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실전소설/유자소전(兪子小傳)(관촌사랑)
* 작가의 말 - 대표작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없다”. 작가적인 자질이 부족한 것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兪子小傳』을 쓸 때의 일이다. 유자는 30년 친구였다. 유자가 죽고 나서 그를 늘 생각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유자소전을 쓰게 되었다. 글 쓰는 원칙은 (1)유자는 물론 등장인물에 대해 모두 실명으로 쓸 것 (2) 있는 그대로 쓸 것 (3) 그러나 소설로 발표하여 이렇게 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리자.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유자에 대해 fact로서의 보고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단지 그를 통해 나눈 이야기들이 주 소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이문구 실전소설/유자소전’으로 건 제목 때문에 다큐멘터리로 볼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이것은 이문구의 소설이다. 실전의 형식을 띤 소설이다. 나는 유자소전의 내용전개나 감상 등의 관심 보다는 단편적인 웃음과 해학을 대한 부분을 찾아보려 한다. 일반적인 논술형태의 눈길로 읽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 몇 가지를 통해서 내가 감동 받은 것을 함께 나누려 한다.
1
* 먼저, 제목이다. ‘이문구 실전소설/兪子小傳’이 제목이다. 실전소설이라 하면 전기체 소설을 일컫는다. 즉 유재필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일을 작가적 관점과 그의 필력을 중심으로 해서 글을 썼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문구의 30년 지기이다. 그가 이문구에게 전화를 할 때 “이간감? 나 유가여?” 하는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의 심성은 남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임을 깨달아 아픔을 나누고 눈물을 나누되 자기가 아는 바 사람 사는 도리에 이르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위인이었다는 것을 느낀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그들보다 앞서서 걱정하고,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함을 본 연후에야 즐거움을 누린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고 말한 선비적인 덕량의 본보기가 바로 유자였다.
5.
* 10년도 넘어 유자가 찾아왔다. 그는 총수의 승용차 운전수가 되고, 나는 무명작가였다. 올 때마다 책 몇 권씩 가져가더니 오는 족족 자기 욕심껏 책더미를 헐어갔다. 장근 17년 동안 밥상머리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그 열정적인 독서생활이야 말로 실은 그렇게 책탐으로 시작되었다.
* 민물고기 대포집에서 나눈 대화.
“허울좋은 하눌타리지, 수챗구녕내가 나서 워디 먹겠나, 이까짓 냄새가 뭐시 그리워서 이걸 다 돈주구 사먹어. 나 원 참, 취미두 별 움둑가지 같은 취미 다 있구먼.”
“그래두 좀 구적구적헌 디서 사는 고기가 하꾸라이(외국 것)보담은 맛이 낫어.”
“무슨 얘기가 있는 모양이구먼.”
“있다면 있구 웂다면 웂는데, 들어볼라남?”
총수의 집에 연못을 만들어 비행기를 타고 온 비단잉어를 풀어놓았다.
“대관절 월매짜리 고기간디 그려?”
“마리당 팔십만 원쓱 주구 가져왔댜.”
이문구 월급으로 3년 4개월이나 봉투째로 쌓아야 만져볼까 말까 한 값이다.(이문구가 받던 당시 월급은 2만원이다)
“웬늠으 잉어가 사람버덤 비싸다나?”
“보통 것은 아닐러먼 그려. 뱉어낸벤토(베토벤)라나 뭬라나를 틀어주면 또 그 가락대루 따라서 허구, 차에코풀구싶어(차이코스스키)라나 뭬라나를 틀어주면 또 그 가락대루 따라서 허구, 좌우간 곡을 틀어주는 대루 못 추는 춤이 웂는 순전 딴따라 고기닝께. 물고기두 꼬랑지 흔들어서 먹구 사는 물고기가 있다는 건 이번에 그 집에서 츰봤구먼.”
그런데 이 비단잉어들이 떼 죽음을 한 거였다. 총수가 실내화를 꿴 발로 뛰어 나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총수 왈 “어떻게 된 거야?”
“글쎄유, 아마 밤새에 고뿔이 들었던 개비네유.”
“뭐야? 물고기가 물에서 감기 들어 죽는 물고기두 봤어?”
“그야 팔자가 사나서 이런 후진국에 시집와 살라니께 여러 가지루다 객고가 쌯여서 조시두 안 좋았을 테구.... 그런디다가 부룻쓰구 지루박이구 가락을 트는 대루 디립다 춰댔으니께 과로해서 몸살끼두 다소 있었을 테구..... 본래 받들어서 키우는 새끼덜일수록이 다다 탈이 많은 법이니께....”
.....
