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9 - 9.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박상우 ) 줄거리 및 감상하기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7.05.03|조회수296 목록 댓글 0

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9

9.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박상우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론 - 박상우 | 문학담론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박상우의 소설들은 매우 매력적이고 흡인력이 강하다는 것이 평소의 내 지론이었고, 단편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역시 그러한 기대감에 충분히 대답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 작품은 1980년대의 민중연대성에 근거한 ‘우리’라는 공동체적 연대감의 상실감을 스치듯이 그렇게 빠르게 서술해 나아간다. 민족문학의 이념과 방법면에서 그 이념이 무엇보다도 ‘민중연대성’이며 방법이 바로 ‘리얼리즘’이라면 박상우의 이 작품은 충분히 민족문학론자에게 어필하면서 다가올 수 있는 근거들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박상우의 문체 또한 뛰어난 작가이다. 많은 작품집들을 창작해오면서 최근에 발표된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는 그가 어느 자리에서 이야기했듯 그 동안의 창작방향을 벗어나는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작가관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사탄->과 <샤갈->의 비교를 통해 박상우의 작품관이 많은 부분 새로운 세기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허무주의적 퇴폐에 빠져있다는 판단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공동체에서 ‘나’의 개인주의로의 변용과 사라져가는 연대의 변혁의 필요성을 박상우는 <사탄->을 통해 말하고 있다. <샤갈->에서 여섯명이었던 ‘우리’는 점차 그 숫자가 줄어들어 둘로 남게되고 다시 한 여자의 합승으로 셋이 남게 됨에 따라 1980년대에 그들의 연대가 정치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있었다는 뼈아픈 역사 의식을 보이며 그러한 정치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발언이 이제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어필할 수 없다는 문제 의식을 <샤갈->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작가 박상우’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이 소설은 90년 벽두 실제로 문인 친구들과 가진 술자리를 토대로 쓴 글이라고 한다. ‘새로운 연대의 벽두, 그리고 21년만의 폭설을 빙자해서 만난 여섯 명의 친구들의 술자리’를 그려낸 <샤갈의…>은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는 ‘자신의 일’처럼 읽혔다. 차가운 눈 속에 뿔뿔이 흩어져가는 친구들의 단절과 고립을 통해 지난 시대의 ‘연대’는 끝났구나 하고 자못 비감에 젖었으니까. 그러나 소설의 결미는 그래도 낙관적이었다. 비루한 그 ‘술잔치’의 끝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는 필사적으로 손을 거머쥐었으니까. 마치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희망을 의미하는 것처럼….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도 샤갈의 마을이 나온다. 21년만의 폭설, 계속되는 술자리에서 만난 여인, 이 소설에 나오는 문장이다. <술 한잔 더하고 싶지 않으세요?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 중의 하나가 되물었다. 이 시간에 술을 마실 만한 곳이 있습니까?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다. 샤갈의 마을로 가면 돼요. 샤갈의 마을?>샤갈의 마을은 그녀의 그림 작업실이었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 작가는 80년대의 정치적 허무주의 때문에 괴로워하는 군상을 그려내고 낭만적 문체로 그 아픔을 어루만졌다.


참고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數千數萬)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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