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의 바비도를 읽고나서..(강초롱)
바비도!
만약에 이런 사람이 우리 지금 세상에 살고 있다면 이런 부정부패한 현실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정한의 바비도! 원래는 바비드라고 하지만 김정한이 살던 시대에는 바비도라고 읽혔다고 하니까.
하여튼 이 작품은 교회의 횡포에 대항하는 가난한 재봉 직공 바비도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양심과 정의 그리고 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비도의 내용을 보면 중세의 영구를 배경으로 1410년 권의적인 교회 체제에 대항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사형 당한 '바비도;를 통하여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지켜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15세기 영국의 헨리 4세는 인간과 신의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백성들을 탄압하고 교회의 모든 특권을 독점한다. 당시 교회가 정한 라틴어 복음서 외에 민중어로 된 영역 복음서를 금서고 규정학고 이단자는 스미스필들의 사형장에서 불에 태워 형벌에 취하였다. 이와 같이 교회의 부정부패와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신도들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영역 복음서 비밀 독회에서 돌아온 바비도는 순회 재판소가 이단을 숙청할 때 굴복하지 않고 종교 재판정에 내간다. 대부분의 동지들은 성경이 유일한 진리이며 성직자의 언행은 허구라고 굳게 다짐하면서도 죽음이 두려워 순회 재판정 앞에서는 이를 반복하고 만다. 바비도 역시, 위로 교황에서 아래로 사제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교회 조직체가 자기를 억누르고 위압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하여 교회의 명령에 굴복하느냐 거부하느냐의 극한 상황에서 바비도는 결국 후자를 택한 것이다. 또한 바비도는 재판장 앞에서 교회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까지 흥미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바비도는 사죄하라는 재판장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고, 회개할 것이 없으므로 회개하지 않으며, 다만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슬퍼할 뿐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그는 스미스필드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되고 교회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들은 바비도에게 돌을 던진다. 헨리 태자는 회개할 것을 권하지만 바비도는 끝가지 거절하면서 교회와 왕정의 부조리한 것들을 지적한다. 스미스필드 상공에 불길이 솟아 바비도가 연기와 더불어 사라질 때 비로소 태자는 아첨과 권력의 횡포 속에서도 양심과 정의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바비도의 줄거리는 끝난다. 이글에서는 내가 느꼈던 것은 죽음 앞에서도 정의를 위해서는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것을 크게 배웠다. 도덕책이나 어느 책이든지 간에 어느 누구나 정의 앞에서는 용감해져야 한다고 하지만 난 이렇게까지 용감한 사람일 줄이야!!! 김정한 작가가 바비도를 내세워서 그것도 외국 사람인 바비도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바비도!!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 중에 하나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아첨하고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의 횡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것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바비도 같은 사람은 살아 있었다.
인간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사람, 그리고 정의가 살아 있도록 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음으로 우리가 정의가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죽음을 너무 쉽게 보는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바비도의 용기가 어느 용기보다 더 그리고 바비도의 정의로움 앞에서의 죽음을 두렵게 생각 안한 그 용기가 어느 것보다 자랑스럽게 여겨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