“유 기사, 어제 그 고기들은 어떡했나?”
“한 마리가 황소 너댓 마리 값이나 나간다는디, 아까워서 그냥 내뻔지기두 거시기 허구, 비싼 고기는 맛두 괜찮겄다 싶기두허구..... 게 비눌을 대강 긁어서 된장끼 좀 허구, 꼬치장두 좀 풀구, 마눌두 서너 통 다져 늫구, 멀국두 좀 있게 지져서 한 고뿌덜씩 했지유.”
....
“그래, 지져먹어보니 맛이 워떻타?”(‘워떻타?’는 ‘워떻탸?’의 오타?)
“워떻기는 뭬가 워뗘... 살이라구 허벅허벅헌 것이, 똑 반반헌 화류곗년 별맛 웂는 거나 비젓허더먼 그려.”
“내가 독종이면 저는 말종인디..... 좌우지간 맛대가리 웂는 서양 물고기 한 사발에 국산욕을 두 사발이나 먹구 났더니, 지금지금허구 해감내가 나더래두 이런 붕어지지미 생각이 절루 나길래 예까장 나오라구 했던겨.”
* 그는 하루바삐 총수의 승용차 운전석을 떠나고 싶었다. 그는 총수가 틀거지만 그럴 듯한 보잘것없는 위선자로 비치기 시작하자, 그 동안 그런 줄도 모르고 주야로 모셔 온 나날들이 그렇게 욕스러울 수가 없었고, 그런 위선자에게 이렇듯 매인 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구차스러운 삶이 칙살맞고 가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총수가 더 붙들어두고 싶어도 불쾌하고 괘씸해서 갈아치울 수밖에 없는 어떤 사단이나 한바탕 퉁그러지기만을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총수는 불교신자인데, 집안 불당청소를 맡겼다. 총수는 어슴새벽에 일어나면서 일변 불당에 참배를 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유자가 불상을 닦다가 파리똥인지 뭔지 마른 행주로 닦이지 않아 차량을 다루던 버릇으로 침을 뱉어 파리똥을 막 지우려는 순간
“야아, 저런 천하에 몹쓸....”
“너 너 .... 너 오늘부터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총수가 큰 절마다 정문의 문간에 좌우로 험악하게 서 있는 금강역사의 눈을 해가지고 명령하면서도 ‘내 회사’가 아니라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한 것은, 거듭 생각해 보아도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굽어살피심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 실천문학사에서 집들이를 겸하여 고사를 지낼 때 희망사항을 신고하고 두 손을 비비라는 농담이 사방에서 빗발 칠 때 누구도 나선지 않는데, 선뜻 유자가 나서서
“비나이다. 그저 관재수 좀 웂게 해 주시구,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돼서 돈두 좀 벌게 해 주시구, 또 이 회사 대표되는 늠 술 좀 작작 처먹게도 해 주시구....”
그로부터 서너 해 지나서 펴낸 도종환 시인의 시집 『접시꽃 당신』이 출판사상 세계적인 기록을 세우며 1백만 부 이상의 초베스트셀러가 됐던 것도, 혹 유자의 비라리에 감응이 있어서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 6.29 선언 때 어느 병원 원무실장으로 있을 때 노사분규로 다친 이들을 치료하도록 하고는 당직의사와 당직 간호사만 나오는 일요일을 택하여 환자들을 모두 탈출시키고는 이튿날 아침에 사표를 냈다. 딱한 사람들에게 베푼 마지막 선물이었다.
* 이시영의 유자를 찬한 산문시 중에서
.... 유재필 씨의 시신은 영구차에 실려 답십리 삼성병원 영안실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또한 벗 채광석의 일백 일 탈상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일백 일 전에 세상을 떠난 광석이와 그를 묻고 돌을 세운 유재필 씨가 한강변의 이산 저산에서 만나는 날입니다.
“잘 있었나?” “예, 형님 어서 오십시오. 제가 이곳에 좀 먼저 온 죄로 터를 닦아놨습니다. 야, 얘들아 인사드려라. 재필이 성님이다. 소설가 이문구 씨 친구.” “이문구 씨가 누구요?” “야 씨팔놈들아, 저세상에 그런 소설가가 있어!”....
유명이 갈렸건만 아직도 그대를 찾음이여
오롯이 더불어 살은 진한 삶이었음이네.
수필이 되고 소설이 되고 시가 되어 남음이여
그 정신 아름답고 향기로웠음이네.
아아 사십 중반에 만념이 되었음이여
남보다 앞서 살고 앞서 떠났음이로다.
붓을 놓으며 다시금 눈물 젖음이여
그립고 기리는 마음 가이없어라.