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4
5.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황만근이 없어졌다. 새벽에 혼자 경운기를 타고 집을 나간 황만근은 늘 들일을 나가면 돌아오는 시각인 저물녘에 돌아오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취하더라도 열두 시가 될락말락한 한밤이면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평생 단 하루 외박한 뒤 돌아왔던 그 시각, 횃대의 닭이 울음을 그치는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회관 앞, 황만근이 직접 심어 놓은 등나무 덩굴 아래, 직접 짠 평상에 사람들이 모였다.
|생략 부분 줄거리| 황만근은 농민 궐기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에 혼자 경운기를 타고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 일 때문에 이장과 민씨는 목청을 높였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옥신각신 여러 말이 오갔다. 황만근을 반편이 취급하는 동네 사람들의 태도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민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할까 말까 하다가 끝내 입을 열지 못하였다.
마을에서 젊은 축에 드는 마흔다섯 살의 황영석은 황만근이 벽돌을 찍고 구덩이를 파서 지은 마을회관 변소에서 분뇨를 퍼내면서 황만근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만그이 자석이 있었으마 내가 돈을 백만 원 준다 캐도 이런 일을 안 할 낀데. 아이구, 이 망할 놈의 똥냄새. 여리가 싸 놔 그런지 독하기도 하네. 이기 곡석한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도 모르겠구마.”
황만근이 있었으면 군말 없이 했을 일이었다. 늘 그렇듯이 벙글벙글 웃으면서.
“만그이가 있었으모 저 거름이 우리 밭으로 올 낀데. 만그이가 도대체 어데 갔노.”
마을회관 곁 조그만 밭에 채소를 심어먹는 여씨 노인도 황만근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황만근은 마을 공통의 분뇨를, 역시 자신이 판 마을 공통의 분뇨장으로 가져가서 충분히 익힌 뒤에,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황영석처럼 제가 펐다고 바로 제 밭에 가져다가 뿌리지는 않았다. 특히 여씨 노인처럼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잣몸이 된 노인들에게는,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더 자주 거름을 가져다주었다.
“만그이한테 물어 보자.”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다가 황만근의 부재를 알게 되었다. 공평무사1)한 것이 황만근의 평생의 처사였다. 그에게는 판단 능력이 없는 듯했지만 시비를 물으러 가면, 가노라면 언제나 공평무사한 자연의 이법에 대해 깨우치게 되고 분쟁은 종식되었다.
또는 물어보나마나 명약관화2)한 일을 두고도 황만근을 들먹였다.
“만그이도 알 끼다.”
또한 동네에 오래도록 내려오는 노래, 구태여 제목을 붙이자면 ‘황만근가’를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면서 사람들은 황만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황만근가, 황만근의 노래, 아니 황만근에 관한 노래는 이렇게 부른다. 먼저 “황” 하고 단호하고 크게 소리쳐서 주의를 끈 다음, 한 박자를 쉰 뒤에 “마안─그은” 하고 두 박자로 느릿하게 부른다. 이어서 “백 분(번), 찝 원(십 원), 여 끈(열 근), 팔 푼, 두 바리(마리)” 하고 빠르게 센다. 마지막으로 “그래, 바안─그은” 하고 느긋하게 마친다. 이 노래에는 황만근의 일생이 들어 있고 모든 노래가 그렇다시피 노래를 부르는 마을 사람들의 대체 경험과 정서가 녹아 있다.
