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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와 관련된 고사성어 이야기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1.09.26|조회수1,392 목록 댓글 0

반포지효 [反哺之孝]--반포조(까마귀)|

수(隋)나라 말기의 군웅(群雄)인 이밀(李密:582~618)의 《진정표(陳情表)》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진(晉)나라의 이밀이 지은 《진정표》에 효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이밀은 무제(武帝)가 자신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지만 늙으신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을 사양한다. 무제는 이밀의 관직 사양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심정이라고 크게 화내면서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이밀은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한낱 미물인 까마귀도 반포지효가 있거늘 사람으로 태어나 늙으신 할머니를 끝까지 봉양할 수 있도록 헤아려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까치나 까마귀에 대한 인식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거의 같다. 보통 까치는 길조, 까마귀는 흉조라고 인식한다. 까마귀는 음침한 울음소리와 검은 색깔로 멀리 하는 새이며, 좋지 않은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또한 까마귀는 시체를 먹는 불결한 속성이 있어 까마귀 밥이 되었다고 하면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까마귀는 불길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지만 인간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간과할 수 없는 습성도 있다.

명(明)나라 말기의 박물학자 이시진(李時珍:1518~1593)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까마귀 습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까마귀를 자오(慈烏:인자한 까마귀) 또는 반포조(反哺鳥)라 한다. 곧 까마귀가 어미를 되먹이는 습성을 반포(反哺)라고 하는데 이는 극진한 효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반포지효는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반의지희(斑衣之戱), 반의희(斑衣戱), 채의이오친(綵衣以娛親)이 있다.


풍수지탄(風樹之嘆)

풍수지탄(風樹之嘆)은 논어(論語)에서 파생된 고사이다. 공자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떠돌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던 어느 날 어디선가 한 남자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공자 일행이 이상히 여겨 찾아가 보니 고어(皐魚)라는 사람이 울고 있었다. 공자가 우는 까닭을 묻자, 고어는 세 가지 한을 말하였다. “첫째 한은 공부를 한다고 집을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둘째 한은 오랜 동안 공부한 경륜을 펼치고자 하나 받아들이는 군주가 없고, 셋째 한은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고어는 한숨을 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멎지 않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子欲養而親不待),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저는 불효자이기 때문에 이대로 서서 죽고자합니다.“ 이 말에 감명 받은 공자의 제자 중에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섬긴 사람이 열 세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풍수지탄이라는 고사가 유래되었다. 이때부터 풍수지탄은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라는 뜻으로 효도를 다하지 못한 자식의 슬픔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주자십회(朱子十悔)에는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不孝父母死後悔)는 말이 있다. 신라시대 세속오계에도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로써 해야 한다는 사친이효(事親以孝)가 있다. 효성이 지극한 한백유(韓伯兪)는 어머님께 종아리를 맞고 눈물을 흘렸다 한다. 어머님이 노쇠하여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설화에는 병석에 누운 어머님께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국을 끓여들인 효에 관한 설화 등이 다양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만큼 효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도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망운지정(望雲之情)

望:바라볼 망. 雲:구름 운. 어조사 지. 情:뜻 정 자식이 객지에서 부모를 그리는 정

당(唐)나라에 적인걸(狄仁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병주(幷州)의 법조참군(法曹參軍)으로 임명되어 부임했다. 그때 부모는 하양(河陽)의 별장에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타이항 산(太行山)에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 뒤돌아보니 한 조각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그것을 본 그는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저 구름 아래에 살고 계시겠지."

그는 흰 구름을 우러러보면서 부모님 생각에 잠시 비탄에 빠졌다.

