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 ('사랑손님과 어머니'독후감)(정청아)

작성자이계양|작성시간15.08.07|조회수293 목록 댓글 0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 (사랑손님과 어머니)

2326 정청아

몇 년 전 이 책을 모티브로 한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엄마가 영화 예고편 광고를 보고 원작은 제목은 '사랑손님과 어머니'이며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니 꼭 읽어봐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학기 초에 단편소설 37개를 한 권에 묶은 제법 두툼한 책에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포함되어 있어서 미리 읽어 두었다가 독후감을 작성하기 전에 두어 번 더 읽어 보았다. 이 책은 '시점'을 공부할 때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예로 단골로 들어졌기 때문에 친숙하게 느껴졌다. 다른 책들은 작품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한다거나 공부를 해 두면 내용 파악에는 도움을 주지만 책의 정서를 느끼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시점을 파악해 두었던 것이 정서를 한층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작품이 쓰인 당시 1935년으로 하자면 아직 해방을 맞이하기도 전이다. 죽은 남편의 친구와의 사랑이라는 제재는 2013년인 지금에도 파격적인 소재임에 틀림없음으로 보아 당시 작품이 발표 된 후의 후폭풍이 대략 예상이 될 정도이다. 막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주요섭 작가의 손을 거쳐 퇴폐성이 제거되고 순수하고 애틋한 정서만을 남겨놓았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저씨가 더 가엽게 여겨졌다. 운명은 어쩜 그리 잔인한 것인지 다른 이도 아닌 친구의 남편,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이들의 사랑은 좀 덜 안타까웠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 했을 테니까 그것이 위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이별하고 만다.

이 작품을 읽고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가 떠올랐다. '나'와 '그'는 재혼가정의 남매라는 굴레에 갇혀 사랑할 수 없고 인정받지 못한다. 이 작품을 두고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 때와 변함없이 그들을 지지한다. 관습적으로 보자면 그들은 지탄 받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사랑보다 그 부모들의 사랑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들 부모도, 그 두 사람도 원래는 각각 남남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부모가 먼저 결혼했고 연장자이므로 그들이 사랑보다 더 존중되는 것은 부당하다. 연소자는 그들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감추고 홀로 상처를 삭혀야 하는가. 바로 이것이 '인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머니와 아저씨의 사랑이 '인습'으로 인해 좌절되었다는 것에는 동의 할 수 없다. 당시에는 재혼도 금기시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둘째로 치고 그들의 사랑이 용납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재혼'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남편이자 친구인 옥희의 아버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부재와는 상관없이 그로 맺어진 둘의 관계가 사랑으로 발전한다면 요절한 '그'는 가 부정되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친구에게 아내를 빼앗긴 꼴이 되므로 죽어서도 얼마나 한스러울까.

처음 독후감을 시작했을 때는 '과연 무슨 내용을 써야할까', '이 책을 나의 것으로 소화해서 나만의 생각을 채워나갈 수 있을까?' '있다면 그 내용이 무엇이 될까?' 걱정스러웠지만 한 줄 한 줄 써 내려 가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내가 이 책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 게 아니라 나름 '비판적' 읽기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단 한 번만 읽고서는 이런 독후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몇 번 씩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새 여러 생각을 하게 되고 '나'를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역시 어떤 책이라도 몇 번씩 읽고 곱씹어야만 비로소 책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말이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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