황은 성을 말한다. 신대 1리는 황씨들이 오십여 호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2년 전에 귀농한 민씨 같은 타성바지는 황씨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노씨를 포함 전체에서 두 가구밖에 되지 않는다. 신대(新垈), 새터는 이름이 암시하듯 새로 생긴 마을이다. 황만근의 부친은 전쟁 중에 죽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 때 이미 그를 배고 있었는데 남편을 여의고 황만근을 낳은 까닭에 항렬을 따서 이름을 지어 줄 사람이 없어 집에서 우러러보이는 산, 만근산(萬根山)에서 이름을 받았다. 만근산은 신대 1리에서 3리까지가 띠 모양으로 둘러 있는 천곡지(千谷池)를 병풍처럼 에워싸서 물을 가두고 또한 사철 물을 대 주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만근산의 천곡이라는 이름의 계곡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고 계곡에서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모아 한 곳에 살게 한 곳이 바로 신대리이다. 이쯤만 해도 황만근이라는 이름이 곧 동네의 뿌리를 상징하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백 번’은 무엇을 이름인가. 황만근이 땅바닥에 넘어진 횟수가 백 번임을 말한다. 황만근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자주 넘어졌는데 동네 사람들 말대로 ‘골’, 곧 자주 아는 척하는 윗마을 황학수의 말마따나 평형 감각을 관장하는 소뇌가 미발달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동네에서 툭, 소리가 나면 홍시 떨어지는 소리, 아니면 황만근이 넘어지는 소리라고 여겼다. 누군가 황만근에게 도대체 하루에 몇 번 넘어지는지 세어 보라고 했다. 기왕 넘어지는 거 셈 공부나 하라는 충고였겠다. 저녁때 어린 황만근에게 몇 번 넘어졌는가 물으면 황만근은 손가락을 꼽고 발가락을 꼬고 무릎과 허리까지 배배 꽈 가며 용을 썼다. 그런데 황만근은 언제부터인가 그런 물음에 명쾌하게 ‘백 분’이라고 대답했다. 하루에 백 번, 한 달에 백 번, 일 년에 백 번, 평생 백 번. 백은 황만근이 셀 수 있는 가장 큰 단위였다.
‘찝 원’은 면사무소가 있는 봉대 장터의 국숫가게 주인이 보태 준 별명이다. 어느 날 열서너 살 난 더벅머리 황만근이 국수를 사러 와서는 가게 문간에서 이렇게 말했다. “꾹찌 찝 원어찌만 쪼요.” 국수장수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황만근은 신중하게 손가락을 헤아리더니 다시‘꾹찌’라고 하면서 가게 주변이 온통 환하도록 널려 마르고 있는 국숫가닥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찝 원’이라고 했는데 주인은 그 말을 그의 손에 들린 십 원짜리 지폐를 보고 겨우 알아들었다. 어린 시절 황만근은 혀가 짧았던 것이다.
|생략 부분 줄거리| 황만근의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팔려오다시피 신대리로 시집을 왔는데, 전쟁 때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덟 달밖에 안 된 황만근을 낳았다. 그 후 황만근의 할머니가 황만근과 그 어머니를 함께 키웠고, 황만근이 열다섯 살 되던 해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황만근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서른 살이 될까 말까 한 황만근의 어머니는 그 때까지 밥 짓는 것조차 몰랐고 황만근이 있는 한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다. 황만근의 나이가 차자 군대 징집 영장이 나왔다. 동네는 물론 온 면에서도 알려진 바보라 황만근은 당연히 면제가 되었겠지만, 일단 신체검사와 소집 면제에 필요한 절차를 밟기 위해 군청이 있는 읍에는 가야 했다. 황만근은 쌀밥을 한솥 해서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한 뒤에 참기름으로 맛을 내어 주먹밥을 만들었다. 주먹밥 몇 덩이는 보자기로 싸서 허리에 차고 나머지는 상 위에 얹어 놓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배고프면 이거 먹어라. 내 얼릉 갔다올게.”