이윽고 그 구름이 걷히자 그도 그곳을 떠났다. [출전]《唐書》



백리부미(百里負米)

百 : 일백 백/ 里 : 마을 리 /負 : 짐질 부/ 米 : 쌀 미

백 리나 되는 먼 곳으로 쌀을 진다는 말로,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부모를 잘 봉양한다는 뜻.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치사(致思)〉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춘추전국시대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는 소문난 효자였다. 어느 날 자로가 부모에 대한 자신의 심정에 대해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부모님을 봉양할 때 녹봉이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관리가 됩니다. 옛날 부모님에게 나쁜 음식을 대접하여 백 리 밖에서 직접 쌀을 져 왔습니다[百里負米].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초(楚)나라에서 관리가 되었을 때는 수레가 백 대나 되었고, 창고에는 쌀이 수 만석이 쌓여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수명은 마치 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바라다 보는 것처럼 순간일 뿐입니다.”

이에 공자가 “부모님에 대한 자로의 효성은, 살아계실 때는 정성을 다해 섬기고, 돌아가신 이후에는 한없이 그리워하는구나 ”라고 말하였다.

백리부미는 부모에게 쌀밥을 드리기 위해 백 리 길을 멀다고 또는 귀찮아하지 않고 쌀을 져 오는 자로의 지극한 효성에서 유래한 말이다.

동의어는 백리지부(百里之負), 반포지효(反哺之孝), 채의이오친(綵衣以娛親)이고, 비슷한말은 반의지희(斑衣之戱), 반의희(斑衣戱), 오조사정(烏鳥私情)이다.

효에 대한 의식이 퇴색되어 가고 이기적인 현대 사회에서 자로의 효성을 말하는‘백리부미’는 현대인에게 효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고사성어이다. 부모를 섬길 때 물질적인 면을 결코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정성이 담겨 있지 않은 물질적인 봉양은 부모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


반의지희 斑衣之戱 [얼룰 반/옷 의/어조사 지/놀 희]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논다, 어버이에게 효도함 [출전]: 『몽구(蒙求) 』

[내용]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에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님을 봉양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의 나이 70의 백발 노인이 되었지만, 그의 부모님은 정성껏 보살피는 아들의 효성 때문인지 그때까지 정정하게 살아 계셨다. 노래자는 항상 어린 아이들처럼 알록달록한 문양이 있는 옷을 입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떨었다. 그의 재롱에 부모님들 역시 자신들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다.

노래자 역시 나이 많은 부모님 앞에서는 자신의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의 식사는 손수 갖다 드렸으며, 식사를 마칠 때까지 마루에서 엎드려 있었다. 이것은 갓난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흉내낸 것이다.

초나라 왕실이 혼란에 빠졌을 때, 노래자는 몽산(蒙山) 남쪽에 숨어 밭을 갈아 생활하며 저술 작업을 했다. 이때부터 ‘노래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유]노래자유희(老萊子遊戱)--초(楚)나라의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칠십(七十)에 색동옷을 입고 어린애 같은 재롱을 피우며 늙으신 부모 님을 기쁘게 해드린 데서 유래. 노래자는 중국의 24효자 중의 한 사람

[참고]손순매아(孫順埋兒) : 손순이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다하기 위하여 아이를 묻었다는 설화. 이에 복을 받고 아이를 묻으려 한 데에서 훌륭한 종(鐘)을 얻게 됨. 종소리가 임금 귀에까지 들려, 임금이 사람을 시켜 사연을 알아본즉 손순의 효심이 지극했음을 알고 큰 상을 내림 --- [삼국유사]

왕상득리(王祥得鯉) :효(孝) 진나라 때 선비인 왕상(王祥)이 계모를 위하여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드렸다는 고사

맹종설순 孟宗設筍--오대의 벼슬아치인 맹종(孟宗)이 한겨울에 노모를 위하여 눈물로 죽순을 돋게 했다는 고사


혼정신성(昏定晨省) : 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침에는 일찍이 문안을 드린다는 뜻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도리를 이르는 말

