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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재기(守吾齋記) (정약용(丁若鏞)) 원문 읽기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1.11.20|조회수2,038 목록 댓글 0

수오재기(守吾齋記) 정약용(丁若鏞)

 

 

 ‘수오재(守吾齋)’1)라는 이름은 큰형님이 자신의 집에다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에 이 이름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나와 굳게 맺어져 있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가운데 나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굳이 지키지 않더라도 어디로 가겠는가. 이상한 이름이다.

 내가 장기로 귀양2) 온 뒤에 혼자 지내면서 잘 생각해 보다가, 하루는 갑자기 이 의문점에 대해 해답을 얻게 되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이렇게 스스로 말하였다.

 “천하 만물3) 가운데 지킬 것은 하나도 없지만, 오직 나만은 지켜야 한다. 내 밭을 지고 달아날 자가 있는가. 밭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집을 지고 달아날 자가 있는가. 집도 지킬 필요가 없다. 내 정원의 여러 가지 꽃나무와 과일 나무들을 뽑아갈 자가 있는가. 그 뿌리는 땅 속 깊이 박혔다. 내 책을 훔쳐 없앨 자가 있는가. 성현의 경전4)이 세상에 퍼져 물이나 불처럼 흔한데, 누가 능히 없앨 수가 있겠는가. 내 옷이나 양식을 훔쳐서 나를 궁색5)하게 하겠는가. 천하에 있는 실이 모두 내가 입을 옷이며, 천하에 있는 곡식이 모두 내가 먹을 양식이다. 도둑이 비록 훔쳐 간대야 한두 개에 지나지 않을 테니,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없앨 수 있으랴. 그러니 천하 만물은 모두 지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오직 나라는 것만은 잘 달아나서, 드나드는 데 일정한 법칙이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다가도, 잠시 살피지 않으면 어디든지 못 가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꾀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앙이 겁을 주어도 떠나간다.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만 들어도 떠나가며, 눈썹이 새까맣고 이가 하얀 미인의 요염스러운6) 모습만 보아도 떠나간다. 한 번 가면 돌아올 줄을 몰라서, 붙잡아 만류할 수가 없다. 그러니 천하에 나보다도 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은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매고 빗장7)과 자물쇠로 잠가서 나를 굳게 지켜야 하지 않으리오.”

 나는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잃어버렸던 자다. 어렸을 때에 과거(科擧)8)가 좋게 보여서, 십 년 동안이나 과거 공부에 빠져 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처지가 바뀌어 조정9)에 나아가 검은 사모관대(紗帽冠帶)10)에 비단 도포11)를 입고, 십이 년 동안이나 미친 듯이 대낮에 커다란 길을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또 처지가 바뀌어 한강을 건너고 새재12)를 넘게 되었다. 친척과 선영13)을 버리고 곧바로 아득한 바닷가의 대나무 숲에 달려와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 때에는 나도 땀이 흐르고 두려워 숨도 쉬지 못하면서, 나의 발뒤꿈치를 따라 이 곳까지 함께 오게 되었다. 내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느냐? 여우나 도깨비에게 흘러서 끌려 왔느냐? 아니면 바닷귀신이 불러서 왔느냐. 네 가정과 고향이 모두 초천에 있는데, 왜 그 본바닥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끝내 멍하니 움직이지 않으며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얼굴빛을 보니 마치 얽매인 곳에 있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붙잡아 이 곳에 함께 머물렀다. 이 때 내 둘째 형님 좌랑공14)도 나를 잃고 나를 쫓아 남해 지방으로 왔는데, 역시 나를 붙잡아서 그 곳에 함께 머물렀다.

 오직 나의 큰형님만이 나를 잃지 않고 편안히 단정하게 수오재에 앉아 계시니, 본디부터 지키는 것이 있어서 나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큰형님이 그 거실에 ‘수오재’라고 이름 붙인 까닭일 것이다. 큰형님은 언제나,

 “아버지께서 내게 태현이라고 자를 지어 주셔서, 나는 오로지 나의 태현을 지키려고 했다네. 그래서 내 집에다가 그렇게 이름을 붙인 거지.”

 라고 하지만, 이는 핑계 대는 말씀이다.

 맹자15)가 “무엇을 지키는 것이 큰가? 몸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크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씀이 진실하다. 내가 스스로 말한 내용을 써서 큰형님께 보이고, 수오재(守吾齋)16)의 기(記)17)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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