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클의 <캠핑클럽>을 보는데 이런 장면이 나왔다. 캠핑카를 운전하던 이효리가 갑자기 멤버들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애들아. 아까 우리 자전거 탈 때, 너네 그늘에 있으라고 내가 그늘 좀 밖에 있었던 거 알아? 나는 내가 너무 기특했다? 이런 기특한 순간이 많아지면 그게 자존감이 되는 것 같아.”
글로 옮겨 적으니 너무 생색을 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효리 특유의 넉살이 섞인 유쾌한 장면이었다. 어렴풋이 품고 있는 생각을 누군가 구체적으로 말해줄 때 오는 쾌감이 있다. 네게는 이 장면이 그랬다.
몇 년을 주기로 단어는 유행을 탄다. 힐링, 웰빙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시대가 어렴풋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에 제목이 붙여지면, 그 단어는 한동안 수많은 문화를 지배한다. 요즘 그런 단어가 바로 ‘자존감’이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자존심이 꺾이지 않으려 버티는 막대기 같은 거라면, 자존감은 꺽이고 말고부터 자유로운 유연한 무엇이다. 자존심은 지켜지고 말고의 주체가 외부에 있지만 자존감은 철저히 내부에 존재한다. 그래서 다른 누가 아닌 스스로를 기특히 여기는 순간은 자존감 통장에 차곡차곡 쌓인다. 선행에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욕망이 부록처럼 딸려온다. 어릴 때 칭찬에 길들여졌을 수많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내성이고, 특별히 나쁠 것도 없는 점이기도 하다. 허나 선행이 누군가의 칭찬과 거래되는 순간 자존감 통장에는 쌓일 것이 없다. 나의 대견함을 ‘알아주는’ 주체를 타인에게 넘겨버릇하는 게 위험한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가 대견한 순간은 굉장히 작은 것들이다. 철저히 분리수거 하는 것, 어리숙한 알바생의 실수에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소소한 말을 건네는 것,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에 동참하는 것 등등의 사소한 것들이 바로 그런 거다. 나의 존엄을 가꾸어 나가는 일은 결코 거창할 필요만은 없다. 존엄이라는 말의 무게 때문에 창씨개명에 맞서고 인권운동에 삶을 바치는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같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존엄한 사람들은 일상 속 하찮은 순간들이 정갈한 이들이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 생각해서 스스로를 칭찬해주지 않았던 깨알같은 장면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고요히 자신을 토닥여주는 습관을 가져보자.
김이나 작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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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취원 작성시간 23.06.08 나만이 아는 은밀한 선행, 자존감 통장이 배부르면 내 자존감도 부자가 되겠다. 기분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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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날아(捏娥) 작성시간 23.06.08 재활용 분리수거를 아주 꼼꼼히 하는편이고(잘 못 분리된 것이 보이면 고치기까지), 길 가다 보행에 불편한 돌,가지 등을 보면 꼭 치우는 행위에 스스로를 칭찬하며 자존을 느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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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leehan202 작성시간 23.06.08 때로는 이정도면 자존감 부자 아니야? 할 정도로 일상 속 작은 실천들에 뿌듯한적 있읍지요.
좀 쑥쓰러워하면서 말이지요.
나름대로 자존감 키워가기,
여전히 실천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