얼마 전에 한 리서치 기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광고문구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1위를 차지한 광고문구가 보일러 광고 문구인데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 드려야겠어요!”라는 문구였습니다. 이 문구가 1등을 차지한 것은 세상이 각박해졌지만 아직도 사람들 마음 속에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도 부모님을 공경하면 장수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고 말씀합니다(출 20:12, 신 5:16). 이렇게 부모 공경은 신앙의 차원으로까지 승화됩니다. 부모님을 하나님 받들듯이 우상숭배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신앙인이 꼭 갖추어야 할 윤리이고 열매라는 말씀입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듯이, 부모 공경에 대한 마음가짐과 실천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님을 직접 모시지 않는 자녀는 전화로라도 그 형편을 자주 살피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부모 공경은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하나님께서 꼭 기억하시고 복을 베푸신다는 말씀입니다. 부모님 잘 모셔서 손해 볼 것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님 좋고, 나도 좋고, 하나님께 복도 받고, 일석삼조입니다


혼정신성(昏定晨省) 

〇 昏 : 어두울 혼, 定 : 정할 정, 晨 : 새벽 신, 省 : 살필 성

〇 저녁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밤새 안부를 묻는다는

   뜻으로 부모를 잘 섬기고 효성을 다함을 이르는 말

〇 비슷한 말

   - 조석정성(朝夕定省) : 혼정신성과 같은 의미임.

   - 온청정성(溫淸定省) :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고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

  - 동온하청(冬溫夏淸) : 부모를 섬김에 있어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서늘하게 모신다.

이 말은 《예기(禮記)》의〈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로

밤에 잘 때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는다.’는 뜻의 ‘혼정(昏定)’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安候)를 살핀다.’는 뜻의 ‘신성(晨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

부모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한 행위가 곧 효, 또는 효행이다. 이 효사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의 가장 으뜸 되는 덕목으로 중시되었다. 즉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 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에게 봉제사(奉祭祀)하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사상이 사회규범으로 굳어졌다.

공자는 이러한 효에 대해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여 확고히 정착시켰다.

이 유교적인 효사상은 맹자에 와서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의무가 더욱 강조되었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효경(孝經)》에서 도덕의 근원, 우주의 원리로서 명문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효사상이 가장 중요한 도덕규범으로 정착되자 자연히 효에 대한 행동상의 규범도 많아지게 되었다. 일종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먼저 부모를 대하는 얼굴 가짐을 중시했다.

늘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부모를 섬겨 편안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하여 ‘색난(色難)’이라 하였다. 또 부모의 잘못을 보면 간언은 하되 뜻은 거역하지 않으며, 살아 계실 때에는 정성으로 모시고 돌아가시면 3년간 부모의 평소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고 지켜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소 일상생활 중에서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를테면 저녁에는 잠자리가 어떤지 직접 손을 넣어 확인해보고 아침에는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여쭌 다음 부모의 안색을 주의 깊게 살폈으니, 이것이 바로 ‘혼정신성’으로 부모를 모시는 기본 도리였던 것이다.


 陸績懷橘 - (뭍 륙, 길삼할 적, 품을 회, 귤나무 귤)

'육적이 귤을 가슴에 품다'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의 오나라 사람 육적에 관련된 고사에서 유래했다.

회귤고사(懷橘故事)라고도 한다. 육적은 오나라 왕 손권의 참모를 지낸 사람이다. 그가 6세 때 주강[九江]에서 원술(袁述)을 만났다. 원술은 육적에게 귤을 주어 먹으라고 하였다. 육적은 먹는 둥 마는 둥 시늉만 하더니 원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얼른 귤을 집어 품 안에 감추었다. 육적이 돌아갈 때가 되어 원술에게 작별인사를 올리는데 그만 품 안에 있던 귤이 떨어져 데구르르 굴렀다.

원술이 "육랑(육적을 가리킴)은 손님으로 와서 어찌하여 귤을 품에 넣었는가(陸郞作賓客而懷橘乎)"라고 물었다. 이에 육적은 "집에 돌아가서 어머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欲歸遺母) "라고 대답하였다. 원술은 어린 육적의 효심에 감동하였다고 한다.

이 고사는원나라 때 곽거경(郭居敬)이 중국의 대표적인 효자 24명의 효행을 적은《이십사효(二十四孝)》에 실려 있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육적회귤은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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