어머니는 쓰다 달다 말도 없이 황만근이 하는 양을 지켜볼 뿐이었다. 신체검사는 황만근의 생각처럼 얼른 끝나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황만근은 입가에 침만 좀 흘렸을 뿐, 또래의 친구들처럼 스무 살 남짓한 건강하고 잘생긴 청년으로 보였다는데, 징집을 감독하러 온 사람들이 이리 뜯어보고 저리 물어보고 으르고 협박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던 모양이다. 황만근은 결국 샛별이 뜨는 저녁이 되어서야 신체 검사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밤길을 도와 백릿길을 걸어서 어머니가 혼자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던 황만근은 평생을 좌우할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당시에는 군청이 있는 읍에서 신대리까지 오는 버스도 없었고 있다 해도 끊어질 시각이라 산길로 오는 게 빨랐는데 네 개의 봉우리를 돌거나 넘어야 했다. 그 중 네 번째 고개의 이름은 토끼고개다. 어지간히 다 왔다 싶었는데, 어째선지 걸어도 걸어도 고갯마루가 나오지 않고 한 군데서 맴도는가 싶더니 문득 어둠 속에서 털이 눈부시게 하얗고 창날처럼 뻗친 수염과 홍보석처럼 붉은 눈을 가진 토끼가 달려나왔다. 그 날은 그믐 때여서 달빛조차 없었는데 눈부시게 희었다니 그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황만근이 그 날의 일을 수백 번도 더 말했지만 처음과 다르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나저나 토끼가 너무 컸다. 토끼의 귀가 황만근의 머리보다 더 높이 솟아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토끼는 입을 움직이며 사람의 말을 했다.
“너는 집에 못 간다. 너는 집에 못 간다. 너는 집에 못 간다. 너는 여기서 죽는다.”
토끼의 입술이 갈라진 사이로 황만근의 엄지손가락만한 날카로운 이가 반짝였다. 무슨 불빛이 있어서 반짝이기까지 했느냐고. 초봄이라 토끼고개에는 눈이 채 녹지 않고 있었다. 하다못해 별빛에라도.
“그기 뭔 소리라? 내가 내 집에 내 발로 가는데 니가 뭐라꼬 집에 못 간다 카나. 귀신이마 썩 물러가고 토끼마 착 엎디리라. 내가 너를 타고서라도 집에 갈란다.”
거대한 토끼는 황만근이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비린 냄새를 풍기면서 느릿하고 탁한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너는 여기서 죽는다. 너는 여기서 죽는다. 너는 여기서 죽는다. 너는 집에 못 간다.”
황만근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털이란 털은 모두 위로 곤두섰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토끼를 밀치며 “비키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토끼를 밀친 황만근의 팔이 토끼의 털에 묻히는가 싶더니 진공 청소기에 빨려드는 파리처럼 쑤욱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황만근이 한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들은 민씨의 표현이다). 황만근은 한 팔로 옆에 있는 나무를 붙잡으면서 빨려들어간 팔을 도로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황만근을 빨아들이려는 공간은 아무것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넓었고 허전했고 또한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토끼는 토끼대로 쉽게 끌려들어오지 않는 황만근을 마저 끌어들이기 위해 온몸을 떨면서 뒷발을 든 채 버티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어느새 동쪽 하늘이 부옇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토끼는 황만근을 향해 “너는 이제 살았다. 너는 이제 살았다. 너는 이제 살았으니 나를 놓아라.” 하고 말했다. 황만근은 오기가 나서 “택도 없는 소리 말거라. 니를 탕으로 끓이서 어무이하고 나하고 마주앉아서 먹어치울 끼다. 니 가죽을 빗기서 어무이 목도리를 하고 내 토시를 하고 장갑을 할 끼다. 니는 인자 죽었다. 자슥아.” 하고 소리쳤다. 토끼는 다급하게 물었다.“그럼 어떻게 하면 네 팔을 빼겠느냐.” 황만근은 팔을 안 빼는 게 아니라 못 빼고 있는데 토끼가 그렇게 물어오자 할말이 없었다. 그래서 되는 대로 “내 소원을 세 가지 들어 주기 전에는 니까잇 거는 못 간다.” 하고 말했다.
“네 소원이 뭐냐.”
“우리 어무이가 팥죽 할마이겉이 오래오래 사는 거다.”
(팥죽 할마이란 팥죽을 파는 할머니, 혹은 늘 팥죽을 쑤고 있는 할머니 같은데 그 할머니가 누구인지, 어째서 오래 산다고 하는지 민씨는 모른다.)
토끼는 마을이 있는 서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가 몸을 소스라치게 떨고 나서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들어주었다. 그 다음은?”
“여우 겉은 마누라가 생기는 거다.”
“송편을 세 번 먹으면 네 집으로 올 거다. 다음은 무엇이냐?”
“떡두깨(떡두꺼비) 겉은 아들이다.”
