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13
2. 혈서(손창섭) 줄거리
사회에서 소외된 비정상적 인간들의 병적인 도착심리를 그린 작품이다. 달수와 준석, 창애는 규홍의 하숙비를 뜯어먹고 산다. 본래 이 집 주인은 창애의 아버지 박 노인이지만, 행상 때문에 늘 집을 비운다. 달수는 직업을 구하기 위하여 매일 거리를 쏘다니다가 밤에 되어서야 들어온다. 준석은 달수만 보면 공연히 시비를 건다. 세 사람은 만나면 창애 신랑감 문제로 의견이 구구하다. 준석은 규홍을 후보자로 추천한다. 위선자 준석은 어느 겨울 밤 창애 방에 침입하여 육체관계를 맺고 창애를 임신시킨다. 이 사실을 달수가 폭로하자, 준석은 앙갚음으로 병역기피자가 아니면 혈서를 써 보이라고 강요한다. 도마 위에 놓인 달수의 손가락을 칼로 내리친 준석은 도망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신체장애자이다.
이러한 인간의 불구성은 손창섭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 집에서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혈서>의 인물들의 삶은 매우 일그러져 형상화된다. 달수는 가능하지도 않은 일자리를 찾아 끝없이 거리를 헤매는 실업자이고, 준석은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진 성격을 가진 신체장애자이며, 창애는 천치이자 간질병 환자이다. 이들은 모두 파열되고 분열된 인간으로서 언제나 무의미한 입씨름으로 서로를 헐뜯는다. 특히 달수의 손가락을 자르는 준석의 가학적 폭력은 자신의 다리를 잃은 데 대한 과잉된 보상심리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사실여부를 알 수는 없으나 준석이 자신의 다리를 전장에서 잃었음을 강조하는 대목은 이들의 결함이 인간의 본성 자체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 현실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핵심정리
성격 : 절망적, 허무주의적, 냉소적
주제 : 전후 삶의 축을 상실한 젊은이들의 절망적인 삶.
전망 부재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허무한 삶.
- 등장인물
․ 달수(達壽) : 법대생이며 고학생. 구직을 하지만 번번이 좌절됨. 친구 규홍의 집에서 얹혀 살고 있지만,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여 타인에게 기생하는 현재의 처지에서 벗어나 대학 생활을 마치기를 원함. 졸업 후 판검사가 되어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음. 미군용 트럭에 치여 죽은 앞사람을 본 후 죽음의 공포를 갖고 있음. 현재의 결핍에서 벗어나 현실적 질서에 안착하여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망 지님. 규홍과 창애의 결혼에 대해 반대함. 작품 말미에서 창애의 배를 보며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림. 어떤 사태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있긴 하나 그 결론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인물.
․ 규홍(奎鴻) : 법대를 나와 판검사가 되어야 한다는 부친의 바람을 무시하고 국문과에 적을 두고 시를 쓰는데 몰두하는 시인 지망생. 오갈 데 없는 친구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불평 한 마디 없는 무탈한 성격의 너그러운 인물. 그의 이러한 성격은 암담한 전후 상황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긍정적인 인물(‘잉여인간’, 서만기와 유사한 성격)로 볼 수 있음. 그러나 그의 <혈서>라는 시를 볼 때, 그의 삶도 고통과 무의미의 연속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를 쓰는 행위는 물화(物化)된 현실적 질서를 넘어서 보다 바람직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의 구체적 실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충남 어느 지역의 면장을 지내는 부모를 둔 부유한 집안의 장남. 법대에 들어가 판검사가 된다는 조건으로 유학 왔으나 국문과에 들어가 문학공부를 하고 있고, 집에서 생활비를 타 쓰고 있음. 현재 거처하고 있는 집은 자신의 부친 친구집으로 중학시절부터 하숙하던 곳, 6.25전쟁 반발로 피난 갔다가 돌아와 보니 주인은 없고 십육칠 세의 창애가 있었음. 그 후로 이곳에 다시 머물게 됨. 대학교에 갔다가 밤에는 문학을 위해 불어강습까지 다님.
혈서 쓰듯 / 혈서라도 쓰듯 / 순간을 살고 싶다. (1연 생략)
모가지를 / 이 모가지를 / 뎅겅 잘라 / 내용 없는 / 혈서를 쓸까!
시 자체의 의미를 보자면, 삶을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혈서의 외침은 ‘내용 없는’ 것임을 확인할 때, 아무런 희망도 없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의지와 다짐임을 알 수 있다.(목표의식의 부재) 어떤 사회적 아픔이 매 순간을 혈서 쓰듯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을까?
