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혼자서의 산행이 주저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사색에 잠길수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좋을때가 있습니다
마음대로 자기 자신을 부리며 살아가기가 쉽지않는 세상에서 그나마 남의 의사 의식하지않으며 제맘대로 행한다는게 어쩌면
좋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을 나서며 "오늘은 어느길로 가볼까?" 행복한 고민도 해봅니다.
요 앞번엔 세인봉을 갔으니 오늘은 간만에 바람제로 정합니다.
며칠전 봄비가 내렸음에도 1수원지의 물이 많이 보타져 있습니다.
물이 없어 보기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달 정도 빨리 와버린 고온 현상에
그로인해 당황했을 꽃들을 생각하니, 아니 그보다 일찍 배꽃이 피어 올 과수농사도 걱정이라지요.
자칫 냉해를 입으면 꽃이 빨리 떨어져 열매맺기가 쉽지않다면서요..
모든건 때가 있기 마련인데 말이지요..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가는데 뒤에서
"이 길이 바람재 가는길 맞나요?"
왠지 씩씩한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과연 위풍당당한 체격으로 뭐든 한가닥 하게 보였습니다.
첨단에서 일찍 나섰다는 그녀와 내키지않는 동행을 하게되었습니다.
산을 너무 좋아해 하루 월차를 내고 왔다는 말로 시작해 중국 명산을 두루 섭렵후 안나프루나까지 다녀왔다는 말에
완전히 기가 꺾인 저는 그저 묵묵이 듣기만 했답니다.
바람재를 지나 동화사터로 오르는 길 중간쯤에서 중머리재로 빠지는 길이 좋다해서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무더기로 피어있는 진달래꽃이 어찌나 예쁘던지 그냥 지나칠수없어 사진도 찍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는데
"악! 지렁이다"라는 외마디에 고개들어보니 젊은 남녀 둘이서 지렁이가 아닌 달팽이를 혐오의 눈빛으로 들여다보고있다.
길고 통통한 모양에 커다란 지렁인줄 알았나보다.
"그건 달팽인것같은데요"하니
"근데 왜 집이 없어요? 민달팽인가?"
사소한것도 신기해하는 젊은아이들이 귀여워 웃음 짓는데
"그게 왜 지렁이야"
마치 그런것도 모르느냐는듯한 말투에 나까지도 좀 무안해졌습니다.
중머리재에 당도하여 물을 달게 마시고 세인봉으로 하산하자하여 별 말없이 내려가는데
뒷쪽에서 아주 귀에 익숙한 음악 소리가 났습니다.
뒤돌아보지 않은채 rain이란 노랠 끝까지 다 듣고나선 다음곡은 무엇이겠구나 싶었는데 과연 학생 시절 퍽이나 좋아했던
팝송들이 줄줄이 흘러나왔습니다.
어찌나 반갑고 듣기 좋던지 그분의 보폭에 맞춰 따라 걸어갔지요.
아련한 과거로 순식간에 빠져들어 행복하기까지했습니다.
내 나이쯤 되보이는 그분도 저처럼 꽤나 팝송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해뜨는집'이 나올땐 속으로 따라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분은 약사암쪽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더이상 들을수없어 아쉬었습니다.
따라내려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 길은 흙길이 아닌 포장길이어서 내키지않았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흥겨운 시간이었다 생각하는데
"뭔 음악을 저리도 크게 듣는지.자기만 아나봐."
그녀가 또 투덜거렸습니다.
그녀 말이 틀린건 아니지만 좋은쪽으로 생각할순 없을까?
아니,그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걸 좀 참으면 안될까?
저와는 좀 다른듯싶어 아무런 대꾸도 없이 세인봉 삼거리에서 헤어졌습니다.
가끔 산행이나 같이 하자며 폰번호를 물어오는걸 한참을 망설여야했습니다.
이로써 친구만들기는 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별로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하하의 동생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어제도 다섯이서 맛난 음식과 함께 재미난 시간을 보냈는걸요.
별로 중요하지도않는 얘기들로 웃고 재미있어하고......
아주 오래전엔 그런 시간은 필요치않다고 여긴적도 있었어요.
그저 잡담으로 아까운 시간,낭비하는것쯤으로 말이지요.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야하고 뭔가를 읽거나 만들거나 해야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 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한가로운 시간과 생각을 같이 공감한다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참이나 나이 많은 저와 함께 해주어 참 고맙답니다.
나일 먹음은 서러운게 아니라 불편한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마도 저는 하하와 더불어 서서히 나이들어 갈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걸 지향하기 때문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