“마누라가 들어오면 용왕이 와서 그렇게 해 준다. 이제 나를 놓아라.”
“내가 언제 니를 잡았나. 니가 가뿌리만 되지, 바보자슥아.”
그러자 토끼는 속았다는 걸 알았는지 얼굴을 무섭게 부풀리더니 황만근의 얼굴에 뜨겁고 매운 김을 내뿜었다. 황만근이 눈을 뜨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간신히 떠 보니 어느새 자신의 팔이 돌아와 있는 것이었다. 황만근의 주변에는 토끼털이 무수히 떨어져 바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생략 부분 줄거리| 삼 년이 지난 후 황만근은 자살을 하려고 이 마을로 찾아든 어떤 처녀를 구해 주게 되었다. 처녀는 황만근의 집에 그대로 머물러 살다가 칠 개월 만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고 삼칠일이 되던 날 사라져 버렸다. 황만근은 동냥젖을 먹여 가며 아이를 키웠다. 황만근의 어머니와 아들은 입맛이 까다로웠으나, 항만근은 재료의 맛을 우려내어 조화를 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황만근은 또한 책에 나오는 예(禮)는 몰라도 염습3)과 산역(山役)같이 남이 꺼리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을 섰고 동네 사람들도 서슴없이 그에게 그런 일을 맡겼다. 똥구덩이를 파고 우리를 짓고 벽돌을 찍는 일 또한 황만근이 동네 사람 누구보다 많이 했다. 마을길 풀깎기, 도랑 청소, 공동 우물 청소…… 용왕제에 쓸 돼지를 산 채로 묶어서 내다가 싫다고 요동질하는 돼지에게 때때옷을 입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에는 그가 최고의 전문가였다. 동네의 일, 남의 일, 궂은일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런 일에 대한 대가는 없거나(동네일인 경우), 반값이거나(다른 사람의 농사일을 하는 경우), 제값이면(경운기와 함께 하는 경우) 공치사가 따랐다.
“반근아, 너는 우리 동네 아이고 어데 인정 없는 대처 읍내 같은 데 갔으마 진작에 굶어죽어도 죽었다. 암만 바보라도 고마와할 줄 알아야 사람이다. 아나 어른이나 너한테는 다 고마운 사람인께 상 찡그리지 말고 인사 잘하고 다니라. 아이?”
황만근은 황재석 씨의 이런 긴 사설을 들을 때조차 벙글거렸다. 일이 끝나면 굽신굽신 인사를 했다. 춤을 추듯이, 흥겹게.
그의 집에는 그가 수십 년 동안 만져온 연장이 그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순서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 연장들 역시 그의 집이나 어머니나 아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매일 돌보는 덕분에 윤기가 흘렀다. 그는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잘 알고 있어서 대부분의 고장은 스스로 고쳤다. 특히 경운기는 초기에 나온 모델로 지금은 부품도 제대로 없는 고물 중의 고물이었지만 자주 망가지는 수레만 열 번 넘게 갈았을 뿐, 엔진이 달려 있는 앞부분은 계속 고쳐 썼다. 그의 경운기는 구식인데다 하도 고친 데가 많아서 그가 아니면 운전은커녕 시동조차 걸 수 없었다.
다만 황만근은 술을 좋아했는데 가난한 까닭에 자주 취하게 마실 수는 없었다. 어쩌다 동네에 애경사가 있어 술을 공짜로 마실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고꾸라지도록 마셨다. 고꾸라진 그를 떠메어 집에 데려다 뉘어 줄 사람이 없었던 까닭에, 동네 사람들이 몰인정하고 야박해서가 아니라 그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태어나서 한 번도 제대로 씻지 않은 몸에서 풍기는 야릇하고 기이한 냄새가 남의 옷이나 몸에 배면 솥에 넣고 삶아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는 평판이 있어서 떠메기를 싫어했다. 마당이나 길섶을 가리지 않고 누워서 잠을 잤다. 겨울에 애경사가 생기면 길에서 얼어 죽을지도 몰라 아예 그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어김없이 그런 자리에 나타나 탄압과 만류를 무릅쓰고 반드시 고꾸라지도록 마셨으며 역시 취해서 마당에 쓰러졌다. 그래서 황만근의 아들은 철이 들면서부터 겨울이 되면 취한 아버지를 부축하고 집에 데려오는 게 일이 되었다. 얼마나 그런 일이 잦아 단련이 되었는지 중학생이 되자 벌써 아버지를 업을 정도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발로 차며 올 수도 있게 되었다.
