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의 울음에도 귀 기울이는 세상(김예슬) -장끼전을 읽고-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3.03.28|조회수83 목록 댓글 0

암탉의 울음에도 귀 기울이는 세상(김예슬) -장끼전을 읽고-



3월 1일은 삼일절, 4월 5일은 식목일,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 5월 5일은 어린이날 등 우리는 나라의 중요한 일이나 어떤 대상들을 위해 의미 있는 날을 만들어 휴일로 정하거나 뜻있는 행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3월 8일은 무슨 날인지 알고 있을까?

바로 여성의 날 이다.  아마도 조선시대라면 이런 날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장끼전은 조선시대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도전과 해방적인 여성 윤리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장끼가 부인 까투리의 말을 듣지 않고 불은 콩 한 알을 먹고 죽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까투리는 간밤 꿈이 뒤숭숭하다며 좀더 신중을 기해 먹이를 찾을 것을 당부하지만 장끼는 아녀자의 하찮은 말로 대수롭게 넘기며 눈에 보이는 먹이만을 먹기 위해 집중했고 그 결과 죽음에 이르렀다. 이는 암탉이 울 때는 거기에 충분한 이유와 근거가 있으니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장끼는 죽으면서까지 까투리에게 수절 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며 열녀는 두 지아비를 바꾸지 않는다는 유교 정신이 깃든 말이 있다. 물론 이는 믿음과 신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자식을 21명이나 남기고 무책임하게 떠나면서 하는 말치고는 너무 염치없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여자의 몸으로 여러 명의 자식을 먹여살려야하는 부인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보다는 오로지 수절만을 강조하는 남자의 이기심이 아닐까?

 그런데 이 소설에서 까투리가 재혼한 시점이 좀 마음에 걸린다. 물론 자신의 말은 무시하고 여러 명의 자식을 남기고 가면서 수절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간 장끼가 나쁘긴 하지만 조문하러 온 여러 새들이 상주인 까투리에게 청혼하는 장면과 그중 새로운 장끼와 재결합한 시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야기라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이렇게 쓴 것인지 아니면 허구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시점을 이렇게 표현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이 부분이 옥에 티가 아닐까 생각된다.

 재혼은 한사람과 한사람만이 아닌 그들의 자녀들도 있기 때문에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새로운 삶을 위해 결합하는 것은 찬성이나 그들의 자식들의 의견도 수렴되어야 된다고 생각된다. 함께 행복 하자고 시작한 삶이 자칫 잘못하면 더욱더 큰 불행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부인인 까투리의 경솔함이 엿보인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그저 재물과 현실 세계에 타협하기 위해 재혼이란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새로운 삶과 행복을 위해 한 선택이라면 시기의 의문과 까투리의 경솔함이 조금 엿보이긴 하지만 둘의 재혼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렇듯 일찌감치 재혼 금지, 남존여비사상등의 인습이란 굴레를 벗어난 장끼전처럼 우리는 항상 인습이란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변함없을 것 같은 커다란 바위도 빗물에 조금씩 녹듯 이젠 암탉의 울음에도 귀 기울이는 세상이 다가온 것처럼 잘못된 인습들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인습을 변화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잘못된 인습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며 잘못된 인습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렵겠지만 모든 이들 즉 모든 세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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