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눈사람』을 읽고 (김아름 )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5.01.10|조회수298 목록 댓글 0

『회색눈사람』을 읽고 (김아름 )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최윤’이라는 이름을 보고 나는 작가가 남자일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갑자기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정말 남자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최윤’ 작가는 단아한 여자 분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말들이 참 많았다. 화자의 내면을 그린 부분들이 그러했다. 그런 부분들은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으면서 읽었다.(복사물이기에) 문장 하나하나에 섬세하고 여성적인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고 한다면 나의 지나친 과장일까. 소설의 화자는 분명히 자신의 과거를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었지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오히려 마치 내가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인양 설레기도 하고, 아프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강하원’이다. 우연히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인이 뉴욕에서 죽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게 되면서 주인공의 과거 회상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강하원은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어머니는 오래전 그녀를 이모에게 맡기고 미국인과 재혼한다. 하원은 이모부의 병원비를 위해 판 땅값의 전액을 훔쳐 고향을 떠나왔다. 대학 입학금을 위해서였다. 언젠가 고향에서 누군가 올라와 자신을 잡아갈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돈을 벌기위해 닥치는 대로 과외를 했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당시에는 금서로 되어 있던 희귀한 책들을 헌책방에서 열심히 모으는 것이었다. 과외도 들어오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던 시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헌 책을 찾는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그렇게 하원과 ‘안’의 인연이 시작된다.

 ‘안’은 서울에서 하원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단 하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안’은 그녀에게 그 이상의 사람이다. 주인공은 안과의 만남이 자신에게 일자리와 약간의 생기를 동시에 주었다고 했다. 막연히 자신이 곧 죽게 될 거라며 좁은 방안에서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그런 순간에 가끔씩 안의 얼굴을 떠올렸다. 갈 곳이 없어 인쇄소 근처를 서성이고, 문 뒤에서 들려오는 ‘안’의 목소리를 들으면 안심이 된다고 할 만큼. 주인공은 자신과 ‘안’의 관계를 [순수하게 차갑고 투명하다]고 했다. 이 말이 나는 왜 그리 가슴 아프게 느껴졌을까. 매일 방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가진 행운에 감사하며, 인쇄소 일에 열성을 다할 만큼 그녀는 외로웠다.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하원은 우연히 ‘안’이 단순히 인쇄소를 경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밀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조직의 일을 돕게 된다. 하원은 그 일을 돕게 된 것을 어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 여긴다. 그녀는 그 조직에서 하는 일을 선망으로 바라보면서 약간의 안도와 위로를 얻는다.

 하지만 그 조직 안에서도 하원은 외부인이었다. 조직에 관한 자세한 내막도, 거기에 관련 된 사람들의 사정도 잘 알지 못한다. 하원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안은 그녀를 사무적으로 대할 뿐이다. 안의 따뜻한 배려마저도 그녀에겐 계산된 차가운 거리로 다가왔다고 했다. 자신은 어느 사람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이 지상에서 유령처럼 적을 둔 곳 없이 부유한다고 생각하는 그녀…….어쩌면 이것은 그녀 스스로 자초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 또한 조직 내에서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으니까.

 결국 조직은 해체되고, 하원은 불안한 마음으로 혹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자신이 열성을 다했던 인쇄소에서의 일들을, 그리고 안을 기다리고 그리워했다. 조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김희진’이라는 여자가 찾아왔을 때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숨겨주었고, 보살폈다. 그리고 김희진이 전해 준 안의 사무적인 편지를 바라보며 뭔가 서운하다는 생각을 한 듯 했다. 사실 나는 왜 주인공이 만약 안이 자신에게 다른 식의 편지를 썼더라면 오히려 위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그리워했으면서. 하원은 자신의 여권을 김희진에게 주기로 결심하고 거기서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중대한 일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이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졌다. 김희진이 위조 된 여권을 가지고 떠난 후, 주인공은 학교를 그만 두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강희원은 자신이 조직의 일에 가담했던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열성을 다하였는데, 자신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내가 강희원이 된 것처럼, 강희원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강희원의 그 시절은 그 사랑은 아리고 쓰리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고 위대해 보였다. 나 역시 늘 사람과의 관계와 그 속에서 나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곤 한다. 어쩌면 ‘안’은 정말 하원을 이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원도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상처받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재와 흙으로 범벅 된 회색 눈사람처럼.

 감상문을 쓰려고 다시 이 소설을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만약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회색눈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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