|생략 부분 줄거리| 그러던 어느 날 ‘농가 부채 해결을 위한 전국 농민 총궐기 대회’가 열린다고 이장이 방송을 해서, 저녁에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장은 결의를 보여 주기 위해서 군청까지 가는 국도로 경운기를 몰고 나오라고 하였다. 황만근과 함께 마을회관을 나선 민씨는 황만근에게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자고 권했고, 황만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따라왔다. 다음 날 새벽 민씨는 탈탈거리는 경운기 소리를 듣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전날 밤, 분명 꿈은 아니었다, 민씨는 황만근의 말을 이렇게 들었다.
“농사꾼은 빚을 지마 안 된다 카이.”
(한번 빚을 지면 그 빚을 갚으려고 무리하게 일을 벌인다. 동네 곳곳 텅 빈 우사(牛舍), 마른똥만 뒹구는 축사, 잡초만 무성한 비닐하우스를 보라. 농어민 복지, 소득 향상, 생할 개선? 다 좋다. 그걸 제 돈으로 해야 한다. 제 돈으로 하지 않으면 그건 노름이나 다를 바 없다. 빚은 만근산의 눈덩이, 처마의 고드름처럼 자꾸 커진다.)
“기계화 영농 카더이마 집집마다 바퀴 달린 기계가 및이나 되나. 깅운기,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거다 탈곡기, 건조기에…… 다 빚으로 산 기라. 농사지 봐야 그 빚 갚느라고 정신없다.”
(한 집에서 일 년에 한 번 쓰는 이앙기를 들여놓으면 그게 일 년 내내 돌아가던가. 놀 때는 다른 집에 빌려 주면 된다. 옛날에는 소를 그렇게 썼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서로 도와가면서 농사짓던 건 옛날 말이다. 한 집에서 기계를 놀리면서도 안 빌려 주면 옆집에서는 화가 나서라도 산다. 어차피 빚으로 사는데 사기가 어려울까. 기계에 들어가는 기름은 면세유(免稅油)다. 면세유 가지고 기계를 다 돌리기는 힘들다. 옆집에는 경운기가 두 댄데 면세유는 한 대분밖에 나오지 않는다. 경운기가 왜 두 대씩 필요할까. 한 사람이 한꺼번에 두 대를 모는 것도 아닌데.)
“그런 기 다 쌀값에 언차진다(얹어진다). 언차져야 하는데 사실로는 수매하마 먹고살기 간당간당한 돈을 준다. 그 대신에 빚을 준다. 자금을 대 준다 카는데 둘 다 안 했으마 좋겠다. 둘 다 농사꾼을 바보 멍텅구리로 만든다.”
(따라서 제대로 된 농사꾼이 점점 없어진다.)
“지 입에 들어갈 양석(양식), 곡석을 짓는 사람이 그 고마운 곡석, 양석한테 장난치겠나. 저도 남도 해로운 농약 뿌리고 비싸고 나쁜 비료 쳐서 보기만 좋은 열매를 뺏으마 그마이가?”
(모두 빚을 갚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그러므로 빚을 제 주머니에서 아들 용돈 주듯이 내 주는 사람, 기관은 다 농사꾼을 나쁘게 만든다. 정책 자금, 선심 자금, 농어촌 구조 개선 자금, 주택 개량 자금, 무슨무슨 자금 해서 빌려 줄 때는 인심 좋게 빌려 주는 척하더니 이제 와서 그 자금이 상환 능력도 없는 사람들을 파산 지경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제 와서 그 빚을 못 갚겠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내가 왜 빚을 안 졌니야고. 아무도 나한테 빚 준다고 안 캐. 바보라고 아무도 보증 서라는 이야기도 안 했다. 나는 내 짓고 싶은 대로 농사지민서 안 망하고 백년을 살끼라.”
