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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소설 읽기 여행

소설가 양귀자(한계령)의 고향예찬 -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곳, 전주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1.10.24|조회수345 목록 댓글 0

소설가 양귀자의 고향예찬 -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곳, 전주

삶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아주 특별한 땅 전주.



 고향을 떠나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다보면 그 안에서 몸 부비며 살 때는 몰랐던 고향 혹은 고향 사람들의 특성을 저절로 깨우쳐 알게 된다. 그 깨달음은 어떤 사람에게는 큰 즐거움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씁쓸한 고통일 수도 있다. 고향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 간절하고 그립기만 한 대상은 아니니까. 다행히도 내게 있어 그 깨달음은 큰 즐거움 쪽에 속하는 것이다. 내가 고향 안이나 고향 바깥에서 만났던 고향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몸짓과 표정과 말투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몸짓과 표정과 말투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온유하면서도 품위 있는 삶’이었다. 내 고향 사람들에게 그러한 정신적 향기가 배어있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그것도 여러 번 확인하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이 부드러운 정신의 향기가 바로 타 지역 사람들과 고향 사람들을 구별시키는 표식이라고 믿는 일은 또 얼마나 행복한가. 그래서라도 나는 고향이 어딘가를 묻는 질문자들을 환영한다. 언제 어디서든 전라북도 전주, 라고 큰 목소리로 답할 자세가 되어 있으니까. 어쩌면 내게서도 행여 그런 부드러운 정신의 향기가 풍겨날지 모른다고 은연중 기대도 하면서. 고향은 떠남으로 해서 사랑을 얻게 되는 대상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전주와 더불어 살고 있을 때는 오히려 덤덤했다. 


 학생시절 해마다 산기슭에 앉아 원고지를 메워 상을 받곤 했던 다가산의 아카시아꽃 향기가 훗날 그토록이나 가슴 저리게 그리울 줄은 그땐 정말 몰랐었다. 버드나무 줄기 축축 늘어진 천변의 나무평상에 앉아 한 그릇씩 후딱 먹어 치우던 그 오모가리 매운탕 맛이 하도 간절해서 뒷날 서울 시내를 다 뒤지고 다닐 줄을 그때는 짐작이나 했을까. 무엇보다도, 말로 다하지 못한 무엇을 얼굴 가득 담고 있어 한없이 복잡하고 오묘했던 고향 사람들의 얼굴이 타향살이 내내 참으로 그리웠다. 상냥함은 전혀 없이,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있으면서도 오히려 그 사랑을 들킬까봐 일부러 툭툭 내던지는 기교 없는 맨 말도 많이 듣고 싶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괜스레 어색해서 화난 듯 무뚝뚝하게 굳어있는 그 몸짓. 그런 것들이 그 때는 얼마나 답답했는가. 그 답답함이 저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따뜻함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참 많은 타향살이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유추할 수 있다. 왜 고향의 집집마다 빠짐없이 서화가 걸려있었던가를, 왜 내 고향의 많은 엄마들이 나물거리 하나 앞에 놓고도 그리 오랜 시간 진지한 모색을 거듭했었는지를, 왜 박장대소보다는 미소가, 요란한 공치사보다는 침묵이 은은하게 퍼져나갔는지를 가만가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전주는 삶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아주 특별한 땅이다. 삶을 사랑하는 일은 인간을 사랑하는 일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일은 나아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한 존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또한 그 일은 반드시 부드러운 정신의 향기를 주위에 확산시키고야 만다는 것을 나는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이루어진 모든 일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길고 긴 천년의 바람은 그냥 불지 않았다. 전주를, 전주 사람들을, 이렇게 단련시켰다. 나는 오늘도 ‘약간’ 어깨에 힘을 주며 말한다. 아, 저는 전주 사람입니다.....


# 이 원고는 전라북도 도정홍보지 '얼쑤전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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