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감과 러브레터』(현진건)를 읽고 (정만진)
<줄거리>
여학교 교사 겸 기숙사 사감인 B사감은 독신주의자에다가 딱장대이다. 여러 겹 주름이 잡혀 훌러덩 벗겨진 이마 등등 늙어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는 노처녀인 B사감을 학생들이 딱장대라고 부르는 것은 그녀의 성질이 사납고 굳센 까닭이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러브레터이다. 그녀는 기숙사로 배달되어 온 편지를 검열하여 만약 그것이 사랑타랑이면 당사자를 불러 퇴학을 시켜버리겠다는 둥 여학생들에게 아주 혼쭐을 내놓는다. 그녀는 실제로 러브레터를 받은 여학생을 불러 그렇게 잔뜩 겁을 주며 두어 시간 문초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장시간의 문초를 끝낸 다음에는 '남자는 마귀다' 등의 설법을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도를 올린다. '이 아이가 남자라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해주소서.'
언제부터인가, 기숙사에는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떠돈다. 하루는 한밤중에 세 여학생이 동시에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남녀가 서로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소리이다. 세상에! 여학교 기숙사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세 학생은 호기심을 참지 못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나선다. 놀랍게도 그 곳은 B사감의 방 안이다. 세 여학생은 그 안을 엿본다. B사감이 학생들에게 온 러브레터를 방 안 가득 펼쳐놓고서는 혼자서 남녀 역할을 번갈아가며 맡아 사랑의 대화를 터뜨리고 있다. 세 학생은 B사감이 미쳤나 보다 생각하며 동정의 눈물을 흘린다.
<읽기>
법구경(法句經)에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만나지 못해 괴롭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 탓에,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지 못하는 괴로움을 뛰어넘기 위해 사람들은 결혼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결혼이 반드시 사랑의 결과물인 것은 아니다. 또, 사랑 끝에 이루어진 결혼이라 하더라도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에 대한 사랑이 한없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혼율의 증가일로 현상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늠을 해볼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부부 중 한 쪽의 가출 등으로 말미암아 결손가정이 늘어나는데다가, 우리나라 안에서만도 한 해에 1만 수천 명의 아기가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웬만한 사람들은 경악을 금하지 못하리라.
사회학의 통계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라기 보다는 고립감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결과라고 한다. 남들이 결혼을 하니까 나도 결혼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유행을 추종하여 살아감으로써 사회로부터 고립된 듯한 느낌을 받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학의 통계는, B사감이 스스로의 사랑의 고통 때문에 광기적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여학생들에게 배달되어온 수많은 러브레터에서 느낀 극심한 소외감과 열등의식 때문인 점을 감안하면 대체로 수긍이 간다.
사실 B사감이 보여주는 히스테리는 참으로 인간적인 반응이다. 그러므로 B사감과 같은 방식의 삶은 보통 정도의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에 머무르는 사람은 결코 남다른 개성적 생애, 창조적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저 창공을 나는 큰새[大鵬]가 되기를 원한다면, 유행을 따라 살아가려 들지 말라. 유행은 혹독한 개성 말살, 철저한 자기정체성 파괴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찬 파도 속에 몸을 던지면 그는 그저 고깃밥이 될 뿐 결코 수평선을 넘어가는 희망의 돛단배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 현진건 : <백조> 창간 동인. '한국의 오.헨리' 등의 평판을 받아온 한국문학 초기의 선구자. 동아일보 사회부장 때에는 '일장기 말살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운수 좋은 날』,『빈처』,『술 권하는 사회』 등이 주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