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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 읽기 여행

차마설(이곡) 정리 및 이해와 감상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1.11.03|조회수1,501 목록 댓글 0

차마설(이곡) 정리 및 이해와 감상

▶설

  설(說)은 풀어 해석하는 것이며, 진술하는 것이다. 그 뜻을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술회하는 것이니, 논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본격적인 논설문인 논의(論議)보다는 약간 가볍고 평이한 것이며, 상세하게 남김없이 설파하는 것을 주지로 하는 문체이다. 주역(周易)의 설괘(說卦)에서 비롯된 문체로서 다분히 비유의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하므로 설화를 읽는 흥미가 있다.

 

핵심 정리

 연대 : 고려시대

 형식 : 수필. 설

 성격 : 교훈적, 철학적

 문체 : 역어체, 만연체

 소재 : 차마 즉 말을 빌린 경험

 주제 : 모든 소유는 빌린 것에 불과하니 사람은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 소유에 근거한 인간 심리의 허망함

 

깨달음의 내용

1) 빌린 물건이라도 사람의 마음은 그 물건의 좋고 나쁨에 따라 현격한 심리 변화를 보인다.

2) 자기 물건이라면 그 심리 변화는 보다 극심할 것이다.

3) 사실상 사람에게 자기 소유물이란 없다. 모두 빌려 온 것일 뿐이다.

 

이해와 감상1 - 형식적이고 논리적인 구조로 본다면 이 글은 도입부에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어 친숙함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지만, '서두-중간-결말'의 3단 구성과 비교해 볼 때, 이 글은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 다르다. 사실로부터 의견(깨우침)에 이르는 과정이 3단 논법과 같은 논리적 전개 과정을 취하지 않고 직관적 통찰에 의해 바로 이루어지고 있어 3단 구성의 논리적인 구성에 비해 논리적인 구성은 뒤떨어진다. 이것은 논리적 설득보다는 사물에 대한 깨우침을 전하는 데 적절하며, 체계적이고 복합적이며 다층적인 내용보다는 제한된 내용이기는 하나 본질적인 내용을 압축적으로 명료하게 전달하는 데 적절하다.

 이 글의 내용은 말을 빌려 탄 경험으로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보편적 삶의 자세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글쓴이가 체험과 상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깨달은 바는 '소유'의 문제이다. 결국 인간이 가지고 잇는 것은 그 누구에게서인가 잠시 빌린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므로, 글쓴이는 이러한 우매함을 경계하고 있는 글로 인간의 소유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쓴 글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읽고 우리는 인생에 있어 삶의 지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고 우리 주변을 살펴 볼 수 있다. 사실 '소유욕'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의 하나로 자리잡아 왔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글이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은 이러한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고 보다 체계적으로 자크 라캉은 욕망이론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유욕'이라고 하는 것인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쓰여진 시대와 그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이러한 글들을 통해서 인간의 '소유욕'에 대한 다각적인 견해를 접할 때 우리는 또한 삶의 조그마한 빛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와 감상 2

 '차마설'의 후반부는 앞부분에서 말한 일들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 있다. 문학의 감동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세상 무엇이든지 '나'와 연관을 맺지 않을 때에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문학 작품은 그것을 읽는 '나'와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 관계가 긴밀할수록 그 작품은 독자인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게 된다. 그 감동의 성격은 대리 성취일 수도 있으며, 동일시일 수도 있는가 하면, 세상사에 눈을 뜨게 된 앎의 쾌감일 수도 있다. 그 성격에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 감동은 모두 그 작품이 내게 던지는 의미에 대한 깨달음의 결과이다.

감동은 기본적으로 앎의 기쁨에 관련된다. 사실을 알고, 그것들의 상징적 의미를 알고, 그 것이 내게 던지는 의미를 앎으로써 완벽한 앎에 이르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 기쁨이 바로 문학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며, 그 감동은 그 이야기가 '나'에게 던지는 의미라는 점을 '차마설'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차마설'을 이렇게 읽어 나간다면, 필연적으로 우리는 '깨달음'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서 삶의 지표가 어떠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마설'의 지은이가 제시한 의미 부여가 나의 깨달음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를 중심으로, 사물을 보는 시점의 차이와 그 시점을 결정하는 세상 보는 눈의 차이를 거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차이들을 두루 깨달을 수 있는 자만이 모든 인간과 그 삶에 대해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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