그러나 이 혈서는 준석의 돌출행동으로 인해 현실화되자마자 속악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비천한 행위로 전락하고 만다.
․ 준석(俊錫) : 군속으로 일선을 편력하다가 한쪽 다리를 잃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고 상이군인 행세를 함.(사실은 군무원을 했었음) ‘군대’로 대표되는 남성적 힘의 상징으로 자신을 표방하고 있음.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이 무력하게 현재에 고착된 채 육욕(肉慾)만을 채움. 퇴행적 욕망의 주체. 달수에게 ‘거지’가 무슨 대학이냐며 대학을 그만두고 군대를 가라고 함. 달수를 국적(國賊)이며 병역기피자라고 말함. 작품 말미에 ‘자원 입대’라는 혈서를 쓰라고 달수를 강요하다가 강제로 손가락을 절단하고 집을 나가버림. 즉 미래의 희망이 없는 자신의 좌절의식을 유독 달수에게 공격적 본능으로 표출하는 인물. 시 쓰는 규홍도 대장부답지 못한 여자애 같은 일을 한다고 못마땅해 하지만 그의 식객(食客)이기에 규홍에게만은 함부로 대하지 못함. 냉소적인 성격.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망으로 분노하고 있으며 타인들의 삶도 자신의 삶처럼 희망 없이 전락하기를 바라고 있음. (물귀신 작전이라고 할까?) 타인들도 똑같이 희생당하기를 바라는 인물.
․ 창애(昌愛) : 전쟁 중 피난 갔다가 규홍이 환도한 뒤에 하숙집에 있었던 소녀. 현재 집안에서 식모역할을 하고 있음. 무표정하고 유령 같이 멍하니 앉아 있음. 간질병 환자임. 60이 넘는 노부가 있음. 아무런 의욕도 목표의식도 없는 인물. 임신으로 점점 배가 부풀어 오름(준석의 행동의 탓으로 파악됨), 손창섭의 <비오는 날>에서 동옥처럼 정신적, 육체적 불구자로 형상화됨. “돌부처, 돌멩이, 석상(石像), 목석, 바위” 등의 정물적인 수식어로 묘사되고 광물성의 이미지를 띰. 비참한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생명 이전의 무기물로 회귀하고자는 태도를 볼 수도 있고, 불가항력적인 현실에 대한 체념과 견딤의 역설적 의지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
․ 창애 아버지 : 60이 넘는 나이의 노부. 서당에서 천자를 떼고, 신식학교 4학년을 졸업했음. 도필 및 먹장수, 창애를 규홍의 집에 맡기게 됨. 장사를 위해 지방 행각을 하고 밥보다는 술을 좋아함. 창애를 안타까워 함(‘허, 내가 왜 이런 걸 슬하에 두었던고.’) 편지를 써서 규홍이가 창애를 배필로 삼아 주기를 바라는 편지를 씀.
※ 달수와 규홍의 공통점 : 현재의 결핍을 넘어 보다 바람직한 삶을 모색하는 상승 지향적 욕망을 지닌다는 점에서 동질적 특성 함유
※ 세 인물과 혈서의 의미 : 세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삶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물론 준석은 냉소와 비판이지만, 그의 냉소적 비판이 그의 삶을 유지시키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삶은 결국 무의미한 혈서를 쓰는 것과 같다. 삶의 전망이 부재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손창섭의 인물들은 이렇듯 사회적 원인에 의해 상처받고 병든 전망이 부재한 사회를 살아가는 자들이다.
※ 작품에서 보이는 달수와 준석의 논쟁
① 달수의 구직 행위
② 달수의 군 입대 및 병역 기피 논란
③ 창애와 규홍의 결혼 문제
④ 누가 창애와 함께 이불을 덮고 잘 것인가?
⑤ 창애의 임신 문제
☞ 서술자의 주관적 논평 : “맹랑한 논쟁, 기괴한 논쟁, 어처구니없는 토론, 영원히 일치점에 도달할 수 없는 괴이한 논전, 무의미한 논쟁, 운명적인 논전, 보람 없는 토론, 운명적인 대립” ⇒ 영원히 엇나간 채 서로 의사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달수와 준석이 운명에 희롱당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킴. (준석의 허장성세는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부각시키고, 자신을 더욱 곤경에 빠뜨리며 스스로 당황에 빠뜨리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