일주일 뒤에 황만근은 돌아왔다. 그의 아들이 그를 안고 돌아왔다. 한 항아리밖에 안 되는 그의 뼈를 담고 돌아왔다. 경운기도 돌아왔다. 수레는 떼어 내고 머리 부분만 트럭에 실려 돌아왔다. 황만근 아니면 그 누구도 작동시킬 수 없는 그 머리가, 바보처럼 주인을 태우지 않고 돌아왔다.
황만근, 황 선생은 어리석게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해가 가며 차츰 신지(神智)가 돌아왔다. 하늘이 착한 사람을 따뜻이 덮어 주고 땅이 은혜롭게 부리를 대어 알껍질을 까 주었다. 그리하여 후년에는 그 누구보다 지혜로웠다. 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듯 그 지혜로 어떤 수고로운 가르침도 함부로 남기지 않았다. 스스로 땅의 자손을 자처하여 늘 부지런하고 근면하였다. 사람들이 빚만 남는 농사에 공연히 뼈를 상한다고 하였으나 개의치 아니하였다. 사람 사이에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나 함께하였고 공에는 자신보다 남을 내세워 뒷사람을 놀라게 했다. 하늘이 내린 효자로서 평생 어머니 봉양을 극진히 했다. 아들에게는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였고 훈육을 할 때는 알아듣기 쉽게 하여 마음으로 감복시켰다.
선생은 천성이 술을 좋아하였는데 사람들은 선생이 가난한 것은 술 때문이라고 했다. 선생은 어느 농사꾼보다 부지런했고 농사일에도 익어 있었다. 문중 땅과 나이가 들어 농사가 힘에 부친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짓되 땅에서 억지로 빼앗지 않고 남으면 술을 빚어 가벼운 기운은 하늘에 바치고 무거운 기운은 땅에 돌려주었다. 그러므로 선생은 술로써 망한 것이 아니라 술의 물감으로 인생을 그려 나간 것이다. 선생이 마시는 막걸리는 밥이면서 사직(社稷)의 신에게 바치는 헌주였다. 힘의 근원이고 낙천(樂天)의 뼈였다.
전일에, 선생은 경운기를 끌고 면소재지로 갔지만 경운기를 타고 온 사람이 없어 같이 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선생은 다시 경운기를 끌고 백릿길을 달려 약속 장소인 군청까지 갔다. 가는 동안 선생은 여러 번 차에 부딪힐 뻔했다. 마른 봄바람에 섞인 먼지가 눈을 괴롭혔다. 날은 흐렸고 추웠다. 이윽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경운기에는 비를 피할 만한 덮개가 없어서 선생은 뼛속까지 젖어드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선생이 군청 앞까지 갔을 때 이미 대회는 끝나고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에게 가져다 줄 생선을 사고 몸을 녹인 선생은 날이 어두워오는 줄도 모르고 경운기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경운기에는 빠르게 달리는 차량의 주의를 끌 만한 표지가 없어서 선생은 몇 번이나 사고를 당할 뻔했다. 그 때마다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바람에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어두워지면서 경운기는 길 옆의 논으로 떨어졌고 수레는 부서졌다. 결국 선생은 그 밤 안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선생은 경운기에 실려 있는 땅의 젖에 취하여 경운기 옆에 앉아 경운기를 지켰다. 그러나 경운기는 선생을 지켜 주지 않았다. 추위와 졸음으로부터 선생을 지켜 주지 못했다. 아아, 선생이 좀더 살았더라면 난세의 혹염에 그늘의 덕을 널리 베푸는 큰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라,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4)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 어찌 하늘이 내고 땅이 일으켜 세운 사람이 아니랴.
단기 사천삼백삼십 년 오월 스무날
본디 묘지에나 쓰일 것[墓碑銘]이지만 천지를 대영혼의 집으로 삼은 선생인지라 아무 쓸모도 없는 이 글을, 새터말로 귀농하였다가 이룬 것 없이 다시 도시로 흘러가며, 남해인(南海人) 민순정(閔順晶)이 엎디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