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문제 -조세희의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를 읽고(변지영)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3.10.04|조회수437 목록 댓글 0

문제의 문제 -조세희의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를 읽고(변지영)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노동자vs회사의 이야기이다. 소설을 전개하는 주인공의 설정부터 노동자vs회사 이면 노동자일 듯도 한데 회사 그룹 회장님 막내아들을 설정함으로써 비상함을 느꼈다. 주인공을 이렇게 설정함으로 써 양쪽 중 어느 편을 들지 않고 각자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시각을 조화롭게 표현한 것 같다. 또한, 소설속의 등장인물들이 현실에 갖는 생각들을 보여줌으로써 약자인 노동자에게 쏠릴 독자의 편중을 막고 양쪽의 시각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사내 계층 간의 문제라든지, 직업의 귀천 같은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익숙한 메마름


 많은 사람들에게 ‘직업에 귀천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없다고 답할 것이다. 또 ‘현대에는 계급사회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익숙하게 눈치도 못 챌 정도로 계급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계급 때문에 생기는 차별적 대우를 싫어하지만 당연하다 듯이 받아들이고 지낸다.


 “이미 철도 들고, 고생도 많이 해본 공장 동료들이 울음을 터뜨려, 엉엉 소리내어 우는 현장에 저는 서있어 보았습니다. 웬만한 고생에는 이미 면역이 된 천오백명이, 그것도 일제히 말입니다. 교육도 받고, 사물에 대한 이해도 깊은 공장 밖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럴 수 있을까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들이었습니다. 제가 말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아뇨. 내가 믿겠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살해 동기입니까?” “개새끼!” 나는 외쳤다. 내가 외치는 소리를 옆자리의 사촌도 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바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그런 것 말고도 계획하고 결정하고, 지시하고, 확인할 게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작은 악당은 몰랐다. 발육이 좋지 못해 우리보다 작고 약하지만 그 작은 몸속에 모진 생각들만 처넣고 사는 이런 부류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주인공은 살인자의 말에 왜 욕을 했을까. 주인공은 사람의 감정에 문제가 생기면 약으로 간단히 다스려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간미가 메말라 있는 사람이다. 그런 주인공이 살인자가 말한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에 조금의 공감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이해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 아버지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동할 자리를 내어주고 그 노동으로 자신들이 이익을 받는 사람들은 일단 일자리와 월급이 많든, 적든 주기만 하면 얼마든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얼마든지 부려먹어도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아주 사소하고 신경 쓸 여유조차 없는 이유로 큰 일을 벌여 자기들끼리 귀찮게 되는게 반갑지 않았을 것이고 화가 날것이다.

 그런데 과연 주인공의 저런 사고가 맞는 것일까? 상위 계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깔보고 무시하는 사람들을 발육이 좋지 못해 우리보다 작고 약하다고 표현하고 그 작은 몸속에 모진 생각들만 처넣고 사는 부류들을 자기들은 잘 알고 있다는 말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러는 자신들은 자기 들이 주는 월급을 받아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노동자들의 입장이 한번이나 되어보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단 한 번도 그런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본적도 없으면서 심지어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도 이해해준적도 없었으면서 법정에서 욕을 하고 화를 내는 주인공이 나는 이해가 되지않는다.


노동자들의 노래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공간에서 적은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해왔다. 자신들도 이 곳에서 일을 해오면서 인간적인 취급을 못 받는다는 것을 느꼈을 것 같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 기분이 들었을까. 노동자들이 인간인 이상, 이러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이면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뭔가 투쟁을 할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노동자들은 이러한 분노와 불만을 노래로써 회장아들에게 표출하였다.


 그 중의 한 아이가 “형씨, 나 좀 봅시다.” 했다. “뭐요.” 내가 묻자, “당신이 우리 회장님 아들이라고 아이들이 그러는데 사실이오” 건방진 말투로 물었다. 내 안에서 무엇이 욱 치밀었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누렇고 모가진 얼굴에 유난히 눈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아이들이 나를 둘러쌌다. 그리고, 적의와 반감을 나타내는 짧은 노랫소리를 나는 들었다.


우리 회장님은

마음도 좋지.

거스름돈을 쓸어

임금을 준대.


 아주 짧았지만 상상도 못했던 노래였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른 공원을 돌아볼 수 없었다. 보나마나 나이보다 작은 몸뚱이에 감춘 적의와 오해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중략)


 우리의 명예와 상관이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명예는 물론 나 자신의 명예도 지킬 수 없었다.


 나는 소설을 읽어 내려가다가 줄을 서있던 노동자들과 회장아들이 대면하는 시점부터 약간 긴장되었다. 회장을 죽일려고 했던 정도로 분노에 가득 찬 노동자들 이었는데 회장 아들을 보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노동자들은 회장아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며 보았는데 눈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노동자들이 적의와 반감을 나타내는 노래를 회장아들 앞, 뒤에서 불렀다. 그 노래 가사 또한, 짧고 간결하였으며 자신들이 말하고 싶고 표출하고 싶어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였다. 또 자신의 뒤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애써 외면하며 마음대로 그 아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라고 단정한 주인공 때문에 화가 났었는데 주인공 앞에 있던 아이들이 주인공의 표정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 노래를 다시 한번 부르는 대목에서 또 한번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이 소설에서는 크게는 1970년대의 노동자와 회사 간의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세세하게 따지고 보면, 상위계층의 메마른 인간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각박한 삶을 이해하지 못해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웅상 고등학교 1학년 5반 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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