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이반과 삶의 지혜 (consul)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8.03.01|조회수332 목록 댓글 0

바보 이반과 삶의 지혜 (consul)

 

늘 발생하는 일들 중에 하나이지만 최근 잘 나가는 인물들의 어이없는 추락을 자주 접하게 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주역인 우병우뿐만 아니라 “남자에게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란 멘토로 유명한 천호식품의 김영식회장, 또는 보수논객으로 이름을 떨치는 전원책 변호사의 신년특집 토론에서의 오만한 태도 등이 바로 그런 사례에 속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 정도의 성공을 거둘려면 출중한 능력과 함께 본인 스스로 남다른 노력이 없는 한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성공의 대가로 뒤따르는 것이 돈과 권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달콤한 돈과 권력 뒤에는 항상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악마는 주로 인간을 유혹할 때 돈과 권력으로 유혹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현자들은 이점에 대해 주목하고 사람들에게 주의하도록 늘 가르쳐 왔다. 예를 들면 톨스토이는 “바보 이반”이란 소설에서 돈과 권력의 함정에 대해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이반의 삼형제 가운데 위의 두 형제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 각각 돈과 권력을 추구하다가 끝내 망하고 말지만, 돈과 권력을 쫓는 “머리 쓰는 법”에 애초부터 관심이 없는 바보 이반은 악마의 감언이설을 물리치고 마침내 참된 평화의 삶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한편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머리를 쓰면” 큰 잘못이 생긴다는 글이 있다. 도덕경 48장에 보면,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란 글이 나온다. 직역하면 학문을 하면 (일삼는 일이) 나날이 늘어나고 도를 행하면 (일삼는 일이) 나날이 줄어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은) 줄고 또 줄어 무위에 이르게 된다. 무위의 상태에 도달하면 (일삼는 일을 하지 않는데도) 하지 못함이 없다.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항상 일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삼아 하기에 이르면 그것 때문에 세상을 다스리기에 부족하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함부로 머리 굴리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는 말씀이다.

​이 말은 바보 이반의 생각 및 행동과 100% 일치한다. 너무나 흡사해서 마치 톨스토이가 노자의 도덕경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두 현인 모두 돈과 권력을 쫓다가 결국은 패가망신하고 마는 현실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에 반해 오로지 성실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일견 어리석게 보이지만 사실은 참된 평화가 있는 삶임을 가르치고 있다.

​다만 문제는 보통사람들이 그뜻대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이반과 같이 바보처럼 살라고 한다면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돈과 권력이란 탐욕과 참된 평화의 삶이 서로 양립할 수 있을까. 돈과 권력은 기본적으로 남들에게 잘 보이거나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구이다. 즉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타인이란 존재를 전제로 한다. 역으로 말하면 남이 없다면 구태여 돈과 권력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나와 남이라는 이원성을 극복하는 동시에 교만이나 지배욕을 없애려면 자신보다 먼저 타인을 섬기는 자세, 즉 "깨어난" 바보가 되면 저절로 해결된다.

​대다수의 도덕적∙종교적 가르침에서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섬길 것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비록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런 겸손한 바보가 됨으로서 교만한 마음을 극복할 수 있다. 돈을 탐하거나 남을 지배하려고 머리를 굴리면 일시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악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멸하고 만다는 사실은 노자가 살던 2,500년 전뿐만 아니리 21세기를 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출처] 바보 이반과 삶의 지혜|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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