然自立,不以氣之聚散而存亡也。嗟乎!其不然也甚矣!
且夫仁義禮智,儒者之所謂性也。
自今論之,如出於心之愛為仁,出於心之宜為義,出於心之敬為禮,出於心之知為智,皆人之知覺運動為之而後成也。苟無人焉,則無心矣,無心則仁義禮智出於何所乎?故有生則有性可言,無生則性滅矣,安得取而言之?是性之有無,緣於氣之聚散。若曰超然於形氣之外,不以聚散而為有無,即佛氏所謂“四大之外,別有真性”矣,豈非謬幽之論乎?此不待智者而後知也。
精神魂魄,氣也,人之生也。仁義禮智,性也,生之理也。知覺運動,靈也,性之才也。三物者一貫之道也,故論性也不可以離氣,論氣也不得以遺性,此仲尼“相近”“習遠”之大旨也。
(朱子)又曰:“氣之已散者,既散而無有矣,其根於理而日生者,則固浩然而無窮。”
吁!此言也,窺測造化之不盡者矣。
何以言之?氣,遊於虛者也;理,生於氣者也。氣雖有散,仍在兩間,不能滅也,故曰“萬物不能不散而為太虛。”“理根於氣”,不能獨存也,故曰“神與性皆氣所固有。”若曰:“氣根於理而生”,不知理是何物,有何種子,便能生氣。不然,不幾於談虛駕空之論乎?今為之改曰:“氣之已散者,既歸於太虛之體矣,其氤氳相感而日生者,則固浩然而無窮。”張子所謂“死而不亡者”者如此。造化之生息,人性之有無,又何以外於是而他求也哉!
참고 자료 :
『朱子語類』,卷三,「鬼神」:
“氣有聚散,理則不可以聚散言也。”
“用之問:‘先生答廖子晦書云:“氣之已散者,旣化而無有矣,而根於理而日生者,則固浩然而無窮也。故上蔡謂:‘我之精神,卽祖考之精神。’”蓋謂此也。
“問:‘根於理而日生者,浩然而無窮。’此是說天地氣化之氣否?
曰:此氣只一般。周禮所謂‘天神、地示、人鬼’,雖有三樣,其實只一般。若說有子孫底引得他氣來,則不成無子孫底他氣便絶無了?他血氣雖不流傳,他那箇亦自浩然日生無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